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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세종시에 대한 몇 개의 글을 시리즈로 공개하고자 합니다.

그 첫번째로, 이번 글에서는 '세종시를 자급자족형 도시'로 전환하겠다는 현 정권의 개념이 왜 혹세무민(惑世誣民)이고 논리적 개념 모순을 일으키고 있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이 세상에 '자급자족형 도시'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서울'이나 '부산', '대구', '대전', '광주', '인천'을 생각해 봅시다. 세계 어느 도시를 생각해 보아도 상관없습니다.

이 세상에 '자급자족형 도시'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습니까? 아니, 존재하기라도 합니까?

'자급자족형 도시'는 말 그대로 '스스로 공급하고 스스로 소비하는' 도시를 말 합니다. 과연 그런 도시가 세계 어디에 존재합니까?
그런 도시로 성공한 케이스는 과연 인류 역사를 통틀어 지구상에 있었습니까? 존재하기라도 했습니까?

위키페디아 백과사전을 보면, "도시(都市)는 인간의 정치·경제·사회적인 활동 무대가 되는 장소이며, 인구 집중으로 인해 비교적 인구 및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인구 밀도가 높은 '현대의 도시'는 그 어떤 도시도 스스로 '자급자족'(自給自足, self-sufficient)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현대의 '도시'(Modern City)는 주변으로부터 자원(resource)을 빨아들이며, 결과물을 방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먹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서울에서 '쌀 농사' 짓는 곳 보셨습니까? 서울의 인구가 1천만명이 넘는데, 서울 어느 땅에 '쌀 농사'를 위한 '논'이 존재합니까?

다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급자족형' 도시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는 개념모순입니다.


2. '도시'(City, Metro)는 '연결성', '네트워크'(Network)를 상징한다.

개념필연적으로 '자급자족'할 수 없는 도시는 그러면 어떻게 존재할 수가 있나요?

분명합니다. 도시로 '자원'이 대규모로 유입되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서울'을 생각해 봅시다.
엄청난 양의 '생필품', '공산품', 인적, 물적 자원이 서울에 유입됩니다. 하루라도 유입되지 않는다면 서울 시민은 생존할 수 없습니다. 하다못해 천연자원 '물'(water)조차도 한강 상류에서 유입되고 있습니다.
'쌀'도 '밀가루'도 서울에서 자체적으로 나는 것이 없습니다. '컴퓨터'를 써서 글을 올리지만, 서울에서는 '컴퓨터' 만드는 공장도 없습니다.

한편으로, 주변의 '자원'을 빨아들이는 '도시'는 그 결과물을 '배출' 합니다.
빨아들이기만 하고, 뱉어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쓰레기 덩어리가 되겠지요?
실제로, 서울시는 엄청난 쓰레기를 바깥으로 토해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 결과물을 '배출'하는 것은 뭐가 있을까요? 일단 '자원'이 유입되면, 그에 대한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도시에서 만들어낸 '자본'(capital)을 외부에 방출하는 것이지요.
또 흡수한 '자원'을 가공하여 부가가치 높은 생산물을 만들어서 주변에 공급합니다. 주로 지적 생산활동의 결과물이 되겠지요.

그렇다면, 이런 도시에 '자급자족'의 개념이 존재하기라도 합니까?

'도시'가 유지되는 것은 도시로 유입되는 자원 Input과 외부로 방출되는 결과물 Output 이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계속 자원을 빨아들여야만 하는 '도시'이기는 하지만, 뭔가 '잉여가치'를 외부로 방출시키고 있다는 것이죠.

결국, '도시'가 생존해 낼 수 있으려면, 유입(input)과 유출(output)이 균형을 이루어,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도시'의 성공 가능성은 'Hub'(허브)로서의 기능에 있다.

- 도시의 유입('Input'), 유출('Output') 형태
도시에서 '자원'이 유입되고 유출되는 형태, 모양새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도시가 '빨아들이기만' 하고 별다른 부가가치를 내놓지 못하는 '소비형 도시'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절대적인 소비형 도시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주변의 '자원'을 빨아들이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거대하게 성장한 '소비형 도시'는 스스로의 성장 한계와 주변과의 불균형으로 결국 '패망'의 길로 가는 것이죠.
예컨대, 고대 도시들이 붕괴하는 과정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서울은 얼마만큼 '생명력'이 있을까요?
이미 '생명력'을 많이 잃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 일까요?
예컨대, 주거만을 생각해도 일산, 분당, 부평, 인천, 산본, 평촌, 과천, 안양, 성남, 구리 등의 주변 도시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자원' 유출입을 떠나서, 단순히 간단한 '주거' 관점에서만 보와도, 이미 자기 스스로의 '독립성'은 없는 것입니다.

즉, 도시는 결국 주변과의 '연결성', '네트워크' 관계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도시는 주변과 '자원'과 '결과물'을 주고받기 때문이지요.

도시의 성공적인 '정착', '현재'에 대한 평가는 이런 '네트워크' 관계가 도시 자체의 기능은 물론 주변 기능과 조화(調和)를 이루고 공생(共生) 관계를 이루고 있는가 하는 '허브'(Hub)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왜 우리가 '송도 국제신도시'를 만들면서 '동북아 허브 중심도시'라는 타이틀을 외치는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같은 맥락입니다. 스스로 존재하는 도시는 있을 수 없고, 허브(Hub) 기능을 상실한 도시는 의미가 없습니다.


4. 세종시를 '자급자족형 도시'로 만들겠다는 것은, '개방 도시'의 개념을 왜곡하고,'폐쇄 도시'에 집착하는 것이다.

위에서처럼, '도시'는 '자급자족형'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런 도시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고,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자급자족형 도시'를 외치는 세력은 몇 개의 근거(?)를 들어 이를 설파하고 있으나, 혹세무민에 가깝습니다.
이 점들에 대해서는, 논의가 길어지므로, 새로운 글로 다시 논의할 생각입니다.

'도시'라는 근본개념에 근거하여, '도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허브' 기능, '네트워크' 기능이 충분히 자리잡아야 합니다.
'허브' 기능, '네트워크' 기능은 주변과의 지리적, 기능적 '관계'에서 당연히 개념필연적으로 고려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현 정권 세력은 '도시'의 기본개념을 왜곡한 채, '도시 자체', '폐쇄 도시', '자급자족형 도시'라는 허황된 '개념'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이게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세종시 자급자족형 도시'는 근본개념'이 잘못 됐다는 겁니다.
수학을 예로 치면, '기본공식'을 왜곡하고, 수학의 근본이 되는 로직(Logic), 이성 구조를 왜곡하고 있으니, 하는 일마다 이상한 결론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겁니다. 정사(政事)를 꾀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주변을 돕는 술사(術士)들의 세(勢)가 좋지 않기 때문이라 볼 수 있습니다. 결과가 이런 결과들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죠.


5. 폐쇄형의 '숨을 못쉬는 도시'는 그 자체가 '도시'라고 볼 수 없다. 

위와 같이, 도시는 '열린 공간', '네트워크 공간', '허브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자급자족형' 도시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해서도 않되는, 개념필연적 모순입니다.

-'허브'의 '방점'을 어디에 찍을 것인가?
비유컨대,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사회에서 자신에게 맞는 필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역할'을 수행하는 것처럼,
지리적으로도 '도시'는 그 자체의 역할을 찾아서 스스로 형성되고 소멸합니다.
그러나, '도시'는 인위적으로도 조성될 수 있고, 주변환경에 '악영향'을 받아, 소멸되지 말아야할 도시가 '축소'되거나 '후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도시'는 '인간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조성되어 확대되는 경우가 절대적으로 많습니다.
결국, '도시'를 건설할 때, '도시'를 어떤 모습으로 어떤 '기능'을 위해 만들 것이냐는 절대적으로 '선택'(Choice), '필요성'(Need), '편의성'(Convenience)의 문제이지, 필연성(inevitability)의 명제가 아닙니다.

예컨대, '서울'이 우리나라의 수도가 되어야 한다거나, '부산'이 남부권 최대 도시가 되어야 한다거나, '서울' 주변에 '일산', '분당'과 같은 신도시가 조성, 건설되어었어야 하는 하등의 '필연성'이 없습니다.
인간이 사회에서 주변환경을 조성하고 인위적으로 건설하고 확댁시켜 나간 겁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세종시를 어떤 '도시'로, 어떤 '허브' 기능을 위해 건설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선택'의 문제이고, 정책 '판단'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모든 판단이 정당화되지는 않습니다. 그런 판단은 '합리적' 근거와 '설득력', '정책 명제'의 정당성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근본 로직'(logic)의 논리성을 배반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현 정권이 추진하는 세종시 수정안은 '자급자족형 도시'라는 절대 성립할 수 없는 명제로부터 출발하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개념 모순', '근본 로직'에서 논리성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겁니다.


6. 도시의 성장은 무엇을 부르는가?
위에서처럼, 도시의 '허브' 기능은 '인위적인' '의도'에 따라 확대 발전하게 됩니다.
결국 그 도시의 건설을 통해 '무엇을 계획하고', '어떤 효과를 얻을 것인가'하는 '인위성'에 따라, 도시의 성장 방향과 역할이 달라지게 됩니다.




7. 공장 몇 개 들어가고, 연구단지 몇 개 들어선다고 '도시'가 되지 않는다.

애초에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가 전(前) 정권에 의해 추진되고, 국회에서 통과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그 '인위성', '도시 건설'의 '의도'는 과연 어디에 있었습니까?

지역 균형 개발을 도모하고, '행정중심'의 '복합도시'(complex city)를 중부권에 건설하여 '허브'(Hub)의 기능을 강화하여, 전국토의 고른 균형발전, 지역 경제의 활성화, 수도 서울의 과밀화 제어 등에 그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러한 '인위성',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서울 시민', '수도권 시민'들조차 전 정권의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추진을 조용히 지켜본 것입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행정도시'라고 하지 않은 것입니다. 누가 행정만 하는 'Only 행정도시'를 만든다고 했습니까?
행정중심+복합도시 입니다. 행정 기능이 딸려있지만, 행정은 Core, '불쑤시개' 기능만 하고, 복합적 기능을 할 수 있는 '복합도시'(Complex City)를 만들겠다는 것이 원래 안이고, 국회의 통과를 받은 사안이었습니다.


8. '행정'은 도시의 '허브' 기능을 강화시키는 가장 주요한 기능이다.

그렇다면, 원안에서 왜 반드시 '행정' 기능을 넣으려고 했을까요? 이 점에 대해서, '논리 모순'을 일으키는 주요 논거로 이용되며, '갑론을박'을 야기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먼저, 제 견해를 한 마디 넣겠습니다.
님들...'공무원이 무엇인가요?' 공무원은 나라에서 부리는 소위 '종'입니다. 회사로 치면 '직원'이라고 봐도 됩니다.
그런데 '공무원'은 이런 '직원'보다 '국가'와의 연결성이 더 강합니다.
하다못해, 회사에서도 너 외국 나가서 5년 현지인원으로 근무하다가 와라...하면 가야 합니다. 거기 가서 평생 있어라 해도...있어야 합니다.
공무원은 어떨까요? 군인들을 생각해 봅시다. 공무원인 군인보고 강원도 최전방 북쪽 가서 10년 있어라 해도 있어야 합니다. 그게 공무원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알래스카 파견가서 10년 있다 와라..해도 가야되는 것이 공무원입니다.
하물며, '서울', '과천'이 아닌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시'에서 일해라... 하는 것이 뭐가 큰 문제가 되느냐... 이 말씀입니다...
별 것도 아닌 것을 뭘 '나라 망할 듯이 하느냐' 이 말입니다. 실례를 들면, 서울에서 부산으로 옮겨간 공기관들이 몇 있습니다.
공무원의 신분에 '서울'에서 아니살고 '부산'으로 옮겨가면 뭔가 큰 문제가 됩니까? '부산'은 '죽을 동네'입니까?
예컨대, '판사'나 '검사'를 생각해 봅시다. 한 곳에 오래 머물 수 없는 이들은 몇 년 주기로 전국방방곡곡을 돌아다닙니다. 그래서 '판사', '검사'들이 '판사, 검사 못해 먹겠다~'고 합디까?

다시, 돌아가면, 왜 '행정' 기능을 반드시 넣었는지 생각해 봅시다.

- '민간'에게 초기 부담과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민간은 자율성을 가져야 합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특혜를 가져서도 안되지만, 그들이 패널티(panelty)를 당해서도 안됩니다.
'공공사업'에 '민간'에게 어떤 식으로든 '의무'를 부과시켜, '부담'을 주는 것은 '자유주의'의 '형평성'은 물론 민간 '효율성'에도 어긋납니다.

- '행정'은 '공공성', '균형'을 상징
행정은 '국가가 거두워들인 세금을 운영하여 집행하는 기능입니다.' 즉, 원래가 '돈 쓰는 곳'입니다.
'돈을 잘 써서' '공공성(公共性)을 증진시키는 것이 '행정'(行政)의 역할입니다. 즉 '공공성'을 잘 증진시키는 것이 회사로 치면 '돈 잘 벌고' '당기순이익' 늘리는 것입니다.

- '행정' 자체의 편의
세종시에서 '행정기능'을 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행정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이를 방어하는 측 일부는 '행정 편의가 다소 축소되어도' 형평성 차원에서 감수해야 한다고 반론합니다.

여기서 묻고 싶습니다. 과연 '행정 자체의 편의 convenience'가 '축소'될까요?
저는 오히려 엄청나게 대폭적으로 '확대', '개선'될꺼 같은데요. 왜 일까요?

사고(思考)의 고정된 틀을 깨라는 것입니다. 왜 그럴꺼라고 생각합니까.
(이 점은 길어지고, 또 다음 차례 글에서 논의하려고 하므로, 길게 늘어놓지는 않겠습니다.)

- 한반도는 넓기도 하지만, 비교적 좁은 국토, 1일 생활권
먼저, 간단하게 보면, 한반도, 그것도 '남한' 만의 땅떵어리는 물론 엄청 넒기도 하지만 비교적 좁은 국토입니다.
1일 생활권이죠?
아침 9시에 서울에서 부산에 나서면, 부산에서 충분히 볼 일 보고, 서울에 5시 전후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뉴욕- 워싱턴' 거리보다 가깝다 이 말씀입니다. 그만큼 한반도는 물리적으로 이미 가까운 땅입니다.



어떤 한나라당 여성 국회의원께서 '정운찬 국무총리' 청문회 과정에서 브라질 브라질시티를 '행정 비효율'의 예로 언급하였는데, 님께 묻고 싶습니다... 아니..브라질(Brazil)이 땅 떵어리가 얼마나 큰 나라인지는 알고 하시는 얘기입니까?
아니... 그 이전에 아마존(Amazon) 땅떵어리는 알고 계시는지요? 아마존 땅떵어리가 다 들어가는 나라가 브라질입니다.
그런 나라하고 비교하는거 자체가 뭔가 '아니올씨다'라는 거에요. '아마존의 눈물' 열심히 보시구요.
(이 점도 다음 글에서 논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반도에에 사는 것, 생활하는 것은 그리 가깝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장의 한계'가 이미 왔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성장의 한계'를 극복하는 길은, 그 길에 J.롤스(J.Rawls)의 '정의의 3원칙'을 굳이 들먹거리지 않아도, 너무 뻔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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