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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26 대북 옥수수지원 바람직하지 않다 _식량지원의 방식 3
  2. 2009.08.24 김대중, "공산주의를 신뢰하지 않는다"
  3. 2009.08.22 청와대, 북측조문단 먼저 초청했어야 한다 4
  4. 2009.08.19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이 적절합니다 45
  5. 2009.07.24 쌍용차, 경찰 신중한 대응 바란다
  6. 2009.07.20 미디어법에 대한 한나라당의 오해 _직권상정, 날치기 안돼 1
  7. 2009.07.09 현정권, 미디어법 광고 개념 문제있다 1
  8. 2009.06.25 정책이 광고인가? 대한늬우스, 이명박정권은 불량품? 8


우여곡절 끝에 국무총리로 임명된 정운찬 총리는 얼마전 청문회에서 그 나이 또래들이 겪었을만한 시대의 경험담을 피력한 바 있다.
자기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강냉이죽'만 먹었고, 밥은 구경해 본 적도 없다는 것이다. 보릿고개가 여전했던 시절이기는 하나 좀 심해보이기도 하는데, 사실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실상에 가까울 것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한 참 다가올 때, 1986년 아시안게임에서 우리의 눈을 사로잡은 기사는 여자 육상에서 연거푸 금메달을 따낸 임춘애 선수가 '라면만 먹고 생활했다. 제발 우유 제대로 먹고 뛰어보고 싶다.'는 기사였다. 물론 후에 과장된 내용으로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졌기는 했지만, 20년 전만 해도 이런 기사는 현실로 충분히 받아들일만 했다.

그만큼 먹고 사는 것이 우리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배 부르게 먹고 사는 것이, 눈부시게 발전했다는 우리들의 기적만큼이나 그렇게 오래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관심을 멀리한 사이에, 여전히 '먹고 사는 것' 자체가 힘든 이들이 우리 주변에는 적지 않을 것이다. '내 배가 부르다고 세상 사람들 배가 다 부른 것은 아닌 것'이다.


정부는 10월 26일 대북 옥수수 지원을 발표했다. 
옥수수 1만톤을 구입하여, 분유 20톤과 함께 대북 지원 하겠다는 내용이다. 옥수수 1만톤 구입, 포장, 배송에 들어가는 비용은 약 40억원으로, 남북협력기금을 지원하는 형식으로 조성된다고 한다. 분유 20톤은 약 1억 5천만원 상당으로 적십자에서 지원한다고 한다.

정부의 지원은 북한의 인도적 지원 요청에 따른 것으로, 수입 외국산 옥수수로 지원하게 될 것이며, 소요기간은 30일~40일이 걸릴 것으로 통일부 천해성 대변인은 밝혔다고 한다.


여기서 생각해 보자.
과연 정부의 대북 옥수수 지원은 바람직한가?


이 점에 대해서 자신이 '보수'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우선 김정일 정권이 인민들을 굶기고 있는 북한 정권에 과연 불투명한 배포 방식의 '인도적 식량 지원'이나 하등의 '지원'이 과연 적절한 것인가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본인은 이 점에 대해서는 논할 생각은 없다.

필자가 논하고 싶은 점은, 과연 정부가 북한에게 '옥수수'를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것이다.

정부가 대북에 '곡물'을 지원하는 이유나, 북한이 남한에게 '식량'의 인도적 지원을 요청하는 이유는, 말 그대로 '주식으로 먹을 만한' '곡물'을 요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결국 체제의 효율성, 형평성 문제가 근본적으로 걸려있기는 하지만, 자연적으로 북한은 '곡창지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반도 전체를 보건데, 북한은 대륙성 기후로 겨울 되면 추운 곳이고, 추수기에도 남한처럼 곡창지대가 넓은 지역도 아니다. 자연적으로 춥고, 배고픈 지역이다. 자연에 맞서 '베고픔'의 본질적 해방에서 실패해 있는 북한의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사실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자연지리적 관점에서, 북한이 남한에게 식량의 지원을 요청하는 이유나, 남한이 북한에 식량을 보내야 하는 이유는 너무 당연한 것이다. 만일 남북 경제가 각 정권들에 의해 차단되 있지 않고, 개별 경제주체들의 자유 거래가 가능했다면, 남북한관의 식량 매매는 민간 차원에서 자연적으로 벌써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 정권이 이런 상태를 용인하지 않기 때문에, 자유거래 이외의 방법으로 '식량'을 보낼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물론, 북한으로서도 남한이 아닌 타국과의 자유무역으로 식량을 사 올 수 있으므로, 쌀이나 곡물이 많이 나는 동남아 국가들에서 곡물을 사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북한 정권의 사정이므로 논외로 하자. 
더욱이 남북한 공동 경제를 생각한다면, '식량 문제'의 해소를 해외 수입에 내 맡겨 놓는다는 것이 궁극적인 해법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따라서, 북한이 식량 지원을 요청한 마당에, 과연 남한이 식량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옥수수'를 보내는 것이 과연 합당하냐는 것이다.

처음에서 밝힌 국무총리 정운찬씨의 어릴 적 경험에서 보듯이, '강냉이죽'을 먹는 것은 '없는 것', '못사는 것', '베고픈 것', '먹어도 먹는게 아닌 것'을 의미한다. 누구도 '밥' 대신에 '강냉이죽'을 먹고 싶어 하지 않는다. 밥이 없어서 먹은게 강냉이 죽이였다.

북한이 남한에 식량 지원을 요청한 것은, 말 그대로 '식량이 부족하니 도와달라'고 손 내미는 소리이다. 겨울철을 보내야 하니 전체적으로 보면 곡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북한은 왜 남한에게 곡식지원을 요청했을까?
우리가 왜 남한테 손벌리게 되는지 이유를 생각해 보자. 동일하다. '나보다 더 형편이 나으니 도와달라는 것이다.'
북한이 남한에게 식량 지원을 요청하는 것은, '남한이 북한보다 잘 산다.', '남한이 북한을 도와줄 수 있다.'는 그들의 현상 인식을 그대로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인정하고 있는 대목이다. 자기들만의 속마음, 내심(內心)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그 상대방에게 적극적인 '인정'의 의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남한이 북한보다 잘 산다. 부자다. 너 낫다.'고 그대로 체제 차원에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남한은 부자라는 것이다. 북한은 겨울이 오는데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 보자. 먹고 살기 힘들어서 곡식 부자한테 손 내밀었는데, 곡식 부자는 그 한테,
"얫따. 강냉이죽이나 퍼먹어라~" 해야 하는 것일까?

주식으로 먹을 것을 요청했는데, '쌀부자'가 '얫다. 강냉이죽이나 퍼먹어라'하고 옥수수나 내주고 있으면, 상대방이나 지켜보는 이들이나, 혹은 창고관리인이 곡식을 내주는 것을 지켜보는 '쌀부자 댁'의 안주인들이 과연 뭐라고 생각할 것인가?

'그래 참 잘했다~' 하고 할까?  인심 사납다는 소리 딱 듣기 십상이다.
밥풀데기 묻은 주걱으로 후려친 놀부 심보보다는 그래도 낫다고 해야 하는가? 


1. 옥수수가 아닌 쌀 지원 필요
북한은 지금 주식으로 먹을 곡물 지원을 요청한다. 개, 돼지 짐승 먹을 것이나, 간식거리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겨울과 새 봄을 나기위해 필요한 주식으로서의 '곡물' 보충을 요구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밥 좀 달라'고 요구하는 것인데, 주식으로 쓰일 '곡식'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쌀'을 보내야 한다.


2. 강냉이죽이나 퍼먹으라는 소리인가?
북한이 남한에게 '곡물' 지원을 요청하는 것은 말 그대로 이 부분에서는 '염치'를 버린 것이다. 먹고 사는 것이 가장 중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먹고 살기 힘들어서 '곡물' 지원을 요청했다고 해서 탓할 것 없다.
 
이미 우리도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다. 1950~60년대 먹고 살기 힘들었을 때, 우리들에게 쏫아진 것이 바로 해외 곡물지원이었다. 그런 곡물들로 우리에게 온 것이 무엇이었나? 바로 '밀가루'였다.

박정희 정권 시기에도, 고 '박정희'가 가장 신경쓴 것은 해외차입에서 식량부분이었다. '밀가루'가 들어온다는 것을 매우 중시한 것이다. 당시에 성장한 세대라면, 그 누구도 이런 '밀가루' 혜택으로부터 예외였다고 단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에게는 '밀가루'가 들어왔을까?
미국의 원조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밀가루'는 서양인에게 '주식'이었다. 쌀을 먹지 않는 서양인에게, 미국인에게 '밀가루'를 원조하는 것은 자신들의 '주식', '주요 곡식'을 원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강냉이죽이나 퍼먹으라고 '옥수수'나 보내는 허튼 짓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말 그대로 '원조'의 의미답게, 자신들의 밥그릇에서 밥을 퍼서 먹을 것을 나눠주었다. 그래서 고마워하는 것 아닌가?

우리도 한 때 못살아서 해외 식량 원조를 국정의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만큼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보릿고개'를 넘다들던 우리를 키워온 윗 세대들에게는 눈물의 고개가 쌓여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 중에 그 누구도 '우리가 한 때 배 고팠다는 것'을 부끄러워 하는 이가 있는가? 고마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여유가 생겼을 때, 더 크게 배풀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우리가 그 누구에게라도 '식량'이나 '원조'를 해야 한다면, 우리의 밥에서 밥을 퍼서 먹을 수 있는 '밥'을 퍼줘야 한다.
굳이 밥 공기에서 '밥'을 푸지 않더라도, 곡식창고에 곡식이 넘쳐난다면 충분히 퍼줄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제 때 소비되지 못하고 넘치는 곡식은 결국 썩고 말기 때문이다. 보관비만 늘어난다. 여유분의 곡식은 다음해 농사에서 또 거두면 되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우리도 주식으로 먹지 않는 '옥수수'를 과연 '식량 지원'이라고 퍼줄 수 있는 것일까?
오히려 주는 집 주인의 안주인들의 얼굴이 붉혀질 일이다. 
줄려면 제대로 줘야 하지, 자기도 먹지 않는 '강냉이죽'을 마치 큰 인심이라도 쓰듯이 넘겨주면 도대체 뭐하자는 것인가?


3. 외국산 옥수수 품질 증명 안돼
정부는 또 이번 지원 대상 옥수수로 '외국산 옥수수'를 선정했다. 또 하나의 큰 오점이 아닐 수 없다.
국내에 수입되는 옥수수는 여전히 GMO 옥수수가 아닌지 의심을 사고 있다. 그런데 이 유전자 조작 'GMO 옥수수'의 안전성은 검증되지 않았다.
우리들도 섣부리 먹을 수 없고, 간식거리로도 쉽게 먹을 수 없는 '외국산 옥수수'를 마치 '주식 식량'을 지원하는 것마냥 떠 넘겨주는 것이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


4. 쌀의 물류이동은 남북 자연지리의 균형, 순리
한반도 전체를 보건대, 남쪽이 곡창지대인 것이 당연하다. 북한은 곡물이 부족하다. 자연 그대로 그런 것이다. 따라서 곡물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동해야 하는 것은, 옛 왕조시대에서부터 당연한 우리의 자연지리적 현실이었다.
북한이 가령 아무리 체제 효율성을 달성한다고 하더라도, 자연적으로 부족한 곡물 창고를 자급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쪽에서 북으로 주요 식량인 '쌀'이 물류이동한 것은 자연지리적 관점에서, 당연한 한반도의 순리라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얼마전에, 포스팅하면서, 남한은 남자가 많고, 북한에는 여자가 많지만, 절대 숫자에서 남북한을 합쳐놓으면 정말 신기하게도 균형이 달성된다고 통계 수치로 살펴본 바 있다. 여자의 절대수가 약간 더 많다.

이처럼
한반도 전체를 보면 인구, 자원, 공간, 경제의 모든 면에서 균형이 달성되는 경우가 수도 없이 많다.
(이런 측면에서 '동아시아 공동체'는 생각하면서, '남북한 공동체'를 생각하지 못하는, 소위 현재의 '지성'은 '반지성', '사이비 지성', 우물에 갖힌 '편협 지성'에 다름 아니다.)

북한으로 '곡식'이 가는 것이 '불균형'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곡물'의 한 측면에서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북한은 남한에게 그들만이 줄 수 있는 또 다른 많은 것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위 자신들이 '보수'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곡물'을 주는 것이 '손해'라거나 '일방적인 지원'이라는 오해를 버려야 한다.
경제 교류가 남북한 체제, 정권의 간섭으로 인해 굴절되어 있기 때문인 것이지, 자연적 교류 질서가 불균형은 아니라는 것이다.


5. 식량을 지원하고, 경제적 관점에 따라 물류 교환 요구하는 것이 순리
북한이 '민간 교류' 쟁점을 '정치적 쟁점'과 연계한다고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남한 정권이 오히려 더 심한 면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식량 지원' 문제도 마찬가지다.
남한 정권은 북한과의 경제적인 교환이나 교류시에 마치 '떡 하나 떼어주듯이' 무엇인가 '혜택'을 '베풀어준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 이와는 다르게
북한은 오히려 경제적인 관점의 '교환'(exchange)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이미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예컨대, 북한이 남한에게 '식량 지원'을 요청한다면, 남한은 이에 '인도적 차원'이라는 명분으로 '강냉이죽'이나 넘겨줄 것이 아니라, 매년 몇 십만톤의 쌀을 지원해 줄 것이니, 북한에게 남북공동 광물 개발권이나, 북한관광사업 개발권 등을 요구할 수 있다. 아니면 북한 주요 지역의 사회인프라(Infra) 공동개발권을 요청하고, 그 혜택을 나눠 갖자고 요구할 수도 있다. 

이는 남한이나 북한에게나 모두 좋은 일이기 때문에, 북한이 굳이 거부할 이유도 없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머리가 굳어 있는 것'은 북한이 아니라 '남한 정권' 당국이다.

북한이 경제적은 물류의 교류를 원하면, 북한은 '식량'을 받아가고, 남한은 남북 공동 영농단지를 북한 지역에 조성한다던가, 농업 협력 프로그램의 대폭 확대를 북측에 요구할 수도 있는 것이다. 

북한이 '인도적 지원'을 요청한다고 해서, 모든 '조건'이 거부될 것이라는 생각은 '고정관념'에 불과하다. 북한으로서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고, 서로에게 득이 되는 혜택의 전략을 제시할 때 북한도 제안을 수용할 수 있는 것이다.

 
6. 38년도 현실 인식관으로는 진전 있을 수 없어, 인식 전환하라
북한이 인도적인 식량 지원을 요청했을 때, 남한 정권 당국이 해외산 '옥수수 지원'을 결정했다는 금일자 주요 기사를 보면서, 필자가 느낀 최초의 감정은, 

과연 이런 센스(sense)로 남북 관계를 이끌어가거나, 국정을 해 날 수 있겠느냐는 한탄이었다.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에 남한 정권은 '강냉이죽'이나 퍼먹으라고 강냉이 퍼주면서 무슨 큰 '인심 쓰는 척' 하고 있다.

아주 쉽게 생각해 보자. 

옆 집에 결식 집안이 있어서, 그 집 주인이 우리 집에 와서,
'(먹고 살기 힘드니까, 죽지는 않고 겨울하고 봄 철 좀 제대로 나게) 먹을 것 좀 도와주시오.'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우리집 창고지기가 
'그래 얫따~ 강냉이 죽이나 퍼먹어라~' 하고 GMO의심이 드는 옥수수를 퍼주었다...

이걸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우리집 창고에는 쌀이 넘쳐나고, 농민들은 제발 쌀 좀 어떻게 처분해라고 농민회에서 요구한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쌀라면이 왜 안팔렸는지 조사해보지도 않고, 쌀로 라면이라도 만들어라고 지껄인다. 

그런데, 정작 배고픈 옆집 사람에게는 '마치 큰 인심쓰듯' '강냉이 죽이나 퍼먹으라고' '옥수수'나 퍼나른다.
이런 마당에 국무총리가 되었다는 사람은 자기 어릴 적에는 강냉이죽이나 퍼먹었다고 하소연 했다.

배고프니까 '강냉이죽'이나 퍼먹어야 한다는 소리는 말 그대로, 국무총리라는 양반이 회상한 10대 초반의 눈물어린 회상의 한 장면이었다. 

그런 장면을 '식량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재현하려고 하는 이런 센스는 정말 말 그대로 '넌센스'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정부는 북한에 '쌀'을 보내라. 그리고 경제적 관점에서 요구할 것은 당당히 요구하라. 
그렇다면, 무엇을 그 경제적 교환의 대가로 요구할 것인가? 그것은 '정권'에게 달린 것이다.
그 내용과 과정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가 '창의성'과 '진지함'이 발현되는 바로 정권의 '질'이고 '진취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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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9년 7월 17일, 공산주의를 신뢰하지 않는다, 공산주의자와는 깰 수 없는 약속을 해야한다고 직접 분명히 밝혔습니다.


서드월쓰 특파원: 마지막 질문입니다. 김정일은 주민을 억압하고 기본 인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직접 김정일을 만나본 분으로써 대통령님은 김정일이 어떤 인물이라고 보십니까? 여전히 그를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보십니까?

김 전대통령: 공산주의자를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이상한 사람입니다. 공산주의는 막스 이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말은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약속을 바꾸어도 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를 다룰 때는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 없는 협상을 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볼 때 김정일은 똑똑하고 머리가 좋으며 판단력이 빠릅니다. 올브라이트 미국무장관, 페르손 스웨덴총리도 김정일을 만나보고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김정일은 현재 2개의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하나는 건강 문제입니다. 후계 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후계체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후계의 안정성은 김정일의 건강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나는 김정일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내가 죽은 뒤에도 우리 체제가 유지되려면 미국과의 관계가 좋아야 한다. 내 생전에 미국과 결판을 짓자. 예를 들면 2005년 6자회담 합의문이 있다.’ 또 하나는 ‘우리가 이렇게 무시당하고 있는데 미국 대통령이 당선되면 나를 만날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실제로 시리아, 이란 다 거론하고 만나면서 우리는 빠져있다. 이는 우리를 우습게 생각하는 것이다. 잘못하면 제2의 이라크가 되지 않겠냐’라고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나는 김정일의 상황이 심각한 것이 사실이고,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문제는 해결해두고 후계체제를 정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과 해결을 봐야하는 데, 미국이 관계개선을 안해주면 ‘너죽고 나죽자 식으로 하겠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공산주의의 역사에서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50년 이상 공산주의와 싸웠지만 어떤 나라와도 경제제재와 전쟁으로 성공한 사례가 없습니다. 우리는 소련과 50년 대결, 냉전을 치렀습니다. 하지만 이기지 못했어요. 하지만 헬싱키 조약을 통해 교류, 협력이 이루어지면서 변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소련이 민주화되면서 동유럽이 이를 따르고 동독이 무너졌습니다. 공산주의 정권을 약화하고 변화시키는 방법, 또 어떻게 하면 강화되느냐에 대한 제 개인적인 의견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결과를 보면 그렇습니다. 중국, 월남과 전쟁했습니다. 하지만 못 이겼어요. 냉전에서도 못 이겼어요. 하지만 결국 닉슨이 모택동 만나러 중국을 가고 베트남과도 국교 정상화했습니다. 이제 중국은 우리가 안심하고 상대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일반 독재국가는 외부 압박으로 제압할 수 있습니다. 쉽지는 않습니다. 버마를 보면 그렇지요. 그런데 공산국가는 의식주를 정부가 책임지고, 일체의 정보흐름은 차단하고, 하루 종일 세뇌교육을 합니다. 사람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모릅니다. 이런 상황을 변화시키는 힘은 헬싱키 조약 같은 겁니다. 갇혀 살던 사람들이 ‘우리가 속았다. 서방 세계가 잘 산다. 우리가 사는 곳이 낙원이 아니다. 악마의 제국이다.’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내부로부터 변화의 힘이 생겼습니다. 고르바쵸프는 공산체제를 유지하면서 개혁하려 했지만 민주주의를 주장한 옐친이 그를 밀어냈습니다. 이렇게 역사를 보면 공산주의는 무력이나 정변으로 변화시킨 예는 없습니다. 그러나 외부 접촉을 통해 내부 국민들이 외부를 알게 되면서 시작된 변화는 실패한 사례가 없습니다. 그래서 서방세계 지도자들이 이러한 역사 속 교훈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좀 더 겸손하게 말해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의 의견쯤으로 받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김대중 영국 BBC 인터뷰 전문 발췌 _2009년 7월 17일

출처: 김대중 사이버 기념관,
http://www.kdjhal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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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북한에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김기남 북한노동당 비서 등 사실상 김정일을 제외한 최고 책임자들로 구성된 조문단을 즉각적으로 보내왔다.

이들은 남측이나 해외 외교사절보다도 더욱 빨리 즉각적으로 먼저 조의의 뜻을 타전해 왔으며,
최고 책임자들로 구성된 조문인사들을 파견했다.

김정일이 신변 보장의 문제로 직접 올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사실상 그가 직접 왔다고 보와도 대동소이한 대목이다.

한편, 이들이 김정일 명의로 가져온 애도 조화와 그 형태와 문구를 보건데, 진심으로 조의의 뜻을 지니고,
경건한 마음으로 최고의 예우를 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북측 조문단이 도착 후 즉각 국회의사당에서 조문하고, 특히 국회의장을 비롯한 여야 대표와 주요국회의원과 회동한 것은
또한 매우 뜻깊은 일이다.

간결하게 표현된 북한 조화


국회의 대표자들과 북측 최고 책임자들이 만났다는 것 자체가 매우 의미깊다.

이런 방한의 마당에, 굳이 깊고 실무적인 얘기를 구체적으로 나누지 않더라도,
이명박과 청와대가 초청해서 차라도 한 잔 마시고 가도 매우 뜻깊은 일이다.

북한이 애초에 위와 같은 진의를 가지고, 진심어린 의사로 조의 방한한 것은,
물론, 김대중의 대북정책과 화해 노력을 매우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감복했다는 의미가 있다.

북측으로서도, 김대중의 수십년간의 남북관계에 대한 노력을 결코 헛되이 보고 있지는 않다는 뜻이고,
이제 고인이 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력을 결코 역사 속에 묻혀보내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그들의 즉각적이고 진심어린 방한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이명박, 이명박정권은 진짜 그렇게 눈치가 없는가? 이런 걸 말해줘야 되는가?
급기야, 북측 조문단은, 청와대 예방의사를 밝혔다.

물론, 이런 식으로 만나는 것도 안 만나는 것보다는 낫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나 남북관계에서나 '체면'과 '자존심'을 중시하는 '북측 외교' 노선의 특성상,
북측이 정중하게, 즉 이명박이 가벼운 마음으로 청와대라도 둘러보고 가라고 하는 것보다는 훨씬 격이 떨어진다.

북측의 격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측의 격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명박정권은 왜 자기 면상에 자기가 먹칠하는 일을 하는가?

그게 이 정권의 눈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것도 가르쳐줘야 하는가?

북측으로서는 사실상 '김정일'이 와서 직접 조의를 표하고 예방한 것과 다름이 없다.
이런 마당에, 이명박이 이들을 청와대에 초청해서 간소하나마 '준 남북 정상 회담'에 준하는,
남북한 간의 물꼬를 충분히 터줄만 한 것이다.

만일, 북측이 먼저 청와대 예방의사도 밝히지 않고 그냥 가버렸으면 어쩔뻔 했는가?
이런 좋은 만남을 추가 계기도 마련하지 못하고, 기회를 그냥 날려버릴 뻔 했다. 

실용정권인지, 실성(失性)정권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용"이라면서 이렇게 "형식"을 따지는 정권은 보다 보다 첨이다.
결국 말뿐이라는 거다. 실질이 따르지 않는 말이 뭔 소용인가?

고인이 되어서도 선물을 남기고 간 김대중씨에게 진심으로 감사해하고,
이명박정권은 제발 좀 제대로 하길 바란다.

아니면 자리 내놓고 물러가라. 중도퇴진해도 좋다. 누누히 얘기하지 않는가.
국민은 잘하는 정권을 바라지, 못하는 정권 그렇게 봐줄 여유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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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9년 8월 18일 향년 85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게 되었습니다.
1924년생인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대 중반의 젊은이로서 한국전쟁을 경험한 세대로, 이후 한국 현대사를 개척한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지난 5월 2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사고로 잃은 국민들은, 100일도 채 지나지 않은 8월 18일에 또다시 전임 대통령을 연이어 잃었다는 비통함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의 공과(功過)와 정치적 지향을 떠나서라도, 88일이라는 간격을 두고, 두 명의 전임 대통령을 연달아 떠나보낸 사실에 참으로 침통해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시점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 예우 절차를 국장으로 해야 하는가, 국민장으로 해야 하는가가 논의가 되고 있습니다. 

모든 계산을 떠나서, 당연히 국장으로 하는 것이 적절하고 사리에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국민장으로 치뤘기 때문에, 절차의 형평성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도 국민장으로 치루는 것이 적합하지 않느냐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장 형식을 취해야 할 필요는 없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국장이 훨씬 적합하고 격식에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은 인물이 "국장"으로 치러지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국장의 대상의 될 수 있습니까?

김대중 전 대통령의 그간의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노력이나 업적, 험난한 고난을 넘어선 진실성, 삶의 경이를 생각할 때, 당연히 국장이 어울린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 현대 민주주의를 정상적인 절차와 의회주의로 복원시키기 위해 모진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죽음의 사선을 숱하게 넘어서면서 모든 헌신을 다 했습니다.
이런 노력은 김영삼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외람되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물론, 향후 김영삼 전 대통령 두 인물은 그들의 재임시의 공과에 상관없이, 그들의 한국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노력과 헌신을 생각할 때, 반드시 국장으로 치뤄야할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1997년말 대통령 당선 시기 _MBC



둘째, 휴무일이 아니면, 마음이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떠나보내는 장례일 마당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은 휴일이 아니어서, 참관 의사가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쉽게 참석하지는 못했습니다.
일부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일정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 소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근심까지 했으나,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에 많은 이들이 모인 것은, 그의 죽음이 애석하고 비통하여, 곁에서 참관하며 떠나보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일반의 장례에 참석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려했던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평화롭게 모든 일정이 진행되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고 싶지만, 공휴일이 아니어서, 관공서에 나가고, 일을 하고, 학교에 가느라 참석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역사의 동반자였던 민주주의의 지도자를 잃은 것은 집단을 이루어 살아가는 인간의 큰 슬픔의 하나임이 분명합니다. 이런 슬픔을 마지막 떠나보내는 장례 절차에서 카타르시스로 풀지 못한다면, 마음의 울분과 응어리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석하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 참석할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친구가 떠나도, 모든 생업을 재쳐두고 영결식에 참석하는데, 역사를 민주주의의 방향으로 틀기 위해 노력한 민주주의의 오랜 친구를 떠나 보내는 길을 방관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국장 당일 휴무일로 지정하여, 보다 많은 이들이 참여하여 애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편, 실무적으로 보면, 국장의 경우 외국 외교사절의 정식 조문을 받는다고 하므로, 세계 민주주의 수호자로서 그의 국제적 위상과 파급효과를 생각할 때도 국장이 무난합니다.


셋째, 한국의 현대 민주주의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엄청나게 빚졌습니다.

20대 중반에 한국전쟁을 겪고, 전후 현대사의 진전을 생생하게 해쳐 온 김대중 당신은 다수의 침묵 속에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파수꾼, 수호자임을 자처했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핍박과 고문, 정치, 사법적 탄압을 받기도 했습니다.
김대중의 역사가 한국 민주주의의 고난과 쟁취의 상징이었음을 부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를 지지하든 안하든 변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 점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민주화 수호 업적도 기억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그의 향후 장례도 동일하게 국장으로 치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사람이기에 그의 60년에 육박하는 정치 일정에서 과오와 한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국 현대 민주주의가 그에게 큰 빚을 졌고, 당신들의 노력으로 오늘날 우리 민주주의 의식이 이만큼 진전해 왔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김대중 당신 인생의 신념과 소신대로, "행동하지 않는 것은 악이니, 행동하는 양심이 되자"고 설파했고, 당신의 모든 삶으로 실제로 실천했습니다. 이런 신념은 영면에 들기 직전까지 동일한 신념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그를 탄압했던 무리도, 그의 행동에 함께 참여하지 못했던 이들도, 모두 그의 일관된 인생의 신념과 용기, 삶에 찬사를 보내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회복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절대적인 선행조건이다 _1985.3.8, KBS



넷째,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도 김대중, 김영삼 민주화 추진 세대의 후광 세대에 불과합니다.

즉, 쉽게 말하면 격(格,level)이 다릅니다. 김대중, 김영삼의 오랜 시간의 험난한 민주화 투쟁의 과정은 한 차원 높은 숭고한 헌신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정파를 떠나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김대중, 김영삼은 비록 각각의 평가와 과오에도 불구하고, 한국 현대 민주주의의 정상화를 위해 엄청나게 투쟁하며, 모진 핍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진전시키기 위해 고단한 역사를 마다하지 않고 이어왔습니다.

결과로 기록된 이들의 삶이 쉬어보일지 모르지만,
삶의 고난과 온갖 박해, 정치적 탄압을 이겨내며, 전 생애를 민주주의, 의회주의의 회복에 대한 신념 아래 일관되게 행동하기는 쉽지가 않은 것입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고귀한 결단과 희생의 정신이 없으면 쉽게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예컨대, 김대중씨는 수 년을 감옥에서 독방에서 살았고, 허위 사건 조작으로 사형 선고도 받았으며, 독재정권에 의해 바다에 내버려지는 급박한 상황까지 가는 등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를 살리고 돌려 세운 것은, 바로 그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었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있었기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꿋꿋할 수 있었고, 국내외 주변의 민주화 세력들이 그의 지원자가 되어 준 것입니다.

이처럼 기초적인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당신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노무현도 있었고, 이명박도 있었던 것입니다.
'인동초'(忍冬草, 추위를 이겨내는 풀) 처럼 이어온 민주주의 신념의 생명력이 오늘을 있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그들의 그늘과 혜택으로부터 탄생한 노무현, 이명박 후광세대보다 한 차원 높게 승격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장례 예우는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한 차원 높은 "국장"이 매우 적절하고 합당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에 대한 예우의 성격이 강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수호자, 지도자"의 성격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퇴임사 _저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민족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간직하며 살아가겠습니다 _2009.2.24, KBS



다섯째, 88일이라는 단기에 전임 대통령들을 연이어 떠나 보낸 국민들의 끝없는 슬픔과 한을 헤아려야 합니다.

전임 대통령들을 연이어 이런 짧은 기간에 떠나 보내는 것은 세계 현대사에 유례가 없는 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초유의 국민적 슬픔을 헤아려주고 껴않아야 합니다.

올해 국민들은 이미 너무나 큰 슬픔을 안고 있습니다.

5월 23일에는 직전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고로 먼저 우리를 떠나갔습니다. 그의 나이는 아직도 젊었습니다.
그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100일도 채 안된 마당에,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였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당신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매우 슬퍼하였고, 그 직전, 직후 5월, 6월, 7월에도 민주주의과 한반도 평화에 대한 견해를 계속 밝혀 왔습니다.

이런 마당에 한국 현대사에 중대한 이정표를 남기고, 지도자적 역량을 보여주었던 전임대통령 노무현, 김대중을 동시에 먼저 떠나보내면서, 국민의 슬픔과 한은 끝없이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가슴의 슬픔과 응어리가 해소되지 않으면 한이 됩니다. 국민이 슬플 때는 슬피 울 수 있도록, 애도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의 한이 분출되고, 카타르시스의 정화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국민은 지금 서럽습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 서럽고, 동시대의 이정표였던 소중한 친구를 먼저 잃어 서럽습니다.
정파를 떠나, 국민 모두 서글픈 일입니다.

이런 슬픔을 헤아려주고, 애도로 분출되어 정화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평양행 대국민 인사말 _2000.6.13, KBS



여섯째,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을 넘어선 세계적 민주주의 지도자이며 교본입니다.

그가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그의 정치 인생에 과오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그가 인생을 일관된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헌신, 실천으로 살아왔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의 인생에서는 삶의 고귀함지도자로서의 쉽지만 높은 이상, 리더십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는 정상적 민주주의로의 복귀를 위한 민주화 투쟁을 통해 국위를 선양했고, 한국 민주주의의 진전을 세계에 빛냈습니다.
이는 굳이, 그가 200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을 인용하지 않아도 분명한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이런 수상의 결과를 평가절하하기도 하나, 객관적으로 보아도 전혀 부족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치인도 공통의 가치를 증진시키는 신념과 가치를 전파하고 함께 실천해가는 측면에서 "흥행"을 도모하는 예술가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가 정치적 개선을 시도하는 여러 사건들에 성공하고, 민주주의와 평화의 가치를 진전시키면서 세계의 평가를 받았다는 것을 부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진전된 민주주의는 다져진 토양처럼 작용하기 때문에, 쉽게 뒤집혀 질 수 없습니다. 쉽게 회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의 민주주의는 한반도 전체의 민주주의와 평화, 세계 민주주의와 평화에도 기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민주주의와 평화가 더욱 우월한 결과를 낳는다면, 북한도 이에 자극받고 편승해 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민주주의의 소중한 노력과 결실이 우리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역사의 기록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의 바램처럼,
그는 일관된 신념과 행동으로 최후의 삶까지 초지일관했습니다.
빛나는 자는 헤어지는 자리에까지 향기를 남긴 것입니다.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



일곱째, 한국인 모두의 차별없는 후원자로, 한국 민주주의와 현대사의 빛나는 후광(後廣)으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 민주주의와 현대사의 돌이킬 수 없는 절대적 진전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의 호 '후광'(後廣)처럼 그는 한국인과 한반도 평화,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후원하는 영원한 역사적 후원자로 이제 영면의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김대중 당신은 '후광'이라는 호에 전혀 부끄럽지 않은 삶의 여정을 보내고, 안식에 올랐습니다. 

평소 경천애인(敬天愛人, 하늘을 받들고 사람을 사랑한다)을 좌우명으로 일생의 신념을 삼은 그는 결코 이에 어긋나지 않는 삶의 인품과 자세를 보여주었습니다. 

천주교 신자로서 '토마스 모어'의 세례명을 받은 그는 천주(天主)와 민주주의의 신념을 바탕으로, 인간이 향유할 수 있는 고귀하고 평화로운 삶의 모범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2009년 올 한 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전 5월에도 남북관계와 민주주의 정세에 대해 언급, 조언했고, 6월, 7월에도 민주주의의 기초적 가치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쉬지 않고 이어갔습니다.
 

"두렵지만, 나서야 하기 때문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용기입니다." - 김대중, KBS



마지막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헌신과 신념은 그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성과이고, 가치이며, 과제라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인권, 대중경제의 성장, 한반도 평화, 통일은 당신만의 소신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신념이고, 희망이고 바램입니다.
또 우리에게는 한반도 평화를 진전시키고 통일을 완수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진전시켜야 하는 숭고한 사명이 있습니다.

결국, 김대중 당신께서 보여주신 가치는 그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의 심장 안에 있는 우리 모두의 가치이고 과제인 것입니다.


김대중의 삶과 정치 여정이 결코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그의 인간적 매력이 너무나 넘쳐난다고 단언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삶의 자세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지금 무엇을 극복하고, 함께 꿈꾸고 실천해 가야 하는가에 대한 이정표를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 가치들은 일순간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면을 향했던 당신들의 바램처럼 불멸을 향해 더욱 성장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도 인간이기에 이런 모든 삶의 여정들이 결코 편하고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죽음의 고비도 여러번 넘겼습니다. 그러나 그가 밝힌 것처럼, 최후의 순간까지 헌신으로 그를 이끌어 온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두렵지만 나서야 하기 때문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용기입니다. 그리고 정직입니다. 우리가 가야할 길과 꿈을 거부하지 않고 왜곡하지 않고 떳떳하게 밝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일시적으로 힘들도 어렵고 고되더라도 거부하지 않는 것입니다. 두렵지만 가야하는 길, 그것은 용기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국장은 위와 같은 이유에서, 당신에 대한 정당한 대우일 뿐만 아니라, 
모든 한국인과 한국 현대 민주주의에 남겨진 소중한 정신을 다시 확인하고, 우리 스스로 다짐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 점에서 정부와 청와대는 괜한 근심과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국민의식도 많이 성숙했습니다. 국민은 국민이 슬프기 때문에 국장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며 매진해온 진지한 삶의 자세를 되돌아보며, 우리는 새롭게 각성하고, 시대의 전진을 향한 국민적 에너지를 승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국민적 에너지의 결집과 충전은 결코 누구에게도 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현재 위치와 과제를 확인하고, 용기와 도전을 재충전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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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사태가 진전없이 현장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어서, 혹시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매우 우려스러운 때입니다.

쌍용차가 이 지경까지 온 것은 무엇보다 중국 '사측'의 경영 무책임에 가장 큰 원인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계경기가 일시적으로 침체했다고 하더라도, 충분한 생산설비와 인력, 틈새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쌍용차가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경영의 진지함과 의지의 문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장 대치가 계속되고 있는 쌍용차 _사자후TV


애초에, 중국의 '본사'가 '쌍용차'에 진지한 경영의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국내 생산시설을 해외 자본에 매각했을 경우 어떤 사례가 발생할 수 있는가, 매우 부정적인 선례를 남기게 된 것입니다.

한편, 정부는 중재자로서 '공공성'에 입각한 하등의 진지한 노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개 회사의 일이니 정부가 직접적 당사자는 아니라고 스스로 항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갈등이 발생할 때 이를 중재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정부의 존재이유이고 해야 할 입니다.
이런 공공성 명제에 대해 현 정권이 충분한 '관념'을 형성하고 있지 못한 것은 매우 안타깝습니다.

분명한 것은, 정부가 '공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불상사는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국민들은 연초에 이미 '용산참사'를 경험했고, 현정권의 '무책임'함을 다시 목격했습니다.
이런 사태가 '쌍용차 사태'에서도 혹여나 다시 일어나지는 않을까 매우 걱정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마당에 경찰은 평택에서 최루탄, 최루액이 무해하다고 시연을 했다고 합니다.

연합뉴스 관련보도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최루액이 인체에 무해하다며 "스티로폼"에 뿌려보는 실험을 했다.
최루액을 같은 부분에 여러번 뿌리자 "스티로폼이 녹아내려" 유해성 논란이 가중될 전망이다...
(출처 : 관련기사, 연합뉴스)

경찰 여러분... 코메디 하십니까?

사람에게 손상을 줄 수 있는 화학무기를 "스티로폼"으로 실험한다는 것부터가 약간 넌센스입니다.
그런데, "스티로폼"이 녹야내렸다는 것은 더 기가 찬 것이지요...

쌍용차 사태가 원만하게 해결되지 못하고, 정권도 조정력을 발휘하지 않으므로,
공권력 행사의 주체인 경찰이 고생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공권력 행사의 주체로, 각종 진압장비를 사용할 수 있는 '경찰'에 대한 '주의 요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전자충격 총기, 테이저건이 실제로 사용되서 경각심을 요한다는 글들도 최근에 많았습니다.

경찰이 어쩔 수 없이 공권력을 행사해야 할 때도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의 한도에서 그쳐야 합니다. 또 인명의 손상이 발생한다면 안하는 것만 못합니다.
누누히 지적하듯이 설득력 없고, 인명 손상을 초래할 수 있는, 불필요하고 요구수준을 넘는 "폭력" 행사가 없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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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미디어법 직권상정과 강행처리 의지를 공연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은 이번주 초반 국회에서 미디어법을 상정하여 강행처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날치기' 가능성도 매우 높습니다. 이들에게 '날치기'는 다반사였으므로 뭐 새롭지도 않으나, 과연 이게 '상식적'인 것인지 다시 묻고 싶습니다.

한나라당과 현정권이 미디어법에 대해 보여주고 있는 태도와 자세에서 너무나 명백한 많은 문제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미디어법'에 대해 한나라당이 오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미디어법'에 대한 강행처리가 개시된다면, 국민들은 이들의 대의(代義, representative) 능력과 자질에 대해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국민들의 의사를 따르지 않는 자들이 어떻게 '대의자'가 될 수 있습니까?

국민(國民)의 공동이익(public interest)과 공동선(common wealth)을 추구하지 못하는 이들을 어떻게 권력의 중심에 세울 수 있습니까?

권력의 중심에 선 위정자들이 사리사욕이나 일부 소수의 기득권 세력을 위해서만 일한다면, 어떻게 국민은 이들에게 권력 운용의 권한을 내 줄 수 있습니까?


이번 미디어법 강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한나라당과 정권의 문제는 너무나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1. 대의제이므로, 국회의원들 마음대로 해도 괜찮다?

1996.12.26 날치기 현장 _국민은 똑똑히 기억한다


국회(國會, Assembly)가 존재하는 이유가 뭔가요?
국회는 국민이 뽑은 '대리인'들이 모여서 국가 의제를 논의하는 공간입니다.
국민들은 왜 대리인을 뽑았나요? 
모든 사람이 모이기가 사실상 힘들고, 의사 결정의 다소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해 뽑은 것입니다. 이거는 초딩들도 아는거죠?

대리인들 마음대로 하라고 뽑았나요?  뽑혔으니까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했나요?

국민과 대리인 사이에는 언제나 '진정한 의사'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대리인들이 국민의 의사를 항상 확인하고 제대로 읽어내고 반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선거"가 모든 것이고, 뽑힌 사람들 마음대로 해도 된다면, 선거는 거추장스러운 들러리일 뿐이니, 차라리 "독재"를 하지 그래요?
님들 선배들이 했던대로 그냥 탱크로 미세요. 뭐하러 국회는 나가십니까?

대의자들이 국민의 수권의지를 망각하고, 가장 빈번하게 저지르는 실수가 무엇입니까?

자기들 잘난 줄 아는 거죠? 아니... 님들 잘나서 뽑아줬습니까?
국민이 직접 하기 귀찮으니까... 너들이 대표해서 발로 뛰면서 '대리' 역할 잘 하라고 뽑아준 것이죠.

그런데, 대의제이므로, "다수"(多數, Majority)가 항상 "선"이라고 생각하는 정파가 있죠.
그게 어딥니까... 현정권과 한나라당이죠.

국민들은 한나라당을 다수로 뽑아놨다고 하더라도, 한나라당의 추진하는 정책들에 대해 일일히 수권하고 지지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국민들이 반대하든 말든, 국민의 의사가 어떻든지 상관없이, 한나라당이 쪽수가 많으니까 밀어붙이면 됩니까?


2. 한나라당은 진짜 "다수"인가?

1) 국민이 다수당을 만들어놨다고 하더라도, 다수당이 추진하는 모든 정책들과 법안들을 아무런 검토없이 모두 지지하는게 아닙니다. 국민들이 이명박정권의 출범 이후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에 진지하게 동의하고 있는 사안이 과연 몇 개나 됩니까?

대부분 반대하고 있죠? 그런데도 "묻지마"로 추진하면 어떻게 되나요?  막장으로 가자는 거죠?
아니... 막장으로 가실려면... 님들 끼리끼리 가세요... 왜 국민들을 데려 가나요?

2) 국민이 이명박정권을 밀어주고, 게다가 엄청나게 절대적 규모의 다수당까지 만들어놓은 이유가 뭘까요?
열심히 땀흘려서 일 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막 나가라"고 밀어줬을까요? 

그런게 국민을 "개무시", "폄하"하고 있다는 증거죠? 

국민은 "학용품", "참고서"도 사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주머니 빵빵하게 채워줬는데, 올커니 "유흥비"로 탕진하는 꼴 아닙니까...
아니면 어디서 "재수학원" 자릿싸움이라도 하십니까?
 

3. 국민이 "정권교체"를 택한 진정한 의지 읽고 있나?

국민들이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을 잠정적으로 마감하고, 이명박정권을 선택해 준 것은, 과거 10년을 부정해서가 아닙니다.

그러면 왜 이명박정권을 밀어줬을까요?
김대중-노무현정권이 10년 동안 집권을 했기 때문에, 정권 주기(cycle)에 따라, 때가 되서 정권 정파를 한 번 바꿔준 거 뿐입니다.

한나라당이 잘나서나, 잘해 보여서 선택한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욱이 한나라당과 현집권세력의 모든 정책들에 대해 "묻지마"로 지지할 것이라는 것은 엄청난 착각이죠?

게다가, 대선 시절에도 한나라당과 이명박정권은 무슨 정책을 펼칠 것인지, 내용조차 제대로 사전에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선거가 끝나니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다'라고 한나라당 주요 인사들이 서슴없이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나참... 어처구니가 없어서...

박희태 대표는 "공약(공공의 약속)은 원래 빌 공, 약속 약, 그래서 공약이에요." 직접 말했습니다. 방송에 나와서 말했죠.

한나라당과 이명박정권은 "대학등록금 반값 공약"에 대해, 우리는 그런 공약 아예 한 적이 없다고 공연하게 말했습니다.
아니... 그러면 대선 시절에 국민이 들은 소리는 과연 뭔가요? 국민 "귀"가 나쁜 겁니까?

이런 식이라는 거죠...?

이런 분들이... 도대체 뭘 합니까?

국민은 잘 해보여서가 아니라, 10년 되서, 한 번 바꿔주면서 생색 내본 것입니다.

생색 다 냈으니, 국민들이 할 일은 이제 끝났죠?


4. 미디어법은 "장기집권"의 비열한 방식 드러내

미디어법은 이명박정권과 한나라당의 "장기집권"의 비열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이 반대하고 있는 겁니다.
왜 사실을 부정하나요? 얼마나 국민을 뭐 같이 보고 있으면, 참 한심합니다. 님들... 국민도 존심이 있어요. 존심 상하는 거죠?

순수하지 못한 불순한 의도로 진행되는 "미디어법" 강행에 대해서는
국민이 속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효과도 없을 겁니다. 오히려 반작용만 가속화 되는 것입니다.

미디어법의 진정한 의도도 국민은 이미 다 알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노무현 정권 시절에 "트집잡기" 일등공신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과거 협력체들에 대한 
"전후(戰後) 하사품" 정도로 취급하고 있는거 아닙니까.

아예 기본 태도, 스탠스(Stance)가 아주 저질이죠?
정치과정과 민주주의, 대의민주주의의 정신을 "전쟁"이나 "전리품" 수준으로 전락시킨 것은 참으로 치욕스런 아주 "저질"입니다.


5. 민주주의는 "전쟁" 이고, 선거는 "전리품 분배" 과정인가?

민주주의는 "전쟁"의 과정이 아니라, 화합(和合, harmony)의 과정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전쟁"이나 "전투" 과정으로 취급하지도 않습니다. 

민주주의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서로를 배려해주고, 공동의 복리와 이해관계를 증진시켜가는, 
"파레토 개선"의 과정입니다.

"전리품(戰利品) 분배" 과정이 파레토 개선입니까?


6.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국민이 잘못했다고 보고 있나?

이미 말씀드렸듯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대해 국민들이 잘못했다고 보고 있는게 아닙니다.
10년 정도 충분히 한 정파가 했으니, 반대 정파에게 일시적 기회를 준 것입니다. 진정으로 '반대 정파'가 있는지 의문이 듦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게 국민들이 과거 10년을 부정하고 있는 겁니까?
아니... 그러면 다음에 다시 정권교체를 하면, 과거 65년을 부정하는 것이 되고, 100년 후에 후세들이 또 정권교체를 하면 과거 165년을 부정하는 겁니까?

아니... 이런 회괴한 논리들은 과연 어떤 브레인(brain)에서 나오는지 참 묻고 싶어요.
홍준표씨만 하더라도, "잃어버린 10년", "앞으로 60년"을 운운했습니다. 60년 장기집권하겠다는 것이죠?

참 한심합니다.


7. 국민의 정권교체, 수권의지는 무엇이었나?

아주 간단하죠.
얘들은 10년 동안 그럭저럭 했으니, (뭐 마음은 안내키지만) 너들도 이제 한 번 해봐라... 그런 거에요...

뭐 별거 있는 줄 아세요?

진짜 한심해요. 누가 님들 맘대로 하라고 합디까?

아니... 이렇게 "개념"이 없는데, "역시 안되겠구나..." 앞으로 일말도 기대하지 마세요.


8. 조선일보의 노무현 정권 시절의 태도는 적절했나?

이번 미디어법 강행처리의 배경으로 지목되는, 조, 중, 동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특히, 조선일보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조선일보가 노무현 정권 시절에 잘 했습니까?

정말 파렴치하게 꼬투리 잡아서, "딴지걸기"에 바빴죠?

딴지거는 것도... 저처럼 딴지 거는 것을... "딴지걸기"라고 하는 것이지, 조선일보처럼 "거는"는 것이 "딴지거는" 겁니까?

툭하면, 별 것도 아닌 것을 트집 잡아서, 뭐 대단한 것인 마냥, "대서특필"하기에 바빴죠?

예를 들어, "대통령 못해먹겠다"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이 표현은 대통령이 대통령직 수행하는게 참 힘들다고... 푸념으로 일상적으로 한 마디 뱉어본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조선일보의 보도 태도가 어땠습니까?

"노무현 대통령 포기 의사!", "대통령이 이래도 되나?", "대통령 자질 있나?"

아주 대서특필을 했죠? 아니...님들... 코미디 하세요?
코미디도 "선의"를 가지고 해야 코미디지, "악의"를 가지고 하면, 뭐 하자는 건가요?

하나같이 이런 식이었던 거죠? 이는 다른 말로 하면, 노무현 정권 시절은 비교적 태평성대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정말 "까델 것"이 없으니까, 그런거나 까고 있는 것이죠. 한심합니다. 진짜.

이들 신문이 무슨 권력 견제를 제대로 했습니까. 이런 신문에 기고하고 있는 양반들은 더 한심합니다.
교수이든, 지식인이든, 명함만 들이밀지 말고, 양심 챙기고, 정신들 차리시길 바랍니다.

이런 신문들을 위해서, "미디어법"까지 만들어 줍니까?

참고로, 저는 조선일보 20년 동안 근처도 안갑니다.
안보니 마음과 가슴이 상쾌하죠?
님들 제가 쭉 쓴 글들을 보세요. 얼마나 논리정연한가. 이게 왜 가능할까요? 조선일보 봤으면 가능할까요?


9. "미디어법"의 기성(旣成) 언론 장악 의지, 왜 숨기나?

현정권과 한나당이 미디어법을 굳이 강행처리하려는 의도가 무엇입니까?
언론 다양성과 방송산업 확장을 위해서라고요...?  아니 지나 가던 새가 머리에 똥싸고 갈 일이죠?

어떤 산업이든 공간(지리)과 인구가 담보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어떤 산업이든 산업규모가 정체하는 본질적 이유는 공간, 인구가 제한되어, 확대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방송산업도 마찬가지라는 거에요. 시장이 한정적이기 때문이라는거죠. 자본규모가 문제가 아니라는 거에요.

더 본질적으로, 방송산업의 "진입장벽"을 철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에 "기성방송언론"을 장악하려는 것 아닙니까... 이거 다 알고 있거든요?

방송산업도 엄청난 설비, 장치산업입니다. 신규 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고, 엄청난 숙련 인력들과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네임밸류(Name Value)와 시장가치, 충성고객(시청자)들도 있어야 합니다.

기존의 배급망과 광고주들도 있어야 하고, 엄청난 기존의 인프라(infra)가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뭡니까... 방송사 새로 만들기 힘드니까,
MBC 그냥 먹자는 거잖아요!!!

MBC 장악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죠? 왜냐하면 MBC 지분이 공공으로 되어 있거든요.

결국 MBC나 YTN 등 정부 지분을 조선일보를 비롯한 특정 세력에게 넘길 의도를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있고,
그에 대한 본질적 접근이 "미디어법"이면서 무슨 선의를 베풀 듯, 산업규제철폐 운운하고 있냔 말입니다.

아니... 진짜로 국민이 뭐하게 보이는 겁니까? 뭐한 것들 맛 좀 보여드릴까요?

님들 표면적인 말대로, 방송산업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SBS 식으로 민영방송, 컨소시엄을 "특별법"으로 접근해서 몇 개 더 만들어 주는 것이 낫죠?
이 경우 지역민방연합체에게 프리미엄을 보장해 줄 수도 있습니다.
신문에게도 방송을 허용해야 한다면, 모든 신문섹터들이 공정하게 들어올 수 있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습니다.


10. "대기업이 방송해야 한다"고 "정치"가 얘기하는 나라, 과연 존재하나?

아니 세상에..
"대기업이 방송해야 한다"고 공연하게 얘기하는 나라가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대기업이 상업방송 하는 나라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누가 "대기업이 방송에 진출해야 합니다", "법을 만들어줘야 합니다"고 떠드는 나라가 있냔 말입니다.

언론의 사명, 존재이유는 "권력견제","권력비판", "사회비평"입니다. "자본"이 언론의 존재이유가 아닌 것이죠.

대기업이 권력을 견제하고, 권력을 비판하고, 사회를 비평할 수 있습니까?
대기업은 상업의 주체이고, 경제활동 영위하고, 상품 공급하고, 구성원에게 이익배분하는 게 목표에요.

대기업에게 "언론"의 겸영을 요구하는 것은 그 자체가 파쇼적이지요? 
"언론"사업 영위 주체가 대기업화될 수도 있고, 타사업을 겸영할 수도 있지만, 대기업보고 "언론"을 겸영하라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논리인가요?

대기업이 "언론"에 사명의식이라도 가질 수 있습니까?

예를 들어, 언론이 미디어 산업에 진출하는 경우는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엔터테인먼트(Entertain), 광고 사업입니다.
예를 들어, CJ는 'CJ엔터'로 영화산업에 투자하고 있고, 삼성은 '제일기획'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런 산업도 경기를 타고 불확실성하에 자본을 투여하는 투자의 성격을 뜁니다.
이미 허용된 이런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도 대기업 투자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습니까?

예를 들어, 자본력 풍부한 삼성이 "헐리우드 블랙버스터"를 능가하는 자본투자를 영화에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CJ엔터테인먼트가 하고 있습니까?

이미 허용된 영화산업에서조차도 그렇습니다. 대기업은 불확실성하에서 투자와 이익회수 관점에서 행동합니다.
영화산업에 이들이 투자를 안하는 것은, '영화'가 만만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TV'나 '방송산업'이라고 다를까요?

결국, '미디어법'은 대기업을 위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 되죠?

대기업도 아니면 결국 뭔가요?  조, 중, 동 남네요?


11. 잘못된 데이터와 프로파간다(Propaganda, 대중선동)가 산업 효과를 가져올 수 있나?

한나라당은 '미디어법' 추진논리와 보고서에서,
"방송산업의 부가가치, 경쟁력이 강화되고, 고용이 늘어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거는 근거가 될 수 없는 것이죠?
왜냐하면, 어느 산업이든 자본을 밀어넣으면, 돈이 몰리기 때문에, 고용과 생산이 일어납니다.

비유하면, 하릴없이 공터에 돈 주고 사람들 써서 흙퍼내고, 땅파는 것만 시켜도 고용과 부가가치는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런게 일시적이라는 거죠?
이미 나경원 의원이 제시한 데이터가 잘못 됐을 뿐만 아니라, 그 의미를 해석해도, 효과가 일시적으로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벌써 말씀드렸습니다.

즉, 지속성과 효율성은 다른 맥락이라는 것입니다.

더욱이 보고서 자체가 근거가 부족하고, 데이터는 오류로 떡칠되어 있습니다.
기대효과는 검증되지 않았고, 미사여구들에 불과합니다. 아예 데이터 근거들이 신뢰성이 없습니다.

(관련글, 나경원 의원의 자료해석 능력 / 한나라당 미디어위 보고서, 엉터리로 밝혀져 / 한나라당 미디어법, 자본평등원칙 위반 )


이런 마당에, 결국 미디어법의 결론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에 대한 "정권 보상" 아닙니까?
너무 분명하잖아요. 그냥 "조선일보법"이라고 하세요.


12. 국민은 다 알고 있는거 아닌가?

국민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만들 "뭐하게" 보고, 작작들 하세요.
 
그리고 이미 차기 정권의 결과도 정해져 있어요. 야당은 자신감을 가져도 됩니다.
어떤 시도를 하든, 부정직하고 비열한 시도는 그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고,
여기에 올라타는자 그 누구나 최후가 비극적일 것입니다.


13. 날치기를 국민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500만이 넘는다는 비정규직의 시작은 1996년 12월 26일 크리스마스 이브 새벽에 자기들끼리 모여 기습통과시킨 신한국당(한나라당 전신)의 "노동관계법" 날치기였습니다. 그게 이 지경까지 온 겁니다.
당시에도 국민은 날치기에 대한 댓가가 무엇인지 보여줬습니다. 국민은 여러번 봐주지 않습니다.

날치기로 가는 순간, 더이상 정권이 연장될 수 없는 대붕괴의 조짐을 맞이하게 될 것임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이미 이 정권에 대해서 국민들이 너무나 많이 참아왔다는 것을 인지하세요.


14. 날치기이든 아니든, 한나당의 재집권은 앞으로 영구적으로 난망

애초에 국민이 김대중 -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지는 10년 세월을 마감하고, 정권을 타 정파에게 이양한 것은,
김대중정권이나 노무현정권이 잘못해서가 아닙니다. 

이 점에서, 김대중씨나 사후 노무현씨나 억울해하거나 아쉬워 할 필요없습니다. 
구세대가 가면, 새로운 세대가 오고, 새로운 세대는 또 자기들 세계를 꿈꾸는 것이고, 그 역할과 임무는 그들의 몫입니다.
이미 역할을 다한 김대중씨나, 노무현씨의 역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현대사에서 절대적으로 "일당 독재"의 연장을 부정해 왔습니다. "피" 흘리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국민이 2007년 대선에 "가벼운 마음"으로 정권 교체의 수권의지를 보인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비교적 무난하게 10년을 이끌어 왔고, 이런 상태에서 타 정파에게 한 기간(term)을 넘겨줘도 무난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10년을 연장한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못해서가 아니라 100점 만점이었다고 해도, 연속적으로 연장될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은 일당의 장기집권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그걸 보여준게 2007년 대선입니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국민은 민주화 이후에, 평화적이고 실질적인 국민의 수권(授權)을 통해, 국민의 의지를 통한 "정권 교체"가 가능할 수 있음을 다시 보여주고자 한 것입니다.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면, 1987년 대선은 국민 의사의 결집을 통한 군사정권으로부터의 "정권 교체"에 실패했고, 
1992년 대선은 김영삼의 변절로 실패했습니다. 

1997년 김대중정권이 "정권교체"를 이뤘다고 하지만, IMF 경제위기와 김종필, 자민련과 연합을 통한 "어부지리"에 가까웠습니다.

2002년 노무현정권이 정파의 정권연장을 이룬 것 같지만, 사실 그 내용을 보면 우여곡절이 많은 불완전한 과정이었습니다.


이런 마당에, 2007년 대선은 비록 국민들이 여러 변수들과 향후 정국전개를 '심사숙고'하지 못하고, 너무 가벼운 마음에서 표를 던졌을지언정, 국민의 힘에 의한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첫 사례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현재 집권 세력과 한나당의 태도는 자만을 넘어서서, 엄청난 착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국민이 2007년 정권교체를 해 준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잘못 해서가 아닙니다.
더욱이 한나라당이 잘했거나 이명박이 잘해보여서도 아닙니다.
이명박정권과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모든 정책들을 용인하는 전면적인 '허가증'도 아닙니다.

국민이 10년이라는 기간(term)이 되었으므로, 장기집권을 거부하고 타정파에게 일시적인 수권을 부여했을 뿐입니다.


15. 한나라당, 이명박, 왜 장기집권을 획책하나?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대선 이후 집권하자 마자, "잃어버린 10년", "(장기 집권) 60년"을 운운했습니다.

이런 언사들은 이명박, 한나라당, 홍준표 등 정권 핵심과 한나라당 모두에서 터져나왔습니다.

국민들은 심히 불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10년은 국민들과 함께 해 온 불완전하나마 아름다운 시절이었고, 위기 극복의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잘했든 못했든, 투표를 던진 국민이 감싸안은 국민의 역사입니다. 왜 국민의 역사를 단절내나요?

만일 한나라당의 말과 같다면, 국민들은 정권교체 때마다 지난 시절을 부정하고, 땅 속에 파묻어야 하는 겁니까?

그렇다면, 국민은 그것이 헛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현실로 보여줄 것입니다. 
아마 철저하게 파묻어 주지 않을까 합니다. 다시는 기어나오지 못하도록 파묻어 줄 것입니다.

국민들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국민의 수권에 의한 "정권 교체"가 무엇인지, 아주 똑똑히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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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권의 미디어법 광고 개념이 여러 면에서 문제를 지니고 있습니다.

정부는 '공공의 선'을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중추적인 정책 집행 주체입니다.
정부의 가장 큰 역할은 중립성과 선의를 담보하여, 국민 전체의 공공복리를 증진시켜 나가는 일입니다.

그러나 현정권은 노골적으로 이러한 정부의 대원칙과 명제를 무너뜨리는 일을 거리낌없이 저지르고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명의의 일간지 미디어법 광고



이번 미디어법 광고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이미 작년의 미국 쇠고기 광고에서도 그런 문제점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니까, 지금처럼 미디어법 광고도 서슴없이 자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는 검찰이라는 공권력까지 동원하여 MBC PD수첩에 대해 '자유로운 비판의 주체여야 할 언론'에 대해서 재갈을 물리려는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소감을 먼저 말씀드리면, 현정권은 대단히 착각하고 있거나, 노골적인 악의를 비열한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정부는 'PD수첩'을 문제삼으면서 PD수첩이 '허위의 사실을 유포했다'고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그렇다면, 정부와 현정권에게 다시 묻고 싶습니다.


정권이 '허위 사실을 유포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니... 정부가 허위사실을 유포하면 국민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검찰가서 소장 접수하면 되나요?

정부는 여러 일간지에 미디어법 광고를 내면서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것도 검증된 바 없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기초자료 자체가 왜곡되었다는 것이 이미 명백하게 드러났습니다.
한나라당이나 미디어법을 밀어붙이려는 일부 세력의 입장에서만 정당해 보일 뿐입니다.

물론, 정부도 정책광고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용인 가능한 한도에서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정부는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지, 법을 만드는 입법 기관이 아닙니다.

입법 논쟁 중인 사항이 정부의 광고대상이 될 수 있습니까?


1. 무엇이 정부 정책광고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정부가 해야할 일이 무엇입니까? 
이미 집행이 결정된 일들과, 권한이 부여된 일들에 대해 국민에 대해 알리고 효과적으로 집행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부가 국민에게 알려야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이미 집행이 결정됐거나, 정부 권한 내의 일로 국한됩니다.

정부가 입법의 가안들을 다수 만들어 내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가 곧 법입니까?


2. 국회 입법 (논쟁) 사안이 정부 정책광고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미디어법'은 가결되거나 시행이 결정된 법이 아닙니다. '미디어법' 자체가 엄청난 논란의 여지를 가지고 있으며, 국민적 반대 여론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논쟁적 법안도 물론 광고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왜 정부가 해야 합니까?

이런 법안을 내놓은 한나라당이 광고를 했다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집행 결정되지도 않은 이런 가안을 광고해데는 것이 과연 정당합니까?


3. 정부는 집행(execution) 기관이지, 입법(legislation) 기관이 아닙니다.

정부는 집행기관입니다, 입법기관이 아닙니다.
정부는 법에 입각해서, 국민이 명령하는데로, 국민의 수권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국민이 반대하는 일이라면 정부이든 정권이든 하면 안됩니다.

국민이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정권이 밀어붙이면, 결국 '파쇼'가 엿보이는 것입니다.

이 정권은 '파쇼정권' 입니까?


4. '대한늬우스' 광고, '미디어법' 광고 무엇이 다른가

대한늬우스 광고


지난번 '대한늬우스' 광고는 국민적 공분을 샀습니다.
4대강 정비사업은 현정권이 일방적으로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는 그들의 권한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집행되고 있는 정책에 대한 '광고의 방식'이 문제였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번 '미디어법' 광고는 어떤가요?
미디어법은 논쟁 중인 사안으로, 정책의 대상이 아닙니다. 국회에서 입법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사안입니다. 폐기될 가능성이 더 높은 가안입니다.

이런게 다른 주체도 아니고 정부가 광고할 대상이 되는 것인가요?

왜 현 정권은 자신의 권한을 넘은 월권으로 '파쇼'를 자행합니까?


또, 희안하게도 양 주체가 모두 '문화체육관광부' 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도대체 무슨 권한으로 이런 짓을 하는 것인가요?

이들의 행태를 보면,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절의 '홍위병'들이 떠오릅니다.
홍위병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당신들의 행위를 '홍위병'이라고 하는거 아닌가요?


국회의 자율적 입법 권한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정권의 일방적 밀어붙이기에 의해 정부의 공공성을 상실시키고 있습니다.
소위 '막장'이 되버린 이런 광고 형태를 국민들이 용인해야 하는 것입니까?

다시 묻겠습니다.
정부가 '허위사실'을 유포하면 국민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검찰에 신고하면 됩니까?

국민 열받게 하는 일, 이제 그만 작작들 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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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늬우스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이러한 비판은 정당하다.

그러나 정책당국은 최근 다음(daum) 아고라(agora)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대한늬우스, 광고는 광고일 뿐 오해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시대를 15년 이상 되돌렸다는 비판에 대해 되돌아 온 정권의 반응은 참으로 기가 찬다.


이런 인식과 태도로 일관하고 있으니, 이 지경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출범 이전부터 이어지고 있는 이런 정권의 태도가 계속된다면 더 이상 참기 곤란하다.
참아야 할 이유도 없다.  

묻고 싶다.


정책이 광고인가?

정책도 광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명박정권은 밀어 붙이고 있는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본질적인 착오일 수 밖에 없다.


광고(advertisement)란 무엇인가?
- 광고는 소비자의 최종선택권 보장

광고는 광고주가 소비자에게 "제품", "상품"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활동이다.
광고주체가 "이미지형성"이나 "홍보"를 위해 광고를 동원하기도 한다.

광고는 제품 구매를 호소하는 "청약의 유인"에 불과하기 때문에, 구매를 소비자에게 강요하지는 않는다.
광고는 "유혹"을 할 뿐, "제품"에 대한 최종적인 선택권은 여전히 소비자에게 있다는 것이다.

즉, 소비자에게 "구매결정권", "자기결정권"이 없는 "결과"만을 얘기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공익성 광고의 경우에도, 사실에 가까운 "정보"의 전달이나 대중적인 고취(cheer-up)를 위해서이지,
정책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경우는 근래에는 거의 없었다.

결과만을 받아들이라고 얘기하는 "4대강 정비 대한늬우스"가 광고라고 할 수 있는가?


다음으로 "4대강 정비 대한늬우스"가 정책이라도 될 수 있는지 보자.


정책(policy)이란 무엇인가?
-사회적인 합의를 바탕으로 공공선을 보장해야 정책

정책(Policy)은 사회적인 합의(consensus), 공동체 정신의 산물이다.
함께 합의한 것을 추진하는 것이 정책이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공공선을 증진시켜 가는 활동이다.

합의하지 않은 것을 해도 불쾌한 것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면 과연 정책일까?

합의되지도 못한 것을, 충분한 동의를 얻지도 못한 것을, '좋은 정책'이라고 볼 수 있을까?

연애에 비유하면,
내가 아무리 상대방을 사랑하더라도, 상대방이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스토커' 취급이나 당할 뿐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 눈에 아무리 "좋은 정책"(Good Policy)으로 보여도, 상대방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이렇다는 것이다.


하물며 '나쁜 정책'을 동의도 얻지 않고 밀어붙이면 어떻게 되겠는가?
'폭력'이고 '사기'인 것이다.
여기에다가 '권력'이라는 강압성이 더해지면, 말 그대로 '독재'가 유력해지는 것이다.


광고로 포장하면 '나쁜 정책'도 '좋은 정책'이 되나?

코미디언이 코미디하는 1분 30초짜리 광고 2편 내보내면, 없었던 사회적 합의, 컨센서스가 형성되나?
아니면 "나쁜 정책"이 광고 두 편으로 "좋은 정책"으로 탈바꿈하기라도 하는가.
더욱이 1분 30초가 이슈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제공하는 충분한 시간이라도 될 수 있는가? 

형편없는 불량품도 코미디언이 나와서 광고 때리면 어느새 "최고 제품"이 될 수 있는가... 이 말이다.
폐차 직전인 30년된 고물차량이, 코미디언이 "이 차 좋아요~" 코미디로 보여주면,
어느새 "람보르기니" 신제품이라도 되느냐... 이 것이다.

광고만 때리면, 나쁜 정책도 좋은 정책이 되면, 정책하기 참 쉽겠네?


최선이 아닌 차선이라도 될 수 있나?

최선은 아니더라도, 위정자들의 머리에서 차선 밖에 나오지 않는다면,
물론 국민이 양보할 수 밖에 없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위정자들의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되고, 그런 한심한 위정자들을 뽑아놓은 것은 국민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내 탓인데, 누구를 탓하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차선"이라도 될 경우에 그러하다.
애초에 아닌 것을, "최악"인 것을 어떻게 '차선'이라고 선택할 수 있는가?


'생명'과 관련된 것, 차선 있을 수 없어

'최선'이 아닌 '차선'의 정책으로 물론 양보할 수 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그렇지는 않다.
특히 '생명'과 관련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생명"은 양보할 수 없는 것이다. 생명과 관계되는 것은 "차선"이 없기 때문이다.
누가 감히 '생명'을 양보하라고 할 수 있는가?

"물"도 생명에 관계된 것이다. 물(水)은 모든 생명의 기본이고 근원이다.
"생명"은 자연이고 자연의 이치이다.
생명이 자연의 이치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물의 원리를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같다.
물의 이치 _ 물은 흐른다, 물은 높은 곳을 향하지 않는다, 물의 흐름을 거스르면 안된다는 것이다.

생명의 근원인 물과 강의 생태환경을 쉽게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광고는 광고일 뿐, 소비자에게 강매(强賣)하지 않는다

광고의 경우에도 광고는 광고일 뿐, 소비자가 최종 구매를 선택한다.
광고는 구매를 호소하는 "청약의 유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소비자에게 강제로 매입을 강요하는 '강매'는 자유시장경제와 공정거래위반이다.
소비자에게 충분한 사전정보와 진실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성실한 고지의무를 위반하는 것이다.

"광고하는 것 뿐이라고 강변하는"
이명박정권은 소비자의 그런 "최종 선택권"을 과연 남겨두었나?

무조건 밀어붙이기, 독재로 나가고 있으면서, 무슨 "광고"라고 "뻘소리"를 하고 있느냐... 이 말이다.


그런 강제적인 "강매"를 과연 누가 받아들이나?

설령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도 그런 식으로 하면, 치를 떨고 손을 내저을 것이다.
그런 마당에 "불량품", "저질상품", 검증도 안됐고, 반품도 안되는
그런 "상품"을 과연 누구보고 받아들이라고 하느냐 이 말이다.

"이명박정권은 3류 상품이다, 불량품이다" 하는 꼴 밖에 안된다.

이명박정권은 3류 상품인가?


대한늬우스 내용의 합리성, 적절성

정책 내용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배제한 채,
코미디언이 나와서 코미디하는 거 보고 있는다고, 정당성 없는 정책이 정당화되거나 수긍되는 것이 아니다.

정책당국은 아고라 게시글에서, "민간 상업광고에서도 대한뉴스를 패러디한다", 그러므로 괜찮다는 식의 논리를 펴고 있다.

물론 민간 상업광고에서 대한뉴스를 패러디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광고로서 그러할 뿐이다.
"정책"이 단순한 "광고"가 될 수 없음을 위에서 쭉 밝혔다.

1분30초짜리 영상물 두 편으로 '4대강 정비사업'이 합리화될 수도 없는 마당에,
그 "광고 내용"이라는 것도 보잘 것 없다.

"홍보물"에 나와서 그들이 대화하는 내용을 보면, 근거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홍수예방, 물관리 최적화 방식으로 증명된 바 없어

이들은 "4대강 정비사업"이 "홍수예방, 물관리"가 된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런데 어디에도 근거가 없다.
결론만을 얘기하고 있다.

증명된 것이 있는가? 검증된 것이 있는가? 동의받은 바 있는가?

아니면 지금까지 홍수예방이 덜 됐다거나, 물관리가 안됐다거나,
지금까지의 방식이 최선이 아니었고, 이를 넘어서는 보다 최적화(optimization) 방식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런 내용은 그 어디에도 없다.

"강파서 물담아서 가뭄때 쓴다"와 같은 참 국민을 "새대가리"로 보는 일반명제만 지껄이고 있다.

"강에 화물선이 떠다니면 프로펠러가 돌아가니까 공기가 주입되서 강물이 맑아진다"고 강변하는 대운하 전도사,
딱 그 수준이다.
 

여행처 제공 환상에 불과, 절대 준거 될 수 없어

다음으로, '가족여행' 편에서는 4대강 정비사업이 마치 좋은 가족 여행처를 제공해 줄 것처럼 얘기한다.
그런데 검증되지 않은 "환상"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지금 여행지가 부족한가, 아니면 가족 휴양지가 부족한가?

사람들이 지금 강에 못가서, 강에 유원지가 없어서 안달났나?
인구 1천만명이 넘는 서울 사람들이 지금 서울강변에 휴양, 체육시설이 없다고 투덜거리고 있는가?
아니면, 충주호에 사람들이 밀려터져서 유람선들이 초호황을 누리고 있는가.
아니면 춘천호에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나.

물론, 일부 지방지역에 서울 한강둔치처럼 인위적으로 조성된 유락시설이 조성될 수는 있을 거 같다.
그러나 이것은 개별 지방지역의 선호도를 확인해봐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강처럼 시멘트 쳐바른 환경이 더 좋은지, 아니면 자연스러운 강에서 수영하고 물놀이하는게 더 좋은지,
확인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도 광고를 구매했기 때문에 정당?

정책당국은 대한늬우스에 대해,
"정부도 일반 광고주처럼 극장이 판매하는 광고 시간과 물량을 구입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따라서,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아니 지금,
정권이 돈 안내고 광고 내보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인가?
(물론 사실이 그랬다면 더 큰 문제였겠지만, 이게 중심 논점이 아니다.)

이명박정권은,
"광고일 뿐이다. 돈 내고 광고하는 거다. 광고니까 아무 문제없다.
광고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는 논리를 펴고 있다.

말 그대로 "정책"을 "광고"로 포장해 버리고 있다.
"정책"이 "정책"으로써 함량미달이어서 폐기되어야 할 것을, "광고"로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하고 있고, "광고논리"가 통할 것으로
대단한 착각들을 하고 있다. 아니면 "착란"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정책"이 "광고"가 될 수 없음은 이미 밝혔다.


다음으로 지금 "광고효과"를 문제삼는 것인가?

정책당국은 "영화관 광고도 홍보매체로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영화관을 새로운 홍보매체로 적극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6월 25일~7월 24일까지 대한늬우스를 내보내며 다양한 홍보방안 강구하여 국민과 소통을 강화"할 것이라고 한다.

애초에 이명박은
"국민이 반대한다면 어떤 정책이고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보면,
"국민이 반대하면 광고라도 해서 어떤 정책이든 하겠다"는 막장으로 향하고 있다.


일방적인 "정책"을 "광고"라고 기만해서, 광고논리로 전가하는 해괴한 궤변론을 펼치고 있다.
그렇다고 광고처럼 소비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광고" 대접하는 방식

광고란 무엇인가? 상품에 대한 호소이다. 최종 선택권은 소비자에게 있다.
이명박정권은 "광고"라고 강변하며, 해당 정책들이 "상품"임을 분명히 했다.

소비자는 "상품"에 대한 "구매결정권"을 가져야 한다.
"3류상품", "불량품"이면 "반품"할 기회라도 주어야 한다.

반품할 시기가 늦었다면, 자유롭게 "폐기"할 수 있는 자유라도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나는 쓰레기통에 버릴 자유가 있다. 버릴 자유를 보장하라.
 
그런 연후에 '광고'라고 "쳐발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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