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이효리가 지인(知人)들이게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는 술을 마시라고 권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요.
이것은 이효리가 엄청 잘못 알려주고 있는 것이지요.
기분 나쁠 때는 술을 마시면 안됩니다.
서로 오해가 있고 안좋은 일이 있으면 술 마시면서 풀라고 하는데요.
아니 생각을 해 보세요.
술 마셔서 오해가 풀리고, 안좋은 일이 좋아집니까?
전혀 그렇지가 않죠.
술은 사람을 들뜨게 하고 흥분시키기 때문에, '여흥', '즐거움'을 위해 마셔야 합니다.
그래서 저도 기분 나쁠 때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술은 좋은 일에 따라 마셔야 되는 법이지요.
예를 들어,
자기 기분 나쁘다고 술 퍼마시고 '주사' 부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얼마나 남한테 민폐를 끼치겠느냐 이 말입니다.
술을 안마셔도 기분이 나쁜 상태인데, 거기다가 술까지 퍼마시면 기분이 좋아질까요? 택도 없는 소리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우울할 때, 울적할 때, '술 마시라'고 권장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건 엄청 잘못된 일입니다.
우울하다고, 울적하다고 술을 마시면 안됩니다.
그러면, '우울증'이 심해지고, '알콜 중독'에 걸릴 수 있습니다.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모두 해로운 것이죠.
최근 연예인들의 사고가 계속 터지고 있는데, 그 원인을 찾아보면 '술을 마신 상태'에서 충독적으로 사고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기분 나쁘고 우울하다고 절대 혼자 술마셔서는 안되죠. 매우 위험합니다.
혹여 그런 경우에 술 마시게 되더라도 누군가 '코치'해주고 끝까지 챙겨줄 수 있을 정도로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가까운 사람과 함께 해야 합니다. 상황에 맞는 좋은 '술친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왠수'하고 술 마시면 같이 마셔도 트러블만 커지지 해결될 것도 없구요.
생각을 해 봅시다.
기분 좋을 때 술을 마셨으면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음주'는 말 그대로 '가무'랑 따라야 합니다. 기분 좋은 일에 함께 따라야 한다는 것이죠.
기분 나쁜 일이나, '우울한 증세'는 '술'이 절대 풀어줄 수 없습니다.
'주사', '술주정'만 심해질 뿐입니다.
그러면 기분 나쁘고, 울적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얼마전에도 비슷한 글을 쓴적이 있는데, '중화요법'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분 나쁜 일은 기분 좋은 일로, 울적한 것들은 유쾌한 일들로 '중화'시켜야 한다는 것이죠.
기분이 나쁘면 '운동'을 하던가, '노래방'을 가던가, 맛있는 것을 찾거나, '영화'를 보던가, '음악'을 듣는게 낫다는 것이지요.
스트레스나 우울증은 신체적으로 위축된 '육체적' 현상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우선 기분전환 요인을 찾아야 합니다.
기분을 호전시켜 신체리듬을 바꾼 그런 연후에야 '술'을 곁들여도 심리적으로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절대 기분 나쁜 일에 '술'을 곁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분 나쁠 때 술 권하는 친구들은 뭔가 한참 모자른 분들입니다.
절대 나쁜 일에 '술'을 들러리 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도 기분 나쁠 때는 절대 '술' 안 마십니다.
그냥 차라리 맛있는 과일이나 드시면 좋습니다. 떡볶이도 좋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경험적으로 보면 한숨 푹 자고 일어나는게 가장 좋구요. 걍 스케줄 잊고 자빠졌다 일어나면 기분전환됩니다.
그런데 이정현은 컴백 무대에서 왜 '옷 벗는 행위'를 남발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한마디 하는게 좋을거 같아 해야겠다.
일부 연예 언론지는 '이정현 몸매비법', '이정현 물구나무 서기' 운운하며 마치 '이정현의 몸매'가 이번 컴백의 주요 이슈인 것처럼 과잉 보도하고 있다.
이런 일부 언론지들과 블로그들의 태도는 '그녀의 몸매'에 과도한 악세트를 주어 찬양하기에 바쁘다. 과연 적절할까?
그러면 그들이 지적하는 '기준'대로 진짜로 이정현의 몸매가 이번 컴백 무대의 악센트(accent)로 봐줄만 한지 확인해 보자.
('수상한 남자' 안무에서 악센트로 '몸'을 강조하는 행위가 과연 설득력있게 다가오는지 실제 감상한 결과를 살펴보는 것이다.)
(* P.S. 이후 '이정현 수상한 남자' 코디 안무 드레스는 어깨를 커버하는 의상으로 바꼈는데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의 내용에 상관없이 앞으로도 멋진 모습을 기대합니다.)
2010년 5월 14일 뮤직뱅크에 출연했던 이정현의 '수상한 남자' 컴백 무대이다.
정말로 팔뚝이 너무 가냘프다. 옷으로 좀 가려주고 싶은 심정이다. 최소한 '권장할만한 건강미'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 따라서, 언론지들과 연예 블로그들이 컴백 이슈로 '그녀의 몸매'에 대해서 과도하게 오버슈팅하여 보도하고 '찬양'하는 태도도 뭔가 부적절해 보이지만,
- '수상한 남자'의 안무 자체도 이런 '저체중'적 핸디캡을 커버링하는 방향으로 일부 수정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다음날 2010년 5월 15일 쇼음악중심에 출연했던 이정현의 '수상한 남자' 컴백 무대이다.
이정현은 컴백 초기 무대에서 '버버리' 같은 외투를 하나 걸치고 외투를 벗을 것처럼, 걸쳤다 입었다 하는 안무를 불필요하게 반복했다.
이정현은 무슨 '바바리 우먼'이라도 선언하려는 것인가?
급기야 이정현은 외투를 바닥에 벗어 던졌다.
그 때 필자는 바닥에 던진 그 외투 걷어 차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물론 이정현이 자기가 직접 걷어 찬다.)
이 부분은 '수상한 남자' 안무의 하이라이트 부분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위와 같은 '안무 동작'들이 과연 적절한 것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외투를 벗고 나타나는 이정현의 모습, 미안하지만 그래서 달갑지만은 않다.
물론 이정현의 '수상한 남자', 그녀의 일관된 음악 스타일대로 신나는 댄스곡으로 들을 만 하다.
하지만 안무에서 불필요한 동작을 넣는 것은 생각을 해봐야 한다.
위에서 지적한 바, '저체중'으로 보이는 이정현의 몸매는 아무리 여성의 미적 기준을 '체중'이나 '저체중'에 놓는다고 하더라도, 전혀 권장할 만한 사항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언론지들과 연예 블로그들이 이런 모습을 '외형적 미적 기준'으로 삼고 찬양하는 태도는 결코 적절하지 않다.
한편으로, '수상한 남자'의 안무는 불필요하게 외투를 벗었다 입었다 하는 듯한 사전 동작을 집어넣고 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신체적'으로 강조점 악센트(Accent)를 주는 위와 같은 안무 동작은 역효과를 내고 있다.
초중반에 '외투 옷을 벗었다 입었다' 하듯이 불필요해 보이는 퍼포먼스 동작을 주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외투를 벗고 나타나게 될 몸매'에 '강조점'이 크게 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는 '몸매'에 시청자들의 '주의', '시선'이 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초중반에 들어간 '외투를 벗었다 입었다 할 듯 하는' 안무 행위는 수정이 필요해 보인다. 감상자들, 즉 시청자들의 불필요한 '시선의 집중'을 차단시켜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음악만 잘 들으면 됐지, 안무에서 '몸매'를 눈요깃거리로 '시선집중' 당해야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수상한 남자' 안무에서 마치 '버버리 맨'처럼 옷을 입었다 벗을듯이 수차례 반복하는 안무 동작은 수정하는 것이 적절하다.
- 한편으로, '전체시청가' 지상파 음악 프로 무대에서 안무로 '버버리 맨'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왜냐하면 '버버리 맨'은 흉내내어 패러디할 만큼 '적법'한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안무가 미리 짜여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남자가 흉내내도 불쾌한 '버버리 맨'을 여성이 그것도 음악프로 안무에서 당당하게 펼쳐보이고 있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필자와 같은 사람은 그녀가 '전신 연기'를 펼친 데뷔 영화 '꽃잎'(1996)을 개봉 당시에 이미 봤다. 이 작품은 그녀의 '데뷔작'이기도 했다. 이 작품에서 그녀의 '전신 연기'의 악센트는 '섹슈얼러티'에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연기는 작품의 표현력을 높이는데 긍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런데 이번 '수상한 남자' 안무에서는 과연 그러한가?
단순히 '몸매', '보여주기'가 표현의 직접적 목표라고 하더라도 이번 무대는 위와 같은 이유들로 인해 반드시 예술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만을 가져오는 것 같지 않다. 감상자의 시선으로 볼 때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라므로 위에서 지적한 사항들이 '안무'에 적절하게 반영되기를 기대한다.
이하 관련 "부연설명"들은 더보기(P.S.)로 배치했습니다. (참고 안해도 크게 상관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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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 글의 주요 주장과 글의 배경에 대해 다시 적어보겠습니다.
1. 가수 이정현이 "옷을 벗었다 입었다 하는 듯이" 마치 '바바리맨'을 연상시키듯이 특정 퍼포먼스를 안무에 넣은 것은 불쾌하게 느껴진다. 따라서 약간 수정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2. 가수 이정현은 최근 컴백과 동시에 예능 프로에 나와서 "이정현 몸매비법", "이정현 물구나무" 비법 등이 연예 기사와 일부 블로그에서 '기사화'되고 있다.
그래서 이정현이 마치 '섹시한' 몸매의 '전형'인 것처럼 일부 언론이 분위기 조장하고 있다.
3. 일부 블로그는 '이효리보다 이정현이다'라는 논조로 '기사'를 작성했고, 다음(daum)은 대문에다가 이걸 하루종일 내걸었다. 필자는 불쾌하다. 왜냐하면 이 블로그 기사는 '이정현' 자체에만 논점을 두지 않고, 이효리랑 비교했기 때문이다. 이정현을 논하는 글에 이효리가 비교대상으로 나와야 할 설득력이 전혀 없다. 이효리를 다루는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daum)의 '저널리즘' 편집 방향은 여전히 상당한 문제가 있다. (이 점은 '포털 저널리즘' 주제로 차후에 새 글로 논의할 것임)
4. 그렇다면 일부 연예 기사와 블로그의 주장대로 '이정현의 퍼포먼스'는 '절대적'이고 이정현의 몸매는 '건강미'와 '섹시미'의 표본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
이 걸 생각하는 이유는, 1) 이정현은 스스로 자신의 퍼포먼스에서 자신의 '몸'에다가 자발적인 '강조점'을 두고 있고, 2) 언론들이 이정현을 몸으로 보도록 사전에 '기사화'하여 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정현의 현재 몸상태는 전혀 '미적'으로 탐닉해야 할 '건강미'의 대상이 되지 않아 보인다. 화면에서 확인하기에 이정현은 현재 저체중 상태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정현 스스로나 각종 언론지, 연예 블로그가 이정현의 그런 면을 부각시키는 것은 절대 적절하지 않다.
5. 결국 이 글은 이정현의 컴백과 관련하여 다시 나타나고 있는, 모든 매체에서의 '저널리즘'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 그게 이 글의 큰 요지라고 할 수 있다.
6. 한편, 최근의 가요계에서는 윗옷을 불필요하게 벗거나, 노래에 '신음소리'를 넣는게 유행하고 있다.
- (반드시 이정현에만 해당하는 논점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이런 점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점은 '이정현'에 중심되는 사항은 아니기 때문에, 차후에 기회가 된다면 전반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7. 결국 이 글에서 최종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요지는, "이정현의 안무는 약간의 수정이 필요하다." + "이정현이 몸에 악센트를 주어 '섹시미'를 강조할 생각이라면 수긍하기 어렵다." (추가 안무 수정이 요구될 수 있다.)
- 한편, 이정현은 이 곡에 대한 엠카운트다운 최초 컴백 무대 안무에 대해서 비슷한 지적을 받고 이미 일부 안무수정한 바 있다. (따라서 더 관심많은 시청자라면 그녀의 엠카운트다운 최초 컴백 무대도 참조할 필요가 있다.)
* 그리고 이 글의 주장이나 지적에 대해 '읽는 이'들이 모두 동의하거나 지지를 보내야 할 필요가 없다. 이 글은 이 글을 쓴 필자의 '관점'일 뿐이다.
* 더욱이 이 글을 보고 '작품의 창작자이자 퍼포먼스 당사자'인 이정현이 안무를 추가 수정해야 할 절대적인 '의무'도 없다. 안무를 수정하든 안하든 이정현의 스스로의 '선택'이고 자기 '예술적 미적 탐구' 행위의 연장일 뿐이다. 하지만 '수정'이 없다면, 필자는 재미있게는 보겠지만, 위의 본문에서 지적한 '관점'이 여전히 그대로 유지될거다.
P.S.2
이 글의 논리전개 과정을 잘못 이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글을 잘 읽고 글의 전개 논리, 요지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타인을 "이해"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의 논지 전개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적어드리겠습니다.
1. 이정현이 단순히 외투를 입지 않은 상태에서, 어깨 부위 등이 노출되는 무대 의상을 입고, 무대 안무를 진행한다면, 전혀 이정현의 몸에 특별히 '시선'이 가지 않는다.
2. 그런데 이정현은 무대 안무의 초중반에 '바바리맨' 안무를 의도적으로 삽입했다.
- 이 동작은 외투를 벗을듯 입을듯 여러번 반복하면서, 잠시후에 자신의 '속살'을 드러낼 것을 암시한다.
- 그리고 이정현은 외투를 살짝 벗을듯이, 자신의 등의 속살을 살짝 드러낸다.
- 급기야 이후, 이정현은 외투를 힘차게 벗어재끼면서 외투를 바닥에 벗어재끼고, 자신의 '속살'을 모두 드러낸다.
=> 즉, 자신의 "속살"에 대해 제발 봐달라, 내 "속살"이 이번 안무의 '강조점', '엑센트', '포인트'다...이러고 있는 것은 이정현 바로 본인이라는 겁니다.
-- 이정현이 '속살'을 봐달라고 하니까, 그래서 봤다.
-- 그런데, 40kg에도 미달한다고 하는 이정현의 몸매를 보면, 가냘픈게 아니라 뭔가 모자라보이는 '팔뚝'만 보더라도 '저체중' 상태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래서 '건강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 그래서 이정현의 '안무'를 통한 '호소'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 그녀가 강조하려는 '미적' 감각을 오히려 '감쇄' 시킨다.
-- 오히려 무대안무에서 '옷을 벗지 않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정현은 "윗옷을 벗었다 입었다 할 듯 하면서" 마치 '바바리맨' 흉내를 내서 불필요하게 시선을 집중시키는 특정 안무를 제외할 필요가 있다.
< === 이런 논리 구조입니다.
댓글을 단 어떤 분의 말씀대로 풀어드리면,
"외모지상주의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정현 바로 본인이다."는 겁니다. 그것이 불쾌하다는 거구요.
이 글의 필자는 '외모지상주의'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정현의 특정 안무 행위를 비꼬고 있습니다.
글을 잘 읽고 요지를 잘 파악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댓글 다신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Q&A] 이 글의 필자가 주장하는 바로 옳은 것은?
이 글의 필자는,
- 이정현의 모든 '안무' 동작이 문제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x)
- 이정현이 '바바리맨' 흉내를 내는 특정 안무 동작은 문제가 된다. (o)
- '바바리맨' 안무 동작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녀의 몸매가 '섹시'하지 않기 때문이다.(x)
- '바바리맨' 안무 동작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몸매'에 불필요하게 시선을 분산시켜, 그녀의 '몸'에 시청자의 눈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o)
- 이정현의 '몸매'에 눈이 가는 것은 시청자 스스로의 선택이다.(x)
- 이정현의 '몸매'에 주의를 집중시키고 있는 것은 이정현 바로 본인이다.(o)
- '몸매'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주요장치, 사전장치로는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는' '바바리맨 흉내' 특정 안무가 사용되고 있다.(o)
- 이정현의 '몸매'에 대해 시청자들의 시선이 뺏긴다면, '미적(美的) 감흥'이 오히려 반감된다.(o)
- 이정현은 현재 TV에서 보기에 '저체중' 상태로 보이기 때문에, '건강미'의 상징으로 볼 수는 없다.(o)
- 이런 불필요한 '몸매에 대한 시선의 집중'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이정현은 '바바리맨 흉내 동작' 해당 안무만을 수정해 주면 된다.(o)
덧붙이면, 위에 첨부 스샷에 있듯이 손으로 외투를 열었다 졌쳤다 하는 2~3회의 행동만 하지 않아도, 이런 연쇄효과는 봉쇄된다.
- 이 글의 필자는 외모지상주의에 빠져있다. (x)
- 이 글의 필자는 '이정현 스스로', 그리고 '이정현의 컴백을 보도하는 각종 연예 언론지, 블로그'들의 '외모지상주의' 혹은 '외모 중심적' 관점의 보도 태도에 대해 비판하고 비꼬고 있다. (o)
- '몰골이 말이 아니다', '처참하다' 글 중에 그런 표현은 이런 '보도' 태도를 역설적으로 비판하며, 비꼬고 있는 말이다. (o)
- 이 글의 필자가 '섹시함'의 기준으로 삼는 요소로는 '건강미', '미적(美的) 감각'을 들 수 있다. (o)
- 그런데 만일 이정현이 '정상체중'이었다면, 아예 이 글의 필자가 주장하는 논리는 성립, 주장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경우 '섹시함'의 요소로써 '건강미'와 '미적감각'이 이미 충족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는 이 글은 논리적 한계를 보이고 있다.(o)
- 하지만 만일 그러했다면, 이 글의 필자는 애초에 이 글을 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o)
- 더욱이, 만일 이정현이 '정상체중'이었더라도, 이정현이 안무에서 불법적 요소인 '바바리맨' 흉내를 전체시청가 음악프로에서 마치 당당하듯 흉내내고 있는 것은 '도덕적'으로 여전히 문제가 될 수 있다.(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