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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18 한상렬 기도문, 뉴데일리 기사는 의도적 오보 12
  2. 2010.05.12 조선일보 왜 왜곡보도를 일삼나? 4
  3. 2010.02.10 대학 등록금 신용카드 납부 설득력 있나? 4
  4. 2009.05.12 김선아 달걀세례 너무 가학적, 심하다 53

한상렬 목사가 북한을 방북하여 북한 종교인들과의 기도회에서 '친북 정권 찬양' 적인 기도문을 낭독했다고 7월 17일 저녁 뉴데일리가 보도했다.

뉴데일리는 [한상렬 '대한민국을 멸망시켜 달라' 기도]했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뽑았으며, 실제 본문 내용도 그와 다르지 않다.
뉴데일리는 해당 기도문의 인용 출처로 재미 언론지 '인사이더 월드'(손충무 발행 추정)의 '서울발 기사'임을 밝혔다.

그런데 인사이더월드가 그렇게 공신력있는 주요 언론지인지도 분명하지 않으며, '서울발 기사'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반면에 네이버 뉴스캐스트 포털에 한자리 잡고 있으면서, 한국수자원공사, 한국가스공사, 포스코(Posco) 등 주요 공기업과 기업의 광고를 고정 패널로 후원받고 있는 뉴데일리는 그런 기사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아주 떳떳하게 밝히고 있다.


정말 언론지라고 한다면, 최소한 '사실을 확인해야 할 사명'이 있다.
어떤 블로그가 그러더라... 어떤 사람이 그러더라... 그러면 사실이 되는 것인가?

뉴데일리는 분명히 자의적인 제목들로 기사를 뽑았고, 사실로 단정짓고 보도하고, 더욱 사실처럼 여겨지도록 분명하게 보도하고 있으므로, 이런 보도 태도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뉴데일리는 '기도문' 전문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수록하고 있다.)
(뉴데일리 출처 : http://bit.ly/aCLJO3)

뉴데일리는 '인사이더월드'가 지난 6월 27일 평양 칠골교회에서 한 일요예배 기도문 전문을 보도했다고 전하며,
‘인사이더 월드’는 한 목사가 “아예 대놓고 ‘대한민국 멸망’을 기도하고 있다”며 “북한과 대치중에 있는 상황에서 적군(敵軍) 진지까지 찾아들어가 ‘조국의 멸망’을 기도하는 이 사람은 과연 대한민국 국민인가?”라고 비판했다
고 밝혔다.

그런데 한상렬 목사가 북한에서 했다는 기도문은 국내 네티즌이 작성한 창작문, 소설이라고 한다.

그 글의 원출처는 지만원이 운영하는 시스템클럽에서 볼 수 있다. 해당 게시자는 그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시스템 클럽 출처 : http://bit.ly/aMZlwN)

결국 시스템클럽 회원이 한상렬씨를 비꼬며 소설로 창작한 것이다.
이 소설을 인용한 인사이더월드나, 뉴데일리나 그것을 모를리가 없다. 왜냐하면 원래 소설문에 소설이라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아마 이렇게 기도하지 않았을까...추측해 봅니다..'라고 원문에 아예 처음부터 적혀 있다.

(출처: 시스템클럽 원작성자 보도 사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사이더월드, 뉴데일리는 그것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악의적으로 보도했다.
이 정도면 해당 페이퍼들은 폐간의 절차를 밟는 것이 마땅하다. 

기도문의 원래 창작문 게시자는 뉴데일리의 보도와, 그에 대한 삭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해당 기사를 지속적으로 그대로 게시하고 있는 뉴데일리의 의도적인 왜곡에 매우 불쾌한 입장을 표시하고 있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뉴데일리 기사로 인해 본의 아니게 소란을 끼치게 되어 대단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분명히 추측이라는 단서를 달았고 댓글에서도 이렇게 기도하지 않았겠는가하는 글도 첨부하였으나 마치 한상렬 목사가 사실로 그런 기도를 한 것 처럼 기사로 보도가 되었습니다. 이는 명백한 오보이므로 메일로 정중하게 삭제 요청을 하였고, 아울러 사과와 함께 정정 보도하여 줄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시스템 클럽 출처 : http://bit.ly/bV3HKw)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데일리는 기사 게시를 그대로 강행하고 있다.

뉴데일리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사실은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다. 결국 사이비(似以非) 아닌가?
이런 방식은 '자유민주주의'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자유민주주의'가 지켜질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기사가 그동안 한 둘이 아니었다. 언론지의 탈을 쓰고, 이명박 정권을 등에 업어 고정광고를 유치하여,
네이버를 비롯한 주요 포털의 트래픽을 남용해 '자유'와 '민주주의', '여론'의 진실과 정신을 훼손하는 뉴데일리는 언론시장에서 퇴출이 마땅하다고 본다.

뉴데일리는 폐간의 절차를 밝기를 바란다. 사과, 정정보도를 실어야 함은 당연하다.
이명박 정권의 각종 정부기관이 왜 이런 특정 언론사를 후원하고 있는지 그 배후도 밝혀져야 한다.

그리고 여담으로 한상렬 목사의 방북에 대한 개인적 입장도 간단하게 밝혀본다.
남과 북으로 사람이 왕래(往來)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것을 '죄'라고 치부하고 '금기' 하는 것은 남북한 정권(위정자들)이 그들의 입맛대로 재단해 놓은 것에 불과한 것이다.

독일 베를린 사람들은 그런 부당한 '금기'에 자유(自由)로 도전하며, 베를린 장벽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사람은 그가 원하는 어느 지역이고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생래적(生來的) 자유가 있다. 
남한 사람도 북한에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어야 하고, 반대로 북한 사람도 남한에 자유롭게 왔다갔다 할 수 있어야 한다.
한상렬씨는 그런 본래적 자유를 누리고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줬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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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촛불 2주년 특집'이라며 연일 내보내고 있는 인터뷰 기사가 허위에 가득찬 사실상 "왜곡보도"로 밝혀지고 있다.

특히 이런 보도들은 애초에 '짜깁기'로 일관한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기획' 보도라는 점에서 조선일보의 누적된 도덕성의 문제를 다시 드러내고 있다.

애초에 의도적, 악의적인 '기획'으로 타인의 '생각'을 짜깁기하고 왜곡하여 '보도'하는 신문을 과연 '신문'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이런 신문이 '자유주의'를 수호하고, 개인의 '인격'과 '가치', 사회 공동체의 건전한 '여론'을 형성하는데 기여한다고 할 수 있을까?

조선일보는 우희종 서울대 교수,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촛불소녀' 한채민 양을 비롯한 수많은 당사자들에 대해서 사실상 인터뷰 내용을 "조작하여" 기사를 작성, 배포했다.

당사자들은 이러한 조선일보의 행태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며, 조선일보의 왜곡보도 행태에 항의하고 있다. 

먼저 인터뷰 당사자들은 왜곡 보도를 일삼은 "조선일보"에 대해서 즉각적인 법적 대응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당사자들의 정확한 '의견'을 전달해야할 '언론지'가 위와같이 사실상의 '조작'과 악의적인 '의도'를 드러내며 신문지면을 악용했다는 점에서, 해당 신문은 사실상 '폐간' 수준의 절차를 밝는 것이 맞다.

'윤리', '도덕성', '합리성', '진실'이 없는 신문은 존재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신문은 '진실을 호도하는 행위'로 진실 추적에 대한 사회적 비용을 높여서 결국은 엄청난 '사회 비효율'을 초래한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조선일보 '특집 기사'를 보고 국정회의에서 언급하며 크게 칭찬했다고 하는데,
누구든 이처럼 '엄한 내용'의 '엄한 신문'을 보고 마치 '사실'인 것처럼 인식하는 것은 정말로 큰 문제이다. 

위의 사례처럼 '지면 권력'을 활용한 '신문 권력'의 악의적으로 기획된 엄한 보도는 누구의 '정신'이든 좀먹게 한다. 

그런 '잘못된 언론'을 마치 '진실'이고 '정의'인 것처럼 여기고 행동하는 정치 세력이 있다면, 그런 세력조차 심판의 도마 위에 즉각 올라설 수 밖에 없다.

잘못된 '언론'은 '부당하고' 잘못된 길을 걷는 '권력'에 대한 '수호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함께 '정의'를 좀먹을 뿐이다.

그래서 신문답지 않은 신문은 폐간이 바람직하다. 

악의적으로 기획된 연재기사로 의도적으로 진실을 은폐한 조선일보는 현재 수준을 볼때 폐간 처분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독자들도 이런 신문을 보는 것은 '자신의 세계에 병을 가져온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이미 여러 글에서 '조선일보는 신문으로서 기본을 갖추지 못했다. 그러므로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에는 적절치 못하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이제는 '공안 정국' 시절에 '공작 정치'에서도 벌어지기 힘든 일이, 허튼 신문에 의해 대낮에 당당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미 오래 전에 '맛이 갔다는 것이다.'

'여론 지면' 소비자들은 해당 신문에 대한 적절한 선택이 있어야 할 것이다.


[관련글] 조선일보 사설 반지성, 논리적 오류 드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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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2월 10일) 경향신문 기사를 보면, "등록금 카드 납부 외면...서민들 '사채 덫'에 빠뜨려' 제목 하의 기사가 네이버 뉴스캐스트를 포함한 포털 인터넷 지면의 주요 뉴스로 올라왔다.
MBC에서는 저녁 '9시 뉴스'에서 이와 동일한 논조로 기사를 내보냈다.

물론, 이런 기사와 주장도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적절하지 못한 논리 구성과 기분에 따른 기사 송출 행위는, 기사를 읽는 다수의 독자로 하여금 현상에 대한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더 본질적으로는 "신문 자체의 격조"를 떨어뜨린다.

따라서, 위의 기사가 어떤 "논지 전개"와 "결론 구성"의 문제점을 지니고, "사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지, 여기에서 간략히 지적하고자 한다.

경향신문 기사, "등록금 카드 납부 외면...서면들 '사채 덫'에 빠뜨려" 이 글의 논지 전개와 주장을 간략히 보면 다음과 같다.


[경향신문 해당 기사 주장] (관련기사 보기)
각 대학에서 대부분 "등록금 납부"는 "신용카드"로 받아주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서민들은 큰 자금인 "등록금 납부"에 애로사항을 겪고 있으며, 일부 "서민"은 사채까지 써야 하는 "덫"에 빠져들기도 한다.
다른 "카드 결제" 대상과 마찬가지로, 대학등록금도 신용카드 결제의 대상이 되야 한다.


이제, 이 주장이 과연 적절한지 살펴보자.
일단, 여기서 필자가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은 "대학등록금도 굳이 신용카드 결제의 대상에서 제외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와 본질, 결과는 위 기사의 기자가 주장하는 바와는 전혀 다르다.

'신용카드가 이미 있고, 한도가 되는 사람은 대학등록금도 카드로 결제할 수 있다.'
어차피 신용카드가 있는 사람이면, 신용카드의 여유 한도가 허락한다면, 대학등록금도 자기의 선택에 따라 '신용카드'로 하든지, 말든지 별 상관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용카드로 대학등록금을 결제할 수 있게 된다고 해서 대학등록금의 문제가 개선된다거나, 등록금 납부자의 부담이 전혀 줄어드는게 아니다. 오히려 늘어난다." 

위 경향신문 기사가 주장하는 것처럼, '신용카드' 결제를 허락하면, 서민의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자.


1. 신용카드 결제의 3가지 기능 - 할부결제, 일시결제, 현금서비스, 대출 
먼저, 신용카드의 주요 기능을 살펴보면,
1) 상품(물품, 서비스) 구매에 따라 '할부결제', '일시결제' 기능을 제공한다.
2) 일부 유망 고객군에게 '현금서비스',
3) 신용도 높은 고객군에게 '대출' 서비스를 추가로 제공한다.


일시불, 할부가 '풀품구매' 선 대행결제 서비스라면, '현금서비스', '대출'은 카드회사가 카드소지자에게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자기 금융 사업이다.(다시 말하면, '돈놀이' 이다.)

만일, 신용카드로 '대학등록금 결제' 서비스가 시행된다면, 1)과 같이 물품구매 결제 기능이 보장된다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2)와 3)과 같은 식으로도 될 수 있는데, 이는 신용카드로 직접 결제하는 것이 아니라, 신용카드로 확보한 "현금"을 "등록금"으로 쏟아 넣는 식이기 때문이다.


2. 신용카드는 높은 취급 수수료 수취
신용카드 회사는 상품(물품 및 서비스) 제공자와 구입자간의 거래를 중간에서 결제 중개하면서, 높은 수수료를 가져간다. 
국내 신용카드 회사들의 1년간 당기순이익이 왜 수 조원대에 이르는지 그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예컨대, A라는 상품제공자가 B라는 구매자에게 '상품'을 팔았는데, B가 신용카드로 결제했다면,
이는 신용카드사의 선결제, 자금제공으로 빠르게 판매대금을 회수할 수 있지만, 할인 요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런 할인율은 몇 프로(%)에서 십 프로 근처까지 육박할 수도 있다.

한편, B입장에서는 '신용카드' 사용으로 편의를 보는 것 같지만, 위 3자간의 거래관계를 청산하려면 종국적으로는, 자기가 신용카드 회사에게 물품 구입 대금을 '결제'해야 하므로, 결국 '부채'(빚)으로 쌓여지는 것이다.
(카드= 빚 이라는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는 거다.)

결국, 신용카드사는 '신용카드'의 명목으로 상품 매매 결제를 중간에서 중계하면서, 엄청난 수수료 이익을 떼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 등록금"을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것이 과연 "대학"에게 도움이 될까 생각해 보자.
대학의 주요 운영자금은 결국 "대학 등록금"에서 나온다. 말 그대로 "학비"다.
학비를 "신용카드"로 결제하기 시작하면, 불필요한 "수수료"가 카드회사로 빠져나가면서, 결국 대학의 재정상태가 그만큼 축소될 수 밖에 없다. 

대학을 넓게 보면 "교육 상품 판매자"로 볼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는 "상인"과는 다르기 때문에, "수수료"로 빠져나가는 대학 재정의 축소는 결국 학교 서비스의 질적 하락으로 나타난다. 불필요한 "비용"이 나간다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대학교의 "등록금 납부"에 따른 재정이 100억이라고 치면, 이 중에 2~10억이 "신용카드 수수료"로 나가도, 엄청난 타격이라는 것이다. 차라리 그럴 바에야, 그 돈을 학교복지, 학생들 장학금으로 주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다못해 3억이라고 쳐도, 100명 남짓한 학생들이 한 학기 등록금을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런 돈을 왜 신용카드사한테 "수수료"로 불필요하게 떼줘야 하는가 이 말이다.
 

3. 신용카드 할부결제, 현금서비스, 대출은 높은 수수료와 이자비용 부담 (연리 10%~20% 이상 수두룩)
위의 경향신문 기사에서, 기자는 대학등록금도 신용카드로 할부결제가 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대출로 대학등록금을 충당하라고 했다면 비상식적이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수 백만원의 대학등록금을 마련할 여유가 없는데, 일시적으로 신용카드 금융서비스로 '현금'을 융통한다더라도, 그것을 빨리 값아나갈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신용카드의 '현금서비스', '대출'은 아주 급한 자금, '급전'으로 월간 2%를 육박하는 높은 "이자"가 수취되는데, 연간으로 치면 20%를 넘어선다.(물론 신용도가 좋을 경우 더 낮아지지만, 대체로 10~20%에서 벗어나지 않을 걸로 본다.)

그렇다면, 대학등록금을 '할부결제'하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 오케이(OK)일까?

"할부결제"라는 것도 자금의 회수 시기를 기간으로 연장해서 나눠주는 신용카드회사의 "금융서비스"의 하나이기 때문에, 할부 결제에 따른 "이자"가 당연히 발생한다.
'할부결제"의 이자율은 위의 "금융서비스" 이자율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즉, "할부결제"라는 "편의"는 제공되지만, 할부결제에 따른 높은 "이자 수수료"가 발생하고, 이는 "대학등록금 납부자" 본인들에게도 매우 큰 부담이 되는 것이다.

예컨대, 대학등록금이 300만원이라고 한다면, 이를 1년간 "할부 결제"로 납부하면, 1년간 납입해야할 금액은 원금+이자까지 합쳐서, 삼백수십만원에 이를 수 있다.


4. 신용카드 한도 몇 백만원 되는 사람 많지 않아 - 신용카드 한도가 몇 백만원이면 이미 "중상류층"에 해당
다음으로 본질적인 "신용카드" 사용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대학등록금을 "신용카드"로 결제하려면, 우선 "신용카드" 한도가 '대학등록금'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300~400만원대라고 친다면, 신용카드 한도는 400만원대 이상, 500만원에 육박해야 한다는 소리다.

과연, 대한민국 서민 중에 누가 그만한 '신용카드' 한도를 가지고 있을까?


왠만한, 대한민국 서민 중에 '신용카드'를 소지하고 있는 것도 명예스럽겠지만, 그만한 '신용카드 한도'를 가지고 있으면, 아마 '최상류층 서민'일 것이다.

즉, 신용카드를 보유하고, 한도가 그 정도이면, 이미 경제적으로는 중상류층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서민층에 덫이 되는 대학등록금 신용카드 납부 거부'...이와 같은 문구의 경향신문 해당 기사는 설득력 없이, 논점만 일탈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채까지 내몰리는 서민들이 몇 백만원 여유 한도의 신용카드를 과연 보유하고는 있겠는가?" 너무 상식적인거 아닌가.

이 기사는 '신용카드로 대학등록금만 결제할 수 있으면' 마치 '대학등록금'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얘기하고 있는데, 어디 사실이 그러냐...이 말이다.

오히려, '결제 수단'이 아닌 '대학등록금' 자체의 관점에서 기획 기사를 내보내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5. '부모'와 같은 타인의 신용카드 명의로 대학등록금 결제하는게 과연 떳떳한 걸까?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대학생 중에 과연 누가 '신용카드'로 '대학 등록금'을 결제할 수 있느냐 이 말이다...

위의 경향신문 기사는 "대학등록금을 신용카드를 보유한 부모가 결제해야 한다"는 것을 마치 당연한 "전제"로 깔고 시작하고 있다. 하기에, 이런 논점에 대해서는 아예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대학등록금을 부모가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대학등록금'을 '부모'가 챙겨주는 것은, 우리 사회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인 것이지, 매우 당연한게 아니다. 
그런 마당에, 이제는 '부모 신용카드로 대학등록금을 결제하게 해달라.'고 뻔하게 주장하는 위의 기자의 주장이 과연 적절한가...이 말이다. 

부모 신용카드로까지 대학등록금을 결제하라고 하는 것은 좀 아니지 않는가 이 말이다.
오히려 '학생 자기 명의'로 충당할 수 있는 '사회적인 금융서비스'의 마련이 더 절실하지 않은가... 그것이다.

그렇게, '대학등록금'이 걱정스러우면, 차라리 '대학등록금'을 깍거나 동결시키라고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서 설득을 하거나,
혹은 '금융 서비스'가 걱정이라면, '대학등록금 대출을 저금리로 대폭으로 확대시켜라'고 주장하는게 차라리 더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거다. 

아니...'대학등록금을 (서민이 이용할 수도 없는, 이용해도 엄청난 추가부담을 남기는) 신용카드 결제가 되도록 허락한다고 해서, 도대체 대학등록금 문제의 뭐가 개선되느냐" 이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현실" "현상"에 대한 충분한 검토없이, 단순히 "격"하게 쓴 위와 같은 신문기사는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물론이고 해당 신문의 격조를 크게 떨어뜨릴 수 밖에 없다.

신문기사는 "지면"으로 문자로 작성되는 만큼, "기획 기사"로 충분히 여유있게, 깊게 검토하여 설득력 있는 분석을 바탕으로 결론이 제시되어야 한다.

데스크에서도 기사의 '결론'이 아닌, 결론에 이르게 되는 기사의 '논리적 전개의 과정'은 문제가 없는지 잘 살펴봐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펜(Pen)으로 움직이는 "신문"에서 그 생명력과 영향력은 결국 "논리"(Logic)에 있기 때문이다.
해당 신문사나 기자 모두 앞으로 더욱 분발하기를 바란다. 이런 지적은 '9시 뉴스'에서 나타난 MBC에게도 물론 유효하다.

p.s.
이 문제에 대한 저의 견해를 밝혀 보겠습니다.
현재 대학 등록금의 논점은 1) 그 금액이 과다하고, 2) 금융/재정적인 사회적 지원이 약한 것에도 있지만,
기술적으로는 각 대학교에서 등록금을 "일시불"로 받는데에도 원인이 있습니다.

즉, "신용카드로 할부 끊게 해달라"고 찾기 이전에, "대학들에게, 등록금을 할부로 받을 생각이 없냐?"고 의사타진해 보는 것이 우선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과도한 일시불 등록금 부담은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없어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 대학들이 등록금을 "일시불"로만 수취하기 때문에 가중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학기 시작하기 전에 등록금의 절반을 내고, 학기가 마감하면 등록금의 나머지를 내는 방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똑같기는 하지만, 기간이 분할되면서, 학생들이 등록금 마련의 여유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한편, 대학은 '등록금 분할 회계 처리'로 회계상의 불편함은 있겠지만, 학생들의 애로사항을 반영할 때, 이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1년 대학예산도 12개월로 나뉘어 집행되는 것이므로, 굳이 1년 예산을 "등록금" 한 철에 몰아서 "목돈"으로 수취해야할 절대성은 없습니다.

왜, 등록금은 꼭 "일시불"로 내야 할까요?"
등록금 분할 납부제"를 도입하면, 일시불에 따른 재정적 부담이 다소 완화될 수 있지요?
이거는 "신용 카드를 사용할 수 없어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죠.

즉, 본질적으로 본다면, "등록금 분할 납부제" 도입으로 글의 주제를 잡아가는 것이, 기사가 더 적절하다는 것입니다.
도입해 볼 만 합니다.

[관련글]
대학등록금, 분할 납부제 도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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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일 김선아 달걀세례 기사가 나와서 봤는데, 너무 심하고 가학적이라는 느낌을 주고 있다.
김선아씨는 14일 방영되는 SBS '시티홀' 찰영을 위해 200여개의 달걀을 맞았다고 하는데, 매우 심한 불쾌감을 주고 있다.

그러한 극적 표현을 위해서는 밀가루를 사용할 수도 있고, 달걀 1, 2개만 던져도 극적인 의미는 충분히 전달된다.


실제생활에서도 달걀을 던지는 것은 굉장한 모독행위이고 비하행위로 받아들여져 1~2개만 던지고 맞아도 문제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TV극이라는 이유만으로 무려 200여개의 달걀을 여배우에게 난사(亂射)한 것은, 극의 촬영을 넘어서는 인격모독의 징후가 있고,
이런 극한적인 장면을 찍고 봐서 도대체 얼마나 TV 드라마의 의미전달이 가시회될지는 매우 의문이다. 그리고 영화도 아니고 TV드라마에서, 이런 극한적 폭력상황의 실제 연출은 문제가 된다.
 
달걀 200개 맞은 장면을 연출한 것도 시각적으로 좋아보이지 않는데,
달걀을 1~2개도 아니고 200개씩 던져서 여배우를 맞힌 것은 너무 가학적이다.

달걀을 던지는 것도 분명히 명백한 물리적인 폭력행위인데, 연출을 넘어설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사건이 현실로 발생했다면, 경찰들이 당장 달려와서 달걀던진 사람들을 전원 현장범 연행해야 맞다. 드라마는 이런 상황까지 담고 있는가?

기사를 보면, 김선아씨 스스로도 이런 극한적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촬영하면서 울음을 터트렸다고 한다.
김선아씨가 극적인 몰입을 위해서 사전(事前) 동의를 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SBS의 의도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이를 기사화하고 있는 언론지나 기자들의 태도도 문제가 있다.
일부 신문은 심지어 김선아 '계란 세례 연기'에 극찬이라는 제목을 뽑았다.

너무 철저하게 가학적이어서 극찬한다는 것인가, 폭력적이어서 극찬한다는 것인가?
언론은 언론지다워야지, 연예 홍보용지가 아니다. 문제상황은 지적해주어야 한다. 방송은 더욱 마찬가지다.

단지 사전 기사만을 봤을 때도 불쾌한데, 실제로 방송됐을 때 이 장면은 분명하게 문제가 된다고 보인다.
제작진은 김선아씨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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