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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나라가 오랜 만에 국내 활동에 나서며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하늘과 바다'가 개봉 2주도 안돼 '전면회수' 논란에 휩싸였다.
'하늘과 바다'의 제작자이자 주연배우 장나라의 부친인 주호영씨는 11월 9일 영화관의 '퐁당퐁당'(뛰엄뛰엄) 상영을 참을 수 없기에 급기야 '전면 회수' 결정에 이르게 됐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왜 개봉이 채 2주도 안된 영화를 제작자가 '전면 회수'를 선언하고 나서야 할 만큼,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는 것일까?
이에는 그동안 계속된 대중적인 논란들과, 그를 둘러싼 당사자들의 많은 오해와 불쾌감들이 깔려있다고 보인다.
이를 차근히 생각해 보자.
1. 개봉도 안된 영화가 대종상 후보에?
영화 '하늘과 바다' 논란의 시발점은 개봉도 안된 영화가 11월 6일 개최된 제26회 대종상 영화제에 다수 후보작으로 오른 것이 알려지면서 시작되었다.
배우 장나라씨는 이 작품으로 해당 영화제의 여우주연상 후보에까지 올랐다고 한다.
반면에 많은 관객을 동원한 '해운대'나 '내사랑 내곁에'에 출연한 '하지원'씨는 후보에서 제외됨으로써 그 대중적 논란이 증폭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혹시나 영화 '하늘과 바다'가 대종상에 로비라도 한 것이 아닌가 의혹이 증폭되었다.
그러나 필자는 먼저 묻고 싶다. 대종상이 로비라도 할 만큼 그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제였던가?
2. 대종상 자체의 문제점
1) 대종상 이미 권위없어 추락한 영화제
많은 이들이 다분히 추측으로 '하늘과 바다'가 대종상에 로비라도 한 것이 아닌가 의문을 제기하지만, 하등의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대종상 자체가 이미 권위를 잃은 추락한 영화제이기 때문이다.
누가 뭐하러 대종상에 노미네이트 하려고 로비를 하는가? 대종상 탔다고 과연 누가 알아주는가?
대종상이 관변영화제로 출발하여 왜 지금 시점까지 오면서 그 권위를 잃고 '이름 뿐인 영화제'가 되었는지는 굳이 여기서 깊게 언급하지는 않겠다. 결론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따라서, 권위없는 영화제에 '하늘과 바다'가 노미네이트 되었든 아니되었든, 영화제작자나 영화를 대하는 관객이나 크게 신경쓸 것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영화제작자 입장에서는 굳이 노미네이트 되었다면 예의상 '싫어하는 기색'을 내비칠 필요는 없을 것이다.
2) 국내 영화제에서 상영도 안한 영화를, 후보작에 올린 것은 넌센스
다음으로, 대종상 영화제의 후보작 선정 과정을 생각해보자. 대종상 영화제가 후보작을 어떻게 선정하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바는 아니다.
그러나, 국내 영화제에서 상영도 안한 영화를 후보작에 다수 올린 것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마디로 '넌센스'(Non-Sense)라고 말하고 싶다.
대종상영화제 자체가 그만큼 '권위'가 없고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게 영화제작자의 잘못인가? 아니... 영화제작자가 잘못한 게 과연 무엇인가?
권위도 없는 영화제가 '감히' 상영도 안한 자기 영화를 후보작으로 들먹거린 것에, '불쾌감'과 '거부의사'를 표현하지 않아서 잘못한 것인가?
영화제작자는 하등의 잘못이 없다. 대종상 영화제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영화제가 영화제만의 '자기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대중적으로 호응받을 수 없다면, 이미 사장된 것이나 다름 아니다.
국내 영화제에서 누가 상영도 안한 영화를 대중적인 영화제에서 다수 수상하는 것에 호응해 줄 수 있겠는가?
대중적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3) 영화제는 영화제일 뿐 - 자체 기준으로 판단
그리고 본질적으로 생각해보자. 영화제는 영화제일 뿐이다. 영화제는 자신의 미학적, 예술적 기준에 따라 후보작들을 평가한다. 세계 유수의 영화제마다 그 평가기준과 관점들이 다 사뭇 다른 것이다.
영화제가 대중들이나 흥행의 관점과 완전히 동떨어져서는 안되겠지만, 영화제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예컨대, '베니스 영화제'나 '칸 영화제'에서 큰 수상을 했더라도, 언제나 대중적으로 큰 호응을 받을 수 있는 영화들만 수상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다.
대종상 영화제가 어떤 영화들을 후보작으로 선정하고, 수상을 결정했다면, 그 영화제만이 지니는 '기준'에 따라 그런 의사결정을 내린 것이다.
대중적으로 아쉬울 수는 있지만, 대종상 영화제에서 상영 전의 영화일지라도 충분히 의미를 부여하고 후보작으로 올렸으면 뭔가 의미가 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4) 개봉 전 영화를 경쟁작에 출품 시킨 것도 넌센스
그러나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대중들은 불쾌해한다. 해외 영화제도 아니고 국내 영화제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불쾌하다.
대중들이 불쾌해하는 근본 지점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가 어떤 대중상품들(예컨대, 음악,영화,드라마, 공연 등)을 접할 때 가장 먼저 요구하는 점은 바로 '설레임'이다.
그리고 그것을 대중적으로 만나게 될 지라도, 책의 첫 장을 여는 것처럼 '처음 보는 심정으로', 마치 '내가 처음인 것처럼', '첫경험'의 심정으로 접하기를 바란다.
또, 공급자나 수요자나 그런 대중적인 심리가 살아있기를 바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상영도 안된 개봉 전 영화를 주요 영화제의 경쟁작으로 출품시킨 것은 그 자체가 넌센스이다.
왜냐하면, 해외 영화제도 아니고 국내 영화제에서 대중들은 먼저 영화를 관람하고 그에 대한 충분한 평가를 내릴만한 자세가 되어 있다.
즉, 마치 남에 의해 주어진 것처럼 '사전(pre,事前)'적 평가에 의해 '먹여주는' 영화 관람보다는, 내가 먼저 보고 그런 대중적 반응에 따라 합리적인 '사후'의 평가가 내려지는 것이 더 적절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영화배급과 관객반응의 시공간적 격차가 매우 작은 국내 영화제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 점에서 대중들은 자신들에게 먼저 공개되지도 않은 영화를 국내 주요 영화제라고 자부하는 '대종상 영화제'가 마치 영화의 중심 수요자인 관객 대중을 함부로 대하듯 '주요 후보작'에 올린 것에 불쾌해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대중적 반응의 '불쾌함'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그 화살이 왜 영화제작자에게 돌아가야 하는가? 이건 '대종상 영화제'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영화제작자에게 하등의 문제가 없다.
만일 영화제작자에게 문제가 있다면, 개봉도 안한 영화를 '영화제'에 출품한 부주의함일 것이다.
그러나, '대종상 영화제'가 출품 여부에 상관없이 자신들이 독자적으로 후보작을 선정했다면, 영화제작자로써도 어쩔 수 없다.
물론, 우리 영화는 아직 개봉도 안했으니, 내년을 기약해달라고 의사를 전달할 수도 있었겠으나, 그런 기대를 한다는 것은 사실 어렵다고 보인다.
5) 꼭 상 받아야 하나?
그리고 생각해 보자. 꼭 '상' 받아야 하나? 우리는 너무 상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상은 그냥 '상'일 뿐이고, 문화예술에서 '상'이라는 것은 사실 특정한 '가치관'의 '편향성'에 다름 아니다.
예를 들어, 가요프로에서 A라는 가수의 OOO라는 노래가 1등을 했다고 해서, 그 노래가 다른 모든 당시의 노래들보다 우월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냥 일시적으로 '인기'가 많았을 뿐이다.
그런 것이다. 어떤 영화제에서 특정 영화에 대해 수상을 부여했을 수도 있지만, 어떤 영화와 예술이 나에게 인생의 메시지와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개인이 처한 상황과 태도의 문제이고, 그에 적합한 영화와 예술이 자신에게 다가왔을 때 던져줄 수 있는 인생과 예술의 의미이다.
즉, 아무리 어떤 영화가 많은 상을 타서, 내가 그것을 본다 한들, 거기서 나에게 던져주는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적어도 내가 그 영화에 높은 평점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어떤 영화가 특정 영화제에서 상을 탔는지, 말았는지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6) 로비 운운은 넌센스
노파심에 다시 한 번 언급해 보자.
아니... 요즘 세상에 영화제에 로비한다고 영화가 흥행을 하나? 더욱이 '대종상' 딱지 붙이는 것이 요즘 세상에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요즘 영화를 보는 관객들 수준이 얼마나 높은데, 그런 것에 연연하여 영화를 본단 말인가?
그런 것보다 영화를 본 사람들의 '입소문'이 더 무서울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즉, 영화제 로비설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단순 추측으로 그런 언사를 남발하는 것은 당사자들에게도 아주 무례한 짓이라고 말하고 싶다.
3. 장나라의 국내 활동의 문제점
그러나, 영화제작자인 주호영씨나 주연배우인 장나라씨 측에는 하등의 문제가 없을까?
필자는 다만 아쉬움의 측면에서 몇 가지 점을 간단히 지적하고 싶다.
먼저, 장나라씨의 국내 활동 측면이다.
장나라씨는 데뷔 초기에만 국내에서 반짝 활동했을 뿐, 이후 활동은 대부분 해외에서 이루어졌다.
즉, 그동안의 국내 대중들과 대중적인 접점이 부재했던 상태에서, 갑자기 영화를 들고 나왔고, 급기야 주요 영화제 '여우주연' 후보에까지 오르는 '이변'이 일어났다.
만일, 장나라씨가 국내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하면서 대중들과 만나왔다면, 비록 상영 전의 영화라고 하더라도, 대종상 영화제의 '여우주연 후보'로 올랐다면, '아 영화가 괜찮나보구나...'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국내활동도 없던 장나라씨가 갑자기 대종상 영화제 '여우주연 후보'로, 그것도 상영 전의 영화로 올랐다고 하니, 어리둥절하고, 심하게 말하면 '불쾌해'하는 것이다.
영화인이든 음악인이든 대중적으로 활동할 수 밖에 없는 마당에, 그동안 국내 대중들과 접점이 부재했던 상태에서 이렇게 갑자기 '화려하게' 등장한 것은 충분히 '오해'를 살만 했다.
이 점은 다른 연예, 문화계 종사자들도 마찬가지로 새겨 들어야 할 일로 생각된다.
국내 활동은 소홀했으나 해외에서 잘 나갔으니, 국내에서도 무조건, 당연히 잘 나가야 된다, 혹은 될 것이다 하는 생각은 지금 시대에 커다란 오산이라고 밝히고 싶다.
4. 영화제작자 - 주연 관계
그리고 영화제작자로서의 주호영씨의 문제이다.
'하늘과 바다'는 영화제작자가 주연배우 장나라씨의 부친인 주호영씨로 알려졌다. 특히, 대종상 영화제 후보작 논란이 있은 후에 사후적으로 알려졌고, 여우주연으로 출연한 장나라씨조차도 사후에 인지한 것으로 밝히고 있다.
사실 영화제작자가 누구이냐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주연 배우의 부친께서 배우의 재능과 가능성을 높이 사서 영화제작에 충분히 나설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대중적으로 호소해야 하고,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활동이니 만큼, 충분히 오해를 사지 않을 만큼의 홍보활동이 사전에 있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5. 영화제작자 - 배급사 관계
이제, 영화 '하늘과 바다' 자체의 얘기로 들어가보자. 필자도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았다.
그러나, 예고편을 봤을 때, '장나라의 배역 소화력'이 잘 드러난 따뜻한 스토리일 것으로 기대가 된다.
그래서, 주변 지인들과 연인들과 충분히 여유 시간에 같이 볼만 할 거 같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영화는 늦가을, 겨울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영화로, 유독 이 영화만이 '왕따' 되어야만 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대종상 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노미네이트' 되었다는 것은, 비록 개봉 전 영화였을지라도, 이 영화를 해당 영화제에서 높게 평가했다는 것이 되므로, 적어도 동시대에 출품된 다수 영화들보다 '떨어지지는' 않는 영화로 평가받았음을 의미한다.
여우주연 장나라씨의 연기도 꽤 괜찮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런 마당에 이런 영화가 왜 '평가절하' 되어야만 하는가?
영화제작자 주호영씨가 금일 밝힌 바에 따르면, '퐁당퐁당', '뛰엄뛰엄' 상영(교차상영)에 따라, 영화가 아예 개봉 초기에 대중과의 접점을 제대로 잡고 있지도 못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한마디로, 그가 밝힌 바대로 배급사의 횡포라고 볼 수 밖에 없고, 부적절한 것이다.
대중적인 평가는 영화가 제대로 상영되고 공개된 상태에서 내려져야 한다. 아예 상영 자체에 그 어디에도 근거가 없는 '패널티'를 과하는 것은 부당한 것이다.
6. 대중들이 많이 보고 1천만 관객을 동원하면 성공한 영화인가?
마지막으로, 과연 대중들이 많이 보고, 1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만이 성공한 영화인가? 하는 점이다.
다른 예술 장르도 마찬가지겠지만, 영화제작자들이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저마다 다 다르다.
누구는 '돈'을 많이 벌어보기 위해 만들기도 하고, '자기를 표현'하기 위해, 대중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기도 한다.
오직 엄청난 관객을 동원한 영화만이 성공한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영화를 보는 대중들, '나'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남들이 다 '해운대'를 본다고, 내가 '해운대'를 보는 것이 과연 '나'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가 있는가?
어떤 이들에게는 '해운대'보다 '하늘과 바다'가 인생의 큰 의미를 던져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은 알 수 없지만, 그게 영화제작자나 배우가 진정으로 원하는 메시지일 수 있다.
얼마 전 언론지에서 최근 국내 영화의 관객동원수를 표로 밝힌 것을 본 적이 있다.
매주, 월간 자료를 봤을 때, 영화의 쏠림현상이 매우 심각했다.
즉, 1위 영화는 1천만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했지만, 3위권 이하의 영화들은 몇 십만이 고작이었다.
과연 1위 영화는 그만큼 위대했고, 3위권 이하 영화들은 형편없었던 것일까?
아니라고 본다.
단지 '자본'과 '흥행'의 논리에 따라, 아예 대중과의 접점도 찾지 못한 채, 만나보지도 못한 채, 자신을 '표현'할 권리를 차단당한 문화와 예술의 단면들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개연성 없는 그 모든 '모독'을 뒤로 하고,
영화는 대중과 만난 이후에 영화 자체로 평가되어야 한다.
영화는 '관객'들을 만나려고 제작되는 것이지, 심사위원들에게 들이밀려고 제작되는 것이 아니다.
영화제작자와 배우들이 힘들게 만들어서 대중들에게 공개한 '하늘과 바다'는 충분히 대중적으로 만날 수 있어야 하고, 일반적 조건에서 상영되어야 한다. 그러한 연후에 '영화 자체'로 관객들에 의해 평가받으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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