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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0.06.27 김여희 나의 노래 뮤직비디오, 듣기 _아이폰녀 데뷔 앨범
  2. 2009.09.26 태연, 써니 사랑인걸요 뮤직비디오, 듣기 _맨땅에 헤딩 OST
  3. 2009.08.19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이 적절합니다 45
  4. 2009.05.17 나이트 가장 많이 다닌 여자 인순이 2

김여희 '나의 노래' 뮤직비디오로 감상해 볼까요~

'아이폰녀'로 유명한 김여희, 그녀가 여러 대의 아이폰으로 연주하여 유투브에 올린 동영상은 전세계에서 무려 1천만명 이상이 시청했다고 합니다.

'레이디가가'와 '비욘세'의 히트곡을 홀로 아이폰으로 연주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아이폰녀' 김여희,
그녀가 드디어 싱글 앨범을 발매하고 가수로 데뷔했네요!

2010년 5월 27일에 발매한 '나의 노래' 데뷔 앨범에는 '나의 노래', '하지마', 'You'(영원보다 조금 더) 3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뮤직비디오는 그보다 다소 늦은 6월 중순에 선보였네요.

'들어봐 내 심장의 울림을 조용한 내 외침을...'
어쿠스틱 '피아노' 건반 연주에 실린 그녀의 보컬(vocal)에서는 '청량감'이 밀려오네요~ 


김여희는 1988년 10월 4일생으로, 162cm의 키라고 하네요.

이 뮤직비디오는 '드림하이이엔티'(www.Dreamhigh-Ent.com) 홈페이지에서 직접 감상할 수도 있습니다.

'난 노래할거야~ 이게 진짜 나야 이 모습이 나야'

그렇다면 뭘 노래할껀데?

난 노래할꺼야~ '나의 노래'를!

데뷔곡 "나의 노래"는 '하고 싶은 일'을 성취해내는 젊음의 꿈과 열망을 담고 있네요.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꿈을 따라가고 실천하는 것이 진짜 자아를 실현하고 지신을 찾는 길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노래를 향한 이런 '자아 선언'은 뮤지션들의 노래에서 심심찮게 발견되는데요.

예컨대 2005년에 발표된 임정희 'Music is My Life'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노래'라는 것도 하나의 '그릇'일 뿐미으로, 노래에 무얼 담아 표현할 것인가는 계속 고민이 필요합니다. 

'난 노래할꺼야~' 외침으로 끝나면 안된다는 것인데요. '(무엇을) 노래할 것인가?' 노래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 그 '무엇'을 찾아나서야 합니다. 

물론 그 '무엇'은 '인생'(人生) 속에서 서서히 발견될 것입니다. 

다행히 이번 데뷔 앨범에는 "나의 노래" 한 곡으로 끝나지 않고, "하지마", "You(영원보다 조금 더)" 3곡을 수록하여 그녀의 인생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3곡 모두 수려하고 산뜻한 느낌을 주네요. 

"나의 노래"가 공식적인 '음악 인생'의 출발을 선언하는 이정표라면, 이제부터는 '노래'에 무얼 담아서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광활한 앞 길이 펼쳐져 있네요.

어쿠스틱(Acoustic)한 배경에 순수한 보컬(Vocal)로 젊음의 꿈을 향한 메시지를 가사에 담아낸 '나의 노래', 그래서 꼭 듣고 인생의 용기를 얻어볼만 합니다. 

'들어봐 내 심장의 외침을...' Heartbeat!! 쿵쿵타!  
김여희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이어갈지 계속 지켜봐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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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 태연, 써니가 '사랑인걸요' 싱글곡을 발표했네요. 이 곡은 MBC 수, 목 드라마 '맨땅에 헤딩 OST'로 삽입된 곡입니다.
2007년 '다시 만난 세계'로 데뷔한 소녀시대가 어느새 이만큼 컸습니다. 태연, 써니도 이렇게 성장했네요.
그리고 '맨땅에 헤딩' 드라마 주연을 맡은 아라, 윤호도 어느새 어른으로 성큼 다가서서 우리 곁으로 찾아왔네요.

태연은 1989년 3월 9일생, 써니는 1989 5월 15일생, 아라(고아라)는 1990년 2월 11일생, 윤호(정윤호,유노윤호)는 1986년 2월 6일생입니다. 생일은 윤호가 제일 빠르지만, 2004년에 동방신기로 일찍 데뷔했던 것에 비하면, 10대에서 출발했던 윤호도 어느새 20대가 되어 드라마 주연까지 꽤차고 있습니다.


'맨땅에 헤딩' 이 드라마는 젊음의 사랑과 꿈, 순수함을 기록하는 가운데,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설픔 속에 풋풋함이 넘쳐나는 시나리오를 선사하고 있습니다.

윤호를 주인공으로, 윤호를 지켜주는 친구, 윤호가 지켜주고싶은 가족, 언제나 윤호를 응원하는 어린 여동생, 윤호가 사랑하는 연인, 윤호를 바라보는 연인들, 그리고 꿈을 향해 가는 이들과, 그런 꿈을 이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세대의 전도사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설프지만, 꿈을 꾸는 열정의 순수함을 보여주는 젊음의 드라마 "맨땅의 헤딩",
그러하기에 좌충우돌 시나리오 전개에도 불구하고, 다른 드라마들이 줄 수 없는 '순수'와 '재미'를 선물합니다.

'비 맞으면 안돼...' 누군가의 우산이 되고 싶은 그 누가.. 나의 곁에는 있는가...
'맨땅에 헤딩'할 만큼 무모하지만, 도전감이 넘치는 용기가 우리에게는 있는 것인가요?

드라마가 한참 진행 중이기에 시청하면서 느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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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9년 8월 18일 향년 85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게 되었습니다.
1924년생인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대 중반의 젊은이로서 한국전쟁을 경험한 세대로, 이후 한국 현대사를 개척한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지난 5월 2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사고로 잃은 국민들은, 100일도 채 지나지 않은 8월 18일에 또다시 전임 대통령을 연이어 잃었다는 비통함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의 공과(功過)와 정치적 지향을 떠나서라도, 88일이라는 간격을 두고, 두 명의 전임 대통령을 연달아 떠나보낸 사실에 참으로 침통해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시점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 예우 절차를 국장으로 해야 하는가, 국민장으로 해야 하는가가 논의가 되고 있습니다. 

모든 계산을 떠나서, 당연히 국장으로 하는 것이 적절하고 사리에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국민장으로 치뤘기 때문에, 절차의 형평성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도 국민장으로 치루는 것이 적합하지 않느냐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장 형식을 취해야 할 필요는 없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국장이 훨씬 적합하고 격식에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은 인물이 "국장"으로 치러지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국장의 대상의 될 수 있습니까?

김대중 전 대통령의 그간의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노력이나 업적, 험난한 고난을 넘어선 진실성, 삶의 경이를 생각할 때, 당연히 국장이 어울린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 현대 민주주의를 정상적인 절차와 의회주의로 복원시키기 위해 모진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죽음의 사선을 숱하게 넘어서면서 모든 헌신을 다 했습니다.
이런 노력은 김영삼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외람되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물론, 향후 김영삼 전 대통령 두 인물은 그들의 재임시의 공과에 상관없이, 그들의 한국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노력과 헌신을 생각할 때, 반드시 국장으로 치뤄야할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1997년말 대통령 당선 시기 _MBC



둘째, 휴무일이 아니면, 마음이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떠나보내는 장례일 마당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은 휴일이 아니어서, 참관 의사가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쉽게 참석하지는 못했습니다.
일부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일정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 소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근심까지 했으나,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에 많은 이들이 모인 것은, 그의 죽음이 애석하고 비통하여, 곁에서 참관하며 떠나보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일반의 장례에 참석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려했던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평화롭게 모든 일정이 진행되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고 싶지만, 공휴일이 아니어서, 관공서에 나가고, 일을 하고, 학교에 가느라 참석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역사의 동반자였던 민주주의의 지도자를 잃은 것은 집단을 이루어 살아가는 인간의 큰 슬픔의 하나임이 분명합니다. 이런 슬픔을 마지막 떠나보내는 장례 절차에서 카타르시스로 풀지 못한다면, 마음의 울분과 응어리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석하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 참석할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친구가 떠나도, 모든 생업을 재쳐두고 영결식에 참석하는데, 역사를 민주주의의 방향으로 틀기 위해 노력한 민주주의의 오랜 친구를 떠나 보내는 길을 방관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국장 당일 휴무일로 지정하여, 보다 많은 이들이 참여하여 애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편, 실무적으로 보면, 국장의 경우 외국 외교사절의 정식 조문을 받는다고 하므로, 세계 민주주의 수호자로서 그의 국제적 위상과 파급효과를 생각할 때도 국장이 무난합니다.


셋째, 한국의 현대 민주주의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엄청나게 빚졌습니다.

20대 중반에 한국전쟁을 겪고, 전후 현대사의 진전을 생생하게 해쳐 온 김대중 당신은 다수의 침묵 속에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파수꾼, 수호자임을 자처했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핍박과 고문, 정치, 사법적 탄압을 받기도 했습니다.
김대중의 역사가 한국 민주주의의 고난과 쟁취의 상징이었음을 부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를 지지하든 안하든 변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 점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민주화 수호 업적도 기억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그의 향후 장례도 동일하게 국장으로 치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사람이기에 그의 60년에 육박하는 정치 일정에서 과오와 한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국 현대 민주주의가 그에게 큰 빚을 졌고, 당신들의 노력으로 오늘날 우리 민주주의 의식이 이만큼 진전해 왔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김대중 당신 인생의 신념과 소신대로, "행동하지 않는 것은 악이니, 행동하는 양심이 되자"고 설파했고, 당신의 모든 삶으로 실제로 실천했습니다. 이런 신념은 영면에 들기 직전까지 동일한 신념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그를 탄압했던 무리도, 그의 행동에 함께 참여하지 못했던 이들도, 모두 그의 일관된 인생의 신념과 용기, 삶에 찬사를 보내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회복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절대적인 선행조건이다 _1985.3.8, KBS



넷째,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도 김대중, 김영삼 민주화 추진 세대의 후광 세대에 불과합니다.

즉, 쉽게 말하면 격(格,level)이 다릅니다. 김대중, 김영삼의 오랜 시간의 험난한 민주화 투쟁의 과정은 한 차원 높은 숭고한 헌신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정파를 떠나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김대중, 김영삼은 비록 각각의 평가와 과오에도 불구하고, 한국 현대 민주주의의 정상화를 위해 엄청나게 투쟁하며, 모진 핍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진전시키기 위해 고단한 역사를 마다하지 않고 이어왔습니다.

결과로 기록된 이들의 삶이 쉬어보일지 모르지만,
삶의 고난과 온갖 박해, 정치적 탄압을 이겨내며, 전 생애를 민주주의, 의회주의의 회복에 대한 신념 아래 일관되게 행동하기는 쉽지가 않은 것입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고귀한 결단과 희생의 정신이 없으면 쉽게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예컨대, 김대중씨는 수 년을 감옥에서 독방에서 살았고, 허위 사건 조작으로 사형 선고도 받았으며, 독재정권에 의해 바다에 내버려지는 급박한 상황까지 가는 등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를 살리고 돌려 세운 것은, 바로 그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었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있었기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꿋꿋할 수 있었고, 국내외 주변의 민주화 세력들이 그의 지원자가 되어 준 것입니다.

이처럼 기초적인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당신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노무현도 있었고, 이명박도 있었던 것입니다.
'인동초'(忍冬草, 추위를 이겨내는 풀) 처럼 이어온 민주주의 신념의 생명력이 오늘을 있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그들의 그늘과 혜택으로부터 탄생한 노무현, 이명박 후광세대보다 한 차원 높게 승격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장례 예우는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한 차원 높은 "국장"이 매우 적절하고 합당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에 대한 예우의 성격이 강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수호자, 지도자"의 성격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퇴임사 _저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민족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간직하며 살아가겠습니다 _2009.2.24, KBS



다섯째, 88일이라는 단기에 전임 대통령들을 연이어 떠나 보낸 국민들의 끝없는 슬픔과 한을 헤아려야 합니다.

전임 대통령들을 연이어 이런 짧은 기간에 떠나 보내는 것은 세계 현대사에 유례가 없는 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초유의 국민적 슬픔을 헤아려주고 껴않아야 합니다.

올해 국민들은 이미 너무나 큰 슬픔을 안고 있습니다.

5월 23일에는 직전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고로 먼저 우리를 떠나갔습니다. 그의 나이는 아직도 젊었습니다.
그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100일도 채 안된 마당에,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였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당신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매우 슬퍼하였고, 그 직전, 직후 5월, 6월, 7월에도 민주주의과 한반도 평화에 대한 견해를 계속 밝혀 왔습니다.

이런 마당에 한국 현대사에 중대한 이정표를 남기고, 지도자적 역량을 보여주었던 전임대통령 노무현, 김대중을 동시에 먼저 떠나보내면서, 국민의 슬픔과 한은 끝없이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가슴의 슬픔과 응어리가 해소되지 않으면 한이 됩니다. 국민이 슬플 때는 슬피 울 수 있도록, 애도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의 한이 분출되고, 카타르시스의 정화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국민은 지금 서럽습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 서럽고, 동시대의 이정표였던 소중한 친구를 먼저 잃어 서럽습니다.
정파를 떠나, 국민 모두 서글픈 일입니다.

이런 슬픔을 헤아려주고, 애도로 분출되어 정화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평양행 대국민 인사말 _2000.6.13, KBS



여섯째,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을 넘어선 세계적 민주주의 지도자이며 교본입니다.

그가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그의 정치 인생에 과오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그가 인생을 일관된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헌신, 실천으로 살아왔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의 인생에서는 삶의 고귀함지도자로서의 쉽지만 높은 이상, 리더십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는 정상적 민주주의로의 복귀를 위한 민주화 투쟁을 통해 국위를 선양했고, 한국 민주주의의 진전을 세계에 빛냈습니다.
이는 굳이, 그가 200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을 인용하지 않아도 분명한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이런 수상의 결과를 평가절하하기도 하나, 객관적으로 보아도 전혀 부족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치인도 공통의 가치를 증진시키는 신념과 가치를 전파하고 함께 실천해가는 측면에서 "흥행"을 도모하는 예술가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가 정치적 개선을 시도하는 여러 사건들에 성공하고, 민주주의와 평화의 가치를 진전시키면서 세계의 평가를 받았다는 것을 부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진전된 민주주의는 다져진 토양처럼 작용하기 때문에, 쉽게 뒤집혀 질 수 없습니다. 쉽게 회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의 민주주의는 한반도 전체의 민주주의와 평화, 세계 민주주의와 평화에도 기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민주주의와 평화가 더욱 우월한 결과를 낳는다면, 북한도 이에 자극받고 편승해 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민주주의의 소중한 노력과 결실이 우리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역사의 기록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의 바램처럼,
그는 일관된 신념과 행동으로 최후의 삶까지 초지일관했습니다.
빛나는 자는 헤어지는 자리에까지 향기를 남긴 것입니다.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



일곱째, 한국인 모두의 차별없는 후원자로, 한국 민주주의와 현대사의 빛나는 후광(後廣)으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 민주주의와 현대사의 돌이킬 수 없는 절대적 진전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의 호 '후광'(後廣)처럼 그는 한국인과 한반도 평화,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후원하는 영원한 역사적 후원자로 이제 영면의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김대중 당신은 '후광'이라는 호에 전혀 부끄럽지 않은 삶의 여정을 보내고, 안식에 올랐습니다. 

평소 경천애인(敬天愛人, 하늘을 받들고 사람을 사랑한다)을 좌우명으로 일생의 신념을 삼은 그는 결코 이에 어긋나지 않는 삶의 인품과 자세를 보여주었습니다. 

천주교 신자로서 '토마스 모어'의 세례명을 받은 그는 천주(天主)와 민주주의의 신념을 바탕으로, 인간이 향유할 수 있는 고귀하고 평화로운 삶의 모범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2009년 올 한 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전 5월에도 남북관계와 민주주의 정세에 대해 언급, 조언했고, 6월, 7월에도 민주주의의 기초적 가치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쉬지 않고 이어갔습니다.
 

"두렵지만, 나서야 하기 때문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용기입니다." - 김대중, KBS



마지막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헌신과 신념은 그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성과이고, 가치이며, 과제라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인권, 대중경제의 성장, 한반도 평화, 통일은 당신만의 소신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신념이고, 희망이고 바램입니다.
또 우리에게는 한반도 평화를 진전시키고 통일을 완수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진전시켜야 하는 숭고한 사명이 있습니다.

결국, 김대중 당신께서 보여주신 가치는 그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의 심장 안에 있는 우리 모두의 가치이고 과제인 것입니다.


김대중의 삶과 정치 여정이 결코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그의 인간적 매력이 너무나 넘쳐난다고 단언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삶의 자세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지금 무엇을 극복하고, 함께 꿈꾸고 실천해 가야 하는가에 대한 이정표를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 가치들은 일순간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면을 향했던 당신들의 바램처럼 불멸을 향해 더욱 성장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도 인간이기에 이런 모든 삶의 여정들이 결코 편하고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죽음의 고비도 여러번 넘겼습니다. 그러나 그가 밝힌 것처럼, 최후의 순간까지 헌신으로 그를 이끌어 온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두렵지만 나서야 하기 때문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용기입니다. 그리고 정직입니다. 우리가 가야할 길과 꿈을 거부하지 않고 왜곡하지 않고 떳떳하게 밝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일시적으로 힘들도 어렵고 고되더라도 거부하지 않는 것입니다. 두렵지만 가야하는 길, 그것은 용기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국장은 위와 같은 이유에서, 당신에 대한 정당한 대우일 뿐만 아니라, 
모든 한국인과 한국 현대 민주주의에 남겨진 소중한 정신을 다시 확인하고, 우리 스스로 다짐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 점에서 정부와 청와대는 괜한 근심과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국민의식도 많이 성숙했습니다. 국민은 국민이 슬프기 때문에 국장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며 매진해온 진지한 삶의 자세를 되돌아보며, 우리는 새롭게 각성하고, 시대의 전진을 향한 국민적 에너지를 승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국민적 에너지의 결집과 충전은 결코 누구에게도 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현재 위치와 과제를 확인하고, 용기와 도전을 재충전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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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작고한 작가 이청준 님의 작품 중에 '줄'이라는 소설이 있다.
줄타기를 업으로 하던 '노인'이 아들에게 그 업(業)을 단련시키고, 아들은 줄타기의 경지에 오르지만, 자신이 사랑한 여인이 사랑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 줄을 타는 자신의 모습이었음을 알고 난 후에, 최후의 줄을 타다가 스스로 떨어져 생을 마감한다는 내용이다. 다소 반전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줄타기를 업으로 해왔던 '노인'이나 그 '아들'의 입장에서나 '장인정신'이나 직업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최근에 신문기사를 보니, 미국 포브스지가 미국 부자들의 상위 랭크(rank)를 공개하였는데, 오프라윈프리의 재산이 무려 27억달러에 육박하여, 미국 흑인 중에 제1의 부자임은 물론, 미국 20대 부자에 든다는 내용이었다. 

1954년인 오프라윈프리는 여전히 인종차별적인 잠재적 문화가 남아있던 미국에서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했다. 흑인이었고 여성이었고 그렇게 이쁜 것도 아니었다. 
이런 오프라윈프리가 명성을 쌓아간 것은, 1986년부터 시작된 오프라윈프리쇼에서 그녀가 사회를 맡기 시작해서부터다. 오프라윈프라쇼는 그녀의 담대하고 솔직하며 능숙한 토크쇼 진행으로 성장을 거듭하여, 전세계적인 프로가 되었고, 하나의 시대적인 아이콘이 되었다. 방송의 와중에 오프라윈프리는 쉽게 공개하기 어려운 자신의 충격적인 성장사도 거리낌없이 고백하여 많은 공감을 얻어낸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오프라윈프리는? 오프라윈프리는 오직 이 오프라윈프리쇼 하나로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크쇼 하나에서 출발한 오프라윈프리는 20년이 훌쩍 지난 뒤에 미국 흑인 중에 제1의 부자로 우뚝 서 있는 것이다. 오프라윈프가 그동안 오프라윈프리쇼 하나에만 매달려온 것은 아니지만, 오프라윈프리쇼가 그 출발이 되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런 사람들이 소설이나 미국 사회에만 있을까?

우리에게도 있다. 나이트 가장 많이 다닌 여자가 있다.
얼마나 오래 다녔는가 하면, 나이트에서 그녀를 모르면 간첩이다. 30년 이상 다녔으니, 그녀를 모른다면 남이라고밖에.

그녀가 누군가하면 1957년생인 인순이 씨다.

인순이 knight


인순이씨는 가수다. 여기서 지금 이렇게 인순이씨에 대해 얘기하려는 것은 가수니까 물론 노래부르는 것에 대해 얘기하려고 하는 것이다.

인순이씨가 최근에 새로운 앨범을 내서, 지상파 음악프로에도 자주 나오고 있는데, 인순이씨 무대는 못보고 있다가 이제서야 보고, 그녀의 신곡도 들어보게 되었다.

내 소감을 말하면, 인순이 음악세계의 초절정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그녀가 지금 부르는 Fantasia는 오페라적 요소에 절제되면서 열정적인 화려함이 예술적으로 폭발하고 있다. 물론 너무 오바한다고, 개인적 감흥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이 그렇다. 한 번씩 들어보시기 바란다. Fantasia의 가사 'Don't Stop the Music'에서 나오는 바, 미국의 젊은 흑인 여가수 리한나(Rihanna)의 Don't Stop the Music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인순이씨는 오프라윈프리보다 조금 어리다. 그렇지만 20대초반부터 활동을 시작한 인순이씨는 올 해로 활동 31주년을 맞았다고 한다. 그 동안 발매한 앨범도 17장이다. 이번에 발매한 앨범 <Fantasia>는 31주년 기념작이다. 
그러면 일반적으로 옛 노래를 메모렌덤과 기념으로 다시 불렀는가? 아니라는 것이다. 신규앨범이다. 음악스타일이 바꼈는가? 여전히 댄스, 댄스&발라드다. (Fantasia 뮤직비디오 보기 클릭)

그렇다면, 왜 Fantasia, Don't Stop the Music 인가?

Don't Stop the Music


Fantasia는 31년을 꾸준하게 이어온 그녀의 음악적 열정과 세계에 대한 경이와 31년 세월의 현재적 완성을 의미한다.
Don't Stop the Music은 그러한 Fantasia의 선언이 현재완료형이 아니라, 여전히 계속중인 진행형임을 뜻하며, 음악을 통해 세상을 살아오고 음악을 여전히 실현하고 있는 그러한 모습이 'Fantasia'라는 것이다. '음악을 멈추지 않을 수 있기에' 또 '음악을 멈추지 않을 것이기에' 판타지아라는 것이다. 완성된 Fantasia가 아니라 멈추지 않는 가고 있는 Fantasia다. 

이런 인순이씨의 삶과 음악 세계, 세상을 향한 그녀의 일관된 모습과 메시지를 이 곡은 너무나 제대로 감동적으로 담고 있다. 
그녀는 음악을 멈추지 않을 것이기에(don't stop the music) 판타지아(Fantasia)라고 했지만, 
오히려 듣는 입장에서는 그녀의 인생과 메시지가 절제적이고 완성도 높은 음악 자체로 담고 있기에, Fantasia 그 곡 자체가 Fantasia라고 선언해도 무방할 듯 싶다. 

오프라윈프리보다 어린 인순이씨, 인순이씨는 한국 사회에서 오프라윈프리만큼은 아니라도 충분히 자기 꿈을 실현했을까? 


인순이씨는 화려하다. 음악이 화려할 뿐만 아니라, 그녀의 경력이 화려하다. 

인순이씨는 적어도 내가 아는 한, 대한민국에서 '나이트를 가장 많이 다닌 여자'다. 이렇게 말하는 순간에도 나이트 부킹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녀가 나이트를 자주 가고, 왠만한 전국 나이트에서는 쉽게 볼 수 있다는 소리는 이미 80년대부터 들어왔다. 실제로는 그 전이었는지도 모른다.

나이트는 물론 지금 젊은 세대도 클럽을 많이 즐기고, 나이트도 즐기지만, 예전에 그렇게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다. 물론 즐길 사람들은 즐겼겠지만 말이다. 적어도 방송파에 나오는 것보다 나이트에 나가는 것이 더 즐거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인순이씨는 거리낌이 없었다. 그녀의 나이트 출연 횟수가 말해주지 않을까. 인순이가 빠진 나이트 '찌라시'는 나이트가 아니었다.

그녀가 이렇게 젊을 때부터 나이트에 싸돌아 다니게 된 것은, 나이트에서 자신을 너무 원하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그녀의 적극적인 인생의 대응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방송 출연 기회나, 기타 경제적기회가 충분하지 못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인순이씨는 혼혈이다. 지금은 그런게 대수롭지 않지만, 예전만 하더라도 그런 것을 달리보는 언짢음이 사실 있었다. 인순이씨가 열정적이고 일관된 음악적 흐름으로 그런 시절을 헤쳐나왔다고 하지만, 그런 시절이 우선 인순이씨 본인에게 호락호락했을거 같지는 않다. 

인순이씨의 가족적 지원이 대단한 것도 아니었고, 인순이씨가 많이 배울 수 있던 것도 아니다. 
혼혈이라는 시선은 우선 그녀 본인에게 많은 성장의 고통을 안겨주었을 것이고, 그런 시간들을 헤쳐나가는 것은 당신에게 가장 큰 인생의 시련이었을 수도 있다. 

Fantasia


여하튼 그 인순이씨가 어느 덧 데뷔 31주년을 맞이하였다고 한다. 
남들같으면 데뷔 31주년이라고 오랜만에 나와서 옛 노래나 인기절정의 시절을 회고하며, 오랜만에 디너쇼를 한다거나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거나 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인순이씨는 17집이라는 신규앨범을 냈다. 그리고 이제 나이먹었으니 힘들다고, 좀 조용한 노래하자고 하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댄스다. '나 댄스해.'하면 채연이 울고 넘어갈지도 모르겠지만 '인순이는 여전히 댄스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그녀를 얘기하는 것은 50대에 들어서서 17집으로 발매한 음반으로 부르는 노래가 너무나 멋지다는 것이다. 
서두에서 밝혔듯이, 'Fantasia'는 음악적 판타지세계를 보는 거 같다. 내가 인순이 음악을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평범한 음악청취 대중으로서, 적어도 내가 지금껏 들은 인순이 음악 중에는 최고 수준에 속한다. 

그게 지금 50대에 접어든 인순이 당신의 17집 음반에서 나왔다.

인순이씨는 이번 17집에 bonus 트랙으로 담겨있기도 하지만 '거위의 꿈'을 부르며, 젊은이들과 세상에 '꿈을 잃지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리고 그 노래를 부르면서 눈물을 터트린 적이 있다. 

이 한국사회에서 혼혈로써, 그렇게 넉넉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던 가족사에서, 충분히 배운 것도 아니었고, 여성으로 살아았다. 그 세월이 결코 쉬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는 '아버지'를 부르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Music is Life' 음악은 삶이었고 꿈이라고 믿고 지금껏 걸어왔기에 그렇게 노래하고 눈물흘릴 수 있지 않았을까...

오프라윈프리처럼 그녀의 유년기와 가정환경도 그렇게 넉넉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잡은 하나의 꿈 '음악'이라는 것을 삶으로 여기고 지금껏 이어오고 있다. 음악을 계속 해왔다는 것은 '꿈을 잃지 않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뜻한다. 
지금 이렇게 17집 Fantasia를 들고 와서 감격의 곡을 들려주고 있는 것은 그녀에게는 '꿈을 꾸고 삶을 살아왔다는 자기확인'이고 여전히 '살아있다는' 확신이다. 그리고 대중에게는 꿈을 꾼다는 것이 그것을 실현시킨다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삶과 음악 자체로 보여주는 소중한 기회인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왔고, 또 그렇게 우리는 살아가겠지만,
가수 인순이의 Fantasia에서 음악적 영혼의 절정을 볼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나이트가지 않고도 인순이씨의 초절정 음악을 이렇게 들을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퀄러티가 높다. 음악예술로나 사색으로나 이번 앨범은 뭔가를 담고 있다. 17집 앨범을 보면, 음악적 '판타시아'와 희망을 주제로 하는 가운데, '아버지', '딸', '향수', '나무' 등 가족과 영혼의 기원에 대해서 음악적으로 다루고 있다.
음악과 인생이 함께 묻어나고 있다. 

그녀의 최근 인터뷰 내용을 보면, 리메이크보다 '나의 음악'으로 평가받고 싶다는 견해를 피력했다고 한다. 그래서 17집 앨범도 새앨범이다. 음악은 그녀에게 용기를 잃지 않는 것이고 꿈꾸는 것이고 꿈을 이루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꿈은 있을 것이다.
  

혹자는 그녀에 대해 "꿈을 팔았다"고 혹평을 한다. 그러나 말하고 싶다. "거위의 꿈"은 알리는 것이다.
"꿈"은 파는 것, 공유하는 것이 아닌가? "꿈"은 꿈꾸는 자에게만 현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설령 "꿈"에 가까이 가지 못하라도, 꿈 꾸었다, 꿈을 팔았다는 것만으로 우리의 삶은 의미로울 수 있다.


인순이 17집 Fantasia 수록곡

1. FANTASIA 
2. Cry
3. 향수
4. 아버지
5. 기회
6. 일어나
7. 뿌리(prologue)
8. 나무
9. 딸에게
10. 사랑가
11. Merry Merry
12. Fantasia(instrumantal)
13. 보너스 트랙-거위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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