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m Lucky 최근글 <--

'생명'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0.06.15 누에고치 집에서 기르니 비단 뽑았다
  2. 2010.04.05 우울증 치료법 _즐거운 음악을 듣자 2
  3. 2009.06.30 이명박과 히틀러는 똑같다 3
  4. 2009.06.30 민주당 의원들은 총사퇴 바랍니다
  5. 2009.06.25 정책이 광고인가? 대한늬우스, 이명박정권은 불량품? 8

유치원 다니는 친구가 '관찰 실험'을 한다고 유치원에서 '2령 누에'를 컵라면 용기에 담아 왔네요.

그래서 '설왕설래' 하면서 열심히 키웠습니다.

아니 그랬더니!!

이 '누에'가 성장해서 드디어 '고치' 집을 지었네요. 보고 있으면 참으로 신기합니다.

'누에'는 뽕나무 잎만 먹는다고 하는데, 정말로 그랬습니다. 
서울에서는 '뽕잎'을 구하기 힘드니까, 가까운 근교에서 직접 뽕잎을 '공수'해서 키웠네요.



'고치' 집을 지은게 부실해 보이기도 하는데, 기델게 없어서 잎싸귀 줄기를 중간에 다시 넣어줘서 그런거 같아요.

누에가 크는게 생각보다 엄청 크게 자라는데, 정말로 보면 그렇게 징그럽지 않고 오히려 귀엽습니다.

저 작은 '스티로폼 공기' 안에서 홀로 커 나간다는게 신기하기만 합니다. 
친구도 없이 홀로 자라나서 이제 '고치'를 치고, 나방이 되서 '친구'들 만나러 갈 준비를 하고 있네요.

누에는 깨끗하고 조용하여 잘 보살주면 충분히 기르기 쉬운 곤충이라고 하는데, 뽕잎만 넣어주면 되고, 배설물만 가끔 털어주면 되니 정말로 기르기 쉽습니다.

3~4령 누에

'고치'를 친 누에는 여기서 '변태'하여 '누에나방'이 되고 '번데기'를 남기는데, 
누에나방이 되는데 실패하면 그냥 번데기만 되고 만다고 하네요.

누에가 내뿜는 이 '명주실'로 그 유명한 '비단'을 만드는 것이지요!! 위에 사진의 실이 바로 그 명주실입니다!

누에는 1령 - 2령 - 3령 - 4령 - 5령 누에를 거쳐 드디어 고치를 짓고 이 안에서 탈피 과정을 겪고 번데기를 남긴다고 합니다.
번데기에서 탈피하여 나온 누에는 드이어 '누에 나방'이 되어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그리고 산란을 한다고 하네요.

고치를 짓기 바로 직전인 5령 누에 기간은 약 6~8일로 이 기간에 전체 기간에 먹을 뽕잎의 약 80%를 먹어치운다고 합니다.

그리고 약 2~3일간의 '고치 짓기' 기간을 거쳐, '고치' 안에서 10~12일간 탈피하여 번데기를 남기고, 누에나방이 됩니다.

좋은 경험을 선물해준 '누에'가 꼭 누에나방이 되서 멋지게 날아오르기를 기대해 봅니다.

땅이든, 강이든, 바다든, 하늘이든, 이렇게 작은 미물(微物)도 생명의 경이로움을 보여주는데,
생명(生命)을 하찮게 여기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맞춤검색

,

우리가 인생(人生)을 살다보면 자주 우울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울해진다는 것은 '생명체'에게 있어서 참으로 안타까운 순간의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존재하는 것'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니는 '존재(存在)의 이유(理由)'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런데 주변의 여러 사정으로 인해 우울해진다면, '생(生)의 즐거움'을 누려야할 존재의 의미가 매우 비참해지기 때문입니다. 

'존재의 비참함'에 대한 자각은 역순환을 일으켜 더욱 우울증을 심화시키도 하는데요. 



[우울증이란 무엇일까]

어릴 적에는 생명체가 지니고 있는 잠재적 '포텐셜(potential)' 에너지(Energy, 에네르기)가 크기 때문에, 쉽게 스스로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가 드물지만, 청소년기에 들어서기만해도 각종 호르몬의 분비가 왕성해 지면서 심리적으로도 '우울증'의 기재가 커지기 시작하지요. 

우리가 살다보면, 뉴스 지면을 통해서도 유명인사들이 '우울증에 빠졌다거나', '우울증을 이겨냈다'는 얘기를 많이 듣게 됩니다. 
비단 연예인이나 유명인들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이 항상 '우울증'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현대인들은 원초적인 자연을 만끽하면서 넓은 대자연에서 뛰어놀고 있지 않기 때문이죠. 
고도의 분업화 사회를 헤쳐가고 있는 현대인들은 어떨때는 마치 '기계의 부속품'처럼 일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규격화된 생(生)에서 오는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우울증은 왜 오는 것일까요?
나이가 어느 정도에 이르렀어도 '경험적으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울증'이 심리적인 원인에만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우울해지는 여러가지 이유를 경험적으로 살펴볼께요.


[우울증이 오는 이유]

1) 첫째, 육체적인 이유가 가장 큽니다.

몸이 피곤해져 있는데,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우울해 집니다.'
즉, 육체적 피곤이 '우울증'의 가장 큰 이유의 하나라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어떤 일이든 너무 무리하지 말고 쉬어 주어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몸이 쳐져 있으면 우울증이 쉽게 찾아옵니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주어야 하는 것이죠.
조깅이든 배드민턴이던, 등산이든, 조기축구회이든 성인이 되어서도 규칙적인  운동을 할 수 있는 계기가 있어야 합니다.

또, 몸에 질병이 있으면 우울해지기가 쉽죠. 이런 질병은 병명이 있는 진짜 질환일 수도 있고, '전신 피로'와 같은 전반적인 육체적인 체력, 컨디션 저하 상황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경험적으로 보면, '육체적'으로 '다운'되어 있으면, 당연히 '마음'이 우울해 집니다.

마음이 우울해져서 육체적으로 쳐지는 것보다, 육체적으로 피로해져서 마음이 우울해지는 경우가 절대적으로 많습니다.


2) 둘째, '정신적인 피로'가 동반되었을 때입니다.

이런 정신적 피로는 일종의 '스트레스' 상황이죠.
그 원인은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첫번째는 역시 '육체적 원인' 입니다. '과로', '피로' 상황이 계속되면서, '마음'을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몸을 즐겁게 하는 것이 가장 첫번째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말 그대로 '정신적인 원인'입니다.
여기에서는 두 가지 방향의 원인이 있습니다. 하나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부로부터 생겨나는 것'입니다.

외부로부터 오는 것은, 타인(他人)이나 외부상황이 자신에게 안겨주는 '정신적 충격'과 '스트레스' 상황입니다.
비자발적인 외부 환경 때문에, 예측하지 못한, 회피하고 싶은 상황과 마주치게 된 것이죠. 

내부로부터 오는 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 속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욕구불만'이 지속되면 우울해질 수 있습니다. '욕구 불만'이 생기는 이유는 말 그대로 '원하지 않던 상황에 직면했거나', '원하는 상황을 쉽게 얻을 수 없을 때' 발생합니다.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원하지 않는 상황에 직면하여 그것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심리적인 모든 상황을 '욕구 불만 상황'으로 볼 수 있겠네요. 


[우울증을 해결하는 방법은?]

그러면 우울증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아주 간단합니다.

1) 원인을 제거해 주면 됩니다.

 '육체적인 원인'에 의한 우울증이든, '정신적인 원인'에 의한 우울증이든 그 원인 상황을 제거해 주면 우울증은 치유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이 쉬운 것이죠?

대부분의 경우, 우울증을 야기하는 원인상황이 쉽게 '제거'되거나 '원형으로 회복'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울증이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사고로 중요한 지인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잃었다면, 그로 인한 우울증은 쉽게 극복되기 힘듧니다. 왜냐하면, 그런 상황은 돌이킬 수가 없으니까요.

그러나, '원인'을 제거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그런 '원인'을 적극적으로 제거하려고 노력하면, 우울증은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너무 살이 쪄서 우울하다고 한다면, 살을 빼면 되겠죠? 운동을 해서 '원인'이 되는 살을 빼면 됩니다.


2) 중화 요법을 쓰는 것입니다.

우울증을 야기하는 원인은 쉽게 제거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은 항상 인생의 고통의 한 편을 차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남은 인생을 계속 고통 속에 살아야 할까요?

원인이 되는 상황을 '제거'하거나 '원상 회복'할 수 없다면, 남은 방법은 다른 '상황'과 '생(生)'으로 그것을 중화시켜 나가는 '중화요법'입니다.

비유하면, 평생 용광로 앞에서 철을 뚜뚫겨야 할 운명이고 그것을 피할 수 없다면, 가끔 해수욕장 가서 수영을 해주면, 그런 상황이 '중화'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예를 들어, 우리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상의 피로에 지쳤을때, 주말에 휴식을 취한다던가, 등산을 간다던가, 여행을 가면, 그런 일상의 피로가 '중화'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볼 수 있네요.

그래서 가장 중요한 요점이 뭐냐하면, 우울증의 '원인'이 되는 그 '상황'에만 무조건, 일방적으로 집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는 분명히 '마음의 여유'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누구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사고'로 먼저 떠나보냈는데, 그 '현실에만' 집착하고 있으면, 결코 우울증은 치유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상황은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지 않는 한, 결고 돌이킬 수 없는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러한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은 분명히 인정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는 '잊어버리거나', '망각하더라도' 상관이 없을 겁니다. '돌이킬 수 없으니까요.' 그 대신에 우리는 그것을 대신할 '더욱 큰 가치'나 '새로운 가치', 또다른 '즐거움'을 찾아나서야 합니다. 그게 '중화요법'이죠.




[즐거운 '중화 요법'에 빠져보자]

그런 '중화 요법'에 빠져들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에게 당당해져야 하고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생명체는 '즐거워야 합니다.', '즐겁게 살라고 태어났지, 누가 너는 고통 속에 인생을 살아라'하고 했습니까?

즉, "자신이 즐거운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결코 부정하거나 거부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즐겁게 살아야 하는 것은 당위이고, 생명(生命)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아주 손쉬운 방법을 하나 알려드릴께요. 누구나 실천할 수 있어요.

어떤 원인에 의한 것이든, 우울증의 여러 원인들을 중화시킬 수 있는 가장 큰 방법의 하나는 "즐거운 음악을 듣는 일"입니다.

자기가 땡기는 걸로 들으시면 되요.

트롯트를 듣던, 댄스를 든던, 힙합을 듣던, 자신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음악을 들어보세요~

요즘 '걸그룹들이 대히트를 치고 있지요?'

이런 현상은 역설적으로 이 시대가 결코 즐겁지 않은 우울증의 잠재 요인을 많이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심리적인 반작용으로 '걸그룹'과 같은 음악 그룹에서 즐거움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죠.
이거는 매우 당연하고, 오히려 일면으로는 권장할 수도 있는 상황이구요.

예를 들어, 2009년 초반에 소녀시대가 'Gee'(지)로 대히트를 쳤는데, 이런 시대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리고 주말에 방송 3사에서 방송하는 음악프로를 꼭 챙겨보시면 아주 좋아요. 시간 여유가 되시면요.
물론, 그 시간에 자연을 벗삼아 지인들과 놀러를 가거나, 여행을 가는 것도 아주 좋겠지요.

그러나 자신이 우울증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런 주변 관계에서 '의기소침'해져 있을 수 있으므로, '음악'은 가장 간편한 접촉 수단이 됩니다.

출퇴근할 때에도 '음악'을 들어주면 좋구요.



방송 3사에서는 금요일 KBS2 '뮤직뱅크', 토요일 MBC '쇼음악중심', 일요일 SBS '인기가요'를 하고 있어요.

그리고 음악사이트들이 많으니까 음악을 검색해서 즐거운 음악들을 골라서 들으면 참 좋아요~

음악도 하나의 파동(wave)이고, 우리의 몸도 파동에 반응하는 물리체이기 때문에, 질서잡힌 정연한 음악, 혹은 즐거운 멜로디는 '우울증'으로 지친 우리의 육체적, 정신적 질서를 바로잡는데도 아주 큰 힘이 됩니다.

'물'(water)도 즐거운 음악을 들려주면, 그 파동에 따라 질서정연한 '춤'을 춘다고 하지요?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음악 치료법'을 쓴다는 것이 여기서 나오는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햄 T.T Dance 들어보기
추천블로그_소리천사

즐거운 노래 몇 개 권장해드리고 싶은데, 다 취향이 다르니까, 자기가 들었을 때 즐거운 음악을 들으면 될거 같아요.
주말 음악프로를 챙겨보면 아주 좋습니다~



맞춤검색

,


히틀러도 엄청난 국민적 지지 속에 당선되었다.

연장을 든 히틀러


그리고 유태인 학살을 포함한 인종학살을 단행했다.

그에게 유태인 학살은 "절대적 선"이었다. 그리고 밀어붙였다.


이명박도 국민적 지지 속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4대강 정비사업"을 단행하려 한다.

그에게 "4대강 정비사업"은 "절대적 선"이다. 그리고 밀어붙이고 있다.


그들에게 "타인들의 생각"이나
"절대적 진리 (眞理)", 문리(文理, logic) 체계는 전혀 고려사항이 아니다.
 

오직 자기들의 생각, 자기가 "절대적 선"이라고 여기는 그 생각만이 중요했다.
그리고 밀어붙인다.

그 결과에 대해서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
그것이 수 백만의 죽음을 부르든, "생명"의 근원을 무참히 짓밝는 것이든 개의치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그것은 자신 만의 "절대적 선"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무슨 생각하든, 절대 진리가 무엇이든, 그에 상관없이.


자신의 모든 선택과 행위들은 "절대 선"이었다고 살아있는 동안 스스로 칭송했다.

600만명 이상을 죽인 히틀러의 홀로코스트


'자기에게만 선'인 것을 모두에게 '강요'할 때, 우리는 그것을 '독선(獨善)'이라고 부른다.
지배체제를 악용해서 그것을 강요하는 것은 '독재(獨裁)'다.
수 백만을 죽여도, 생명을 무참히 짓밟는 결과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을 '독재의 폐해'라고 부른다.
독재로 흐른 권력은 언제라도 생명을 거리낌없이 죽일 수 있다.


히틀러와 이명박은 똑같다.



맞춤검색

,


민주당 의원들은 총사퇴하기 바랍니다.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도 총사퇴를 바랍니다.

의원직을 즉시 반납하세요.

더 이상 정국이나 시국이 이렇게 진행되어서는 안됩니다.
특히 일방적이고 독선적이며, 국토의 생존환경 자체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이런 독재 정책이
일부 위정자의 그릇된 판단으로 추진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은 너무 분명합니다.

돌이킬 수도 없는 이런 잘못된 정책을 방관하는 것은 역사적인 죄악이며,
동시대는 물론 후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국회가 충분한 견제를 할 수가 없다면, 방관자보다도 더 나쁩니다.

지금 상태로는 그 어떤 견제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한계가 있다는 것을 당신들 스스로도 아실 것입니다.

국민은 지금 후회하고 있고, 견제가 불가능한 현 상태를 정상적 상태로 조속히 되돌려야 한다는데 동의하고 있습니다.

2008년 작년 한 해도 국민들은 스스로 견제하느라 너무 힘든 한 해를 보냈습니다.
이는 올 해도 계속되고 있고, 이 끝이 어떻게 파국으로 이어질 지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일이라면 되돌릴 수 있으나, 생명, 국토, 물은 삶의 근원으로 포기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것입니다.

지금 정국은 의원내각제였다면 이미 의원총사퇴를 했어야 하는 지경입니다.
내각책임제의 수장인 총리였다면, 벌써 사퇴를 몇 번이고 했어야 할 상황입니다.

민의를 이렇게 반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개막장" 정책이 아무런 견제없이 추진되는 것은,

국회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견제와 균형을 잃어버린 국회는 국회 내에서도, 국회 밖에서도 이미 죽었습니다.
이미 죽어있은지 한 참이 됐습니다. 무덤 속에서 시체가 되어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국회는 이미 죽었습니다.

국회는 이미 죽어있었다는 현실을 인정하세요. 환상을 버리세요.

국민들이 "비일상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견제하는 것은 권할 일도 아니고 한계가 있습니다. 

이미 죽어버린 국회를 되살리는 일은, 죽은 국회를 과감하게 포기하는 일입니다. 

국회를 정상적으로 되돌려야 합니다.

그럴려면, 민주당을 포함한 야당의원들은 총사퇴를 해야 합니다. 
즉시 총사퇴 하세요. 다른 길은 없습니다. 

국민은 지금 정상적 국회, 견제 가능한 국회를 원하고 있습니다.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이라고 했습니다.

노무현의 선택이 어떤 국민적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지 상기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상태로는 어떤 국민적 희망도 대안도 발견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의 회복불가능한 퇴행도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런 일을 비일상적인 방식의 국민의 몫으로 떠넘기려는 것은 역사에 대한 님들의 엄청난 죄악이 될 것입니다.

즉시 국회의원 총사퇴를 단행하시기 바랍니다.

국회는 재구성되어야 합니다.


맞춤검색

,


대한늬우스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이러한 비판은 정당하다.

그러나 정책당국은 최근 다음(daum) 아고라(agora)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대한늬우스, 광고는 광고일 뿐 오해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시대를 15년 이상 되돌렸다는 비판에 대해 되돌아 온 정권의 반응은 참으로 기가 찬다.


이런 인식과 태도로 일관하고 있으니, 이 지경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출범 이전부터 이어지고 있는 이런 정권의 태도가 계속된다면 더 이상 참기 곤란하다.
참아야 할 이유도 없다.  

묻고 싶다.


정책이 광고인가?

정책도 광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명박정권은 밀어 붙이고 있는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본질적인 착오일 수 밖에 없다.


광고(advertisement)란 무엇인가?
- 광고는 소비자의 최종선택권 보장

광고는 광고주가 소비자에게 "제품", "상품"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활동이다.
광고주체가 "이미지형성"이나 "홍보"를 위해 광고를 동원하기도 한다.

광고는 제품 구매를 호소하는 "청약의 유인"에 불과하기 때문에, 구매를 소비자에게 강요하지는 않는다.
광고는 "유혹"을 할 뿐, "제품"에 대한 최종적인 선택권은 여전히 소비자에게 있다는 것이다.

즉, 소비자에게 "구매결정권", "자기결정권"이 없는 "결과"만을 얘기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공익성 광고의 경우에도, 사실에 가까운 "정보"의 전달이나 대중적인 고취(cheer-up)를 위해서이지,
정책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경우는 근래에는 거의 없었다.

결과만을 받아들이라고 얘기하는 "4대강 정비 대한늬우스"가 광고라고 할 수 있는가?


다음으로 "4대강 정비 대한늬우스"가 정책이라도 될 수 있는지 보자.


정책(policy)이란 무엇인가?
-사회적인 합의를 바탕으로 공공선을 보장해야 정책

정책(Policy)은 사회적인 합의(consensus), 공동체 정신의 산물이다.
함께 합의한 것을 추진하는 것이 정책이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공공선을 증진시켜 가는 활동이다.

합의하지 않은 것을 해도 불쾌한 것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면 과연 정책일까?

합의되지도 못한 것을, 충분한 동의를 얻지도 못한 것을, '좋은 정책'이라고 볼 수 있을까?

연애에 비유하면,
내가 아무리 상대방을 사랑하더라도, 상대방이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스토커' 취급이나 당할 뿐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 눈에 아무리 "좋은 정책"(Good Policy)으로 보여도, 상대방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이렇다는 것이다.


하물며 '나쁜 정책'을 동의도 얻지 않고 밀어붙이면 어떻게 되겠는가?
'폭력'이고 '사기'인 것이다.
여기에다가 '권력'이라는 강압성이 더해지면, 말 그대로 '독재'가 유력해지는 것이다.


광고로 포장하면 '나쁜 정책'도 '좋은 정책'이 되나?

코미디언이 코미디하는 1분 30초짜리 광고 2편 내보내면, 없었던 사회적 합의, 컨센서스가 형성되나?
아니면 "나쁜 정책"이 광고 두 편으로 "좋은 정책"으로 탈바꿈하기라도 하는가.
더욱이 1분 30초가 이슈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제공하는 충분한 시간이라도 될 수 있는가? 

형편없는 불량품도 코미디언이 나와서 광고 때리면 어느새 "최고 제품"이 될 수 있는가... 이 말이다.
폐차 직전인 30년된 고물차량이, 코미디언이 "이 차 좋아요~" 코미디로 보여주면,
어느새 "람보르기니" 신제품이라도 되느냐... 이 것이다.

광고만 때리면, 나쁜 정책도 좋은 정책이 되면, 정책하기 참 쉽겠네?


최선이 아닌 차선이라도 될 수 있나?

최선은 아니더라도, 위정자들의 머리에서 차선 밖에 나오지 않는다면,
물론 국민이 양보할 수 밖에 없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위정자들의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되고, 그런 한심한 위정자들을 뽑아놓은 것은 국민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내 탓인데, 누구를 탓하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차선"이라도 될 경우에 그러하다.
애초에 아닌 것을, "최악"인 것을 어떻게 '차선'이라고 선택할 수 있는가?


'생명'과 관련된 것, 차선 있을 수 없어

'최선'이 아닌 '차선'의 정책으로 물론 양보할 수 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그렇지는 않다.
특히 '생명'과 관련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생명"은 양보할 수 없는 것이다. 생명과 관계되는 것은 "차선"이 없기 때문이다.
누가 감히 '생명'을 양보하라고 할 수 있는가?

"물"도 생명에 관계된 것이다. 물(水)은 모든 생명의 기본이고 근원이다.
"생명"은 자연이고 자연의 이치이다.
생명이 자연의 이치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물의 원리를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같다.
물의 이치 _ 물은 흐른다, 물은 높은 곳을 향하지 않는다, 물의 흐름을 거스르면 안된다는 것이다.

생명의 근원인 물과 강의 생태환경을 쉽게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광고는 광고일 뿐, 소비자에게 강매(强賣)하지 않는다

광고의 경우에도 광고는 광고일 뿐, 소비자가 최종 구매를 선택한다.
광고는 구매를 호소하는 "청약의 유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소비자에게 강제로 매입을 강요하는 '강매'는 자유시장경제와 공정거래위반이다.
소비자에게 충분한 사전정보와 진실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성실한 고지의무를 위반하는 것이다.

"광고하는 것 뿐이라고 강변하는"
이명박정권은 소비자의 그런 "최종 선택권"을 과연 남겨두었나?

무조건 밀어붙이기, 독재로 나가고 있으면서, 무슨 "광고"라고 "뻘소리"를 하고 있느냐... 이 말이다.


그런 강제적인 "강매"를 과연 누가 받아들이나?

설령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도 그런 식으로 하면, 치를 떨고 손을 내저을 것이다.
그런 마당에 "불량품", "저질상품", 검증도 안됐고, 반품도 안되는
그런 "상품"을 과연 누구보고 받아들이라고 하느냐 이 말이다.

"이명박정권은 3류 상품이다, 불량품이다" 하는 꼴 밖에 안된다.

이명박정권은 3류 상품인가?


대한늬우스 내용의 합리성, 적절성

정책 내용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배제한 채,
코미디언이 나와서 코미디하는 거 보고 있는다고, 정당성 없는 정책이 정당화되거나 수긍되는 것이 아니다.

정책당국은 아고라 게시글에서, "민간 상업광고에서도 대한뉴스를 패러디한다", 그러므로 괜찮다는 식의 논리를 펴고 있다.

물론 민간 상업광고에서 대한뉴스를 패러디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광고로서 그러할 뿐이다.
"정책"이 단순한 "광고"가 될 수 없음을 위에서 쭉 밝혔다.

1분30초짜리 영상물 두 편으로 '4대강 정비사업'이 합리화될 수도 없는 마당에,
그 "광고 내용"이라는 것도 보잘 것 없다.

"홍보물"에 나와서 그들이 대화하는 내용을 보면, 근거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홍수예방, 물관리 최적화 방식으로 증명된 바 없어

이들은 "4대강 정비사업"이 "홍수예방, 물관리"가 된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런데 어디에도 근거가 없다.
결론만을 얘기하고 있다.

증명된 것이 있는가? 검증된 것이 있는가? 동의받은 바 있는가?

아니면 지금까지 홍수예방이 덜 됐다거나, 물관리가 안됐다거나,
지금까지의 방식이 최선이 아니었고, 이를 넘어서는 보다 최적화(optimization) 방식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런 내용은 그 어디에도 없다.

"강파서 물담아서 가뭄때 쓴다"와 같은 참 국민을 "새대가리"로 보는 일반명제만 지껄이고 있다.

"강에 화물선이 떠다니면 프로펠러가 돌아가니까 공기가 주입되서 강물이 맑아진다"고 강변하는 대운하 전도사,
딱 그 수준이다.
 

여행처 제공 환상에 불과, 절대 준거 될 수 없어

다음으로, '가족여행' 편에서는 4대강 정비사업이 마치 좋은 가족 여행처를 제공해 줄 것처럼 얘기한다.
그런데 검증되지 않은 "환상"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지금 여행지가 부족한가, 아니면 가족 휴양지가 부족한가?

사람들이 지금 강에 못가서, 강에 유원지가 없어서 안달났나?
인구 1천만명이 넘는 서울 사람들이 지금 서울강변에 휴양, 체육시설이 없다고 투덜거리고 있는가?
아니면, 충주호에 사람들이 밀려터져서 유람선들이 초호황을 누리고 있는가.
아니면 춘천호에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나.

물론, 일부 지방지역에 서울 한강둔치처럼 인위적으로 조성된 유락시설이 조성될 수는 있을 거 같다.
그러나 이것은 개별 지방지역의 선호도를 확인해봐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강처럼 시멘트 쳐바른 환경이 더 좋은지, 아니면 자연스러운 강에서 수영하고 물놀이하는게 더 좋은지,
확인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도 광고를 구매했기 때문에 정당?

정책당국은 대한늬우스에 대해,
"정부도 일반 광고주처럼 극장이 판매하는 광고 시간과 물량을 구입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따라서,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아니 지금,
정권이 돈 안내고 광고 내보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인가?
(물론 사실이 그랬다면 더 큰 문제였겠지만, 이게 중심 논점이 아니다.)

이명박정권은,
"광고일 뿐이다. 돈 내고 광고하는 거다. 광고니까 아무 문제없다.
광고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는 논리를 펴고 있다.

말 그대로 "정책"을 "광고"로 포장해 버리고 있다.
"정책"이 "정책"으로써 함량미달이어서 폐기되어야 할 것을, "광고"로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하고 있고, "광고논리"가 통할 것으로
대단한 착각들을 하고 있다. 아니면 "착란"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정책"이 "광고"가 될 수 없음은 이미 밝혔다.


다음으로 지금 "광고효과"를 문제삼는 것인가?

정책당국은 "영화관 광고도 홍보매체로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영화관을 새로운 홍보매체로 적극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6월 25일~7월 24일까지 대한늬우스를 내보내며 다양한 홍보방안 강구하여 국민과 소통을 강화"할 것이라고 한다.

애초에 이명박은
"국민이 반대한다면 어떤 정책이고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보면,
"국민이 반대하면 광고라도 해서 어떤 정책이든 하겠다"는 막장으로 향하고 있다.


일방적인 "정책"을 "광고"라고 기만해서, 광고논리로 전가하는 해괴한 궤변론을 펼치고 있다.
그렇다고 광고처럼 소비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광고" 대접하는 방식

광고란 무엇인가? 상품에 대한 호소이다. 최종 선택권은 소비자에게 있다.
이명박정권은 "광고"라고 강변하며, 해당 정책들이 "상품"임을 분명히 했다.

소비자는 "상품"에 대한 "구매결정권"을 가져야 한다.
"3류상품", "불량품"이면 "반품"할 기회라도 주어야 한다.

반품할 시기가 늦었다면, 자유롭게 "폐기"할 수 있는 자유라도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나는 쓰레기통에 버릴 자유가 있다. 버릴 자유를 보장하라.
 
그런 연후에 '광고'라고 "쳐발라야" 할 것이다.


맞춤검색

,

(★ 검색으로 결과를 얻어보세요. Let's Search ★)



--> I'm Lucky 최근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