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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22 지드래곤, 음악 때려치고 한강 고수부지로 나오라 120
  2. 2009.08.19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이 적절합니다 45
  3. 2009.06.21 이동관 대변인 퇴진을 요구합니다 1
  4. 2009.05.18 미네르바 한국에 환멸느낄 자격 있는가? 2
  5. 2009.05.18 블로그 광고 표시 분명하게 해야하는 이유 7
  6. 2009.03.07 네이버 뉴스캐스트 제목 선정, 일부 언론사 도에 지나쳐 1

지드래곤의 미니앨범이 새로 나왔는데 각종 표절논란으로 범벅이 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쭉 들어봤는데 이거는 해도 해도 너무하다.

빅뱅, 2NE1, 그리고 이번 지드래곤의 주요 곡들까지 YG를 둘러싼 주요 곡에서 표절 의혹은 이미 충분히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음악 청취자들이 그냥 관대하게 넘어간 것은,
설령 샘플링을 많이했더라도, 대중이 즐거워 한다면 좋은 것이니, 대중음악의 역할에 충실했다고 봐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잘못된 메이킹 기법이 YG를 비롯하여 가요계 전반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불쾌감을 야기하고 있다.

이미 빅뱅의 최고 히트곡에서도 명백한 샘플링 이상이 였보였고,
2NE1의 곡들에서도 너무나 분명한 샘플링이 보였다.

좋게 말하면 샘플링이고, 결국은 '표절'의 연장일 가능성이 크다.

일부 샘플링에 대해, 대중들이 관용을 베풀며 관대하게 봐주었더라도,
이것이 그런 왜곡된 작곡 기법을 용인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중음악도 정직해야 한다. 대중음악도 가공을 할 수 있고, 재창조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원곡의 예술성과 원저작자의 창작정신과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행해져야 한다.

지드래곤의 이번 앨범은 너무나 심각하다는 것이 결론이다.

특히, 작곡가의 곡을 받아서 노래만 부르는 곡들의 '표절시비'와는 달리, 지드래곤은 Songwriter & Singer 를 표방하며, 아티스트를 자처하고 있기 때문에, 더 심각하다. YG 프로듀싱 전체 그룹도 마찬가지다.

하나 하나 이쁘다 이쁘다...그저 봐주었더니... 이 지경까지 온 것이다.

먼저, 이제 갓 20대 초반의 젊은 청춘에 불과한 이가, '도덕성'이나 '정직'에 대해서 이처럼 가볍게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이 참으로 분노를 일으킨다.

둘째, 대중음악은 그 어떤 문화장르보다 광범위한 대중적인 영향력과 파급력을 가진다.
남의 것을 도용하여, '창작'을 운운하는 것은 그 자체가 '죄악'이지만, 대중에 대한 엄청난 '해악, '기만'에 해당한다.

이런 사실도 모르고, 사람들은 그저 지드래곤이 좋아서, 신곡을 만들어냈다고, 수고했다고, 곡을 사서 듣게 될 것이다.
그 반대급부로 경제적 이득을 취한다면 정당한 것인가? 뭔가 큰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드래곤은 차라리 음악을 때려치기 바란다.

더욱이 지드래곤이 이 지경까지 가도록 방조하고 묵인하고, 본질적으로 공조했다면, YG도 자신들의 앞날을 심각하게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이런 정신상태로는 그 무엇도 될 수 없다. 
지드래곤 음악 때려치고 한강 고수부지로 나와라. 맞짱 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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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9년 8월 18일 향년 85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게 되었습니다.
1924년생인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대 중반의 젊은이로서 한국전쟁을 경험한 세대로, 이후 한국 현대사를 개척한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지난 5월 2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사고로 잃은 국민들은, 100일도 채 지나지 않은 8월 18일에 또다시 전임 대통령을 연이어 잃었다는 비통함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의 공과(功過)와 정치적 지향을 떠나서라도, 88일이라는 간격을 두고, 두 명의 전임 대통령을 연달아 떠나보낸 사실에 참으로 침통해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시점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 예우 절차를 국장으로 해야 하는가, 국민장으로 해야 하는가가 논의가 되고 있습니다. 

모든 계산을 떠나서, 당연히 국장으로 하는 것이 적절하고 사리에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국민장으로 치뤘기 때문에, 절차의 형평성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도 국민장으로 치루는 것이 적합하지 않느냐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장 형식을 취해야 할 필요는 없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국장이 훨씬 적합하고 격식에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은 인물이 "국장"으로 치러지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국장의 대상의 될 수 있습니까?

김대중 전 대통령의 그간의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노력이나 업적, 험난한 고난을 넘어선 진실성, 삶의 경이를 생각할 때, 당연히 국장이 어울린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 현대 민주주의를 정상적인 절차와 의회주의로 복원시키기 위해 모진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죽음의 사선을 숱하게 넘어서면서 모든 헌신을 다 했습니다.
이런 노력은 김영삼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외람되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물론, 향후 김영삼 전 대통령 두 인물은 그들의 재임시의 공과에 상관없이, 그들의 한국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노력과 헌신을 생각할 때, 반드시 국장으로 치뤄야할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1997년말 대통령 당선 시기 _MBC



둘째, 휴무일이 아니면, 마음이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떠나보내는 장례일 마당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은 휴일이 아니어서, 참관 의사가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쉽게 참석하지는 못했습니다.
일부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일정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 소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근심까지 했으나,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에 많은 이들이 모인 것은, 그의 죽음이 애석하고 비통하여, 곁에서 참관하며 떠나보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일반의 장례에 참석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려했던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평화롭게 모든 일정이 진행되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고 싶지만, 공휴일이 아니어서, 관공서에 나가고, 일을 하고, 학교에 가느라 참석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역사의 동반자였던 민주주의의 지도자를 잃은 것은 집단을 이루어 살아가는 인간의 큰 슬픔의 하나임이 분명합니다. 이런 슬픔을 마지막 떠나보내는 장례 절차에서 카타르시스로 풀지 못한다면, 마음의 울분과 응어리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석하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 참석할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친구가 떠나도, 모든 생업을 재쳐두고 영결식에 참석하는데, 역사를 민주주의의 방향으로 틀기 위해 노력한 민주주의의 오랜 친구를 떠나 보내는 길을 방관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국장 당일 휴무일로 지정하여, 보다 많은 이들이 참여하여 애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편, 실무적으로 보면, 국장의 경우 외국 외교사절의 정식 조문을 받는다고 하므로, 세계 민주주의 수호자로서 그의 국제적 위상과 파급효과를 생각할 때도 국장이 무난합니다.


셋째, 한국의 현대 민주주의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엄청나게 빚졌습니다.

20대 중반에 한국전쟁을 겪고, 전후 현대사의 진전을 생생하게 해쳐 온 김대중 당신은 다수의 침묵 속에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파수꾼, 수호자임을 자처했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핍박과 고문, 정치, 사법적 탄압을 받기도 했습니다.
김대중의 역사가 한국 민주주의의 고난과 쟁취의 상징이었음을 부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를 지지하든 안하든 변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 점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민주화 수호 업적도 기억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그의 향후 장례도 동일하게 국장으로 치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사람이기에 그의 60년에 육박하는 정치 일정에서 과오와 한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국 현대 민주주의가 그에게 큰 빚을 졌고, 당신들의 노력으로 오늘날 우리 민주주의 의식이 이만큼 진전해 왔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김대중 당신 인생의 신념과 소신대로, "행동하지 않는 것은 악이니, 행동하는 양심이 되자"고 설파했고, 당신의 모든 삶으로 실제로 실천했습니다. 이런 신념은 영면에 들기 직전까지 동일한 신념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그를 탄압했던 무리도, 그의 행동에 함께 참여하지 못했던 이들도, 모두 그의 일관된 인생의 신념과 용기, 삶에 찬사를 보내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회복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절대적인 선행조건이다 _1985.3.8, KBS



넷째,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도 김대중, 김영삼 민주화 추진 세대의 후광 세대에 불과합니다.

즉, 쉽게 말하면 격(格,level)이 다릅니다. 김대중, 김영삼의 오랜 시간의 험난한 민주화 투쟁의 과정은 한 차원 높은 숭고한 헌신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정파를 떠나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김대중, 김영삼은 비록 각각의 평가와 과오에도 불구하고, 한국 현대 민주주의의 정상화를 위해 엄청나게 투쟁하며, 모진 핍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진전시키기 위해 고단한 역사를 마다하지 않고 이어왔습니다.

결과로 기록된 이들의 삶이 쉬어보일지 모르지만,
삶의 고난과 온갖 박해, 정치적 탄압을 이겨내며, 전 생애를 민주주의, 의회주의의 회복에 대한 신념 아래 일관되게 행동하기는 쉽지가 않은 것입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고귀한 결단과 희생의 정신이 없으면 쉽게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예컨대, 김대중씨는 수 년을 감옥에서 독방에서 살았고, 허위 사건 조작으로 사형 선고도 받았으며, 독재정권에 의해 바다에 내버려지는 급박한 상황까지 가는 등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를 살리고 돌려 세운 것은, 바로 그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었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있었기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꿋꿋할 수 있었고, 국내외 주변의 민주화 세력들이 그의 지원자가 되어 준 것입니다.

이처럼 기초적인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당신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노무현도 있었고, 이명박도 있었던 것입니다.
'인동초'(忍冬草, 추위를 이겨내는 풀) 처럼 이어온 민주주의 신념의 생명력이 오늘을 있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그들의 그늘과 혜택으로부터 탄생한 노무현, 이명박 후광세대보다 한 차원 높게 승격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장례 예우는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한 차원 높은 "국장"이 매우 적절하고 합당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에 대한 예우의 성격이 강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수호자, 지도자"의 성격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퇴임사 _저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민족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간직하며 살아가겠습니다 _2009.2.24, KBS



다섯째, 88일이라는 단기에 전임 대통령들을 연이어 떠나 보낸 국민들의 끝없는 슬픔과 한을 헤아려야 합니다.

전임 대통령들을 연이어 이런 짧은 기간에 떠나 보내는 것은 세계 현대사에 유례가 없는 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초유의 국민적 슬픔을 헤아려주고 껴않아야 합니다.

올해 국민들은 이미 너무나 큰 슬픔을 안고 있습니다.

5월 23일에는 직전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고로 먼저 우리를 떠나갔습니다. 그의 나이는 아직도 젊었습니다.
그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100일도 채 안된 마당에,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였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당신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매우 슬퍼하였고, 그 직전, 직후 5월, 6월, 7월에도 민주주의과 한반도 평화에 대한 견해를 계속 밝혀 왔습니다.

이런 마당에 한국 현대사에 중대한 이정표를 남기고, 지도자적 역량을 보여주었던 전임대통령 노무현, 김대중을 동시에 먼저 떠나보내면서, 국민의 슬픔과 한은 끝없이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가슴의 슬픔과 응어리가 해소되지 않으면 한이 됩니다. 국민이 슬플 때는 슬피 울 수 있도록, 애도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의 한이 분출되고, 카타르시스의 정화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국민은 지금 서럽습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 서럽고, 동시대의 이정표였던 소중한 친구를 먼저 잃어 서럽습니다.
정파를 떠나, 국민 모두 서글픈 일입니다.

이런 슬픔을 헤아려주고, 애도로 분출되어 정화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평양행 대국민 인사말 _2000.6.13, KBS



여섯째,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을 넘어선 세계적 민주주의 지도자이며 교본입니다.

그가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그의 정치 인생에 과오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그가 인생을 일관된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헌신, 실천으로 살아왔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의 인생에서는 삶의 고귀함지도자로서의 쉽지만 높은 이상, 리더십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는 정상적 민주주의로의 복귀를 위한 민주화 투쟁을 통해 국위를 선양했고, 한국 민주주의의 진전을 세계에 빛냈습니다.
이는 굳이, 그가 200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을 인용하지 않아도 분명한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이런 수상의 결과를 평가절하하기도 하나, 객관적으로 보아도 전혀 부족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치인도 공통의 가치를 증진시키는 신념과 가치를 전파하고 함께 실천해가는 측면에서 "흥행"을 도모하는 예술가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가 정치적 개선을 시도하는 여러 사건들에 성공하고, 민주주의와 평화의 가치를 진전시키면서 세계의 평가를 받았다는 것을 부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진전된 민주주의는 다져진 토양처럼 작용하기 때문에, 쉽게 뒤집혀 질 수 없습니다. 쉽게 회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의 민주주의는 한반도 전체의 민주주의와 평화, 세계 민주주의와 평화에도 기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민주주의와 평화가 더욱 우월한 결과를 낳는다면, 북한도 이에 자극받고 편승해 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민주주의의 소중한 노력과 결실이 우리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역사의 기록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의 바램처럼,
그는 일관된 신념과 행동으로 최후의 삶까지 초지일관했습니다.
빛나는 자는 헤어지는 자리에까지 향기를 남긴 것입니다.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



일곱째, 한국인 모두의 차별없는 후원자로, 한국 민주주의와 현대사의 빛나는 후광(後廣)으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 민주주의와 현대사의 돌이킬 수 없는 절대적 진전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의 호 '후광'(後廣)처럼 그는 한국인과 한반도 평화,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후원하는 영원한 역사적 후원자로 이제 영면의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김대중 당신은 '후광'이라는 호에 전혀 부끄럽지 않은 삶의 여정을 보내고, 안식에 올랐습니다. 

평소 경천애인(敬天愛人, 하늘을 받들고 사람을 사랑한다)을 좌우명으로 일생의 신념을 삼은 그는 결코 이에 어긋나지 않는 삶의 인품과 자세를 보여주었습니다. 

천주교 신자로서 '토마스 모어'의 세례명을 받은 그는 천주(天主)와 민주주의의 신념을 바탕으로, 인간이 향유할 수 있는 고귀하고 평화로운 삶의 모범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2009년 올 한 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전 5월에도 남북관계와 민주주의 정세에 대해 언급, 조언했고, 6월, 7월에도 민주주의의 기초적 가치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쉬지 않고 이어갔습니다.
 

"두렵지만, 나서야 하기 때문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용기입니다." - 김대중, KBS



마지막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헌신과 신념은 그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성과이고, 가치이며, 과제라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인권, 대중경제의 성장, 한반도 평화, 통일은 당신만의 소신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신념이고, 희망이고 바램입니다.
또 우리에게는 한반도 평화를 진전시키고 통일을 완수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진전시켜야 하는 숭고한 사명이 있습니다.

결국, 김대중 당신께서 보여주신 가치는 그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의 심장 안에 있는 우리 모두의 가치이고 과제인 것입니다.


김대중의 삶과 정치 여정이 결코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그의 인간적 매력이 너무나 넘쳐난다고 단언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삶의 자세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지금 무엇을 극복하고, 함께 꿈꾸고 실천해 가야 하는가에 대한 이정표를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 가치들은 일순간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면을 향했던 당신들의 바램처럼 불멸을 향해 더욱 성장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도 인간이기에 이런 모든 삶의 여정들이 결코 편하고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죽음의 고비도 여러번 넘겼습니다. 그러나 그가 밝힌 것처럼, 최후의 순간까지 헌신으로 그를 이끌어 온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두렵지만 나서야 하기 때문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용기입니다. 그리고 정직입니다. 우리가 가야할 길과 꿈을 거부하지 않고 왜곡하지 않고 떳떳하게 밝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일시적으로 힘들도 어렵고 고되더라도 거부하지 않는 것입니다. 두렵지만 가야하는 길, 그것은 용기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국장은 위와 같은 이유에서, 당신에 대한 정당한 대우일 뿐만 아니라, 
모든 한국인과 한국 현대 민주주의에 남겨진 소중한 정신을 다시 확인하고, 우리 스스로 다짐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 점에서 정부와 청와대는 괜한 근심과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국민의식도 많이 성숙했습니다. 국민은 국민이 슬프기 때문에 국장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며 매진해온 진지한 삶의 자세를 되돌아보며, 우리는 새롭게 각성하고, 시대의 전진을 향한 국민적 에너지를 승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국민적 에너지의 결집과 충전은 결코 누구에게도 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현재 위치와 과제를 확인하고, 용기와 도전을 재충전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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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검찰의 PD수첩 조사 결과에 대해서 기다렸다는 듯이, 
"PD수첩 경영진 사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강력하게 견해를 피력했습니다.

전날 6월 18일 PD수첩에 대한 검찰 조사 결과에서도 국민들은 매우 불쾌해 했고,
이 정권이 결코 반성할 정권이 아님을 명백하게 다시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이동관 대변인은 여기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정국을 청와대와 주변인물, 유착세력들이 기획하고 있다는 심증을 더욱 굳히게 하였습니다.

국민들이 줄곧 지적하며, 반성하고 사과하라고 한 기존의 과오들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무현을 죽인게 무엇입니까?

불확정적이고 피의자의 항변권도 보장되지 않은 피의 사실의 남발이었습니다.
청와대와 검찰이 법원입니까, 판사입니까?

이 정권 출범 이후에 계속 자행되고 있는
1) 표적, 기획수사,
2) 혐오스럽고 저질스러움을 넘어서서 악질적이기까지 한 '정치보복',
3) 근대화된 "인간"의 근본권리인 피의자의 "인격권"을 무참히 짓밟는 정권의 폭력,
4) 국민의 기본권과 국가운명결정권, 민주주의의 기본질서와 가치에 대한 탄압과 무시
는 이미 도를 넘었습니다. 


이에 국민들은 이성적으로 바른길, 정도로 복귀하도록 많이 알려주었고 촉구해 왔습니다.
지성사회도 결국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시국선언을 하며 "가르쳐주기까지" 했습니다.

노무현의 죽음은 한 개인의 사망이 아니며, 위와 같은 권력의 독재, 민주주의의 퇴행이 부른 "참극"임을 국민은 이미 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죽음을 선택하는데 고려하게된 "변수"들로부터 이 정권의 책임이 결코 자유롭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권이 불량하게 의도한 바가 큽니다.

국민이 번거로움과 몸과 정신의 피곤함을 무릎쓰고, 그러한 "인지"와 "훈계"의 미덕을 다시 한번 보여준 것은 정권의 행태가 최소한 개선될 수 있다는 일말의 기대감의 표출이었습니다. 국민은 또 인내를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충분히 "인지"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의적", "계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시국 흐름을 볼 때,
더 이상 이 정권에 희망을 남길 수 없다는 판단이 명백해지고 있습니다.
 
18일 PD수첩 조사 결과 발표에서도, 검찰은 불필요한 개인의 사적통신 내용과 피의사실 공표를 남발했습니다.

도저히 반성이 없습니다. 반성이 없는 것을 떠나, 더 큰 잘못으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19일 이동관 대변인은 PD수첩이 마치 "죄인"으로 결정난 것처럼, 막말을 해뎄습니다.
그리고 특정방송에 대한 "경영권"과 "경영진의 사퇴"도 운운했습니다.

그들의 유착관계와 "계획된" 일련의 정국의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난 것입니다.

이동관씨는 "PD수첩"이라는 특정 프로를 넘어서서, 이 정권을 향한 국민의 분노와 결단들도 전부 잘못이었고, 잘못인 것처럼 폄하시켜 버렸습니다.

한편 안양교도소는 '노무현 수감'을 대비해 독방까지 준비했다는 것도 밝혀졌습니다.

청와대, 검찰... 당신들이 법원입니까, 아니면 판사입니까?

일개 시사 TV프로에 대해 문제삼는 당신들의 태도는 참으로 그릇이 작고 한심한 것이기도 하지만,
정권이 권력을 비판하는 특정 언론프로을 겨누는 것은 명백한 언론 탄압입니다.
이를 논외로 하더라도 "PD수첩"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법원이 하는 것이며, 검찰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죄가 확정된 것이 있습니까? 검찰이 자의적인 기준에 불과한 "피의사실"을 사전에 남발하거나, 피의사실과 관련성도 적은 개인의 사생활과 신념을 들추어내고, 이를 공표하는 것은 공권력의 힘을 빌어 자행하는 새로운 폭력일 뿐입니다.

더욱이 사법부가 판단하는 법적 판단도 해당 사안과 사건에 대한 사법적 판단에 국한할 뿐입니다.


잘못에 대한 근원적인 반성이 없이, 똑같은 잘못을 그것도 연속으로 되풀이하는 것은,
이 정권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애초에 반성의 의지도 없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당신들은 둔재입니까? 좋게 얘기하면 못알아 먹습니까?

인지시켜주어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계속되고 있는 모든 연출의 기착점, 종착점이 과연 어디인지는 지난주 일련의 사건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부도덕한 정권은 물러나야 합니다.


이 거대한 부도덕의 현장에 국민은 절대 참관자나 구경꾼이 되어야 할 이유도 없고, 들러리 서야할 의무도 없습니다.

국민은 민주주의가 말살되고, 국민의 기본권이 야비하고 비열한 방법으로 묵살 당하고 있는 현실을 참아야 할 이유도,
용인해야 할 의무도 없습니다.

백보양보하여, 그것이 100보에서 50보의 후퇴가 아니라, 1보의 후퇴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대자인 국민은 민주주의로부터 후퇴를 종용하는 그 어떤 탄압도 받아들이고 양보해야할 의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에서 절대자는 결코 "신"이 아닙니다. 하물며 "대리자"들이 아님은 더욱 분명합니다.
민주주의에서 절대자는 오직 "국민"입니다. "신"조차도 국민의 마음 속에 있습니다.

국민들이 그 동안 너무나 큰 인내를 보이며 참아왔던 것은, 당신들이 우리 손으로 뽑았던, 우리의 "종"이었기 때문입니다.
주인의 손으로 직접 뽑은 종을 주인이 차마 내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이 말귀를 못알아먹고, 둔재인 것을 넘어 주인과 타인을 겨누는 해악을 반복하고 확대재생산하고 있다면, 조속히 달리 생각해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되풀이 되는 악행과, 장막에 갖힌 정권의 권력행사를 보면서 더 이상 인내가 답지가 될 수는 없습니다.
불의에 '인내'하는 것은 '정의'가 아닙니다. '인내'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국민은 민주주의의 후퇴를 단 하나도 용인해야할 의무가 없습니다.

민주주의의 전진을 방해하고 퇴행시키는 것이 있다면, 국민은 그러한 요소를 배제시키고, 권력의 중심에서 물려야 할 권한과 의무가 있습니다.


이동관 대변인은 그 언행과 영향력 행사가 부적절합니다. 일단 즉시 물러낼 것을 요구합니다.

판단력이 흐리고, 사리가 밝지 않으며, 지혜롭지 않은 이들을 권력의 중심에 두고 있는 것은,
정권과 권력이 망하는 지름길입니다. 폐착으로 가는 핵심원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국민의 분노와 인내심의 한계는 이미 이명박정권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자각하기 바랍니다. 

국민은 다 알고 있습니다. 더 이상 양심을 바닥에 버려두지 말기를 바랍니다.
버려두지 않았는데 불량한 양심이라면 조속히 물러나면 됩니다. 국민은 불량한 양심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쓰레기통에 쳐넣거나, 매각장에서 불태워도 상관없습니다.

개각이나 국정쇄신에 대한 기타 논의 이전에, 선결조건으로 이동관씨는 우선 즉각 물러나기를 요구합니다.

국민을 "폄하"하고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면서, 원상회복과 전진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각종 요구들이 수용되지 않는다면,
이명박정권 전체를 향한 대정권 항전에 나설 것입니다.  

현정권이 무엇을, 왜, 어떻게 잘못하고 있는지 못 느끼고 있다면, 더욱이 알면서도 밀어붙이고 있다면, 
그것이 또 물러나야 할 이유가 됩니다. 국민은 불량품, 함량미달, 기본미달 정권을 원하지 않습니다.

국민은 솔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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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필명으로 알려진 박OO씨가 뉴욕타임스와 가진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그는 한국사회의 광기를 목격했고, 더 이상 한국에서 살기 힘들기 때문에 이민을 가고 싶다는 감회를 피력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전형적인 책임전가, 자기회피라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인터넷 게시판상의 의견일 뿐인 미네르바의 글들에 검찰이나 정부가 너무 과민 반응하여 그에게 사법상의 무리를 주었을 수는 있다. 그리고 본인도 이 점은 분명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법원도 그의 글들이 모두 사실은 아니지만, 자기가 믿는 바 진실성이 아예 없었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무죄를 선고한다는 이유를 밝혔다.

이런 일련의 사법상의 진행이 미네르바 박OO씨 본인에게 무리를 주었지만, 이는 관련 피해보상 경과를 진행하여 보상받으면 될 일이다. 그런 시간들이 완전히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에 따른 보상과정을 진행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한참을 신나게 떠들어놓고, 자기는 아무 잘못이 없고, 다 네 탓이고, 사회 탓이고, 이 한국사회는 가망이 없구나, 희망이 없구나, 남의 탓으로 폄하하는 것은 전형적인 자기기만이고 소위 '지식인'적 태도의 오만함이고 방만함이다.

이런 소위 '지식인'적 자기변명과 책임회피는 한국사회 기성 '지식인 집단'의 전형적인 문제이고, 오늘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최악의 사실 반 '지식인적 자기변명'을 젊은 박OO씨로부터 듣는 것은 참으로 착잡할 수 밖에 없다.

도대체 한국사회가 당신에게 무엇을 잘못했나? 잘못하고 있다면, 정당하게 지적하고, 고치려고 한 발 내딛고 있는가?
회피의 정당한 원인만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가?


왜냐하면, 거짓말하고 잘못된 경제전망을 전파한 것은, '미네르바'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경제전망할 수 있고, 의견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의견들에 거짓말을 섞는다거나, 결과적으로 전망과 흐름에서 크게 벗어난다면 그 진실성이나 실력이나 양자에서 크게 문제될 수 밖에 없다. 

먼저 결론적으로 본인은 미네르바가 거짓말을 섞어가며 잘못된 경제전망을 전파하는 마당에, 너무나 큰 마음의 상심을 받고 그것을 돌려세우느라 근래 6개월간 너무나 힘든 시절을 보냈다.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결론적으로 그렇다. 

미네르바가 도덕적으로 문제를 지니는 것은 그의 '거짓말'에서 비롯된다.
누구나 게시판에 글 쓸 수 있고, 소설창작할 자유도 가진다. 그러나 그것은 '정직'해야 한다. 

자신이 미국어디에서 경력을 쌓았다거나, 금융전문가라거나, 고구마 판다거나, 노친네라고 하거나, 기타 여러가지 언급들은 다 기망에 해당한다. 그런 기망과 거짓말을 일상적으로 하면서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거짓말쟁이인거 누구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그렇게 거짓말했으므로, 이렇게 지적하는 것을 탓하지 말기 바란다.

거짓말 하지 말라. 정직하라. 

다음으로, 미네르바는 물론 경제에 대해 누구나 말할 수 있지만, 너무나 잘못된 경제전망을 유포시켰다.

이미 최악으로 치달아있어서, 최악이 다가왔다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최악의 순간을 어떻게 벗어나는가가 관심사가 되는 마당에, 최악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고, 다 망할 것처럼 얘기했다. 


미네르바나 그 추종자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그런 위험성은 이미 20007년 11,12월부터 경고해오고 있었고, 관련 집단에서는 이미 2008년 1,2월부터 누누히 경고해 오던 바였다. 왜냐하면 관련 게시판에도 자주 언급했지만, 해외 상품가격이 폭등하는 가운데(상품버블 사이클의 한마디 최후), 수입물가가 폭등할 것으로 전망되고, 시차를 가지고 유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마당에, 정부는 연초부터 고환율 정책을 공공연하게 표방했기 때문이다.

정말 까놓고 얘기해서. 관련자들은 한량들이거나 아무것도 안보거 있었거나,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즉, 리스크 제어를 먼저 했어야 하는데, 위기를 오히려 가중시켰다. 그게 2008년 하반기, 후반기로 가면서 터진 것이다.

이미 미국발 위기에 대해서도, 일상적 위기가 아니라고 2008년 연초부터 경고해 주었다.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고, 그런 낌새도 없이, 오히려 위기를 확장시켰다. 한국은행이 정신차린 것도 2008년 8월말, 9월이 다 되서이다. 리먼브러더스 인수해야 한다고 그런 수장이 앉아있는 산업은행은 말할 것도 없다.

이미 열불나게 다 터진 마당에, 미네르바는 여기다가 기름칠을 했다. 물론 그 답답한 심정은 이해하지만, 다 터진 마당에 기름칠 하면 뭐하는가?

오히려 사람들의 심리만 혼동케 했고, 현실과 과정(process), 경과에 입각한 보다 냉철하고 정직한 분석을 주지 못했다. 여기에 부하뇌동한 언론은 더욱 말할 것도 없다. 

미리 말하면, 제발 공부 좀 하길 바란다. 공부가 별게 아니다. 주변 상황 잘 관찰하는게 공부하는거다. 

2008년 연초부터 고환율을 공공연하게 치고간 정부 관련자들은 이런 관점에서 보면, 참으로 한심하다고밖에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공부 jo 또 안한 것이다. 자리 차지하고 관직에 앉아있으면 다인가?

이미 본인과 같은 사람은 2008년 10월 26일에 주식 매수에 나서는 것이 괜찮겠다고 했다. 딱 그때 사라고 했다. 그리고 2008년 10월 27일에 주식매집에 나서자고 했다. 그리고 2008년 11월 26일에도 주식매입에 나서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보라. 2008년 10월 27일이 어떤 날인가?

주가가 최근에 연중 최저치를 찍은 날이고, 지금 1,400p 근처까지 갔다 온 것을 생각하면, 주가가 무려 500p 육박하게 상승했다. 

이런 시절에 미네르바는 주가가 500p를 가고, 환율이 어떻고, 일본자본이 어떻고 하는 당치 않은 글들을 써재꼈다.

그렇다는 것이다. 냉정하게 책임감 있게 하라는 것이다.

누군가 허튼 소리로 대중적인 영향력을 가지면, 제대로된 정보를 제공해주고 판단을 구하는데는 엄청난 노고가 든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 생각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정직하게 하라는 것이다.
정직하지 못하고, 뻥치는 것을 예사로 하는데 거기에 무슨 냉철한 분석이 나오겠는가?

최근에 뉴욕타임스가 미네르바를 인터뷰했다는 내용이나, 미네르바가 한국사회를 폄하한 내용을 보면, 뉴욕타임스나 미네르바나 그 자질들이 매우 의심스럽다. 

뉴욕타임스는 미네르바의 말이 다 사실이었다고 치부하고 있다. 도대체 사실이 뭐가 있었나?
하나도 맞은게 없다. 미네르바와 같은 어설픈 거짓섞인 얘기들을 돌려세우느라 너무 고생했다. 

다음으로 미네르바는 한국사회가 당신에게 뭘 그렇게 잘못했나?

미네르바는 게시판에 올린 당신의 수많은 거짓된 글들에 대해서 네티즌들에게 사과한 적이 있는가?

그 모든 것이 소설이었고, 사실이 아니었다고 사과한 적이 있는가? 

여기에 사람들이 자신이 명문대를 안나와서 욕한다거나, 이제는 버렸네 어째네 하고 한탄하는 것은 궁상맞기 이를데 없다.
명문대 나왔으면 위와 같은 모든 것들이 정당화되는가?
전망이 예측력이 높으냐 낮으냐는 둘째 문제다.

정직해야 한다. 진리와 공동체의 가치는 정직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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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광고임에도 불구하고 광고표시를 안하는 일부 글들은 문제가 된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미 이런 점들을 충분히 밝혔으나, 많은 분들께서 논점을 오해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블로그로 돈을 벌 수 있는지에도 관심이 크신 거 같은데, 그런 점들에 대해서 이 글을 포함하여 2편으로 밝히고자 합니다. 블로그 자체의 경제적 역할과 한계, 가능성에 관해서 추가로 논의하는 것이 충분히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두 편의 글에서는 본격적으로 '블로그 광고'에 대해서 논하고자 합니다.

먼저 첫번째로, '블로그 광고는 광고표시를 왜 분명하게 해야 하는가?' 입니다.

이미 애초에 지적한 3편의 글들의 잠정적인 결론이 '블로그 광고는 광고표시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였으나, 여러 블로그들이나 블로그 새 글들을 보면 논점의 일탈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이런 논점이 와전되어 '블로그에 광고해야하나, 말아야하나?'하는 새로운 논점으로 전이되었다고 보이는데, 후자의 논점은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될 것은 없습니다. 즉, 블로그에 광고하고 싶은 사람은 광고해도 되고, 하기 싫은 사람은 안해도 됩니다. 


1. 블로그에 광고하면 안되나? 
블로그에 광고해도 됩니다. 블로그에 광고하면 안된다는 법이 있습니까?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하면 됩니다.

블로그 광고하고 싶은 분은 광고하시면 됩니다. 마치 '블로그 광고'를 하면 안된다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블로그 광고는 국내에서도 일반화되어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구글을 빼고는 물론 나머지 국내광고시스템은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이런 구체적인 점들은 차후 두 번째 글로 새로 언급하겠습니다.) 해외 블로그사회에서도 일반적인 흐름입니다. 왜냐하면 블로그도 웹페이지의 하나인 것은 분명하고, 큰 차별성은 가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블로그에 광고가 늘어나서 아쉬어하는 분들은 있어도, 블로그에 광고하면 안된다고 원천적으로 반대하는 분들 없습니다. 

좋은 점)
_블로그에 광고하면 광고수익이 쥐꼬리만큼이라도 생겨서, 아이스크림이라도 사먹을 수 있고, 넉넉치는 않더라도 아주 쥐꼬리만한 경제적 보상이 주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블로그 운영의 보람이 이런 관점에서는 다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제적 보상이 항상 따르는 것은 아니고, 그런 경제적 보상의 차이는 광고의 효율성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_블로그가 좋은 광고들을 유치,제공했을 때는 더 다양하고 적절한 정보를 방문객에게 전달해 줄 수 있습니다.
 광고도 필요한 사람에게 적절히 제공되었을 때는 정보로써의 성격을 갖는다는 것 맞습니다. 

안좋은 점) 
_블로그에 광고를 넣기 시작하면, 블로그의 미관(美觀)이나 방문자의 가독성(可讀性)을 해칠 수 있습니다. 책에 광고가 들어가 있다면 아주 유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책의 페이지마다 광고가 들어가 있다면 더 유쾌하지는 않을 겁니다. 블로그에도 광고가 무리하게 많이 들어가 있으면, 방문자의 불쾌감을 야기하여 반감을 불러올 수 있고, 오히려 광고효과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_블로그 로딩(loading,읽는) 속도가 느려집니다. 블로그는 엄연히 인터넷 환경에서 돌아가고 있죠? 블로그의 로딩 속도가 느려지면, 그 블로그의 접근성이 떨어지고, 반송률(안보고 페이지 그냥 닫아버리는 경우)이 높아지게 됩니다. 너무 많은 광고와 위젯으로 블로그 로딩이 느려지면 앞으로도 그 블로그를 방문 리스트에서 제외할 가능성은 점차 높아집니다.

이런 장단점들이 있습니다. 무엇을 더 중시하고 추구할 것인가는 개별 블로그들의 선택 문제이고, 관점문제입니다. 
효과적인 광고집행은 단점을 최소화면서 장점들만을 추구할 수도 있고, 잘못된 블로그 광고는 장점은 하나도 살리지 못하면서, 단점들만을 더해갈 수도 있습니다. 


2. 블로그 광고할 때 주의할 점 
위와 같은 관점에서, 블로그 광고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_블로그 미관을 크게 해치지 않을 것
_블로그 방문자의 가독성을 해치지 않을 것
_블로그 로딩 속도가 과도하게 지연되지 않을 정도로만 제한할 것
_블로그 방문자들이 큰 반감을 가지지 않도록 할 것 
_블로그 광고가 블로그 운영자나 방문자에게 모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할 것

미관이나 기능면에서 보면 이 정도를 들 수 있겠습니다.  
 

3. 블로그 광고할 때 지켜져야 할 점

_광고표시를 분명히 하라
소비자든 웹사용자든 아무리 좋은 정보인지를 떠나서 그것이 광고인지, 아닌지 알고 선택할 권리가 있고, 글 게시자는 그것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이것는 자유 사회에 아주 기본적인 사항입니다. 자유사회의 법은 개인과 사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은폐행위들은 '법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숨겨진 광고여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분들과는 달리,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광고'라면 클릭을 안하거나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보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자기선택권', 결국 '자유(freedom)'와 '인격'을 침해하기 때문에, 광고임을 숨기고 본문이나 글의 일부인 척 은폐, 가장하는 포스트 방식은 문제가 됩니다.

또한, 블로그방문자가 블로그 웹페이지를 방문하거나 특정 글을 선택해서 열어보게 되는 목적은, 그러한 클릭에 담긴 자신의 방문 목적이 허락하는 한도 안에서만 그칩니다. 이런 웹페이지가 새로운 추가외부링크를 권장하거나, 새로운 광고링크를 유도할 때는 매우 조심스럽게 해야 하고, 방문자가 자신의 선택권과 결정권을 실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유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웹페이지를 방문했는데 무조건 팝업이 뜨거나, 이런 팝업이 자동으로 다른 사이트로 연결된다면 그것이 광고이든 본문이든 우리는 그것을 광고나 본문으로 부르지 않습니다. '스팸'으로 부릅니다.


_숨겨진 광고는 경제적 비용, 법적으로도 문제 
숨겨진광고는 경제적 비용의 관점에서도 분명히 문제가 됩니다. 일부 분들께서는 숨겨진 광고가 뭐가 문제냐, 누구에게 손해가 난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숨겨진 블로그 광고의 문제점은 경제적인 부수적 관점에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광고주가 광고를 집행하는 것은 광고비용이 따르게 됩니다. 광고비용을 지불하고 광고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광고비는 당연히 상품 가격에 포함되고, 소비자에게 일정부분 전가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매하는 상품의 가격에는 광고비용이 분명하게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떤 블로그가 특정 광고를 유치하고 있고 이에 대해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 있다면, 이러한 블로그의 광고수익은 광고주가 지불하고 있는 엄연한 비용입니다.

우리가 광고(advertisement)라는 것을 알고 어떤 배너를 클릭하지 않게 되는 것은, 그런 광고내용이 관심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그런 광고를 클릭하는 것은 광고주의 비용으로, 다시 소비자 구매비용으로 전가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관심이 없거나 구매의사가 없는데 광고나 배너를 클릭하게 되면 광고주의 비용은 올라가게 되고, 실제로 구매하게 되는 구매자의 구매비용(물건값)만이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광고주 입장에서는 살 생각없어도 한 번 구경만이라도 해봐라...하고 좋아할 수도 있으니, 괜찮지 않느냐...하고 반론할 수 있으나, 그것은 엄연히 일반화의 오류에 해당하는 환경입니다.

광고를 통해 블로그 광고 유치자는 쥐꼬리만하더라도 수익을 얻게 됩니다. 그런 수익은 정당해야 하고, 타인의 비용이나 그릇된 클릭으로 연결되어서는 안됩니다.

최근에 특정게시물의 포스트 방식에 문제삼은 바 있는데, 해당 포스트는 위와 같은 경제적 문제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광고라는 것을 알았으면, 구매의사가 없는데 단순한 구경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구경이 아니라 클릭을 통해 구매를 하였으면, 그러한 구매비용의 일부가 광고비용으로 지불되고 해당 포스트 게시자에게 이전되는 것을 알았으면, 광고비는 당연히 구매비용에 포한된다는 것을 알았으면, 당연히 클릭(click)하지 않았을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리고 이런 당사자들의 의사는 경제적으로 법적으로도, 자유의지의 측면에서도 당연히 존중되고 보장되어야 합니다. 

해당 포스트가 숨긴 광고수익형식은 CPS(Cost per Sales)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해당포스트의 광고수익형식이 CPC(Cost per Click)이었다면 어땠을까요? CPC는 클릭할 때마다 광고주에게 과금됩니다. 구매의사도 없는데 단순히 구경인 줄 알고 방문했는데 이런 비용이 광고주에게 과금되게 된다면, 광고운영원칙에 위반되게 되고, 부정광고에 해당하게 됩니다. 
물론 해당포스트의 방식은 CPS였습니다. 그러나 CPS라고 하더라도 물품구매(Sales)에 따른 광고비용이 후발적으로 해당 블로그에게 이전되기 때문에, 광고비가 나가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광고포스트를 하기로 했다면, '그러한 광고비가 지불되고 있다는 사실, 이건 분명히 광고이고, 이런 광고에 따른 구매비용이 당연히 물품구매 비용에 포함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주어야 합니다. 

어떻게 알려주면 될까요? 간단합니다. 이것은 광고다. '광고',  'Advertisement' 문구를 분명히 포함시켜주어야 하고, 누가 보더라도 광고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알기 쉬운 방식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_컨텐츠와 광고를 구분하라
단순히 광고가 컨텐츠에 포함되어 있다고 '컨텐츠가 광고화'되었다고 얘기하지는 않습니다. 광고성, 홍보성 포스트임을 밝히고 글을 게시할 수도 있고, 이런 글에 광고가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문맥과 문구, 배너가 광고이고, 어떤 것이 본문인지는 분명히 드러나게 해야 합니다. 그런 이유는 위의 자유의지, 법적, 경제적 관점에서 밝혔다고 봅니다.

즉, 컨텐츠 내에서도 광고가 상황에 따라 있을 수 있지만, 확실히 그것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컨텐츠 전체가 광고판이 될 수도 있나요?
물론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컨텐츠는 단순한 링크나 정보가 아니라, 전부 광고로 도배되어 있다'고 분명히 밝히면, 컨텐츠 전부가 광고로 도배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광고'라고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컨텐츠를 누가 좋아라 할까요? 가능하겠지만, 무슨 게시글 포스팅을 이딴 식으로 하나, 오히려 반감만 커지기 쉽상입니다. 컨텐츠에 광고가 담기는 것을 독자들 대부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포스트 경향성이 지속되게 되면, 독자들이 다 떠나버리게 됩니다. 사람이 찾지 않는 컨텐츠에 광고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따라서, 컨텐츠 내에서도 광고와 본문을 분리해야 하지만, 더 권장되는 흐름은, 
컨텐츠, 본문 자체는 되도록 자기가 생산하는 내용물만을 싣고, 광고는 관심있는 사람만 알아서 선택할 수 있도록, 프레임(frame) 이나 사이드바(sidebar)로 빼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물론, 문맥에 따라 자연스럽게 읽히는 광고, 키워드광고 방식이 좋은 효과를 낸다고 반론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이런 키워드광고(본문의 특정문구에 광고링크를 걸어두는 행위)에 있어서도, 클릭하기 전에 광고의 내용물에 대한 암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암시나 미리보기도 없이 무작정 클릭하게 해서 어떤 사이트가 열리게 하는 광고방식은 언론지에도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_광고는 '정보'지만 모두에게 정보가 되지는 않는다

광고도 필요한 사람에게는 정보가 됩니다. 광고가 효용이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모든 상황에서 광고가 정보가 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당신은 모든 광고에서 정보를 얻고, 모든 광고배너를 클릭해 봅니까? 대부분은 그냥 지나쳐 넘어가다 필요한 경우에만 보게 됩니다. 어떤 특정광고가 나에게 정보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다른 모든 사람에게까지 정보를 주었다고 생각하면 성급한 일반화입니다. 더욱이 광고라는 것을 숨긴 '은폐된 광고'가 나에게 좋은 정보를 주었다고, 다른 사람에게까지 유용할 것으로 문제가 없다고 논하는 것은 논점의 일탈에 해당하며, 설득력이 있지도 않습니다. 


_광고가 항상 유용한 정보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광고가 광고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항상 유용한 정보만을 제공해주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대학생들이 자주 찾는 사이트에, 학자금대출 연금리100%짜리 대출광고가 올라와 있다고 합시다. 학자금대출을 연500만원 빌리면, 1년후에 1,000만원으로 갚아야 한다는 내용이 됩니다. 아...대학생들에게 학자금대출 정보를 제공해주니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오히려 해악적 정보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광고가 너무 벗어나지 않도록 광고내용을 취사선택하여 게시해 주어야 합니다.


_누구나 광고를 선택해 볼 수 있지만, 아무도 광고를 선택해야 할 의무는 없다. 
위에서 한 얘기이지만, 누구나 광고를 선택해서 볼 수 있지만, 아무도 광고를 선택해서 꼭 보아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이고, 개인의 선택권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당신에게 오늘 아침은 무얼 먹어라, 이 광고는 광고라는 것을 알지도 말고, 묻지도 말고 그냥 '구경'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클릭해서 봐라고 말할 권리도 없고, 그런 상황을 용인해야할 의무도 없습니다.
블로그에서 광고를 선택할 권한은 그것이 광고라는 것을 알고, 방문자가 자기 자유의지에 따라 취사선택해야 할 자기의 고유권한에 해당합니다. 어떤 식당에 갔는데, 아무 음식이나 내주면 좋습니까? 먹어야 합니까? 식당에 갔으면 메뉴판을 봐야하고 자기가 먹고싶은 것을 골라먹을 자유와 권리가 당연히 있습니다.
블로그 광고도 마찬가지입니다.


_숨겨진 광고는 Cheating(기망) 행위에 해당한다.
위와 같은 법적, 경제적 문제 외에도 '숨겨진 광고는 무례하고, 불쾌한 것입니다.' 그것이 경제적, 법적 문제들을 야기하는가를 논하기 이전에, '광고라는 것을 모르고 착오를 유도하여 선택하게 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강한 불쾌감을 유발하는 것이고, 무례한 행동입니다.' 나는 별로 불쾌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불쾌하고 무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다수 있습니다. 대부분일 수도 있습니다.

티스토리 내의 특정 블로그가 취하고 있는 위와 같은 링크는 숨겨진 링크의 대표적인 경우에 해당합니다.
위의 사례는 단순히 마우스를 가져갔을 때는 아무 문구도 나오지 않으며, 제휴마케팅 사이트를 단순히 소개하고 있는 것 같지만, 문구에 가져가서 오른쪽 마우스키를 누르면 숨겨진 링크 내용이 나오는데, 개인적인 광고링크입니다. 단순히 사이트를 소개하고 있으면 문제가 안되지만, 광고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표시를 안하고 있기 때문에, 숨겨진 광고에 해당합니다.
(물론 제휴마케팅을 주선하는 해당사이트들은 문제없습니다. 저렇게 숨기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위와 같은 여러가지 점에서, 블로그 광고임에도 불구하고, <광고>, <advertisement>라는 것을 드러나지 않게 하거나, 추정할 수 없게 하거나 은폐시키는 행위는 문제가 됩니다. 

블로그 광고도 떳떳하고 정직하고 정당해야 합니다. 

블로그에 광고를 하거나 광고가 많다, 적다는 문제삼지 않습니다. 그건 블로그마다 자기 알아서 할 일이고, 그에 따른 반작용도 자기가 감당해 내야 할 입니다. 

그러나
숨겨진 블로그 광고는 cheating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블로그 광고는 드러나야 합니다. 

블로그 광고는 잠재적 소비자를 겨냥하고 있으므로, 소비자는 광고라는 것을 알고(to know it's an advertisement), 광고를 선택해서 볼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선택권과 자유의지(freedom of choice)를 향유해야 합니다.

광고임을 숨기는 cheating행위는 이런 소비자의 알권리와 선택권을 침범합니다. 그래서 지양되어야 합니다.

결국 종합해서 보면 '블로그'가 논점이 아니라, '광고'이기 때문에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광고는 광고답게 '광고 대접'을 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얘기하면 블로그 광고가 뭐 대단한 수익이라도 되는 굉장한 것으로 얘기하는 것 같지만, 블로그광고가 그리 대단한 수익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다음 편에서는 '블로그 광고'의 경제적 성과에 대해서 논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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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가 홈페이지를 개편하면서 뉴스캐스트를 통해 해당 언론매체가 직접 뉴스캐스트의 주요 기사와 제목을 선정하게 되었고, 트래픽도 해당 언론매체로 유입되게 되었다.

트래픽이 각 언론매체 홈페이지로 직접 유입될 경우, 해당 매체는 트래픽 증가에 따라 노출형 광고수입이 증가함은 물론, 매체의 점유율도 올릴 수 있다.

이러한 이점을 악용하여, 일부 언론사와 언론매체는 기사의 내용과 전혀 어울리지도 않고, 관련도 없는 선정적이고 현혹적인 기사 제목을 뽑으면서, 네티즌 유저들을 혼동케 하고 기만하고 있다.

이러한 기만적인 행동은 일시적인 트래픽 증가로 이어질 수는 있겠지만,
해당언론사와 해당기자, 해당매체 전반에 대해 불신을 키우고, 유저들과 뉴스 수요자들의 신뢰를 잃게 하는
어리석고 기망적 행위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네이버 뉴스캐스트의 경우 초기에 그런 현상이 덜 했지만, 트래픽 직접 유입에 따른 재미를 언론매체들이 쏠쏠하게 느끼면서,
일부 매체들은 언론의 본질적 사명과 도덕성을 망각하고, 기망적인 행태로 주객이 전도된 야만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이런 현상은 최근에 심해지고 있는데, 아래 두 개는 이 시간에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는 그러한 예들이다.


1) 첫째 예시를 보면, 뉴스캐스트 메인 제목은 "미국 사실상 망했다" 이다. 그런데 실제 기사 내용을 보면, 
    버크셔해서웨이와 GE가 CDS 시장에서 할인되어, 즉 프리미엄이 높게 형성되어 거래되고 있다는 것이다. 
    버크셔해서웨이, GE가 CDS 시장에서 할인되어 거래되는 것과 미국 사실상 망한 것과 무슨 상관이 있으며 뭐가 연관되는가?  
    본질적 연관성도 없는 마당에 해당 언론사와 기자의 자질과 의도가 심각하게 의심되는 수준이다.
    더욱이 기사 업로드 시간을 보면, 선정적 제목의 선정으로 높은 트래픽을 유치한 것을 볼 수 있다.

   언론의 사명과 정직성을 망각한 채, 트래픽 유치에만 골몰하는 한, 그런 언론에 좋은 시각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며, 
   좋은 미래가 보장되지도 않을 것이다. 


2) 둘째 예시를 보면, 고연경씨에 대해 소개하는 글인데, 뉴스캐스트 제목을 보면 고연경, 이대, 서울대... 로 되어 있어,
    고려대, 연세대의 특정 학과, 이대, 서울대 등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실제로 클릭해서 보면, 고연경씨라는 분이 이대를 입학했다는 얘기는 있지만, 글의 어디에도 서울대 관련 내용은
    나오지 않으며, 해당 사항도 없다. 

    즉, 언론의 정직성을 망각한 채, 낚시질을 하고 있다.


언론의 사명은 정직성과 정확성을 바탕으로, 사회의 깨끗함과 정직함을 이끌고 추구하여, 권력과 이권으로부터 물들기 쉬운
사회를 방어하고 공동의 컨센서스를 바탕으로 자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언론이 이와 같은 기만적 행동으로 부정직한 기망을 일삼는다면, 그것은 언론이라고 할 수 도 없을 것이고, 기자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위의 두개는 예시에 불과하며,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이것 말고도, 최근에 그런 현상이 부쩍 많아지고 있는데, 각 언론매체들은 네티즌들을 누구처럼 바보로 여기는 것이 아닌 한,
그 기망적 행태를 차후부터는 즉각 중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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