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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6.22 북한 대표팀의 포르투갈전 패배가 안겨주는 감동 14
  2. 2009.05.05 박경리 1주기 추모제 일을 맞이하며 _토지 1
  3. 2009.03.01 3.1절 기념사 전문 (2009년) _정통성 존중, 위기극복 다짐

2010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하고 있는 북한 대표팀이 '포르투갈'을 맞아'0 -7' 기록적인 대패를 당했다.

월드컵 G조 경기를 치루고 있는 북한은 첫 경기 '브라질'을 맞아 '1-2'로 석패하며 비등한 경기를 펼쳤기 때문에, 이번 경기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다.

특히 1966년 월드컵 대회 이후 무려 44년만에 본선 무대에 다시 진출한 북한에게 '포르투갈'은 당시 4강 진출에 좌절을 안겨준 팀으로, 이번에 설욕전에 나서지 않을까 하는 내심 큰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우천이 쏟아지는 가운데, 질퍽하게 치뤄진 경기에서, 북한팀은 초반 호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선취골을 내준 이후 체력과 투지 양면에서 크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32강 예선전부터 강팀들을 만난 '북한'의 불운이 아쉽기도 하지만, 축구에서도 높은 세계 무대의 벽을 사실상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대표팀의 패배는 일면으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그 이유를 찾으면 북한 대표팀이 브라질 전에서처럼 '아름다운 패배'를 해서가 아니다.

그들의 '패배'가 감동적인 이유는 그들이 '패배'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있다.

북한은 월드컵 독점중계권을 가진 SBS가 방송 송신에 협조해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연맹에 요청하여 북한에서 이례적으로 이번 경기를 동시 생중계로 내보냈다고 한다.

설령 북한 주민이었던들, 북한 대표팀의 '0-7' 기록적인 '패배'는 결코 생방송으로 시청하기에 그리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 보도에 따르면, 북한TV 축구 해설자들은 차분히 그런 실력차를 설명하며, '세계 축구 무대의 벽'을 사실상 인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감동적인 것은 이것이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패배'를 직접 맞딱드린 북한 축구 대표 선수들의 태도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북한 축구 대표팀 선수들은 한국 대표팀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안영학 선수는 경기 직후 취재기자와 대화에서,
 
'한국이 나이지리아를 꺽으려면 선제골을 넣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나이지리아는 신체 능력이 뛰어나니까 그 때문에 먼저 실점을 해서 기를 살려줘서는 안된다.'

'반대로 한국이 선제골을 넣으면 나이지리아는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질 것이다.'

'어제 코트디부아르와 브라질의 경기를 봤는데 아프리카 선수들은 공르 맞으면 거칠어 지면서 흔들리는 것 같았다.'

'북한이 경기 초반에 잘 싸우다가 나중에 무너진 것도 선제골 때문이었다, 북한처럼 흔들려서는 안된다.'

'한국의 16강 진출은 충분히 가능하다.'

고 밝혀, 이번 월드컵 대회 경기 경험에서 얻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단순히 '패배자'의 '치기'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진심어린 소리다.

그리고 그것은 '한 국가', '한 민족'에 대한 진심의 '애정'을 담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패배는 오히려 감동적이다.

북한 대표팀이 이번 월드컵 대회에 임하는 태도를 보면, 첫 경기 '브라질 전'에서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지만, 그 어느 팀보다 '파울'(Foul)이 없는 모범적인 경기를 펼치고 있다. 이번 '포르투갈 전'도 다르지 않았다.

전반전이 끝날 때까지, 포르투갈은 수 차례 파울을 감행했지만, 북한은 비가 퍼붓는 와중에도 단 하나의 파울도 범하지 않았다.

그런 '매너' 넘치는 북한 대표팀 선수들이 내놓는 소리이니 진심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생각해 보자. 만약 우리라면 어떠했을까?

'내가 당했으니, 너도 한번 당해보라' 그런 '심보'가 팽배하지는 않은가?

그래서 더 감동적이다.

나의 '실패'를 교훈삼아 너는 '훌륭히 잘 하라'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 그 '미덕'이 당연한 것인데, 
오히려 우리는 그 반대되는 현상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ㅈ ㅗ ㅅ 됐으니, 너도 한번  ㅈ ㅗ ㅅ 되봐라." 그런 심보가 지금 이 순간에도 팽배하고 있지는 않은가?

남북관계도 마찬가지고, 국내 정치도 마찬가지 아니냐... 이 말이다. 이 정권의 '거꾸로 달리는 시계'를 보면 달리 볼 수가 없다.



그래서 더 감동적이지 않은가?  정대세의 눈물만이 감동적인 것이 아니다.

'승리'와 '패배'를 떠나 '진심'으로 하나를 생각하는 그들의 진실된 염원이 감동을 준다.

그래서 그들은 이번 월드컵 대회의 참된 '승자'가 될만 하다. 우리 모두를 진정한 '승리'로 이끌 것이 분명하다.


[관련글] 지윤남 몸매, 몸짱이 선물한 기적의 북한 골 쾌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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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5일 어린이날입니다. 여기저기 블로그들을 쭉 둘러보다 보니 오늘이 토지(土地)의 작가이신 박경리 선생의 1주기 추모제(1주년 기념일)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나 그 분의 인생 여정을 간략히 다시 찾아보게 됐습니다.

저는 박경리 선생님과 안면식이 있던 것도 아니고 그 분의 저작 세계에 대해 깊은 조예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이렇게 평범한 일반 독자 입장에서 쓰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 분의 토지에 대해 깊히 얘기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며, 독자가 스스로 체득하고 느껴야할 것들에 대해서 능력이 허락치 않을 것입니다. 다른 분들의 더 좋은 조언들을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기념일을 맞아 정말로 관련이 있으신 분들, 지인이셨던 분들께서 많은 글들을 올리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것도, 다른 분들의 블로그 글을 보면서, 아... 박경리 선생님 1주년이구나 알게 되어 쓰게된 것입니다.
(추모제 관련내용, 추모제, 박경리님을 추모하며, 토지배경 전경 )

제가 찾아보면서 얘기하고 싶은 점은 박경리 선생님의 인생과 그 분의 집필 배경과 의지입니다.

박경리 선생님은 1926년생으로, 1969년에 <토지>를 처음으로 발표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26년생이었으니까, 무려 43살에 집필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요즘처럼 속도만을 강조하는 세태에 비추어 본다면, 43살은 참 늦은 나이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1969년에 시작한 <토지>를 전21권으로 1994년 마무리하였다고 하니, 무려 26년간 집필하였습니다. 인생의 주요 시간을 할애하셨다고 볼 수 있는데, 43살에 쓰기 시작했으니까, 69살에 탈고하신 것입니다.

<토지>는 대한제국 말기부터 해방까지의 기간을 최참판댁 가문의 5대에 걸친 흥망성쇠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책에 대해 자세히 얘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함께 생각해 보고 싶은 점은, 43살에 쓰기를 결심해서 무려 26년만에 마무리 지은 이 작품이 본인에게나 우리에게나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입니다. 써야만 하겠다는 의미와 의지가 있었기에 무려 26년이라는 인생의 주요 장년기를 할애하였을 것입니다.


박경리 선생님은 <토지>를 왜 썼을까요? 왜 써야한다고 생각했을까요?

박경리 선생님은 1926년생으로 한국현대사에서 본다면, 일제시대에 태어나 일제시대의 삶을 그대로 체험했다고 볼 수 있고, 성년기에 접어들 때 해방을 맞이했으나, 분단이후 20대 중반의 황금기에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또한 이후 전반적인 가난과 군사독재가 이어지면서, 지난 100년을 돌이켜본다면 한국 근현대사의 고통의 중심을 당신의 삶의 체험으로 관통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학(文學)과 인문(人文)은 역사(歷史)는 아니기 때문에, 마치 중고교 '국정교과서'처럼 어느 시기까지만 얘기하고 멈춰라하는 법은 없습니다. 작가의 취향과 시대정신에 따라 어느 시대든 복원하고 창조해 볼 수 있습니다. 

70년의 문턱에 시작해서 94년에 마무리 지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45년 해방까지만 다루고 있는 <토지>의 시대적 배경은 다소 옛날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당신께서는 19C말 대한제국 시절부터 1945년 해방까지만를 기록했을까요?

추측해 보건데, 누군가는 1897~1945년까지 약 50년의 기록을 써야한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1926년생이신 선생께서는 일제시대를 직접 체험하시고 한국전쟁과 분단의 고착화, 이후 군사독재시절을 거치시면서 대한제국 시절 이후 일제 제국주의로 이어지는 민족의 고통의 근원과 그 해소의 기원을 찾고 싶었을 것입니다. 

즉, 지금의 고통은 전통의 연속적 전개의 단절, 구조적 모순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보고, 이런 구조 속에서도 역사는 연속되며, 개인의 시련과 극복의지는 계속된다는 것을 복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거기에 살아있는 혼은 무엇인가 그 수 많은 군상들을 형상화하며 보여주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지난 시절을 돌아본다는 것은 창작의 재료를 찾는다는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근원적인 현재적 고통의 기원과 실마리를 찾고 싶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수백여명의 인물 군상들을 그 안에 형상화하고 녹여냄으로써 역사와 구조는 물론, 인간의 인생 굴곡과 자기의지의 의미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박경리 선생님은 왜 광복으로만 마무리했을까요?

그런 인물군상과 역사 구조적 시련을 정말로 까발리고 싶었다면, 한국전쟁을 넘어서서 이후에까지 필력을 이어갔을지 모릅니다.

추측해 보건데, 대한제국의 연속성 단절과 일제시대는 외세 영향력에 따른 피압적 상황에 해당하지만, 한국전쟁의 경우에는 남과 북이 서로 총을 겨눈 분명한 내전(內戰)의 형태를 취한 덧없고 어리석은 것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빛을 다시 맞이했다는 광복(光復)을 얻은 것도 눈물 겨운데, 그로부터 수년 뒤에 분단되고 내전까지 벌인 현실이 얼마나 어리석고 비참합니까.

당신께서 1897~1945년 광복기까지 자신이 실제로 눈으로 보고 관찰하여 발담근 일제시대를 중심으로 대한제국 말기부터 광복까지를 문학적으로 형상화, 복원하는 것으로 자신의 책무는 충분하다고 여겼을 수 있습니다.

그 분께서 오히려 한국전쟁을 포함한 이후까지를 <토지>에 집어넣었다면, 오히려 당신께서 의도하지 않는 고통이 스스로에게 가중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비유컨데, 1897~1945년까지가 자식을 잉태한 어머니의 젊은 시절의 기록이라면, 자식들이 서로 치고 받는 내전을 벌인 1945년 이후의 기록을 그 어미보고 생생히 기록하라고 하는 것은 고통을 주는 가혹행위에 해당합니다.


1897년 한가위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1945년 광복으로 잠정적으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1897년은 대한제국의 시절, 연약했지만 연속성이 유지되고 있던 시절이고, '한가위'는 민족의 공통적 기원과 공동체적 융화를 상징합니다. 무수한 인간군상들의 구조적, 시대적, 개인적 역정이 펼쳐지지만, 결국 <토지>의 대단원은 "광복"으로 마무리됩니다. 처음과 끝만을 놓고 본다면, '한가위'에서 시작하여 '광복'으로 돌아옵니다.
'한가위'는 모두가 하나되어 밝은 달 아래서 모이고 융합하는 민족의 가장 풍성한 날이고,
광복은 빼앗긴 민족의 혼과 빛을 다시 되찾아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빛에서 출발하여 빛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한가위'가 음력 8월15일이라면, '광복'은 양력 8월15일입니다. 
무수히 많은 인물군상들이 출몰하고, 시련의 시간들도 다가오고 지나가지만, 음력이 어느새 양력으로도 바뀌었지만, 빛은 빛으로 돌아오고 있고, 그런 순리의 빛을 맞이하여서만 우리는 기뻐했고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렇다고, 단편을 제외하고라도 1950년 이후 현대사에 대한 장편의 비평과 복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김성종 작가는 1980년대 <여명(黎明)의 눈동자> 전10권을 통해 1943년부터 1953년 한국전쟁까지의 약 10년간의 민족사의 고난과 비극, 그리고 젊은 청춘들이 꿈꿨던 사랑과 시대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1991년 10월 7일부터 1992년 2월 6일까지 최재성, 채시라, 박상원 대스타들을 출연시키며 MBC 특별드라마로 제작되어 불멸의 대작으로 시청자의 기억에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또한, 비록 개인적 가족사에 과도하게 치우친 면은 있지만, 이문열씨는 1960~70년대를 겪어왔던 한 가족사의 기억을 <변경> 12권을 통해 그의 집중도 높은 필력으로 1990년대에 집필탈고한 바 있습니다.


오늘 2009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박경리 1주년 기념일을 접하게 되면서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오늘 우리는 무엇을 기록하고, 함께 써나갸야 하는 것입니다.

박경리의 <토지>, 김성종의 <여명의 눈동자>, 이문열의 <변경>을 보면, 근본적으로 일제시대와 이후 한국전쟁에서 비롯되는 민족과 개인적 고통들이 그대로 담겨져 있습니다.

만일 이후에 이런 대하소설의 흐름을 이어받아, 1980년대 이후의 우리의 흐름을 장편으로 기록하고자 한다면,
아직도 우리는 분단으로부터 비롯되는 고통과, 한국현대사에서나 세계사의 흐름에 비추어 보와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 분단의 얽매임과 불편한 환경으로부터의 해방의 욕구를 다시 한 번 분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2000년으로 넘어왔을 때, 새로운 밀레니엄(Millenium) 시대가 시작되고 뭔가 세상이 확 바뀔 것으로 잠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대로 돌아가고 있고, 우리의 기억의 근원들도 바뀐 것이 없습니다.

2000년은 전쟁 이후의 50년이기도 했고, 2010년이 되면 새로운 10년이라고 우리는 또다시 호들갑 떨겠지만, 전쟁 이후 60년이 될 뿐입니다. 

현 세대와 미래세대가 한국전쟁으로부터 50년이 지난, 2000년 이후의 50년을 써나간다면 무엇을 쓰도록 해야 할까요. 

만일 박경리 선생께서 2026년생이라면, 1997년부터 2045년까지의 시간을 <토지>로 기록했다는 것이 됩니다.  
그 와중에 2009년이라는 오늘이 있는데, 당신들께서 지적하신 비극은 아직도 그대로 있습니다. 

지나간 세월 우리의 한(恨)은 무엇이었고, 혼(魂)은 무엇이었나...
오늘의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그리며, 어떤 세상을 향해 가고 있는가.


박경리 선생님 1주년,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해맑게 웃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넌지시 떠보기 위해서 선생님께서는 굳이 어린이날을 택하셨던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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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입니다. 작년과 같은 어이없는 내용은 없이, 대체로 무난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90주년 3.1절 기념사] _2009.03.01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독립유공자와 재외동포 여러분, 전 세계 한민족 모두의 뜻을 모아 오늘 제90주년 삼일절을 기념합니다. 먼저 조국 독립과 광복을 위해 헌신하신 순국선열들 영전에 머리를 숙입니다.

아울러 독립 유공자와 후손들께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멀리 지구촌 곳곳에 흩어져 살고 계시지만 오늘 함께 기념하고 있을 한민족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90년 전 오늘, 독립선언문 낭독을 시작으로 삼천리 방방곡곡은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으로 가득 찼습니다. 우리 선열들은 일제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조국 독립을 위해 만세를 불렀습니다.

나라 잃은 절망 속에서 조국 해방의 희망을 외쳤습니다. 오직 독립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신분의 귀천도, 종교의 차이도, 이념의 대립도 없이 모두 하나가 되었습니다.

3․1 운동의 희생과 애국정신은 임시정부 수립과 항일 투쟁으로 계승되었고 조국 광복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항일 독립운동과 조국 광복이 있었기에 우리 대한민국의 건국이 가능했습니다. 광복 후에는 숱한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성취와 기적의 역사'를 만들어 낸 원천이 되었습니다.

위대한 국민 여러분,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이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올해는 도쿄 2․8독립선언과 3․1운동, 그리고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이 되는 해이며, 광주학생의거 80주년,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입니다.

정부는 이런 계기를 잘 살려 독립과 광복을 위해 순국한 선열들의 희생과 애국정신을 더욱 선양해 나갈 것입니다. 금년은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에 맞추어 독립유공자 유해 봉환 행사를 열 것입니다.

작년 '대한민국 건국 60년' 경축식에서 밝혔듯이 조국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에 대해서는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무한책임 의지를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합니다. 이 나라가 있는 한, 우리 국민들이 있는 한 조국을 위해 몸 바친 모든 분들에 대한 국민의 존경과 국가의 보훈은 영원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3․1운동 90주년을 기리는 오늘 우리는 전대미문의 경제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지난날 숱한 역사의 고비와 굴곡을 거쳐 왔지만, 당면한 경제위기는 결코 쉽지 않은 도전입니다.

저는 오늘의 상황을 보면서 새삼 3․1운동의 정신을 되새기게 됩니다. 위기 앞에서 온 민족을 하나되게 한 3․1정신은 우리 국민의 고귀한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3․1 운동에서 선열들이 보여주었던 자기희생과 화합의 정신은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시대정신이라고 하겠습니다.

자기만 잘 되겠다는 개인과 집단의 이기주의로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너와 나가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백범 김 구 선생의 말씀과 같이 '사랑의 덕과 법의 질서가 우주 자연의 법칙과 같이 준수되도록' 해야 합니다. 증오와 투쟁의 정신을 버리고 사랑과 화합을 실천해야합니다.

얼마 전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사랑과 감사의 힘을 보여주고 가셨습니다. 각박해져 가는 우리 가슴을 녹이고, 자기만 바라보던 우리 눈을 들어 이웃을 보게 하셨습니다.

추기경님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서너 시간씩 경건하게 줄을 섰습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면서 우리 국민의 가슴 속에 사랑에 대한 갈망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사랑과 나눔의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 갑시다! 지금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화합의 바이러스’가 서서히 그러나 널리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미 노사민정이 고통을 분담하고, 일자리를 나누기로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어냈습니다. 이것은 희망을 말이 아닌 실제로 보여준 것입니다. 더구나 정부가 아니라 민간 주도였다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광복회와 더불어서 많은 사회단체, 경제계, 종교계, 교육계 등에서도 연금이나 월급을 나누는 등 사랑의 실천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외환위기 때 금붙이를 모으던 정신이 지금 일자리 나누는 정신으로 되살아난 것입니다. 세계 모두가 위기를 겪고 있지만 이런 모습은 오직 대한민국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것을 나누고 함께 하려는 희생의 자세는 위기 극복은 물론 선진국 도약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정부는 이런 자기희생이 보람과 가치를 갖도록, 그 열매를 모든 국민이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이제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국민대화합 만세운동이 전국 방방곡곡에 퍼져나갈 것으로 믿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의 목표는 단순한 경제 위기 극복에 머무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 위기를 남들보다 빨리 극복해내는 것은 물론 사회 각 부문을 개혁하여 선진화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지나기만 기다리며 움츠리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더 높은 도약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의 목표를 동시에 달성함으로써, 선조들이 이루었던 역사를 능가하는 새로운 도약과 영광의 역사를 써 나가야 합니다. 힘들다고 변화와 개혁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힘들다고 원칙을 버리고 우회할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개인의 자율과 창의를 존중하며, 법과 윤리가 바로 서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며, 성숙한 문화를 꽃피우는 선진일류국가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꿈꾸었던 나라도 단지 경제력과 군사력이 앞선 나라가 아니라 ‘문명한 품격을 실현하며, 세계만방의 친선과 동정이 있는’ 나라였습니다.

선열들의 그 뜻을 이어받아 우리는 이미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세계사의 흐름을 따라가는 나라’에서 ‘세계사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나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문명사적 대전환기를 맞아 세계에서 가장 선도적인 저탄소 녹색성장의 비전을 통해 기후변화에 적극 대처하고, 인류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비전을 세계와 나누고 8천만 한민족과 함께 실현해 나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국내외 동포여러분, 3․1 운동에서 선열들이 외쳤던 것은 ‘民族自存’과 ‘전 인류의 共存同生’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광복이후 60여년이 지나도록 분단의 질곡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북녘의 동포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전 세계에서 북한 동포들의 삶과 행복을 진정으로 생각하고 가장 걱정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입니다.

북한을 진정으로 지켜주는 것은 핵무기와 미사일이 아니라 남북 협력과 국제사회와의 협력입니다. 어느 누구도 한반도의 안녕과 평화를 훼손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결코 성공할 수도 없습니다.

비핵화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빠르게 발전할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과감하게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남과 북은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평화적으로 공존, 공영해 나가자고 합의해 왔습니다. 저는 이러한 남북 간 합의사항을 존중할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남북 간 대화와 협력을 발전시켜 나가고자 합니다.

조건 없는 대화의 문은 지금도 활짝 열려있습니다. 남과 북은 빠른 시일 내에 대화를 해야 합니다. 3․1 정신의 가르침대로 남과 북이 만나서 한민족의 도약을 위해 합심해야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위기 앞에서 더욱 강해지고, 단결하는 우리 민족의 저력을 믿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희망을 잃지 않는 우리 민족의 열정을 믿습니다.

우리 모두 자신감을 가지고 이 도전을 이겨냅시다! 자신의 것을 나누고 서로 위로하며 격려합시다! 공동 목표를 향해 차이를 극복하고 힘을 합친 선열들의 뜻을 받들어 우리 모두 힘을 모아 힘차게 나아갑시다! 감사합니다.

2009.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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