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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19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이 적절합니다 45
  2. 2009.06.08 한국인은 이제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한다
  3. 2009.05.05 박경리 1주기 추모제 일을 맞이하며 _토지 1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9년 8월 18일 향년 85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게 되었습니다.
1924년생인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대 중반의 젊은이로서 한국전쟁을 경험한 세대로, 이후 한국 현대사를 개척한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지난 5월 2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사고로 잃은 국민들은, 100일도 채 지나지 않은 8월 18일에 또다시 전임 대통령을 연이어 잃었다는 비통함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의 공과(功過)와 정치적 지향을 떠나서라도, 88일이라는 간격을 두고, 두 명의 전임 대통령을 연달아 떠나보낸 사실에 참으로 침통해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시점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 예우 절차를 국장으로 해야 하는가, 국민장으로 해야 하는가가 논의가 되고 있습니다. 

모든 계산을 떠나서, 당연히 국장으로 하는 것이 적절하고 사리에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국민장으로 치뤘기 때문에, 절차의 형평성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도 국민장으로 치루는 것이 적합하지 않느냐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장 형식을 취해야 할 필요는 없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국장이 훨씬 적합하고 격식에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은 인물이 "국장"으로 치러지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국장의 대상의 될 수 있습니까?

김대중 전 대통령의 그간의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노력이나 업적, 험난한 고난을 넘어선 진실성, 삶의 경이를 생각할 때, 당연히 국장이 어울린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 현대 민주주의를 정상적인 절차와 의회주의로 복원시키기 위해 모진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죽음의 사선을 숱하게 넘어서면서 모든 헌신을 다 했습니다.
이런 노력은 김영삼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외람되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물론, 향후 김영삼 전 대통령 두 인물은 그들의 재임시의 공과에 상관없이, 그들의 한국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노력과 헌신을 생각할 때, 반드시 국장으로 치뤄야할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1997년말 대통령 당선 시기 _MBC



둘째, 휴무일이 아니면, 마음이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떠나보내는 장례일 마당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은 휴일이 아니어서, 참관 의사가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쉽게 참석하지는 못했습니다.
일부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일정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 소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근심까지 했으나,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에 많은 이들이 모인 것은, 그의 죽음이 애석하고 비통하여, 곁에서 참관하며 떠나보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일반의 장례에 참석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려했던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평화롭게 모든 일정이 진행되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고 싶지만, 공휴일이 아니어서, 관공서에 나가고, 일을 하고, 학교에 가느라 참석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역사의 동반자였던 민주주의의 지도자를 잃은 것은 집단을 이루어 살아가는 인간의 큰 슬픔의 하나임이 분명합니다. 이런 슬픔을 마지막 떠나보내는 장례 절차에서 카타르시스로 풀지 못한다면, 마음의 울분과 응어리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석하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 참석할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친구가 떠나도, 모든 생업을 재쳐두고 영결식에 참석하는데, 역사를 민주주의의 방향으로 틀기 위해 노력한 민주주의의 오랜 친구를 떠나 보내는 길을 방관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국장 당일 휴무일로 지정하여, 보다 많은 이들이 참여하여 애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편, 실무적으로 보면, 국장의 경우 외국 외교사절의 정식 조문을 받는다고 하므로, 세계 민주주의 수호자로서 그의 국제적 위상과 파급효과를 생각할 때도 국장이 무난합니다.


셋째, 한국의 현대 민주주의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엄청나게 빚졌습니다.

20대 중반에 한국전쟁을 겪고, 전후 현대사의 진전을 생생하게 해쳐 온 김대중 당신은 다수의 침묵 속에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파수꾼, 수호자임을 자처했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핍박과 고문, 정치, 사법적 탄압을 받기도 했습니다.
김대중의 역사가 한국 민주주의의 고난과 쟁취의 상징이었음을 부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를 지지하든 안하든 변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 점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민주화 수호 업적도 기억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그의 향후 장례도 동일하게 국장으로 치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사람이기에 그의 60년에 육박하는 정치 일정에서 과오와 한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국 현대 민주주의가 그에게 큰 빚을 졌고, 당신들의 노력으로 오늘날 우리 민주주의 의식이 이만큼 진전해 왔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김대중 당신 인생의 신념과 소신대로, "행동하지 않는 것은 악이니, 행동하는 양심이 되자"고 설파했고, 당신의 모든 삶으로 실제로 실천했습니다. 이런 신념은 영면에 들기 직전까지 동일한 신념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그를 탄압했던 무리도, 그의 행동에 함께 참여하지 못했던 이들도, 모두 그의 일관된 인생의 신념과 용기, 삶에 찬사를 보내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회복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절대적인 선행조건이다 _1985.3.8, KBS



넷째,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도 김대중, 김영삼 민주화 추진 세대의 후광 세대에 불과합니다.

즉, 쉽게 말하면 격(格,level)이 다릅니다. 김대중, 김영삼의 오랜 시간의 험난한 민주화 투쟁의 과정은 한 차원 높은 숭고한 헌신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정파를 떠나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김대중, 김영삼은 비록 각각의 평가와 과오에도 불구하고, 한국 현대 민주주의의 정상화를 위해 엄청나게 투쟁하며, 모진 핍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진전시키기 위해 고단한 역사를 마다하지 않고 이어왔습니다.

결과로 기록된 이들의 삶이 쉬어보일지 모르지만,
삶의 고난과 온갖 박해, 정치적 탄압을 이겨내며, 전 생애를 민주주의, 의회주의의 회복에 대한 신념 아래 일관되게 행동하기는 쉽지가 않은 것입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고귀한 결단과 희생의 정신이 없으면 쉽게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예컨대, 김대중씨는 수 년을 감옥에서 독방에서 살았고, 허위 사건 조작으로 사형 선고도 받았으며, 독재정권에 의해 바다에 내버려지는 급박한 상황까지 가는 등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를 살리고 돌려 세운 것은, 바로 그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었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있었기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꿋꿋할 수 있었고, 국내외 주변의 민주화 세력들이 그의 지원자가 되어 준 것입니다.

이처럼 기초적인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당신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노무현도 있었고, 이명박도 있었던 것입니다.
'인동초'(忍冬草, 추위를 이겨내는 풀) 처럼 이어온 민주주의 신념의 생명력이 오늘을 있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그들의 그늘과 혜택으로부터 탄생한 노무현, 이명박 후광세대보다 한 차원 높게 승격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장례 예우는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한 차원 높은 "국장"이 매우 적절하고 합당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에 대한 예우의 성격이 강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수호자, 지도자"의 성격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퇴임사 _저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민족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간직하며 살아가겠습니다 _2009.2.24, KBS



다섯째, 88일이라는 단기에 전임 대통령들을 연이어 떠나 보낸 국민들의 끝없는 슬픔과 한을 헤아려야 합니다.

전임 대통령들을 연이어 이런 짧은 기간에 떠나 보내는 것은 세계 현대사에 유례가 없는 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초유의 국민적 슬픔을 헤아려주고 껴않아야 합니다.

올해 국민들은 이미 너무나 큰 슬픔을 안고 있습니다.

5월 23일에는 직전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고로 먼저 우리를 떠나갔습니다. 그의 나이는 아직도 젊었습니다.
그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100일도 채 안된 마당에,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였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당신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매우 슬퍼하였고, 그 직전, 직후 5월, 6월, 7월에도 민주주의과 한반도 평화에 대한 견해를 계속 밝혀 왔습니다.

이런 마당에 한국 현대사에 중대한 이정표를 남기고, 지도자적 역량을 보여주었던 전임대통령 노무현, 김대중을 동시에 먼저 떠나보내면서, 국민의 슬픔과 한은 끝없이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가슴의 슬픔과 응어리가 해소되지 않으면 한이 됩니다. 국민이 슬플 때는 슬피 울 수 있도록, 애도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의 한이 분출되고, 카타르시스의 정화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국민은 지금 서럽습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 서럽고, 동시대의 이정표였던 소중한 친구를 먼저 잃어 서럽습니다.
정파를 떠나, 국민 모두 서글픈 일입니다.

이런 슬픔을 헤아려주고, 애도로 분출되어 정화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평양행 대국민 인사말 _2000.6.13, KBS



여섯째,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을 넘어선 세계적 민주주의 지도자이며 교본입니다.

그가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그의 정치 인생에 과오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그가 인생을 일관된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헌신, 실천으로 살아왔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의 인생에서는 삶의 고귀함지도자로서의 쉽지만 높은 이상, 리더십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는 정상적 민주주의로의 복귀를 위한 민주화 투쟁을 통해 국위를 선양했고, 한국 민주주의의 진전을 세계에 빛냈습니다.
이는 굳이, 그가 200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을 인용하지 않아도 분명한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이런 수상의 결과를 평가절하하기도 하나, 객관적으로 보아도 전혀 부족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치인도 공통의 가치를 증진시키는 신념과 가치를 전파하고 함께 실천해가는 측면에서 "흥행"을 도모하는 예술가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가 정치적 개선을 시도하는 여러 사건들에 성공하고, 민주주의와 평화의 가치를 진전시키면서 세계의 평가를 받았다는 것을 부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진전된 민주주의는 다져진 토양처럼 작용하기 때문에, 쉽게 뒤집혀 질 수 없습니다. 쉽게 회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의 민주주의는 한반도 전체의 민주주의와 평화, 세계 민주주의와 평화에도 기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민주주의와 평화가 더욱 우월한 결과를 낳는다면, 북한도 이에 자극받고 편승해 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민주주의의 소중한 노력과 결실이 우리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역사의 기록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의 바램처럼,
그는 일관된 신념과 행동으로 최후의 삶까지 초지일관했습니다.
빛나는 자는 헤어지는 자리에까지 향기를 남긴 것입니다.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



일곱째, 한국인 모두의 차별없는 후원자로, 한국 민주주의와 현대사의 빛나는 후광(後廣)으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 민주주의와 현대사의 돌이킬 수 없는 절대적 진전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의 호 '후광'(後廣)처럼 그는 한국인과 한반도 평화,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후원하는 영원한 역사적 후원자로 이제 영면의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김대중 당신은 '후광'이라는 호에 전혀 부끄럽지 않은 삶의 여정을 보내고, 안식에 올랐습니다. 

평소 경천애인(敬天愛人, 하늘을 받들고 사람을 사랑한다)을 좌우명으로 일생의 신념을 삼은 그는 결코 이에 어긋나지 않는 삶의 인품과 자세를 보여주었습니다. 

천주교 신자로서 '토마스 모어'의 세례명을 받은 그는 천주(天主)와 민주주의의 신념을 바탕으로, 인간이 향유할 수 있는 고귀하고 평화로운 삶의 모범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2009년 올 한 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전 5월에도 남북관계와 민주주의 정세에 대해 언급, 조언했고, 6월, 7월에도 민주주의의 기초적 가치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쉬지 않고 이어갔습니다.
 

"두렵지만, 나서야 하기 때문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용기입니다." - 김대중, KBS



마지막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헌신과 신념은 그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성과이고, 가치이며, 과제라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인권, 대중경제의 성장, 한반도 평화, 통일은 당신만의 소신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신념이고, 희망이고 바램입니다.
또 우리에게는 한반도 평화를 진전시키고 통일을 완수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진전시켜야 하는 숭고한 사명이 있습니다.

결국, 김대중 당신께서 보여주신 가치는 그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의 심장 안에 있는 우리 모두의 가치이고 과제인 것입니다.


김대중의 삶과 정치 여정이 결코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그의 인간적 매력이 너무나 넘쳐난다고 단언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삶의 자세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지금 무엇을 극복하고, 함께 꿈꾸고 실천해 가야 하는가에 대한 이정표를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 가치들은 일순간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면을 향했던 당신들의 바램처럼 불멸을 향해 더욱 성장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도 인간이기에 이런 모든 삶의 여정들이 결코 편하고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죽음의 고비도 여러번 넘겼습니다. 그러나 그가 밝힌 것처럼, 최후의 순간까지 헌신으로 그를 이끌어 온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두렵지만 나서야 하기 때문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용기입니다. 그리고 정직입니다. 우리가 가야할 길과 꿈을 거부하지 않고 왜곡하지 않고 떳떳하게 밝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일시적으로 힘들도 어렵고 고되더라도 거부하지 않는 것입니다. 두렵지만 가야하는 길, 그것은 용기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국장은 위와 같은 이유에서, 당신에 대한 정당한 대우일 뿐만 아니라, 
모든 한국인과 한국 현대 민주주의에 남겨진 소중한 정신을 다시 확인하고, 우리 스스로 다짐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 점에서 정부와 청와대는 괜한 근심과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국민의식도 많이 성숙했습니다. 국민은 국민이 슬프기 때문에 국장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며 매진해온 진지한 삶의 자세를 되돌아보며, 우리는 새롭게 각성하고, 시대의 전진을 향한 국민적 에너지를 승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국민적 에너지의 결집과 충전은 결코 누구에게도 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현재 위치와 과제를 확인하고, 용기와 도전을 재충전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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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이제 새로운 옷으로 갈아 입고자 한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에 항의하고 있으며, 무엇을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까?

폭력과 강요, 야만, 사기, 거짓, 위선, 부실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닌 지성(知性)과 이성(理性), 감성(感性)이 지배원리로 자리잡는 따뜻한 인본과 생태적 환경의 시대 아닙니까?

우리를 답답하게 얽매여왔던 것을 이제 과감히 벗어 던지고, 정말로 원하는 것들을 맞아 들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21년 성년식을 맞이하는 6.10항쟁은 이제 후대와 그 임무를 함께하고자 한다]

지난 약 60여년간 우리는 기초적 경제화의 시대와 기초적 민주화의 시대를 거쳐왔습니다. 87년 6.10항쟁을 기점으로 민주화를 선언했다고 하지만, 사실 그것은 민주화가 이제 지배적 가치로 출발함을 선언한 것일뿐, 그 자체로 민주화가 완성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부도덕한 권력은 언제나 생겨날 수 있고, 권력의 부도덕함은 국민의 생명과 기본권, 생존권을 우습게 여기며, 쉽게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을 여전히 현실로 느끼고 있습니다.

죽은 자들이, 죽임을 당한 자들이, 산 자에 대한 축복을 전하며, 그 축복을 잃지 않기 위해서 '산 자여 따르라.'고 조언했듯이, 지난 20여년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시간의 역사로 그 기초를 서서히 공고하게 다져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권력은 여전히 우리의 감시를 필요로 하고, 민주주의에 따르는 혜택과 경제적 형평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합니다. 어둠은 아직도 우리들 곁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전진은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이 민주주의의 소중함에 대해 각성하고 있습니다. 지난 21년간의 민주주의의 기초들이 깨질 수도 있는 중대한 위험 상황에서, 우리는 함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87년의 아이들이 이제 어느덧 성인식에 이른 이 때에, 우리는 시간으로 확보한 이 민주주의의 소중한 초석들이 결코 허물어져서도 안되고 깨져서도 안되는 소중한 자산임을 한목소리로 외치며 광장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죽은 자들을 기억하는 사람들, 투쟁했던 사람들, 말은 못했지만 그들과 함께 했던 사람들, 지난 20여년간 태어나 민주주의의 혜택을 누려왔던 사람들, 그리고 그것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이 고난의 한국에서 묵묵히 지켜왔던 사람들, 아직 말도 못하지만 미래의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나선 영아들, 그리고 철부지 같지만 민주주의와 국가의 소중함을 어느새 자신의 한 몸으로 체화해 버린 초등학생에서 고등학생들까지 광장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이 소중한 역사적 혁명에는 계층도 없고, 나이도 없고, 무슨 차별도 없습니다. 멋쟁이에서 노숙자까지 그들은 다양합니다.


[시대는 변화를 요구하고 있고, 대한민국의 체형은 이제 새 옷을 필요로 한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혁명, 국민혁명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향한 모두의 열망은 아무런 줄긋기도 없는 열의를 뿜고 있습니다.

 

시대는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제 들어서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새 옷을 입어야 합니다. 의례 그랬던 것처럼 2MB라는 옛 스타일의 옷을 입어봤지만, 이제는 이 체형에 맞지 않는, 누더기 옷임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체형은 달라졌습니다. 느끼지 못했지만 몰라보게 자라났습니다.  경제화와 민주주의의 고른 양식을 먹고, 우리는 우리도 몰라보게 부쩍 성장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알을 깨고 나오고 있습니다.' 번데기를 벗고 탈피하여 날아가려는 저 나비처럼, 대한민국은 날아가려 합니다. 그 무엇보다 청소년들이 자신이 비상해야 할 대한민국은 과거와 같은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21년의 성상은 성년식을 치루며, 촛불혁명으로 그 책무를 넘기려고 한다]

80년대를 민주화로 이끌어 오신 여러분, 90년대에도 민주화의 소중한 사명을 알고, 그 끈을 이어가셨던 여러분, 87년 6.10항쟁의 의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6.10항쟁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6.10항쟁은 우리틈에서 조용히 싹을 피우며 뿌리를 내리며 어느새 무럭무럭 자라나 자신의 확고한 존재를 우리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잘려나간 뿌리도 아니고, 피다 만 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엄연히 우리의 생활 속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피로 이룩한 6.10항쟁의 소중한 의무는 이제 내일을 기점으로 다음 세대에게 그 소중한 책무를 넘기려고 합니다. 바로 촛불혁명의 세대입니다.

어둠을 밝히고자 하는 의지, 평화와 빛에 대한 의지, 미래에 대한 의지가 모여 숭고한 촛불로 타올라, 하나의 광장에서 새로운 시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지난 시절 민주화를 지켜온 이들과 다음세대를 이끌어갈 이들이 하나되어 모이는 장입니다. 비상하는 대한민국과 아름답고 소중한 국가다운 국가, 대한민국을 위해 아무런 줄긋기도 없이 함께 만나는 장입니다. 80년대 거리에서 투쟁했던 이들은 이제 자식과 손자들에게, 90년대의 주역은 아들, 딸들과 조카들에게, 또 미래세대에게 그 역할을 전달할 것이고, 21C의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이 과정의 당당한 주인공들임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위대한 국민의 위대한 결단은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꿈이자 실천이다]

오늘은 그런 날입니다. 우리의 위대한 결단이 미래에 대한 위대한 힘으로 선포되는 역사적인 현장입니다. 여러분 다함께 동참하셔서 역사의 현장을 목격합시다.

프랑스는 68혁명으로 현대로 나갔다면, 대한민국은 이 자랑스러운 촛불혁명으로 새로운 대한민국과 미래 패러다임을 우리 스스로 그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6.10항쟁을 잇는 자랑스런 모두의 혁명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한국지성사에 길이 빛이나고, 현대사의 소중하고도 중대한 의미로 기록될 이 촛불혁명에 다함께 참가하여 역사의 주인으로 자랑스럽게 기억됩시다.

광장으로 모입시다! 6.10일의 광장으로 모입시다!  우리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열망하고 들어서고 있다는 것을 선포합시다!

- 2008년 6월 10일 촛불혁명을 맞이하며 -

* 이 글을 촛불국민혁명 1주년을 기념하며 재공개합니다. 달라진 것 없는 시국이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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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5일 어린이날입니다. 여기저기 블로그들을 쭉 둘러보다 보니 오늘이 토지(土地)의 작가이신 박경리 선생의 1주기 추모제(1주년 기념일)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나 그 분의 인생 여정을 간략히 다시 찾아보게 됐습니다.

저는 박경리 선생님과 안면식이 있던 것도 아니고 그 분의 저작 세계에 대해 깊은 조예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이렇게 평범한 일반 독자 입장에서 쓰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 분의 토지에 대해 깊히 얘기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며, 독자가 스스로 체득하고 느껴야할 것들에 대해서 능력이 허락치 않을 것입니다. 다른 분들의 더 좋은 조언들을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기념일을 맞아 정말로 관련이 있으신 분들, 지인이셨던 분들께서 많은 글들을 올리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것도, 다른 분들의 블로그 글을 보면서, 아... 박경리 선생님 1주년이구나 알게 되어 쓰게된 것입니다.
(추모제 관련내용, 추모제, 박경리님을 추모하며, 토지배경 전경 )

제가 찾아보면서 얘기하고 싶은 점은 박경리 선생님의 인생과 그 분의 집필 배경과 의지입니다.

박경리 선생님은 1926년생으로, 1969년에 <토지>를 처음으로 발표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26년생이었으니까, 무려 43살에 집필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요즘처럼 속도만을 강조하는 세태에 비추어 본다면, 43살은 참 늦은 나이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1969년에 시작한 <토지>를 전21권으로 1994년 마무리하였다고 하니, 무려 26년간 집필하였습니다. 인생의 주요 시간을 할애하셨다고 볼 수 있는데, 43살에 쓰기 시작했으니까, 69살에 탈고하신 것입니다.

<토지>는 대한제국 말기부터 해방까지의 기간을 최참판댁 가문의 5대에 걸친 흥망성쇠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책에 대해 자세히 얘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함께 생각해 보고 싶은 점은, 43살에 쓰기를 결심해서 무려 26년만에 마무리 지은 이 작품이 본인에게나 우리에게나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입니다. 써야만 하겠다는 의미와 의지가 있었기에 무려 26년이라는 인생의 주요 장년기를 할애하였을 것입니다.


박경리 선생님은 <토지>를 왜 썼을까요? 왜 써야한다고 생각했을까요?

박경리 선생님은 1926년생으로 한국현대사에서 본다면, 일제시대에 태어나 일제시대의 삶을 그대로 체험했다고 볼 수 있고, 성년기에 접어들 때 해방을 맞이했으나, 분단이후 20대 중반의 황금기에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또한 이후 전반적인 가난과 군사독재가 이어지면서, 지난 100년을 돌이켜본다면 한국 근현대사의 고통의 중심을 당신의 삶의 체험으로 관통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학(文學)과 인문(人文)은 역사(歷史)는 아니기 때문에, 마치 중고교 '국정교과서'처럼 어느 시기까지만 얘기하고 멈춰라하는 법은 없습니다. 작가의 취향과 시대정신에 따라 어느 시대든 복원하고 창조해 볼 수 있습니다. 

70년의 문턱에 시작해서 94년에 마무리 지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45년 해방까지만 다루고 있는 <토지>의 시대적 배경은 다소 옛날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당신께서는 19C말 대한제국 시절부터 1945년 해방까지만를 기록했을까요?

추측해 보건데, 누군가는 1897~1945년까지 약 50년의 기록을 써야한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1926년생이신 선생께서는 일제시대를 직접 체험하시고 한국전쟁과 분단의 고착화, 이후 군사독재시절을 거치시면서 대한제국 시절 이후 일제 제국주의로 이어지는 민족의 고통의 근원과 그 해소의 기원을 찾고 싶었을 것입니다. 

즉, 지금의 고통은 전통의 연속적 전개의 단절, 구조적 모순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보고, 이런 구조 속에서도 역사는 연속되며, 개인의 시련과 극복의지는 계속된다는 것을 복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거기에 살아있는 혼은 무엇인가 그 수 많은 군상들을 형상화하며 보여주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지난 시절을 돌아본다는 것은 창작의 재료를 찾는다는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근원적인 현재적 고통의 기원과 실마리를 찾고 싶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수백여명의 인물 군상들을 그 안에 형상화하고 녹여냄으로써 역사와 구조는 물론, 인간의 인생 굴곡과 자기의지의 의미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박경리 선생님은 왜 광복으로만 마무리했을까요?

그런 인물군상과 역사 구조적 시련을 정말로 까발리고 싶었다면, 한국전쟁을 넘어서서 이후에까지 필력을 이어갔을지 모릅니다.

추측해 보건데, 대한제국의 연속성 단절과 일제시대는 외세 영향력에 따른 피압적 상황에 해당하지만, 한국전쟁의 경우에는 남과 북이 서로 총을 겨눈 분명한 내전(內戰)의 형태를 취한 덧없고 어리석은 것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빛을 다시 맞이했다는 광복(光復)을 얻은 것도 눈물 겨운데, 그로부터 수년 뒤에 분단되고 내전까지 벌인 현실이 얼마나 어리석고 비참합니까.

당신께서 1897~1945년 광복기까지 자신이 실제로 눈으로 보고 관찰하여 발담근 일제시대를 중심으로 대한제국 말기부터 광복까지를 문학적으로 형상화, 복원하는 것으로 자신의 책무는 충분하다고 여겼을 수 있습니다.

그 분께서 오히려 한국전쟁을 포함한 이후까지를 <토지>에 집어넣었다면, 오히려 당신께서 의도하지 않는 고통이 스스로에게 가중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비유컨데, 1897~1945년까지가 자식을 잉태한 어머니의 젊은 시절의 기록이라면, 자식들이 서로 치고 받는 내전을 벌인 1945년 이후의 기록을 그 어미보고 생생히 기록하라고 하는 것은 고통을 주는 가혹행위에 해당합니다.


1897년 한가위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1945년 광복으로 잠정적으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1897년은 대한제국의 시절, 연약했지만 연속성이 유지되고 있던 시절이고, '한가위'는 민족의 공통적 기원과 공동체적 융화를 상징합니다. 무수한 인간군상들의 구조적, 시대적, 개인적 역정이 펼쳐지지만, 결국 <토지>의 대단원은 "광복"으로 마무리됩니다. 처음과 끝만을 놓고 본다면, '한가위'에서 시작하여 '광복'으로 돌아옵니다.
'한가위'는 모두가 하나되어 밝은 달 아래서 모이고 융합하는 민족의 가장 풍성한 날이고,
광복은 빼앗긴 민족의 혼과 빛을 다시 되찾아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빛에서 출발하여 빛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한가위'가 음력 8월15일이라면, '광복'은 양력 8월15일입니다. 
무수히 많은 인물군상들이 출몰하고, 시련의 시간들도 다가오고 지나가지만, 음력이 어느새 양력으로도 바뀌었지만, 빛은 빛으로 돌아오고 있고, 그런 순리의 빛을 맞이하여서만 우리는 기뻐했고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렇다고, 단편을 제외하고라도 1950년 이후 현대사에 대한 장편의 비평과 복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김성종 작가는 1980년대 <여명(黎明)의 눈동자> 전10권을 통해 1943년부터 1953년 한국전쟁까지의 약 10년간의 민족사의 고난과 비극, 그리고 젊은 청춘들이 꿈꿨던 사랑과 시대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1991년 10월 7일부터 1992년 2월 6일까지 최재성, 채시라, 박상원 대스타들을 출연시키며 MBC 특별드라마로 제작되어 불멸의 대작으로 시청자의 기억에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또한, 비록 개인적 가족사에 과도하게 치우친 면은 있지만, 이문열씨는 1960~70년대를 겪어왔던 한 가족사의 기억을 <변경> 12권을 통해 그의 집중도 높은 필력으로 1990년대에 집필탈고한 바 있습니다.


오늘 2009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박경리 1주년 기념일을 접하게 되면서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오늘 우리는 무엇을 기록하고, 함께 써나갸야 하는 것입니다.

박경리의 <토지>, 김성종의 <여명의 눈동자>, 이문열의 <변경>을 보면, 근본적으로 일제시대와 이후 한국전쟁에서 비롯되는 민족과 개인적 고통들이 그대로 담겨져 있습니다.

만일 이후에 이런 대하소설의 흐름을 이어받아, 1980년대 이후의 우리의 흐름을 장편으로 기록하고자 한다면,
아직도 우리는 분단으로부터 비롯되는 고통과, 한국현대사에서나 세계사의 흐름에 비추어 보와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 분단의 얽매임과 불편한 환경으로부터의 해방의 욕구를 다시 한 번 분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2000년으로 넘어왔을 때, 새로운 밀레니엄(Millenium) 시대가 시작되고 뭔가 세상이 확 바뀔 것으로 잠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대로 돌아가고 있고, 우리의 기억의 근원들도 바뀐 것이 없습니다.

2000년은 전쟁 이후의 50년이기도 했고, 2010년이 되면 새로운 10년이라고 우리는 또다시 호들갑 떨겠지만, 전쟁 이후 60년이 될 뿐입니다. 

현 세대와 미래세대가 한국전쟁으로부터 50년이 지난, 2000년 이후의 50년을 써나간다면 무엇을 쓰도록 해야 할까요. 

만일 박경리 선생께서 2026년생이라면, 1997년부터 2045년까지의 시간을 <토지>로 기록했다는 것이 됩니다.  
그 와중에 2009년이라는 오늘이 있는데, 당신들께서 지적하신 비극은 아직도 그대로 있습니다. 

지나간 세월 우리의 한(恨)은 무엇이었고, 혼(魂)은 무엇이었나...
오늘의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그리며, 어떤 세상을 향해 가고 있는가.


박경리 선생님 1주년,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해맑게 웃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넌지시 떠보기 위해서 선생님께서는 굳이 어린이날을 택하셨던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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