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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8.06.07 이재명, 김부선, 김영환, 경기도지사, 지방선거, 무리다
  2. 2017.02.19 마을행정사, 마을세무사, 마을변호사 성공 정착할 수 있을까? 2
  3. 2009.06.18 트위터(twitter)에는 왜 인기인들이 많을까 2
  4. 2009.06.12 전경, 경찰 집단폭행 충분히 가능하다


  이재명, 김부선, 김영환, 경기도지사, 지방선거 관련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1. 이재명은 김부선과 혹시 관계가 있더라도 이를 밝혀야 하나?


  이재명과 김부선이 어떠한 사적 관계가 있더라도, 이는 개인 신상에 관련된 일일뿐, 그러한 일이 무슨 범죄행위와 연관되거나, 공적 조사를 받아야 할 사안이 아닌 한, 


이재명이고 김부선이고 어떠한 관계든지 간에 대중들에게 공개적으로 그러한 관계를 굳이 밝혀야 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2. 이재명과 김부선이 사적 관계가 혹시 있더라도, 이러한 관계가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데 검증받아야 하는가?


  개인의 사생활은 공인이고 사인이고 간에 보호받아야 하며, 개인의 개인생활과 공인으로서 활동을 무리하게 엮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개인이 사생활로 어떤 사람들을 만나든 어떤 취미 생활을 하든 그건 개인의 사생활일 뿐이죠. 



3. 개인의 사생활 때문에, 공적 활동이 제약 받아야 하나?


  개인의 자유로운 사생활 때문에 공적 활동을 제약하는 논리는 수긍하기 힘듭니다.



4. 개인의 사생활은 누가 참견해야 하나?


 개인의 사생활에 참견할 수 있고, 밀접한 생활 관계를 지닌 사람만 참견할 수 있겠죠. 예컨대, 가족 정도가 될 것입니다.



5. 개인의 사생활을 이유로 선거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나?


  어떠한 개인의 사생활이고, 개인의 사생활은 개인이 알아서 풀 개인의 관심사일 뿐이고, 개인의 사생활을 과도하게 침범하며, 이를 이유로 선거에서 이래라 저래라, 사퇴해라 어쩌해라 하는 소리는 빈약한 논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6. 개인의 사생활이 개인의 사생활의 관점 측면에서 가십거리가 될 수는 있을 지언정, 그러한 개인의 사생활이나 사람 사이의 사귐이나 관계는 개인의 자율적 생활영역일 뿐이므로, 선거라는 이유로 이를 무리하게 침범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7. 개인의 사생활에서 그 권리를 침해받은 일방 당사자가 있다면 어떻게 구제받아야 하나?


  개인의 사생활에서 어느 한쪽이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받았다면 우선 당사자들이 해결하여 풀어야 할 것이고, 

그러한 문제가 법적 심사나 조사를 받아야 할 사안이라면 관련 법에 따라 처리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개인의 사생활이 당장 법적 검토를 받아야 할 내용은 아니며, 그러한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무조건적 법적 심사나 대중을 향한 공개적 공개나 심사를 제3자, 타인이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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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보도자료에 따르면, 수원시청이 2017년부터 '마을행정사' 제도를 운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수원시청이 2017년 2월 14일에 발표한 기획보도자료에 따르면, 

  수원시는 '시민의 정부' 안착을 위해 시민 참여를 이끄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거버넌스 행정을 더욱 강화하고 시민 공감 행정을 펼치기로 시정의 포부를 밝혔다.


  그 하나로 취약계층의 생활 민원 고민을 해결해주는 '우리동네 마을행정사' 제도를 운용하겠다는 것이다. 


수원시청, '마을행정사' 보도자료



  이와 유사한 제도로 이미 마을세무사나 마을변호사가 있다. 이런 마을 전문 자격사 제도들은 있는 마을도 있고 없는 마을도 있었기 때문에 들어는 봤어도 여전히 익숙치 않은 명칭일 수도 있다. 



  여하튼, 마을세무사나 마을변호사에 대해 우선 살펴보면, 


  <마을세무사>는 '주민들의 세금고민 해결을 위해 무료 세무상담 서비스(재능기부)를 제공하기로 한 우리 이웃 세무사'라고 공식적으로 소개글이 올라와 있다. 


  '마을세무사' 제도는 행정자치부가 공식적으로 홈페이지 '메뉴안내' 메뉴의 하나로 소개하고 있는데, 그 후견이 든든하다고 볼 수 있다. 


  2017년을 기준으로 시행 3년째를 맞이한 마을세무사는 서울시 기준으로 2016년에 3,740건의 민원인들의 세금 고민을 해결해줬다고 한다. 


  2016년 6월부터는 전국으로 확대되었는데, 2017년에는 서울에서만 246명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시 마을세무사'는 시가 재능기부를 원하는 세무사들의 신청을 받아 마을(동)과 1:1로 연결해 무료 세무상담을 해주는 제도라고 한다. 행정자치부는 2016년 6월 '서울시 마을세무사'를 전국 제도로 채택하여, 현재 전국적으로는 1,223명의 마을세무사가 활동하고 있다 한다. (각 보도자료 기준)


행정자치부 마을세무사 홈페이지 메뉴



  <마을변호사>도 비슷한 시기에 도입되었는데, 도입과정은 다소 차이가 있다. 중앙부처인 법무부와 대한변호사협회가 주도하여 도입하였다.

  2013년 6월에 도입된 마을변호사 제도는 2014년 11월 전국 모든 읍, 면에 배정이 완료되었다고 한다. 


  '마을변호사' 제도는 변호사 사무실이 단 한 곳도 없는 마을(무변촌) 주민들에게 무료로 법률 상담을 해주는 제도다.


  2017년 현재는 약 1,428개 지역에 마을변호사가 배정되어, 약 1,500여명의 마을변호사가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상담방법은 '마을변호사'를 인터넷 검색창에 검색하여,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도입시부터 2016년 5월까지 공식 상담건수는 총 2,382건에 이른다고 한다. (이상 보도자료 참고)


마을변호사 캠페인 페이지



  이러한 <마을세무사>, <마을변호사>와 비교하여 <마을행정사>의 도입은 어떤 특색이 있을까?


  우선 '마을세무사'를 보면, 지방자치단체인 서울시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중앙 지방자치단체라는 특징이 있다.


  다음 '마을변호사'를 보면, 정부 중앙부처인 법무부와 전문 이익단체인 변호사협회가 주도하여 출발했다. 중앙부처와 핵심 이익단체가 주도했다는 특징이 있다.


  반면에, 이번에 도입한다는 '마을행정사'는 지역 지방자치단체가 자체적으로 추진한다는 특징이 있다. 어디 중앙부처나 이익단체가 주도하고 있다는 내용은 보도자료 자체만 봐서는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마을세무사>나 <마을변호사>는 어느 정도 안착에 들어서고 있는 거 같다. 


  우선 '무료 봉사'라는 봉사 프로그램이며, 직능 단체, 직능 전문인과 민간 일상의 거리감을 좁힐 수 있다는 순기능이 있으며, 전문 자격사는 봉사 활동을 할 수가 있고, 소외 시민들은 그나마 생활 관련 전문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이 전문 자격사를 향한 일반의 인식 개선에 기여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마을세무사

마을변호사 

마을행정사 

 시초

 서울시청

무변촌 

수원시청

 현재

전국 

전국 

 주도

서울시 

법무부, 변호사협회 

수원시 



  <마을행정사>는 어떠할까?


  일단 '세무'나 '법률'같은 전문 지식도 중요하겠지만, 생활 경험상, 민원 행정이 더욱 생활인의 피부에 와닿는다. 

  그런데 이런 '민원'은 단순한 것이 아니고, 행정의 다양성 만큼이나, 복잡하고 광범위한 성격을 지닌다. 


  공무원 경력직에게 '행정사' 자격을 퍼주고 있어서, '자격증 보유자'가 넘쳐난다는 이야기도 물론 있으나, 그 숫자에 비해서, 행정사의 전문성이나 다양성이 피부에 깊게 와닿지 않는다. 


  이는 '행정사'가 전문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행정사가 보다 더 깊숙히 생활 속으로 파고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전문화 되어가는 사회 속에서, 단순히 '기회비용'을 생각하더라도, 법률이나 법령을 바탕으로 민원 상황에 대한 통합적 고찰이 필요한, 행정 전문성을 생각할 때, '행정사' 자체도 자격사로서 전문성을 강화해 갈 것으로 보고, 그 수요도 점점 증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 수원시가 진취적으로 추진하려는 <마을행정사> 제도는 그 좋은 시작과 본보기로 지켜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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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트위터(twitter)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미국방문 대학연설 중에 '자신도 트위터 개설을 검토하고 있는데, 글자수 제한이 140자로 너무 적어 200자로 늘리려고 한다'고 밝혀 웃지못할 풍경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은근히 소리소문 없이 스리슬쩍 늘어나고 있는 트위터(twitter)... 
특히 유난히 인기인들이 많이 눈에 뛴다고 하는데요. 

오바마(obama)부터 얼마전 화제가 되기도 했던 김연아 트위터(twitter)까지, 연예인에서부터,
인기인'(celebrities), 유명인사들이 트위터를 이미 많이 애용하고 있다고 하는데, 왜 일까요?


트위터(twitter)에 대해 두 편의 글을 쓰려고 하는데, 이 포스트는 그 첫번째로,
"왜 트위터,twitter 에는 인기인들이 많은가?" 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유명인사들 왜 트위터의 문을 두드리나...


'Life is a mystery, everyone must stand alone - Like a prayer'


요지부터 말씀드리면,
트위터(twitter)의 특징 때문이지요? ^^ 이제 그 특징들을 차근히 찾아보겠습니다.
이 글을 보신 유명인사들께서는 수긍이 되시면, 댓글 하나씩 남기고 가셔도 좋습니다. 추천 쾅 때려주고 가세여~  


1. 140자로 제한되어 있다
최대로 쓸 수 있는 게 140자 입니다... 참 쉽죠~~잉~
길게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고, 글의 깊이나 논지 전개, 주제에 대한 압박이 덜하다는 것입니다.
핸드폰으로도 글을 올릴 수 있습니다. 핸드폰 문자 수준으로만 써주면 글을 팍팍 올릴 수 있습니다.
글쓰기의 압박이 덜한 상태에서 쉽게 쓸 수 있으니까, 사용이 늘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2. 생활, 신볍잡기 중심으로 자연히 주제가 집중된다 ('맨홀뚜껑'이론)
140자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이미 이런 분량으로는 심오한 "논설"이나 "논평", 집중적인 "비평"이 안된다는 것을 사용자들이 모두 인지하고 동의하게 됩니다.
이런 걸 쓰고 싶으면 "촌철살인"으로 핵심을 찔러주거나, 아니면 링크를 걸어주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핸드폰 문자정도의 분량에 불과한" 신변잡기, 생활, 일상사, 일상의 감정들이 대표 주제로써의 명분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비유하면, 다음 view나 다음 아고라에 "아... 나 오늘....겁나게 짜증나..." 라고 누가 써서 올려놓으면, 허벌나게 욕 먹거나 무시당할 겁니다... 그러나 트위터에서는 이런게 자유롭지요? 이게 대세(大勢), Main Trend 입니다.

고로 생활의 얘기들이 격하되지 않고, 자유롭게 글쓰기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지요.
글 쓰는거 자체가 또 표현의 욕구를 해소시켜 주는 기능도 하구요.

달리 말하면, 맨홀뚜껑 이론이 정당화되는 공간이죠. 모든 얘기는 하다보면 결국 하나로 흐른다... 맨홀뚜껑처럼...
트위터의 맨홀뚜껑은 결국 자신의 일상사라는 것이지요.


3. 유명인사들이 설(說) 풀기가 쉽다
위와 같은 이유들로 유명인사들이 말하기가 쉽습니다. 엄숙한 주제로부터 탈출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비유하면, 이효리가 다음뷰나 다음아고라에 "오늘 파마를 했는데 짜증나, 마음에 안들어..."하고 올려놓으면 좀 욕먹을 겁니다.
그러나 이런 얘기를 트위터에 한다면....? 자연스럽다는 것이죠.
아무거나 쉽게 말하기 쉽다는 것이죠. 140자도 안넘는데다가.
김연아 트위터도 보면.... "자야지", "심심해", "뭐미?",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게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김연아 트위터 최근글




4. 싸이월드 1촌관리? 그 딴거 나 몰라~

그렇다면 싸이월드를 하면 되지, 싸이월드랑 뭐가 다르냐구요??
분명히 싸이월드와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싸이월드는 글쓰기, 사진올리기, 멀티미디어 걸기 등이 모두 가능한 작은 '게시판'의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트위터는 140자 이내로만 글만 올릴 수 있을 뿐입니다. 물론 프로필에 자기 면상(^^) 걸면 얼굴은 나옵니다.
1~3에서 언급한 제한사항이 싸이월드에는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트위터는 여기서 자유롭지요.

싸이월드는 또 1촌관리를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트위터는? 트위터는 자기 글쓰고 싶은 거 쓰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1촌관리 이딴거 필요없다는 것이지요. 참 쉽죠잉~~


5. 처음부터 개방형이다
트위터는 처음부터 개방형입니다.
국내 블로그나 카페같은 경우, 폐쇄형으로 운영할 수 있고 회원가입을 제한할 수도 있지만,
트위터는 처음부터 자신의 글이 모두 개방됩니다. 또한 누구나 자신의 글을 열람할 수 있습니다.
싸이월드와는 좀 다른 점이지요?
트위터는 애초에 개방형이기 때문에, 친구관리, 가입여부 관리 이런게 필요없습니다.
물론 스팸성으로 따라오는 친구들이 있는데, twitter에서 관리해 주는 부분이 있고, 자기가 친구에서 제외해 줄 수도 있습니다.


6. 알아서 따라온다 
트위터 twitter에는 두 가지 흐름이 있는데,
하나는 "나를 따라오는 사람"(followers)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따라가는 사람"(following) 입니다.

Following은 내가 친구로 등록한 트위터 사용자이고, Followers는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친구로 등록한 사용자입니다.



유명인사가 트위터를 만들면 많은 사람들이 따라오겠지요? 많은 사람들이 followers로 따라옵니다.
사람들이 알아서 따라온다는 것이지요~ 흥행이 된다는 것이지요...
관심 가져주면 잼있잖아요~ 140자 이내로 부담도 없는데, 사진 올리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싸이월드나 국내 SNS(Social Networking Services)는 너무 '사진' 위주로 치우쳐 있는 느낌도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친구로 등록한 Following 사용자의 글은 나의 트위터 페이지에서도 올라옵니다.
그리고 모든 트위터의 글들에 댓글을 남길 수 있구요.

p.s. 그리고 '트위터'의 추세를 보면, 각종 링크 기능, 실시간 검색 노출 기능이 크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140자로 단문이지만 '요약 링크'를 올리 수가 있기 때문에 각종 웹페이지와 사람들을 연결하는 효과적인 중계소가 되고 있네요.


7. 디자인(Design), 인터페이스(Interface)의 가치
디자인, 인터페이스 이거 무시못하는 것이죠...
트위터 인터페이스 단순합니다. 그리고 넓습니다. 웹페이지라는 것이죠.
넓은 화면에 글씨 크게 나오고, 핵심기능 다 있고, 나의 프로필 사진 나오고, 내가 따르는 following 친구들 프로필 사진 뜹니다.
그리고 배경은 자기가 마음대로 고를 수 있고, 미니블로그(mini blog) 수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140자 이내의 텍스트(text) 문자 위주입니다.
배경음악을 깔라거나, 각종 위젯을 설치하라거나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런 기능도 없습니다.
'트위터 홈피 배경디자인이 왜 요것밖에 안되냐' 따질 필요도 없습니다. 참 쉽죠~~잉~

twitter image



자꾸 비교해서 미안합니다만,
싸이월드만 하더라도 팝업창 형태로 화면이 아주 작습니다. 크게 볼 수도 없죠? 답답합니다.
1촌맺기가 있다고 하지만, 사실상 많이 폐쇄적입니다. 그렇다고 관리하기나 쉬운 것도 아니고, 아주 일상적이라고 보기 힘든 점도 있습니다. 어떤 이슈가 터졌을 때 방문객이 확 몰리고 그런 식이지요.

그러나 트위터는 '문자(text)'만 140자 이내로 올리면 되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신변잡기를 얘기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더 빈번하고 일상적인 소통의 수단이 된다는 것이지요. 쉽고 편하니까요~
인터페이스, 디자인 환경 자체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8. 블로그, 카페 피곤해~ 자유로워지고 시퍼~
블로그만 하더라도 주제 선정해야지, 글 써줘야지, 댓글에 트랙백에, 글자 타수 적다고 포털(portal)이 검색에서 차단하고...
참 웃지못할 참극들이 많이 벌어지지요... 
디자인 관리해야지, 위젯에다가, 글 못쓰면 욕먹어, 우호적인 댓글만 달리는 것도 아니고, 관리하는 거 자체가 피곤합니다. 
블로그에다가 2~3줄 써놓으면 방문객들이 이 "유명인사"는 참 성의없네...하고 무참히 "짓밟고" 가지 않겠습니까...


카페의 경우에는, 더 하지요? 회원관리 해야하고, 방장있어야 하고, 카페 자체의 구조가 회원제 형태이지 개방형이 아닙니다. 카페는 '게시판' 형태라는 것이지요. 

트위터(twitter)는 이런 것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결론적으로 보면, 
트위터는 남들처럼 자기 일상과 생활, 생각을 얘기할 수 있고
대중적으로 완전히 공개되어 있으면서, 역설적으로 대중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자유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처음 방문하면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트위터~  트위터가 유명인사들에게 꾸준히 관심받고 있는 이유~
그들에게 자유를 안겨주고 있지요~ 자기 생활 말하고, 관심있게 볼 사람들은 충분히 관심있게 볼 수 있구요.
굳이 대중이 아니더라도 유명인들이 아는 사람들과 충분히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있지요...

그리고 간단한 것인데, 누구든지 시작하기가 쉽습니다. 개설이 간편합니다. 
   
다음편에서는 트위터(Twitter)의 핵심성공 전략과 수익모델을 보다 심층적, 집중적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게 본 편이니까 많이 기대해 주세요~


[관련글]
김연아 트위터(twitter) 눈물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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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일 6.10항쟁 22주년 기념일을 전후하여 또다시 자행된 경찰, 전경집단의 폭력사용과 집단적인 폭행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경찰과 전경집단의 이런 야만적인 행태는 이미 작년 촛불집회 정국에서부터 수도 없이 지적되었고, 이후에도 끊임없이 문제제기되고 있는 내용에 속합니다.

이들의 만행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이들이 경찰 수칙이나, 전경 복무규정을 제대로 숙지하고나 있는 것인지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경찰과 전경집단의 생명의 위험도 초래할 수 있는 물리적 폭력 사용은 계속 지적되었고 알려지고 있으나, 
개인적으로도 이런 경험을 다수 가지고 있습니다. 


변화없는 전경, 경찰의 폭력 행사

저의 경우, 작년에 촛불집회에 어린 학생들과 여성들, 혹은 집회의 경험이 전무한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참여하는 것을 목격하고, 집회자체가 전경들과의 극한 대립으로 불상사를 초래할 것이 걱정되어 많이 참여한 바 있습니다. 

집회 자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기 보다는 지켜보면서, 전경들이나 경찰들과의 불필요한 대립으로 상호간의 물리적인 폭력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도왔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전경들도 대부분 20대 초반의 어린 젊은 사람들이고, 이런 시국에 대한 경험은 물론, 이런 종류의 대형 집회, 시위의 경험이 전무하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 두려움을 느끼고 주눅이 들어 오히려 공격적으로 나올 수 있는 상황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30대를 넘어가는 세대들만 하더라도 집회시위기 사실 일상적이었기 때문에, 예전에는
시위를 하더라도 전경, 경찰들과 사전에 암묵적인 타협을 하고 '보여주기' 식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사실 많았었습니다.

즉, 서로 정치적인 의사표현을 위한 어떤 '쇼(show)'를 하지만,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기 위해, 서로 어느 선은 넘지않는 
암묵적인 타협을 가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정국의 집회시위의 원인, 방식 예전과 전혀 달라

그러나, 지금의 집회시위는 정권과 정국, 민주주의 전반이 원인으로 작용하면서, 
그 추동세력과 집단도 어떤 '단위'나 '조직', 적어도 '대학' 사회에도 소속되지 않은, 일상 '소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결사로
진지하고 냉정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들, '여학생'들, 젊은 '결혼여성'들이 참여자들의 다수를 차지하여 주축이 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즉, 이전의 소위 '운동권'의 조직화되고 보여주기 식의 집회시위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며, 
본질적인 분노와 정권에 대한 질책을 '시민사회', '시민', '대중' 전반이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시민혁명'의 환경입니다. 


그렇다면, 왜 '폭력'이 수반되지 않고 있느냐구요?

이미 상황은 시민혁명 수준이고, 정권은 이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지고, 대응을 내놓아야 합니다. 
시민들이 폭력을 쓰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의 참 뜻'에 대한 시민의 의식이 성숙했기 때문이고, 저와 같은 사람들이 '전경, 경찰'과 '시민'들간의 불필요한 대결과 폭력 사용을 방지하기 위해 조용히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물리적인 폭력'이 수반되지 않기 때문에, '화염병', '쇠파이프'도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이건 일시적인 '집회'나 '시끄러움'에 불과하다고 치부하는 것은 큰 착각입니다. 

물리적인 폭력이 수반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더 무서운 것입니다. 
시민들은 그 만큼 배웠고, 성숙했고, 자기의 책임과 권리, 권리의 행사와 의무를 타인에게 전가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의 권리를 장전하고, 보여주고 있는 것 뿐이며, 그것은 '내가 누리고 있는, 누려야 할 민주주의' 안에서 정당한 것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몸으로 말로 표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민주주의는 피로 화답하지 양보하지 않는다

이런 정국과 현실의 무서움을 깨닫지 못하고, 정권과 공권력이 무수한 직접적인 경고와 조기 경고신호(alert)를 무시하고, 
여전히 막 나간다면, 이러한 '고요'도 한계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절대 양보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요? 역사적으로 지나간 이야기로 그러했다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는 개념필연적으로 언제나 '피를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민주주의입니다. 그래서 무서운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왜 '민주주의'가 무섭다고 생각합니까?

민주주의가 교과서에나 나오는 하찮은 얘기로 치부한다면, 시민들은 '민주주의'는 분명히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런 현실을 부정하는 권력의 교만자들에게 응당의 댓가를 선사하게 될 것입니다. 
그게 민주주의고, 민주주의의 무서움이고, 위정자들이 항상 두려움을 느끼고, 경건하게 양심을 다하여 국정에 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권력의 자리에 있다는 것이 무서운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상화된 폭력 사례

제가 작년의 촛불집회에서 노파심으로 옆에서 많이 지켜봤으나, 실제로 느낀 전경, 경찰집단의 폭력은 상당히 심각합니다. 
공권력 남용과 법적인 불법에 따르는 '폭력'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보여 논외로 하고, 물리적폭력의 사례만 언급하겠습니다.


첫째 경험담을 말씀드리면,
전경들이 광화문사거리에서 집회자들을 해산하는데, 다 해산하여 뒤로 물러나는 마당에, 혼자 뒤쳐진 어린 여대생이 뛰어가다가
도로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이에 그 여학생을 좇던 전경이 그 여학생을 향해 방패를 날렸습니다. 방패로 찍은 것이 아니라, 방패를 아예 그 여학생한테 날려서, 그 여학생의 머리를 살짝 빗나가서 맞았습니다. 고의적으로 여학생의 머리를 향해 방패를 던져서 날렸습니다. 
간신히 비켜가서 망정이지 정면으로 맞았으면 최소한 뇌진탕에 걸리거나 했을 것입니다. 

혼자 쓰러진 여학생에게 방패를 던지는 것을 본 후에 어이없어, 그 여대생을 일으켜 세우고자 달려갔는데, 
전경이 자기가 던진 방패를 다시 집어들더니, 방패 모서리를 바닥에 갈기 시작하더군요. 

그리고 방패를 집어들더니 저의 눈을 향해 날을 세워서 가격했습니다.... 

이게 뭔가요?

저는 대학교 다닐 때도 안 맞고 다닌 사람입니다. 고의적으로 눈을 향해 가격을 했고, 
정황을 보면, 전경부대에서 '방패를 갈아서 얼굴이나 눈을 가격하라'고 언지를 받았거나 교육을 받은게 분명합니다. 

겨우 눈 밑을 스쳐 멍들고 말았고, 주변 분들이 달려와서 그 전경이 더 이상 접근하지 않게 도와주어서 뒤로 피신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여학생은 일어나 먼저 뒤로 뛰어서 피했습니다. 


두번째 경험담은, 
6월 중의 집회로 생각하는데, 토요일 오전에 광화문사거리에서 시위를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난, 
경찰들의 체포 만행입니다. 
소위 '체포전담조'는 그들이 미리 표적으로 삼은 연행자를 거리에서 연행했는데, 물론 연행은 했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에 '닭장차'에 억지로 감금하고, 연행자를 '때리고 패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 영상은 제가 지금도 가지고 있으며, 
주변의 많은 분들이 지켜봤고, 언론이나 국가인권위에 제소해야 한다는 의견도 들끓었습니다. 

해당 연행자는 닭장차 안에서 폭행을 당한 후 '말도 하지 못하고', '몸도 일으키지 못하고', 자신의 '신변'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에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게 뭔가요?


두번째의 사례는 경찰, 특히 '체포전담조'나 '특수기동대'의 불법적인 폭력 행사에 해당합니다. 물론 '연행'할 수 있고 '피의자 조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폭력을 쓰나요? 이게 정당화됩니까?

그리고 더 집중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첫번째 사례입니다.

전경들의 폭력성은 어제 오늘에 지적된 문제가 아닙니다.
전경들이 방패의 날을 세우고, 방패를 바닥에 갈고, 방패로 얼굴을 가격하는 것은, 10년 전에도 그랬고, 20년 전에도 그랬습니다. 

10년 전에도 전경이 휘두른 방패에 맞아 '실명'을 당한 경우도 많았으며, 대학교 신입생도 전경의 방패에 눈을 맞아 실명한 경우가 저의 경우에도 있었습니다. 

이런 사례들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전경들이 이렇게 폭력을 예사로 사용하는 것은, 해당 부대에서 그렇게 가르치고 교육하기 때문입니다.
즉, 불법적으로 잘못된 관행들이 전수되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위에서, 선임자들이 '방패를 갈아서', '얼굴을 맞춰라', 특히 '눈 부위를 가격하라', '목 주위를 가격하라'고 종용하고 전수하기 때문에 이 지경에 오는 것입니다. 


충분한 직무, 안전교육 없는 경찰권 투입은 위헌

전경들 대부분이 20대 초반입니다. 
고등학교까지 민주주의 교육을 받지만, 민주주의는 생활 속에서도 습득되고, 대학사회에서도 추가로 습득되기 때문에, 모든 전경들이 지니는 민주주의 의식이 완벽하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전경들에 대한 충분한 직무교육, 직무 수행에 따른 준법교육, 민주주의와 인권 의식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전경들은 '일반 시민들에 대한' 권력의 잘 훈련된 '개', '투견'일 뿐입니다. 

전경들이 집회 질서유지 현장에 나와서 울부짓는 모습을 보며, 거의 예외없는 모든 시민들이 
그들은 마치 '짐승 같다.', '훈련된 투견'들 같다는 인상을 받고 있습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군인의 경우, 만약에 전쟁이 일어난 유사시라면, 총을 잘 쏘고 포탄을 잘 쏘면 칭찬받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전쟁은 권력에 의해 용인된 '살상'의 현장으로 군대의 목표는 그런 '폭력성'의 표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경의 경우에는 어떻습니까? 
집회나 시위에 나와서, 전경이 '시민들' 잘 때려잡고, 물리적인 폭력을 잘 행사하면, 
넌 참 유능한 전경이로구나...  칭찬받아야 하는 것입니까?


전경은 군인이 아닙니다. 

전경은 '국가공권력'에 의해 동원된 하나의 수단일 뿐이고, 그 '국가공권력'은 경찰권력이 전경들을 동원한 
'경찰 권력'의 권한 범위 내로 제한되는 것입니다. 

경찰이 방패로 시민 패고, 방패로 눈을 가격하고, 실명시키고, 뇌출혈 일으키고, 두개골 함몰시켜도 된다는 법이 있습니까?
아니면 그렇게 해야만 합니까?


지금 전경들과 전경부대는 기초적인 임무에 대한 숙지나, 공권력의 행사방식과 한도에 대한 교육이 전혀 안되어 있습니다. 
비유하면 '총'을 쥐어 주었는데, 총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어떤 예외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 안전수칙은 무엇이고, 왜 대부분 사용되어서는 안되는지, 그리고 자신들이 그렇게 복무하고 있는 이유과 사명은 무엇인지 전혀 체득이 안되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자신들이 무슨 소리를 내는지도 모르고 '울부짓는' '권력의 투견', '개'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국가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그들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고, '국가' 자체에 대한 모독이기도 합니다. 


제복을 입은 자는 국가와 동일

10년이나 20년이 지나도 전혀 변화가 없는 이러한 상황에서, 
경찰이나 전경 집단이나 폭력을 일상사로 자행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며,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일부 전의경들은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며 자신들은 피해자일 뿐이다. 전경차가 부셔지거나, 누군가가 쇠파이프나 죽창을 나나 동료에게 휘드루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고 말합니다.
이들의 의견은 정당합니다.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자신들이 또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또다른 폭력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들은 '제복'을 입었습니다. 공권력이라는 것입니다. 단순이 개인이 개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얘기입니다. '공권력'은 '국가'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제복을 입은 전경이 시민에게 방패로 눈을 가격하는 것은, 이명박이 직접 방패로 시민 때리는 것과 똑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공권력'이고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나와 이웃을 죽이거나 패기에 바쁜 폭력국가에서 살고 싶습니까, 내가 사는 나라가 폭력국가였으면 좋습니까,
폭력국가가 되는데 내가 기여하고 있으니까 기분이 좋습니까?

'제복'은 곧 '국가'이고 '국가'는 '국가'로써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일개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이 갓 20대초반에 들어서서 전의경이 된 젊은이들에게 지각이 잘 안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전쟁이 발발한 전투현장의 군인이 아니며,
일상 생활에서 '시민'과 접촉하는 '경찰력'의 일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불완전한 '불량품' 권력은 불편함의 대상이 아니라, 회수 조치 대상

'권력'을 쥔 자들이, 그 권력을 어떻게 어떤 한도와 수칙을 지켜가며 행사해야 하는지 '정당한 권력 행사'의 방식을 모르는
무지(無知)를 범하고 있다면, 그런 권력 행사는 불편함으로 받아들이고 용인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원천적으로 반납되고 회수되어야 합니다. 


전경 집단이 지금과 같은 폭력을 지속한다면, 전경 집단은 그 어떤 경우에도, 어떠한 집회나 시위 환경에서도, 
시민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말아야 합니다. 


시민사회는 '인권'과 '개념'의 사각지대인 전경과 경찰 집단에 대해서 민주화, 합리화의 사명을 안고, 
앞으로도 이들의 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실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되나요?

작년에 서울의 촛불집회에서 평일 하루에 새벽 아침까지 함께 했을 때,
중학교 2학년인 소년이 있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 소년이 학교에 거르게 될 것을 걱정했습니다. 물론 그 학생은 아침 6시경에 집에 갔고, 등교를 했을 겁니다.

새벽 3~4시쯤에 그 학생이 저한테 와서,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되나요?  나라가 참 걱정되요." 라고

했습니다.

그게 중학교 2학년 학생의 마음입니다.

"이런 일이 우리 평생에 다시 있지는 않을거야."

하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게 1년 전의 일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지금이 4.19입니까?  4.19처럼 피를 흘려야 알아먹습니까, 아니면 피를 안흘리고 있으니까 만만해 보입니까?

사람들이 어리석어서 겁이 많아서 '피를 안흘리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권력은 대리인들에게 있지 않다

그런 착오와 교만, 교언영색(色)에 빠져있는 한, 더 큰 댓가를 '권력' 스스로 지불해야 할 것입니다.

'권력'은 '시민'에게 있는 것이지 '대리인'들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 역사적 현실을 망각하고 있다면 그에 대한 댓가를 치루고, 현실로 똑똑히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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