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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일 6.10항쟁 22주년 기념일을 전후하여 또다시 자행된 경찰, 전경집단의 폭력사용과 집단적인 폭행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경찰과 전경집단의 이런 야만적인 행태는 이미 작년 촛불집회 정국에서부터 수도 없이 지적되었고, 이후에도 끊임없이 문제제기되고 있는 내용에 속합니다.

이들의 만행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이들이 경찰 수칙이나, 전경 복무규정을 제대로 숙지하고나 있는 것인지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경찰과 전경집단의 생명의 위험도 초래할 수 있는 물리적 폭력 사용은 계속 지적되었고 알려지고 있으나, 
개인적으로도 이런 경험을 다수 가지고 있습니다. 


변화없는 전경, 경찰의 폭력 행사

저의 경우, 작년에 촛불집회에 어린 학생들과 여성들, 혹은 집회의 경험이 전무한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참여하는 것을 목격하고, 집회자체가 전경들과의 극한 대립으로 불상사를 초래할 것이 걱정되어 많이 참여한 바 있습니다. 

집회 자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기 보다는 지켜보면서, 전경들이나 경찰들과의 불필요한 대립으로 상호간의 물리적인 폭력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도왔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전경들도 대부분 20대 초반의 어린 젊은 사람들이고, 이런 시국에 대한 경험은 물론, 이런 종류의 대형 집회, 시위의 경험이 전무하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 두려움을 느끼고 주눅이 들어 오히려 공격적으로 나올 수 있는 상황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30대를 넘어가는 세대들만 하더라도 집회시위기 사실 일상적이었기 때문에, 예전에는
시위를 하더라도 전경, 경찰들과 사전에 암묵적인 타협을 하고 '보여주기' 식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사실 많았었습니다.

즉, 서로 정치적인 의사표현을 위한 어떤 '쇼(show)'를 하지만,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기 위해, 서로 어느 선은 넘지않는 
암묵적인 타협을 가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정국의 집회시위의 원인, 방식 예전과 전혀 달라

그러나, 지금의 집회시위는 정권과 정국, 민주주의 전반이 원인으로 작용하면서, 
그 추동세력과 집단도 어떤 '단위'나 '조직', 적어도 '대학' 사회에도 소속되지 않은, 일상 '소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결사로
진지하고 냉정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들, '여학생'들, 젊은 '결혼여성'들이 참여자들의 다수를 차지하여 주축이 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즉, 이전의 소위 '운동권'의 조직화되고 보여주기 식의 집회시위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며, 
본질적인 분노와 정권에 대한 질책을 '시민사회', '시민', '대중' 전반이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시민혁명'의 환경입니다. 


그렇다면, 왜 '폭력'이 수반되지 않고 있느냐구요?

이미 상황은 시민혁명 수준이고, 정권은 이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지고, 대응을 내놓아야 합니다. 
시민들이 폭력을 쓰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의 참 뜻'에 대한 시민의 의식이 성숙했기 때문이고, 저와 같은 사람들이 '전경, 경찰'과 '시민'들간의 불필요한 대결과 폭력 사용을 방지하기 위해 조용히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물리적인 폭력'이 수반되지 않기 때문에, '화염병', '쇠파이프'도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이건 일시적인 '집회'나 '시끄러움'에 불과하다고 치부하는 것은 큰 착각입니다. 

물리적인 폭력이 수반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더 무서운 것입니다. 
시민들은 그 만큼 배웠고, 성숙했고, 자기의 책임과 권리, 권리의 행사와 의무를 타인에게 전가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의 권리를 장전하고, 보여주고 있는 것 뿐이며, 그것은 '내가 누리고 있는, 누려야 할 민주주의' 안에서 정당한 것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몸으로 말로 표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민주주의는 피로 화답하지 양보하지 않는다

이런 정국과 현실의 무서움을 깨닫지 못하고, 정권과 공권력이 무수한 직접적인 경고와 조기 경고신호(alert)를 무시하고, 
여전히 막 나간다면, 이러한 '고요'도 한계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절대 양보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요? 역사적으로 지나간 이야기로 그러했다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는 개념필연적으로 언제나 '피를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민주주의입니다. 그래서 무서운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왜 '민주주의'가 무섭다고 생각합니까?

민주주의가 교과서에나 나오는 하찮은 얘기로 치부한다면, 시민들은 '민주주의'는 분명히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런 현실을 부정하는 권력의 교만자들에게 응당의 댓가를 선사하게 될 것입니다. 
그게 민주주의고, 민주주의의 무서움이고, 위정자들이 항상 두려움을 느끼고, 경건하게 양심을 다하여 국정에 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권력의 자리에 있다는 것이 무서운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상화된 폭력 사례

제가 작년의 촛불집회에서 노파심으로 옆에서 많이 지켜봤으나, 실제로 느낀 전경, 경찰집단의 폭력은 상당히 심각합니다. 
공권력 남용과 법적인 불법에 따르는 '폭력'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보여 논외로 하고, 물리적폭력의 사례만 언급하겠습니다.


첫째 경험담을 말씀드리면,
전경들이 광화문사거리에서 집회자들을 해산하는데, 다 해산하여 뒤로 물러나는 마당에, 혼자 뒤쳐진 어린 여대생이 뛰어가다가
도로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이에 그 여학생을 좇던 전경이 그 여학생을 향해 방패를 날렸습니다. 방패로 찍은 것이 아니라, 방패를 아예 그 여학생한테 날려서, 그 여학생의 머리를 살짝 빗나가서 맞았습니다. 고의적으로 여학생의 머리를 향해 방패를 던져서 날렸습니다. 
간신히 비켜가서 망정이지 정면으로 맞았으면 최소한 뇌진탕에 걸리거나 했을 것입니다. 

혼자 쓰러진 여학생에게 방패를 던지는 것을 본 후에 어이없어, 그 여대생을 일으켜 세우고자 달려갔는데, 
전경이 자기가 던진 방패를 다시 집어들더니, 방패 모서리를 바닥에 갈기 시작하더군요. 

그리고 방패를 집어들더니 저의 눈을 향해 날을 세워서 가격했습니다.... 

이게 뭔가요?

저는 대학교 다닐 때도 안 맞고 다닌 사람입니다. 고의적으로 눈을 향해 가격을 했고, 
정황을 보면, 전경부대에서 '방패를 갈아서 얼굴이나 눈을 가격하라'고 언지를 받았거나 교육을 받은게 분명합니다. 

겨우 눈 밑을 스쳐 멍들고 말았고, 주변 분들이 달려와서 그 전경이 더 이상 접근하지 않게 도와주어서 뒤로 피신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여학생은 일어나 먼저 뒤로 뛰어서 피했습니다. 


두번째 경험담은, 
6월 중의 집회로 생각하는데, 토요일 오전에 광화문사거리에서 시위를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난, 
경찰들의 체포 만행입니다. 
소위 '체포전담조'는 그들이 미리 표적으로 삼은 연행자를 거리에서 연행했는데, 물론 연행은 했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에 '닭장차'에 억지로 감금하고, 연행자를 '때리고 패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 영상은 제가 지금도 가지고 있으며, 
주변의 많은 분들이 지켜봤고, 언론이나 국가인권위에 제소해야 한다는 의견도 들끓었습니다. 

해당 연행자는 닭장차 안에서 폭행을 당한 후 '말도 하지 못하고', '몸도 일으키지 못하고', 자신의 '신변'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에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게 뭔가요?


두번째의 사례는 경찰, 특히 '체포전담조'나 '특수기동대'의 불법적인 폭력 행사에 해당합니다. 물론 '연행'할 수 있고 '피의자 조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폭력을 쓰나요? 이게 정당화됩니까?

그리고 더 집중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첫번째 사례입니다.

전경들의 폭력성은 어제 오늘에 지적된 문제가 아닙니다.
전경들이 방패의 날을 세우고, 방패를 바닥에 갈고, 방패로 얼굴을 가격하는 것은, 10년 전에도 그랬고, 20년 전에도 그랬습니다. 

10년 전에도 전경이 휘두른 방패에 맞아 '실명'을 당한 경우도 많았으며, 대학교 신입생도 전경의 방패에 눈을 맞아 실명한 경우가 저의 경우에도 있었습니다. 

이런 사례들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전경들이 이렇게 폭력을 예사로 사용하는 것은, 해당 부대에서 그렇게 가르치고 교육하기 때문입니다.
즉, 불법적으로 잘못된 관행들이 전수되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위에서, 선임자들이 '방패를 갈아서', '얼굴을 맞춰라', 특히 '눈 부위를 가격하라', '목 주위를 가격하라'고 종용하고 전수하기 때문에 이 지경에 오는 것입니다. 


충분한 직무, 안전교육 없는 경찰권 투입은 위헌

전경들 대부분이 20대 초반입니다. 
고등학교까지 민주주의 교육을 받지만, 민주주의는 생활 속에서도 습득되고, 대학사회에서도 추가로 습득되기 때문에, 모든 전경들이 지니는 민주주의 의식이 완벽하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전경들에 대한 충분한 직무교육, 직무 수행에 따른 준법교육, 민주주의와 인권 의식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전경들은 '일반 시민들에 대한' 권력의 잘 훈련된 '개', '투견'일 뿐입니다. 

전경들이 집회 질서유지 현장에 나와서 울부짓는 모습을 보며, 거의 예외없는 모든 시민들이 
그들은 마치 '짐승 같다.', '훈련된 투견'들 같다는 인상을 받고 있습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군인의 경우, 만약에 전쟁이 일어난 유사시라면, 총을 잘 쏘고 포탄을 잘 쏘면 칭찬받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전쟁은 권력에 의해 용인된 '살상'의 현장으로 군대의 목표는 그런 '폭력성'의 표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경의 경우에는 어떻습니까? 
집회나 시위에 나와서, 전경이 '시민들' 잘 때려잡고, 물리적인 폭력을 잘 행사하면, 
넌 참 유능한 전경이로구나...  칭찬받아야 하는 것입니까?


전경은 군인이 아닙니다. 

전경은 '국가공권력'에 의해 동원된 하나의 수단일 뿐이고, 그 '국가공권력'은 경찰권력이 전경들을 동원한 
'경찰 권력'의 권한 범위 내로 제한되는 것입니다. 

경찰이 방패로 시민 패고, 방패로 눈을 가격하고, 실명시키고, 뇌출혈 일으키고, 두개골 함몰시켜도 된다는 법이 있습니까?
아니면 그렇게 해야만 합니까?


지금 전경들과 전경부대는 기초적인 임무에 대한 숙지나, 공권력의 행사방식과 한도에 대한 교육이 전혀 안되어 있습니다. 
비유하면 '총'을 쥐어 주었는데, 총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어떤 예외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 안전수칙은 무엇이고, 왜 대부분 사용되어서는 안되는지, 그리고 자신들이 그렇게 복무하고 있는 이유과 사명은 무엇인지 전혀 체득이 안되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자신들이 무슨 소리를 내는지도 모르고 '울부짓는' '권력의 투견', '개'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국가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그들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고, '국가' 자체에 대한 모독이기도 합니다. 


제복을 입은 자는 국가와 동일

10년이나 20년이 지나도 전혀 변화가 없는 이러한 상황에서, 
경찰이나 전경 집단이나 폭력을 일상사로 자행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며,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일부 전의경들은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며 자신들은 피해자일 뿐이다. 전경차가 부셔지거나, 누군가가 쇠파이프나 죽창을 나나 동료에게 휘드루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고 말합니다.
이들의 의견은 정당합니다.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자신들이 또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또다른 폭력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들은 '제복'을 입었습니다. 공권력이라는 것입니다. 단순이 개인이 개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얘기입니다. '공권력'은 '국가'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제복을 입은 전경이 시민에게 방패로 눈을 가격하는 것은, 이명박이 직접 방패로 시민 때리는 것과 똑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공권력'이고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나와 이웃을 죽이거나 패기에 바쁜 폭력국가에서 살고 싶습니까, 내가 사는 나라가 폭력국가였으면 좋습니까,
폭력국가가 되는데 내가 기여하고 있으니까 기분이 좋습니까?

'제복'은 곧 '국가'이고 '국가'는 '국가'로써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일개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이 갓 20대초반에 들어서서 전의경이 된 젊은이들에게 지각이 잘 안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전쟁이 발발한 전투현장의 군인이 아니며,
일상 생활에서 '시민'과 접촉하는 '경찰력'의 일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불완전한 '불량품' 권력은 불편함의 대상이 아니라, 회수 조치 대상

'권력'을 쥔 자들이, 그 권력을 어떻게 어떤 한도와 수칙을 지켜가며 행사해야 하는지 '정당한 권력 행사'의 방식을 모르는
무지(無知)를 범하고 있다면, 그런 권력 행사는 불편함으로 받아들이고 용인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원천적으로 반납되고 회수되어야 합니다. 


전경 집단이 지금과 같은 폭력을 지속한다면, 전경 집단은 그 어떤 경우에도, 어떠한 집회나 시위 환경에서도, 
시민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말아야 합니다. 


시민사회는 '인권'과 '개념'의 사각지대인 전경과 경찰 집단에 대해서 민주화, 합리화의 사명을 안고, 
앞으로도 이들의 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실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되나요?

작년에 서울의 촛불집회에서 평일 하루에 새벽 아침까지 함께 했을 때,
중학교 2학년인 소년이 있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 소년이 학교에 거르게 될 것을 걱정했습니다. 물론 그 학생은 아침 6시경에 집에 갔고, 등교를 했을 겁니다.

새벽 3~4시쯤에 그 학생이 저한테 와서,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되나요?  나라가 참 걱정되요." 라고

했습니다.

그게 중학교 2학년 학생의 마음입니다.

"이런 일이 우리 평생에 다시 있지는 않을거야."

하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게 1년 전의 일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지금이 4.19입니까?  4.19처럼 피를 흘려야 알아먹습니까, 아니면 피를 안흘리고 있으니까 만만해 보입니까?

사람들이 어리석어서 겁이 많아서 '피를 안흘리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권력은 대리인들에게 있지 않다

그런 착오와 교만, 교언영색(色)에 빠져있는 한, 더 큰 댓가를 '권력' 스스로 지불해야 할 것입니다.

'권력'은 '시민'에게 있는 것이지 '대리인'들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 역사적 현실을 망각하고 있다면 그에 대한 댓가를 치루고, 현실로 똑똑히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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