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m Lucky 최근글 <--

'자살'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0.06.30 박용하, 최진실, 최진영, 결국 모든 자살 원인은 술이었다
  2. 2009.05.27 변희재, 노무현 모욕주는 행위, 인간에 대한 매우 얕은 시각 1
  3. 2009.05.26 사지로 내몬 '빨대 검찰과 언론' _진중권
  4. 2009.05.23 김동길 교수 자살 권유는 범죄행위 24

인기 탤런트 박용하(1977년생)가 음주 후 '자살'을 한 것으로 밝혀져 또 한번 충격을 주고 있다.

최진실, 최진영에 이어 우리는 다시 비보를 접했기 때문이다.

먼저 삼가 고인의 명복을 기리면서, 과연 이런 비극이 왜 계속 찾아오고 있는지, 그 원인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들의 지인(知人)이든 아니든 이런 소식이 들려오는데 누구든지 절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여전히 인생살이가 한참 남은 젊은 축에 속했다는 점에서 그 안타까움이 더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강력하게 확인해야할 점이 하나 있다.
 
박용하, 최진실, 최진영 이들의 '자살' 원인이 모두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 원인이 무엇인가?

바로 '술'이다. 술 때문이다.

술 마시고 '사고'를 친 것이다. '의도'했던 것이든 '충동적'이었던 것이든, 술을 마시고 일을 벌린 것은 변함이 없다. 

결국 '자살'로 본인은 물론, 지인들과 대중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희생을 안겨준 사고의 원흉은 바로 '술'이다.

이 놈의 술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술'을 '위험 상품'으로 취급하지 않는 듯 하다.

언제부터 '술'은 마치 유쾌한 일상처럼 우리곁을 파고 들고 있다.

하다못해 '담배' 광고는 제한을 받고 있는데,
'술' 광고는 마치 '젊음의 열기'인 것처럼 TV광고 현장에서도 버젓이 파고들고 있다.

이제는 '술 광고'에 유력한 대중가수들이 노래까지 담아서 발표하는 지경에 왔다.
그 대상이 미래 수요층인 '청소년'을 향하는 이미지 제고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왜 '담배'는 규제하면서, '술'은 규제를 안하는가?

'술'도 당연히 위험상품인 마당에, '술'을 제대로 마시는 방안에는 인색하기 때문에, 이런 '충동적 사고'가 계속 터지는 것이다. '술 마시는 법'도 제대로 배워야 하고, 가르쳐야할 필요가 있다.

연예인들의 이런 충동적 사고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사고도 마찬가지로 '술'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

예컨대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의 각종 사고도 '술'에 대한 '경계심' 부족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술'에 대한 경각심이 부재한 상태에서, 경계심이 풀렸기 때문에 이런 사고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사고의 주범인 '술'에 대한 철저한 책임 추궁과 사고 방지 대책이 있어야 한다. 


절대 술은 우리에게 이롭기만 한 친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죽음'을 불러오지 않았는가?  


'술'은 그래서 욕먹어야 마땅하다. 모든 '술 광고'도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

'경고 문구'도 보다 더 분명하게 포함되어야 하고, '술'을 제대로 마시는 공익 캠페인도 확대되어야 한다. 
교육현장에서도 마냥 나쁘다고 할 것이 아니라, '술'을 어떻게 즐기고, 자제해야만 하는지 상황별로 가르쳐야 한다.

'술 광고' 찍으면 미녀 탤런트 반열에 올라가고, CF 인기 대열을 달릴 수 있다는 잘못된 관행도 바로잡혀야 한다. 
TV나 각종 매체에서의 '술 광고'는 '대출 광고'처럼 혐오적 광고로 분류되어야 한다. 

상품에 대한 위험 고지에는 인색하면서 '술'을 미화하기에 바쁜 '상술'도 대중적인 '도마' 위에 올라야 하지 않을까.

먼저 우리 스스로가 '술'에 대한 경각심을 깨우고, 경계심을 늦추어서는 안된다.

"술이 왠수다"는 말은 단지 구호가 아니다. '술'은 언제나 '적과의 동침'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관련글]
기분 나쁘다고 술 마시면 안됩니다
우울증 치료법 _즐거운 음악을 듣자



맞춤검색

,

 
변희재씨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장례절차, 국민장과 관련하여 고인(故人)에 대해 모욕을 주고 있고, 
인간의 고통에 대한 매우 얕은 시각을 드러내고 있어서 안타깝다. 

인간의 큰 고통 중의 하나는 인간으로부터 비롯된다.

특히 구조화된 폭력인 권력이 그 강압력를 악용해서 인간을 억압할 때 얼마나 큰 인간적인 고통과 폐해가 따르는지는 이미 30년 이래의 한국 현대사만 보더라도 충분히 증명하고도 남는다.

변희재씨가 논란을 일으켰으므로, 물론 그의 주장을 들여다보며, 하나씩 살펴본다. 


변희재씨의 첫째 주장을 보면,

"국민의 한 명으로서,내가 번 돈으로 세금을 국가에 내는 납세자의 한 사람으로서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 국민세금은 단 돈 1원도 투입돼서는 안 된다."


-- 세금을 내는 행위와 세금을 집행하는 행위는 엄연히 구분된다. '납세의 의무'는 국민의 기본적인 의무이고, 전체 '국가재정'을 어떻게 쓸 것인가는 입법권력(국회, 법)과 행정권력(정부, 행정력)에 의해 결정되고 집행되며, 사법권력(사법부)의 감시를 받을 뿐이다. 여론은 물론 참고사항이 되겠지만, "국가재정"의 집행은 제정법에 귀속되므로, 법이 우선이다.

-- 묻고싶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가 법에 위반되는가? 고인의 장례는 법에 따라 집행되는 것이다.

-- '재정'의 집행은 국회나 행정권력에 따라 '정치적'으로 배분되기 때문에, 물론 당연히 개별 '납세자' 입장에서 보면 마음에 안드는 흐름도 있을 수 있다. 어떤 '납세자'는 자신이 내는 세금이 '국방비'나 '무기를 사는 비용'으로 절대로 쓰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고, 국방비를 쓰는게 아예 잘못되었다고 한다면 정당한가?

'국가재정'은 법에 따라 집행되고 있고, 이러한 '법의 집행'은 국민의 합치된 컨센서스(consensus), 일반의사에 따르고 있다고 일단 봐야 한다. 

따라서, 변희재씨의 첫째 주장은 '납세의 의무', '국가재정'의 집행에 대한 질이 떨어지는 개인적 옹아리에 불과하다.


변희재씨의 둘째 주장을 보면,

고인이 되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하여 "당신은 왜 죽음을 선택했냐?"고 따지고 있다.

-- 변희재씨에게 묻고싶다. 이미 죽은 사람한테 "너 왜 죽었냐?"고 따져서 뭐하나?
    사후(事後)에 이미 돌아가신 사람보고, 너 왜 죽었냐고 수사기관이 캐듯 따져서 뭐하느냔 말이다. 무덤에 데고 조서라도 받고 싶은가?   안 돌아가셨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누가 그걸 모르나?
    이미 돌아가셨고, 살릴 수가 없기 때문에 안타까운 것이다. 누가 '죽었으니까, 참 잘했네, 참 잘한 선택이네'라고 칭찬이라도 했는가? 안타까운 것이다. 
    살아계실 때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꼭 살아가시라고 응원해보지 그랬냐고 반문해 보고 싶다.
    살아계실 때도 '자살하라'고 종용한 저 정신나간 김동길씨한테도 한마디 하시지 그랬냐고 '이미 일이 다 터진 마당에' 변희재씨에게 '따져보고' 싶다. 왜 변희재씨는 노무현씨를 살리지 못했는지 '따져보고' 싶다는 것이다. 
    살리지도 못했으면서, 뭔 사후에 본인에게 삿대질이냐 이 말이다.   
      

변희재씨의 셋째 주장을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하는 의무를 저버렸다"고 하고 있는데,

--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동안 최선을 다해서 살지 않은 것인가? 
    어떤 인간도 타인이 보기에는 완벽할 수는 없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인간은 인간일 뿐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최선을 다했는지,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지 살아왔는지는, 오직 그의 양심과 양심에 따르는 고귀한 삶이 첫번째 기준, 준거가 된다. 
    노무현씨는 제3자가 보기에도 자신의 인간적인 양심과 소신을 지켜왔고,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가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지 않았다는 어떤 증명도 없다. 더욱이 일반적으로 말하면, 그러한 증명이 있더라도, 한 개인의 삶을 타인이 일방적으로 제단해야할 어떤 권한도 없다.


변희재씨는 전직대통령이 "그 동안 수고했으니 놀고 먹으면 안되고",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은 전직대통령의 의무는 "그 명이 다할 때까지 오래살면서 학자들의 연구소재가 되어주어야 한다"고 괘변을 늘어놓고 있다. 

-- 전직대통령의 '예우'에 관한 법률은 말 그대로 '예우"를 담고 있는 것이다. 국가라는 전체공동체를 이끌어온 노고에 대해서 '대우'해 주는 것이다. 또 이런 '예우'는 연금의 성격도 지닌다. 연금이 뭔가? 은퇴했으니 놀고 먹으라는 소리다. 그동안 수고했으니 놀고 먹으라는 소리라는 것이다. 

-- 또한 '그 명이 다할때까지 오래살면서 학자들의 연구소재가 되라'고 했다. 노무현씨가 무슨 '실험실의 표본'이라도 되는가? 학계에서 노무현씨를 연구하는 것은 학계 자신의 몫이거나, 학계 자신의 학문적 자유의 선택이지, 노무현씨의 의무가 아니라는 것이고, 노무현씨가 '실험실의 표본'이 되어야할 의무도 없다는 것이다.

-- 물론 전직대통령으로 '사회적 의무'는 있다. 현직자들이 대우를 해준다면 현직에서 수행할 수 있는 명예직의 권한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대우를 해주고 있을 때의 일이다. 전임자에게 죽음을 끈질기게 강요한 현실이 과연 '예우'인가?


변희재씨의 다섯째 주장을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자신의 패거리의 안위만 걱정했던 조폭의 보스", "자신의 측근을 살라기 위해 장렬히 몸을 던지는 조폭의 보스"와 같은 행위라고 고인을 욕되게 하고, 폄하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 먼저 유족이나 고인의 명예관리 당사자들께서 어떤 법적인 조치도 취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조폭'인가?  
    아니면, 조폭과 비슷하다는 것인가, 조폭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인가? 
    우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조폭 두목"이어서 슬퍼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조폭 패밀리"라는 것인가?
    고인(故人)은 물론, 고인이 되시지 않았더라도, 본인을 두번 세번 죽이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 변희재씨는, '인간'이나 '죽음'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특히, 개념적으로나 혹은 자신이 아닌 타인(他人)의 죽음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묻고 싶다. 

    자연적 삶을 마감하지 못하고, 사고나 죽음의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은 어떠한 이유에서도 비극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람이 직접 되보지는 안았기 때문에, 그 고통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헤아일 뿐이다. 
      

죽음을 강요한 정황이나, 죽음에 이르게 된 인간의 본질적 고통을 느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본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염없는 슬픔과 안타까움을 느끼고 표현하고 있다. 이런 지경에게까지 오게한 권력의 부당함과 일부 사람들의 어리석음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있다.

무엇이 어떻게 고인을 희생시켰는지는 앞으로도 찬찬히 봐야 한다.


그러나, 필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면, 노무현은 '인간 노무현'으로 돌아가신 것이다. 
그가 처했던 인생의 시점으로 보면, '촌부(村夫)'로 죽은 것이고, '아버지'로서 죽은 것이다. 
그것은 그가 말년에 가고자 했던 길이고, 그가 실제로 살고 있었던 인생의 모습이었다.
구조화된 권력, 부당한 권력이 '촌부'로, '아버지'로 이미 돌아간 자신을 부정하라 하고, 자신이 아닌 타인의 고통을 야기하기 때문에 고통을 느낀 것이다. 인간의 행복과 자기결정, 인격을 심각하게 침해한 것이다. 권력이라는 폭력의 이름으로. 

우리가, 봉하마을로 돌아간 노무현의 모습을 보며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촌부로 돌아가 여느 아버지들처럼 평안하게 조용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적어도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그것은 평화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의 평화이기도 했지만, 우리 모두의 평화이기도 했다.
이 평화는 깨졌다. 노무현 당신의 평화는 물론 죽음이라는 영원한 안식을 통해 먼저 지켜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평화는 깨졌고, 이런 평화를 깬 당사자들은 조만간 그 죄값을 치루게 될 것이다.    



우리가 슬퍼하는 것은 아버지 다음으로 중요한 우리의 '아버지', 나이 들어서 이제 여생을 보내셔야 할 '촌부가 되신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는 무엇이기 이전에, 자연으로 돌아간 우리 모두의 '아버지', '어른'이었다. 그래서 더 슬픈 것이다.


변희재씨는 유족들과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인간의 본질적 고통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곰곰히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가 동시대 사람들과 앞으로 올 후대들에게 '삶'에 대해서 얘기할 수는 있어도, 고인이 되신 노무현씨를 폄하할 권한은 그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변희재씨의 논지는 별로 주목할 값어치가 없다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회자되고 논란이 되므로 한말씀 남겨드리는 것이다. 당신께서는 조용히 앉아, 김현승님의 <아버지의 마음>을 조용히 음독해 볼 것을 권장한다.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 김현승, '아버지의 마음' 中에서


맞춤검색

,
 

* 이 글은, 2009년 5월 25일 진중권 교수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상황에 대해서 냉정하게 제시하고 있고, 잘 쓰여진 글이어서 올립니다. 출처는 경향신문 기고 기사 입니다. (원기사 링크 클릭)

사지로 내몬 '빨대 검찰과 언론' _진중권

2007년 12월28일, 당시 이명박 당선자는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전임자를 잘 모시는 전통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은 지켜졌다. 노 전 대통령이 몸을 던진 지난 23일, 이 대통령은 비서관들에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 어긋남이 없도록 정중하게 모시라”고 긴급 지시했다. 드디어 전임자를 잘 모셔도 될 때가 왔다고 판단한 걸까? 이 사건을 보며 머릿속으로 고대의 역사가 헤로도투스가 남긴 기록이 떠올랐다.

“페르시아의 왕 캄비세스가 이집트의 왕 사메트니우스를 붙잡았을 때, 그는 이 포로에게 모욕을 주고자 했다. 캄비세스는 페르시아의 개선행렬이 지나는 거리에 사메트니우스를 세워두라고 명령했다. 사메트니우스는 자신의 딸이 물동이를 인 하녀의 모습으로 제 앞을 지나는 것을 봐야 했다. 모든 이집트인이 이를 보고 슬퍼했지만 사메트니우스만은 눈을 땅에 떨어뜨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 아들이 처형당하기 위해 행렬 속에 함께 끌려가는 것을 보고도 그는 꿈쩍하지 않았다. 하지만 포로행렬에서 자신의 하인 가운데 하나를 보는 순간, 그는 손으로 머리를 치면서 가장 깊은 슬픔을 표했다.”

세세한 차이만 있을 뿐, 우리가 본 것은 수천년 묵은 이 고대의 관습을 그대로 빼닮았다. 마치 전쟁을 치르듯 정치하는 나라라서 그럴까?

임기를 마친 것은 패전이 되었고, 퇴임한 대통령은 포로 취급을 받았다. 포로가 된 대통령은 먼저 측근들이 줄줄이 형장으로 끌려가는 것을 봐야 했다. 승자들은 그의 눈앞에 포박한 아내를 데려다 놓고 실실 웃으며 ‘자기를 구하려고 아내를 버리느냐’고 모욕을 퍼부었다. 법적으로 싸워보겠다던 그의 가냘픈 의지도 행렬 속에서 마침내 자기의 아들과 딸을 보는 순간 꺾이고 말았다.

촛불정국으로 현직 대통령의 인기는 바닥을 헤매고 전직 대통령의 인기가 날로 높아만 가고, 친노가 재결집한다는 소문이 떠돌던 지난해 여름. 수사는 연임을 앞둔 전 국세청장이 특별세무조사로 4개월 동안 태광실업을 털어 얻어낸 정보를 대통령에게 직보함으로써 시작됐다. 세무조사 앞에 붙은 ‘특별’이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매우 ‘특별’한 뜻을 갖는다. 검찰은 인원을 두 배로 늘려 전직 대통령 주변을 몇 달에 걸쳐 먼지 털듯이 털었다. 국정원에서는 때맞춰 억대의 시계 얘기를 흘렸다. 금속탐지기를 갖고 봉하마을로 쳐들어가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포로를 처형할 것이라면 단숨에 할 일. 하지만 검찰은 그동안 이른바 ‘빨대’를 동원한 교묘한 언론 플레이만 해왔다. 검찰은 고슴도치인가? 온몸에 빨대를 꽂은 모양으로 내용물을 줄줄 흘리고 다녔다. 이를 보다 못한 누군가가 검찰청에 빨대 한 상자를 택배로 보내는 퍼포먼스를 했다. 고양이가 참새를 잡아놓고 이리저리 장난을 치듯이, 수사를 끝내놓고 구속 카드와 불구속 카드를 손에 들고 만지작거리기를 무려 한 달. 마침내 참혹한 사태가 벌어어자 이제 와서 낯 두껍게 “원래 불구속 기소하려고 했다”고 인간미를 자랑한다.

검찰-빨대-언론은 혐의를 사실로 확정했다. 재판이 열리기도 전에 이미 판결은 법정 밖에서 내려졌다. 보도를 보니 “확실한 물증을 수사팀에서 확보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그래서 주변을 괴롭히며 압박하고 들어가 강제로 자백을 유도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검찰은 무리한 수사라는 비난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백번 양보를 해 검찰에서 확실한 물증을 확보하고 있었다 하자. 그 경우 더 큰 문제가 남는다. 증거는 언론이 아니라 법정을 위한 것인데, 왜 언론 플레이로 전직 대통령을 망신주는 정치적 기동을 해야 했는가?

“미안해하지 말라.” 권양숙 여사를 향해 한 말인 것 같다. 가족이 돈을 받았어도, 어차피 도덕적 책임은 대통령 자신에게 돌아간다. 물론 도덕적 책임과 법적 책임은 엄연히 다르나, 평소 깨끗한 정치를 표방하던 자신이 이제 와서 법과 도덕은 다르다며 변명을 하는 것 자체가 구차한 일. 그렇다고 변호를 안 할 수도 없는 것이, 그 일에 당신 개인만이 아니라 개혁세력 전체의 명예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을 변호하면 검찰의 올가미가 주변과 가족을 향해 전방위적으로 옥죄여 들어온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고향에서조차 유배생활을 해야 했던 그 분은 몸을 날려 정치 없는 세상으로 날아가셨다. 이것을 ‘서거’가 아니라 ‘자살’이라 불러야 한단다. 그래, 더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 불러야 한다.

커다란 슬픔과 뜨거운 분노로 그 분을 보낸다. “원망하지 말라.” 그래, 우리는 저들을 용서하자. 그러나 결코 잊지는 말자.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 출처, 경향신문 기고문(2009.05.25)


주 후반 즈음에 저도 현재 사태에 대해서 글을 써볼까 합니다.


맞춤검색

,



금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로 서거하여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사실확인과 평가는 차분히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참 비통한 심정입니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리고 장례식은 퇴임이 얼마되지 않은 전직대통령이었고, 국민적 상징성과 국민 정서를 고려할 때, 마땅히 '국민장'으로 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불쾌한 기사는 일부 인사들이 사전에 당신의 '자살을 권유'하거나 '자살을 권장'하는 글을 올렸다는 것입니다.

노무현 전대통령은 사법 재판절차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피의사실은 확정된 바 없습니다.
언론에서 여러 기사가 사전에 나왔고, 검찰도 흘렸으나, 그것은 그가 공인이었기 때문에 피의사실의 공표를 수인할 뿐입니다.


또한, 정말로 명백한 범죄자라고 하더라도, 아무리 명백한 재산범 혹은 인명손상의 범죄자라고 하더라도, 타인이 당사자에게 '너는 자살하라', '너는 자살하는게 좋다.'고 권장하지 않습니다.

유영철이나 강호순이 나타났어도, 그들에 대해 사법절차에서 '사형'이 확정되었어도, 그런 인간의 만행에 대해 사람들이 개탄은 했을지언정, 유영철이나 강호순이나 '너희들은 자살해라'하고 말한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적 범죄에 대한 단죄는 사법절차에 따라 이루어지며, 그에 대한 형벌과 평가도 그에 국한되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자살'하라고 권장하는 것은 새로운 범죄행위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일부 나이 지긋한 사회적 어르신들께서 노무현 당신께 사전에 자살을 권유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는데,
정말로 잘못되었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김동길 교수가 써서 올렸다는 글을 보면, "국민에게 사과하는 의미에서 자살을 하거나 ... 수 밖에는 없겠습니다."하고
명백하게 자살을 종용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이는 범죄행위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형법은 제252조, 제253조에서 '교사 또는 방조하여 자살하게 한 자', '자살을 결의하게 한 자'는 형벌로 처벌한다고
명백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에 이르지 않았더라도, "자살하라"고 명백하게 인터넷 게시판에 공공연하게 게시하는 것은 형법 제311조의
"사람을 공연히 모욕한 경우"에 해당하여 모욕죄에 해당하거나,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기 때문에, '명예훼손'에도
해당할 수 있습니다.

일부 나이지긋하신 어른들께서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지, 당신들만의 기분으로 착오하는 것은 아닙니까. 젊은 세대와 미래 세대가 이 나라를 어디로 가져가고 있고, 그들이 이전 세대로부터 이어가고 개선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은 거 같습니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 실질적 법치국가, 그리고 자유국가입니다.




김동길 교수께서는 말 그대로 많이 배우신 분이고, 개념도 있으실 분이고, 양심과 학식의 자유도 오랜기간 누려오신 분입니다.
그리고 이런 '자유'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그 누구에게도 '자살하라', '자살하는게 좋다'고 얘기할 권한이 없습니다.

김동길 교수께서 왜 그런 글을 공개적으로, 그것도 '이명박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시면서, 그런 모욕을 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누린 그런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당신께서 잘 알고 행동하셨을 겁니다.

김동길씨에 대한 사법처리가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맞춤검색

,

(★ 검색으로 결과를 얻어보세요. Let's Search ★)



--> I'm Lucky 최근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