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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해당되는 글 15건




  1. 2012.11.19 한가인 384점 수능점수의 진실 39
  2. 2010.06.11 타블로 성적증명서, 성적표 진본이 맞다 116
  3. 2010.05.10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 총학 재선거 해야 하나? 2
  4. 2010.04.03 대학에는 답이 있다 _김예슬의 대학 선언 (2) 3
  5. 2010.04.03 대학에는 답이 없다 _김예슬의 대학 선언 (1) 1
  6. 2010.04.02 학원강사 120만원 생활, 사교육 시장은 레드오션 7
  7. 2010.03.31 김연아 프로야구 시구하러 가라 2
  8. 2010.03.24 EBS 수능 교재 싸게 구입하기 _EBS 수능 특강 도움 될까? 2

 

인기 여배우 한가인씨의 수능점수가 '384점'으로 알려져, 상당히 고득점인 것으로 보이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가인(김현주)씨는 '경희대학교 관광경영학과' 2001학번으로 프로필에 알려져 있으며, 그렇다면 2001학년도 수능 시험을 치룬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2000년 11월에 치뤄진, 2001학년도 대입 수능시험은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쉬웠던 시험'으로, 얼마나 쉬웠냐 하면, 그 결과를 아래 표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아래 표를 보면, 수능이 400점만점으로 전환된 것은 1997학년도부터인데, 이때부터 상위50% 집단의 평균점수 득점율을 보면, 54.1%, 67.7%, 75.1%, 77.5% 입니다. 

 

2001학년도 수능점수 평균 (교육과정평가원)

 

즉 100점 만점이라고 환산하면, 상위 50%집단이 각각 54.1점, 67.7점, 75.1점, 77.5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독 2001학년도만 상위50%집단 학생들의 평균점수가 84.2%, 즉 100점만점에 84.2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게...상위권 점수가 아니라, 100명 중에 상위 50명의 평균점수가 84.2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2001학년도 수능이 정말로 얼마나 쉽게 출제되었었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2001학년도 수능의 특징으로는, 2002학년도부터 지금처럼 영역별 등급제가 실시되면서, 그 이전에 마지막으로 치뤄진 수능으로, 의도적으로 엄청나게 쉽게 출제되었으며, 시험을 치룬 후, 원점수별로 수능성적 등수가 정식으로 공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험 이후 알려진 바에 따르면, 원점수 400점 만점에 만점자가 66명에 이르렀으며, 원점수 390점 이상자가 수천명, 원점수 380점 이상자는 3만 5,114명에 달했다고 알려졌습니다.

 

2001학년도 수능 직후, 수능점수 분포 추정

 

2001학년도 수능 직후, 학원들의 수능점수 분포표 추정치에 따르면, (수학능력시험) 

수능점수 385점(원점수)는 약 8천등 내외의 수준으로, 그 이전 년도인 2000학년도보다 무려 8배나 많은 인원수를 보이고 있습니다. ('자연계'를 제외한 '인문계' 기준)

 

인문계 응시생이 약 40만명으로 추정될때, 이 등수는 상위 약 2% 내외에 해당하는 점수로 추정이 됩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서울대, 연고대 등 상위권 대학을 가려면, 원점수가 390점에 육박해야 했으며, 370~389점 원점수 구간에 수험생들이 엄청나게 몰려서, 중상위권 대학의 경쟁률이 유례없이 치열했던 것으로 기억이 되네요.

 

따라서, 한가인씨의 수능점수가 원점수 자체로는 높은 점수임에는 분명하나, 그 시기에 상대적으로 보면, 아주 독보적인 최상위권의 점수는 아니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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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블로 학력위조 논란' 운운하며 일부 네티즌들이 '타블로'를 계속 괴롭히고 있다.

음악은 '학력'과 무관한 것으로 에픽하이 멤버 중에 유독 '타블로'만 대상으로 지목한 것 자체가 악의적이다. 에픽하이(Epik High) 멤버 중에는 '미스라진'도 있지 않은가? 그는 '고졸'이다. 그래서 '음악' 못했나? 아니다.

웹(web)은 치외법권 지대가 아니다. 국내, 국외 사용자를 막론하고 물론이다.

따라서 타블로를 의도적이고 악의적으로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해당 네티즌들은 엄중한 사법 처리의 대상이 되야할 것이다.

한편 타블로는 이런 논란을 종식시키고자 학력증명서, 자신이 다녔다는 스탠포드 대학교 학사, 석사 학위 성적증명서를 공개했다.

이에 대해 '타블로 학력 위조' 운운하는 이들은 또다시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트집을 잡고 있다.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기 때문에, 안티(anti)라도 너무 아마추어적인 '안티'가 이닌가 생각이 될 지경이고, 해당 당사자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지 심히 궁금해 지고,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1. 성적표는 성적증명서와 같다. (성적표 = 성적증명서)

타블로가 '성적증명서'를 공개했음에도, 타블로를 괴롭히는 이들은 '성적표'가 '성적증명서'가 아니라고 생트집을 잡고있다.

어처구니 없는 거다.

왜냐하면 "성적표"는 "성적증명서"이기 때문이다. '동의어'이다.

"성적표"나 "성적증명서"나 동일한 실체에 대하여 '명칭'이 다른 것 뿐이다.

한편,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에서 "성적증명"을 떼면 "성적증명서'가 발급되지 '성적표'를 발급하지는 않는다.

한 학기 끝나면 발급하는 '성적표'라는 것은 '줄 성적표'라고 해서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학기가 아니면 발급 받고 싶어도 발급 자체를 받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런 '한 줄 성적표'는 그냥 해당 학기 성적을 학생에게 '공지'(안내)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여기다가 '발급'이라는 공식 단어를 붙일 수 조차 없다. (이건 세계 어느 대학생이든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따라서 타블로가 제시한 공식적 '성적증명서'를 보고 학기 끝나고 단일 학기 성적 가르쳐주는 '성적표' 운운하는 것 자체가 어의상실을 일으킨다.

해당 의혹을 제시한 자들은 과연 '대학'은 다녔고 '졸업'은 했을까 심히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을 다녔다면 이런 방식의 의문 제기 자체가 어처구니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학행정 학사 현실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주동자의 주장을 보면, 뉴욕대학교(New York University)에서 12학점을 'transfer'로 취득한 것을 가지고, '타블로'는 뉴욕대도 다닌 것인가...하고 비아냥 거리고 있는데, 이런 지적만 봐도 당사자가 '대학' 자체에 '문외한'이 아닐까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transfer'는 교환학생을 말하는 것으로, 다른 대학에서도 수업을 들으면 학점 취득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교류가 인정되는 국내외 대학들도 다르지 않다.

참고로, 타블로가 학사+석사 과정을 '3년반'만에 마쳐 너무 짧은거 아닌가 지적하는 이들이 있는데, 위의 성적증명서를 보면 그 이유가 해명이 된다.

- 즉 스탠포드대학교는 Autumn - Winter - Spring - Summer 식으로 1년을 4학기로 진행하고 있으며, 각각 계절별 학기마다 학점이 부여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그런데 한국의 국내대학들은 대부분 여름, 겨울을 방학으로 쉬기 때문에 결국 1년에 2학기 밖에 안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계절수업이 있으나 일부 과목만 진행되고 있어서, 정규 학기 과정으로 대학 스스로 생각을 안하고 있다.)

- 결국 타블로는 위의 '성적증명서'를 보건데, 1년에 4학기를 다녔으며, 결국 '3년6개월'로 치면, 총 14개 학기를 다녔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 기간은 국내 대학으로 치면 무려 7년에 해당하는 수업 연수이다.

- 따라서, 타블로가 어떻게 '3년반'만에 학사+석사 과정을 모두 마쳤을 수 있는지 해명이 된다. 그 이유는 바로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의 1년 4학기 쉬지않는 수업 시스템에 있었다.


2. '성적증명서'와 '대학 씰(seal)'에는 언제라도 카피(Copy) 표시가 나타난다.

이들은 타블로 성적증명서에 'Copy'라고 표시되는 점을 들어, 정본이 아니라고 인정할 수 없다고 허무맹랑한 이유를 들고 있다.

진짜로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다.

언론에 공개되는 모든 '성적증명서'는 '카피본', '복사본'(Copy)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100% 복사본이다.

왜 그런가?  논리필연적으로 반드시 그렇게 되기 때문이다.

타블로의 성적증명서가 대중에 공개되는 과정을 보자.

1) 타블로가 '성적증명서'를 스탠포드 대학교 측으로부터 '발급'받는다. (원본)
2) 타블로가 이를 '스캔'하여 언론사에 제공한다. (이 때부터 성적증명서는 '복사본'이 된다.)
3) 언론사들은 이를 접수하여 기사로 작성한다. (따라서 '복사본', 'Copy' 문구가 뜨는 것이 당연하다.)

혹은, 타블로가 언론사에 '성적증명서' 진본을 제공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럴 의무는 전혀 없지만.)

1) 언론사들은 타블로로부터 성적증명서 진본을 접수한다. (원본)
2) 언론사들은 '성적증명서'를 '스캔'한다. (이 때부터 성적증명서는 '복사본'이 된다.)
3) 언론사들은 스캔한 '성적증명서'를 이미지 파일로 만들어, 언론 기사에 첨부한다.

이처럼 타블로가 공개한 성적증명서에 'Copy' 문구가 뜨는 것은, 그 성적증명서 제시행위가 '진본'임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타블로 학위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주동자의 주장을 보면, 스탠포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 성적증명서 '원본'에는 학교 '씰'이 표시가 되지 않으므로, 원형 '씰'이 분명하게 나타나는 위 '복사본'은 '가짜'라는 식으로 얘기하고 있는데, 이 또한 어처구니없는 '혹세무민'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화폐 지폐를 복사하면 숨겨진 문양이 드러나듯이, '진본' 성적증명서를 복사했을 경우에도 '씰' 문양이 뚜렷하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3. 그 누구도 스탠포드 대학교 성적증명서를 복사, 스캔했을 경우(Copy), 대학교 문장 씰(Seal)의 형태가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 확증한 바 없다.

복사기의 종류나 기종에 따라 복사본(copy)의 칼라, 형태는 엄청나게 다르게 나타난다.
칼라복사기 자체가 여전히 고가로 귀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칼라 복사기 가지고 어떤 문서든 복사해 보라.

한편으로, 칼라 복사기를 통한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서 대학교 문장 씰(Seal) 조차도 복사했을 경우, 그 모양이 변형되어 나타나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

'타블로 학위 조작' 운운하는 이들은, 복사본의 대학교 씰(Seal) 문장이 원본 진본과 다르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고 하는데, 정말로 어설프기 짝이 없는 '초짜' 논리라고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다시 말하지만, 복사본(Copy)에서 대학교 씰(Seal) 조차 원본과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위조를 방지하고, 복사본이 원본이 아님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타블로 성적증명서의 복사본(copy)에 대학교 씰이 원본과 다른 색체로 나타난다면, 더욱 원본이 '진실'된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주는 것이다..


이처럼 타블로의 성적표, 성적증명서는 '진본'이 맞다.

따라서 악의적으로 왜곡된 사실을 만들어 수 년간 지속적으로 '타블로'를 괴롭혔다고 하는 해당 당사자들은 엄중한 사법 처리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공개적으로 '타블로'를 괴롭히고 있으므로, 그 죄질이 절대 가볍지 않다.

엄중한 처벌을 바라며, 개인의 '권익'에 중대하게 도전하는 이들에게 '타블로'도 명백한 법적 책임을 묻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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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사회의 총학생회 구성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는 서울대학교라서 해서 다르지 않은거 같다.

서울대가 발행하는 교내 '대학신문'에 따르면, 제53대 총학생회(총학) 재선거가 49.39% 투표율 미달로 무산되었다고 한다.

왜 무산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절대 투표율 50% 이상만을 유효한 투표 행위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원문기사 참고)

즉 전체 유권자가 2만명이라고 한다면, 50% 이상인 1만명 이상이 투표에 나서야 유효한 투표 결과로 인정한다. 


그런데 이런 '50%' 룰(Rule)은 과연 정당할까?

투표는 의무가 아니다. 

투표는 권리다. 

의도적으로 '투표 행위'를 '방해'했거나, '투표 권리'를 알려주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투표하지 않은 '기권 행위'는 유권자의 자기 책임일 뿐이다. 

따라서 절대 투표율이 적다고 '재투표'에 나서거나, '재투표' 결과까지도 '무산'으로 기록하는 것은 도저히 설득력이 없다. 

더욱이 '재투표 결과'까지 '무산'시키는 것은 절대적으로 설득력 없다. 

왜냐하면 투표를 종용하고 '권리 있음'을 알렸다면, 절대 투표율이 일정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를 최종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투표를 진행한 선거인단은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것이고, '투표 행위'에 나선 유권자들은 '권리 행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표 행위'를 통해 선거와 투표의 가치를 높이고 권리를 행사한 유권자와 후보들을 오히려 역차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투표'의 권리를 포기한 것은 '권리'를 포기한 해당 학생들 스스로의 선택일 뿐이지, 선거관리위원회나 선거본부('선본')들의 스스로의 책임이 아니다.

그래서 사전에 유효 투표율을 정해놓고, 절대 투표율이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재투표'에 나서거나, 투표 행위 자체를 '무산'으로 보는 것은 절대 설득력 없다. 

이는 사회의 각종 선거도 마찬가지다. 지방자치, 국회의원, 대통령 선거도 마찬가지다.

1위 득표율을 기록한 후보가 일정 수준의 '득표율'을 기록하지 못해서 재선거(결선 투표)에 나서는 경우는 일부 국가에서 있을 수 있다.(예컨대 30~40% 이상, 법으로 정해져있을 경우, ex) 10만명의 유권자 중에서 5만명이 투표에 나서 1만표를 득표했다면, '득표율'은 20%에 해당)

하지만 애초에 '투표율'이 어느 수준에 이르지 못해서 '투표' 자체를 무산으로 보는 경우는 없다. 그것은 '역차별'이기 때문이다.
일부 유권자들이 '투표권', 자기 권리 포기한 거 뿐이다. '기권 행위' 안 말린다.  

총학 선거에 나선 서울대 학생들은

1) 왜 "50% 룰(rule)이 존재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이유 없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없다.

2) "50% 룰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이 룰(rule)은 권리를 포기한 '기권 행위자'들을 과도하게 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3) '50% Rule'을 고수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선택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결국 "생각"이 중요하다. '합리성'이 있어야 한다. 

권리를 의도적으로 포기한 '기권자'들을 불평등하게 '우대'하는 '50% 룰'은 전혀 설득력 없다. 

따라서 향후에는 재투표 자체를 전혀 실시할 필요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어떤 투표율이든 투표의 결과를 '최종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것이 오히려 '정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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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다소 되므로, 이전 글을 계속 이어가고자 한다.

앞에 글에서는 '대학은 자신의 인생을 도와주기 위한 보조 공간일 뿐이므로, 진리, 우정, 정의와 같은 가치는 자기 인생에서 스스로 찾아나서고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학(大學)은 무엇인가? 대학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말인가?

저번 글에서는 '대학에는 답이 없다'고 밝혔지만, 이번 글에서는 감히 '대학에는 답이 있다'고 단언하고 싶다.

김예슬양은 그녀의 글을 학생들에게 공개하며 스스로 '자퇴'할 생각이 있음을 내비쳤다. 

그래서 그녀가 정말로 '자퇴'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필자는 그녀의 '자퇴'를 적극적으로 만류한다.


앞서 글에서 밝혔듯이, 대학에서 '자퇴하느냐, 마느냐'하고 매달리는 것은, 대학을 너무 과분하게 보기 때문이다.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런 '집착'을 벗어던지면 '대학'은 이미 '별 거' 아니다.

고려대 김예슬의 '고민'과는 달리 필자는 이미 대학시절에 한번이 아니라, 여러번 '자퇴'해 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 어찌보면 필자가 김예슬 양보다는 '고단수'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필자의 '자퇴 경험'의 동기는 그녀의 '진지함'에 비하면 비교평가할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어느 경우이든 자신의 '정체성'과 '주체성'에 그 맥이 닿아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중고등학교도 아니고, '대학'을 여러본 '자퇴'해 본적이 있는 필자는, 그러면 '대학 자퇴생'인가?

그렇지는 않다. 필자는 이미 '대학'을 졸업했다.

'자퇴'를 했지만, 다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곳이 '대학'이다. 그것은 '지성'(知性)을 갈구하는 '인생'들에게 '필연'일 수 밖에 없다.

김예슬 양의 경우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대학을 그만둔다고 해도, '대학'은 다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공간이다.


왜 그럴까?

'대학(大學)에는 답이 있기 때문이다."

저번의 글 '대학에는 답이 없다'는 명제와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번 명제는 절대 틀린 얘기가 아니다.

'대학교'(大學敎)에는 반드시 답이 있는 것이 아니지만, '대학'(大學)에는 필연적으로 답이 있다.

'대학'은 '진리체계'와 사실상 거의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김예슬이 '나는 대학을 거부한다.'에서 밝힌 '대학'의 의미도 '대학교'를 말하는 것이지 '대학'을 거부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녀가 문제삼고 있는 상황은 '대학교'의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왜 그녀에게 대학에 남을 것을 조언하고, '대학에는 답이 있다'고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일까?

말 그대로다. '대학에는 답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이라는 '진리체계'는 주로 '대학교'에서 연구한다.

김예슬 양이 문제삼은 '대학'의 현실은 사실상 '대학교 학부 과정'의 문제일 뿐이지, '대학'이나 '대학교' 자체에 문제가 있는게 아니다.

그녀나 당시 또래의 필자나 '대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줘야 하는 것처럼, 대학에게 모든 것을 밀어넘겼던 지적 오만'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이미 얘기한 바 있지만, 그것은 '학부 과정'에서의 논제 상황인 것이지, '대학' 자체의 문제 상황은 아니다.

그리고, 진정한 학문은 '대학원' 과정부터 진행된다고 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진정한 학문으로서 '대학'은 대학에 남아 연구하는 '대학 구성원'에게 우선권이 있다고 해야 한다.


그래서, '학부 과정'에서 너무 많은 '학문적 기대'를 해서는 안된다.

지금 대학교 학부과정에 몸 담고 있거나, 앞으로 대학에 진학하게 될 이들이 실망할 수도 있지만, 대학교 학부체계는 그 전공에서 본다면 실로 기초적인 기본 소양을 제공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하더라도, 기본 4년, 혹은 기본 6년을 마쳐도 제대로 된 의사의 기능을 수행할지는 미지수이다.
'전문 전공'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인문,사회,자연,공학 학문도 마찬가지다.

이런 의미에서는 '학부 과정'이 수업만을 놓고 따진다면, 그 학문 체계에 기본 소양이 있는 '준 전문인'을 양성하는 과정이라고 살짝 양보해 주어야 한다.

이를 넘어서서 '진정한 학문'을 하고자 한다면, 대학원(大學院)에 진학하거나 어떤 식이든 연구활동을 계속해야 한다..

그런 연구활동이 계속되는 공간으로서, '대학(大學)은 여전히 답이 있고, 학문의 전당으로서 계속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필자도 그랬지만, 김예슬 양이 놓치고 있는 점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다시 말하지만, "학부과정이 모든 것을 가져다 주어야 할 것처럼" 생각하는 자신의 '지적 오만'이다. 오히려 '오해'일 수도 있다. 악의적으로 '오만'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므로, 사실상 '오해'하고 있는 것인데, 경험상 쉽게 발견할 수 없으므로, 결국 '학부생활'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된다. 

그래서 정말로 '진리'(眞理)를 찾아나서고, '대학(大學)의 참가치'를 만끽하고자 한다면, 학문을 향해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학부 과정은 정말로 '세발의 피다.' 그것은 넓은 학문세계에서 본다면 기초적인 '맛만 보여주는 정도'에 다름아니다.  

학부 과정에 큰 진리가 숨어있을 것으로 본다면, 학부생들이 아주 일상적인 큰 오해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학부 과정은 '대학의 맛'을 슬쩍 보면서 대부분 지나치는 공간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런 과정을 거쳐서 사회에 배출된다.
그런 의미에서 넓게 보면 '기본 소양'이다. 


그러면, 학부 졸업생이 대부분인 '대학'은 정말로 아무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학부 과정에서도 정말로 다양한 교양수업, 전공수업이 존재한다. 

자신의 '진리를 향한 탐구열'은 학부에서도 충분히 불태울 수 있다. 

예컨대, 김예슬 양이 지닌 고민이라면, '철학'과 관련한 여러 제수업, '정치학'이나 '사회학', 각종 '인문학'과 관련한 제수업에서 충분히 풀 수 있고, 다루는 주제들이다. 

그런데, 김예슬양의 전공을 보면 '경영학'이다. 필자도 '경영학'의 커리큘럼 정도는 알고 있다. 

필자가 보건데, 김예슬 양의 경우에는 자신의 전공인 '경영학' 전공 수업에 파묻혀 정말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대학의 현실과 묘미를 제대로 만끽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그녀가 다닌다는 대학도 이미 제공하는 '커리큘럼' 내에 있다. 

그녀가 그걸 몰라서 찾아나서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즉, '인생'이나 '세계', 그녀가 고민한 '자본' - '국가' - '노동' - '교육'의 관계를 해명해 줄 학교 수업도 이미 대학교 학부 과정 내에서 존재하고 있다. 왜 대학이 '지식 노농자'를 생산해 내는지, 그 매커니즘을 연구하는 것이다.

그런 여러 수업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그녀 스스로이다. 물론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주변의 조언자가 없기 때문에 대학에 이런 '현실'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는 아쉬움이 있을 수 있지만, 학부과정에서도 절대 답이 없는게 아니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대학에는 답이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학문을 향해 가려면, 학부과정을 넘어서서 석사, 박사 과정을 향해 연구와 함께 진행시켜 가야 하므로 대학에는 답이 있다는 것이고, 

학부 과정에서도 충분히 자신이 지녔던 인생 선배들의 고심과 진리 체계를 접할 수 있으므로, 역시 대학에 답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석사', '박사'라는 '학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인간 존재의 불완전성만큼이나, '진리 체계'도 절대적이라거나 영원히 머무르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는게 '대학'이다. 

인간 존재의 '겸손'을 깨닫고, 조금 더 알고자 '노력'해 가는 것이 '인간'이 아닌가. 


법정스님이 1992년 이후 거주했다고 하는 오대산 오두막

이 정도로 대학에는 답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대학이 모든 것을 채워줄 수는 없다. 인생은 저마다 자기 스스로 행복을 찾아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전 타계하신 '법정스님'이 대학교에서 석사, 박사를 안했다고 '대학'을 찾아나서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법정스님께서는 '참 인생을 향한 대학을 하신 것이다.'

결국, '대학'은  인생 전반에 걸쳐서 '대학교', '대학원'이라는 공간 유무를 떠나 논의되어야 하지만, '대학'이라는 공간이 절대 답이 없는 유리된 장소는 아니라는 점이다.

'대학 학부과정'이 모든 학생을 '법정스님'과 같은 '도량'으로 배출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김예슬 양의 고민이 인생을 좌우하는 절대적인 결정인 것 같지만, 결국은 어떤 식으로든 '대학'으로 돌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남으로부터, 선인(先人)이나 정돈된 진리체계로부터 배워야 한다. 그것이 가장 잘 정리되어 있는 공간은 '대학'이다. 그리고 새로운 진리체계를 탐구한다.

애초에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다 남들로부터 배우고 제공받은 것이다. 거기에 조금 보태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김예슬 양의 고민을 바깥의 사회가 대신해 줄 수는 없다. 약 4년간 유예된 대학생활에 비해, 사회라는 공간은 어떻게 보면 '생활에 찌들리고 있는 공간'이다. 그런 현실 공간에 대한 '고민'은 조금 떨어져서 '대학'에서 잠시 크게 조망하는 것이 본인에게도 좋고, 사회에도 좋다.

'대학'에서 자꾸 스스로의 대학 만을 들여다보려는 '편혐합'을 버리고, '사회'를 들여다 봐야 한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자신도 대학을 떠나 사회로 나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의지'를 풀려면 어떤 식으로든 '대학원'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경우가  많고, '학사 학위'는 필요하다.
이런 인생 선배의 먼저 깨달은 '경험'을 많이 참고했으면 좋겠다.

[관련글]
대학에는 답이 없다 _김예슬의 대학 선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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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에 다니는 김예슬양이 최근에 "나는 대학을 거부한다"는 글을 밝혀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 20대 초반의 여학생이 썼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진지해서' 다른 것을 다 떠나서 그런 '진지함'이 우선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고 소감을 밝히고 싶다.

글을 보면 무언가 악의가 보이지 않는 '진실'이 담긴 마음 속에서의 진지한 고백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학교 대자보로 밝힌 이 글에서 그녀는 '대학은 그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에, 나는 이제 대학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그녀의 글에는 깊게 논의해볼 여러 내용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앞으로 몇 개의 글로 그녀가 '화두'를 던진 대학과 대학생활을 둘러싼 여러가지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그 첫째로 필자는 제목에서 밝혔듯이, '대학(大學)에는 답이 없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우리가 중학교, 고등학교라는 공통적인 제도교육을 탈피하여 대학교(大學校)에 진학하면, 뭔가 다른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한다.

필자도 그랬다.  (* 양희은 '숲' 듣기 , 한대수 '바람과 나' 듣기)

이제까지의 모든 물리적, 정신적 생활을 바꿔줄 새로운 '혁신'으로서 '대학'을 기대했다.

왜 그랬을까?

'대학'은 남다른 '공간'이라고 우리의 '선입견'으로 이미 심어져 있기 때문이다. '환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특히, 중고등학교에서 대학 진학만을 바라보며 고군분투하는 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막상 '대학'에 입학해 보면 기대했던 것보다 '별 거' 없다.
 
물론 대학교 신입생 새내기 시절에는 뭔가 달라보일 수 있다.

그러나 조금만 지나면 대학교도 역시 '사람이 사는', '생활인들이 살아가는' 일상적인 생활의 공간임을 깨닫게 된다.


반면에, 이제 대학생이 되는 인생의 순간에서는 젊음의 여러 방황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다.

육체적인 혼돈과 재정비가 '사춘기'에 일어난다면, 정신적인 것은 '대학 시절', 특히 '대학 초년' 시절에 집중적으로 일어난다.

청소년기에 '정신적 방황'이 용납되지 않거나, 그런 상황적 조성이 용이하지 않은 우리 청소년의 성장 환경에서는 그렇게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자신이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재탄생'하는 20대 초반의 인생의 순간에, 지금 그들이 놓여있는 '대학'은 과연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하고 '정신적인 회의 또는 반문'을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김예슬 양의 경우에도 그렇다고 볼 수 있다. 필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김예슬 양의 경우, 대학 3학년 전후라고 생각하므로 어엿한 대학생이지만, 달리보면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갓 4년도 되지 않는다. 그런 '양면성'이 있다.

줄곧 학교를 다니면서 학교생활을 하다가, '대학' 처럼 열린 공간에 들어섰을 때는 방황하게 되는 이들이 많다. 

그런 방황의 이유는 서로 다른 맥락에서 작용한다. 

1) 첫째, '대학'이 주는 너무 많은 '자유' 를 누리느라 방황하는 이들이 있다.

2) 둘째, '대학'이 주지 못하는 너무나 제한된 '자유'로 인해 방황하는 이들도 있다. 

3) 셋째, '대학'의 '일상적인 모습'에 실망하고 방황하는  이들도 있다. 

4) 넷째, '대학'을 향한 열렬한 진리탐구를 위해 방황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대학에서 답을 찾으려 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방황'이 아닐까? 

이런 '방황'은 반드시 생겨나고,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학은 최종적인 답을 줄 수가 없다.' 

'대학'은 '대학'일 뿐이다. 

'대학'은 '나'를 둘러싼 공간이지, '내'가 '대학'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김예슬 양은 자신이 들고 서있던 팜플랫에서 '오늘 저는 대학을 그만 둡니다. 진리도 우정도 정의도 없는 죽은 대학이기에...'라고 호소했다. 

그녀의 이런 '방황'은 당연하고, 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대학에는 답이 없다.'


'진리'(眞理), '우정'(友精), '정의'(正義)는 '대학'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학'의 소유라거나 '대학'의 속성이 아니다. 

그녀가 지금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진리', '우정', '정의'는 그녀의 '인생'의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찾아나서 '실현'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녀의 인생'을 둘러싼 '나의 것', '자신의 것'이지 '대학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대학에는 답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김예슬 양은 '대학'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게서 찾아나서야 하는 것을 '대학'으로 슬쩍 밀어넣고 있다. 

필자도 한 때 그런 적이 있었다. 아니 이 시대의 모든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없다. 

오히려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대학에는 답이 없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대학은 자신의 인생(人生)을 도와주는 공간일 뿐이다. 

'인생'이나 '대학'의 가치는 자신의 '삶' 속에 있는 것이지, '대학'이라는 석고 구조물에 불변의 돌덩이마냥 '묻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학'이 모든 것을 가져다줄 것인마냥 기대하는 우리의 '정신적 오만'부터 빨리 깨버려야 한다. 

필자도 그런 시행착오의 과정을 겪으면서, 오랜 시간 후에야 깨닫게 되었지만, 이미 '눈치챌 것'이면 빠를 수록 나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는, 더욱 구체적인 얘기들을 진행시켜 보고자 한다. 

[관련글] 대학에는 답이 있다 _김예슬의 대학 선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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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다음 아고라에 '120만원 학원강사 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현실을 하소연하는 기사가 올라왔다.

이 세상에 나름대로의 '사정'과 '고단함'의 과정이 없는 직업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누구에게 인정받고 있느냐 아니냐를 떠나서 말이다.

다만 나는 이 기사를 보면서, 아니 그러면 '학원 강사를 왜 하는지 안하면 될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고 싶다.

매정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이 아닌가?


학원 강사의 월 수입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학원강사, 다시 말하면 '사교육'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입시' 과정에서 현실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가를 떠나서, 업계의 경쟁이 치열한 결과일 수도 있다.

달리 보면, '사교육 시장'의 경영자들이 '강사'들을 무리하게 부려먹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시나리오는 결국 어떤 결론으로 귀착하는가?

사교육 시장, 최소한 '학원 강사' 시장은 이미 오래 전에 '레드오션'(Red Ocean)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1) '학원 강사'의 최소한의 생활이 보장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레드오션'이다.

2) 사교육 입시 '학원들'이 너무 많아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레드오션'이다.

3) 학원 운영자들이 강사들을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고 있기 떄문에 '레드오션'이다.


대학을 졸업했든 안했든, 취업시장에 뛰어든 졸업자들은 '노동시장'에 던져진 '상품'이라고 볼 수 있다.

노동자가 아니라 학원을 운영하는 학원 경영자라도 '자본 투입'과 '선택'의 관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취업시장이라는 노동시장에 '상품'으로 던져지기는 했지만, '지식 노동자'들은 다양한 취업시장에서 어떤 직종을 선택할 것인지 '자유'가 있다. 그런 자유가 취업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제약되어 있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학원 강사'를 하지 않고, 교육에 뜻을 두고  '학교 선생님'을 했으면 어떠했을까?

필자는 지금껏 '학교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레드 오션'이라는 얘기를 들어보지는 못했다.

'학교'는 '블루 오션'(Blue Ocean)은 아닐지라도 '에메랄드 오션'은 된다.


'블루 오션', '에메랄드 오션'을 내버려두고 '레드 오션'에 발을 내디딘 것은 '젊은 지식노동자', 바로 본인 자신이다.

아무도 '레드 오션'에 발을 내딛으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것이 필연이어야 할 이유도 없다.


'사교육 시장'에서 점점 '레드 오션'의 기운이 진동하는 것은 이 산업이 이미 황금기를 지나 침체 산업으로 접어든 것이 아닌가 하는 유력한 반증이 되고 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에서 찾을 수 있다.

1) 사교육 시장 내에서의 경쟁이다. 이미 온라인 교육을 비롯하여 사교육 시장은 치열한 경쟁과 포화 상태에 직면해 있다.

2) 수험생들의 효율적인 정보 접근이다. 요즘에는 옛날처럼 책이 없어서 공부 못하는 경우가 없다. 다양한 과정의 EBS 교육 수능 방송을 시청할 수도 있고, 수험생들은 컴퓨터를 통해 온라인 학원 교육으로 싼 값에 다양한 수능 강사들을 만날 수 있다.
 
3) 그리고 중고등학교 과정 자체가, 대학입시 산업을 거대하게 성장시켜야 할 만큼 '수준 높은 것'이 아니다. 정규 교과 과정 이수하는  것에 불과하다.

4) 그리고 결정적으로 '인구'가 줄고 있다. 학생들이 줄고 있는 것이다.

5) 마지막으로 '의식'의 변화이다. 날이 갈수록 다음 세대들은 '간판'에 매달리지 않는다. '실용'을 찾아 나선다.
획일화된 '입시 학원'들이 그런 '실용'을 쉽게 채워줄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120만원 학원 강사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감히 말하고 싶다.

아르바이트가 아니라면, 그만 둬라. 차라리 '학교 선생님'으로 나서길 바란다.

아니면, 그 시간에 '블루 오션'이나 덜 험난한 '준 레드 오션'을 찾아 나서야 할 것이다. 아르바이트가 아니라면 말이다.


이런 생활은 여전히 '학교'가 '사교육'보다 경쟁력이 있다는 잠재성을 반영한다. '노동자'의 '보람'이나 '삶의 질' 측면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 노력을 '학교'에 투입한다면, 더 큰 결실을 맺게 될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학교의 공교육이 '규모'의 면에서도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지식 노동자'의 측면에서도 인생의 젊음이나 공을 들여야할 공간은 '학원'이 아니라 '학교'라는 소리다.

학교가 좀 먹고 있는게 아니라, 스스로의 젊은 시간이 좀 먹고 있지 않은가?

사교육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학생들이 아니다.

'레드오션'으로 이미 전락해 버린 '사교육 산업'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스스로의 '편안한 관행'일 뿐이다.
기성세대가 스스로 자기의 시간을 거덜내고 있는 것이다.


어느 산업이든 초기에 번창할 때는 누구나 성장하는 것 같지만, 완숙기에 접어들면 최고의 1, 2개만 살아남는다.

하다 못해, 인터넷 산업 확장기에서 살아남은 포탈의 개수, 전통적인 자동차 산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교육 온라인, 오프라인 교육시장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대성', '종로'와 같은 오프라인 학원을 비롯하여, 온라인 교육을 들면 '메가스터디'와 같은 소수의 몇개 사교육 입시 기관들이 이미 강자의 자리를 선점하고 있다.

신규 산업에서 '강자'들이 최대의 'Market Share'를 가지고 자리를 잡으면, 후발 주자들이 쉽게 따라잡기는 힘들다. 해당 산업은 유지되지만, 그 산업은 '레드 오션화'한다는 것이다. 레드오션에서는 최강자만이 명맥을 유지해 간다. 이들이 '인터넷 온라인 교육'으로 무장했으므로, '동네 학원'이라고 사정이 다르지 않다. 

이건 경쟁 이론적으로 따져도 그렇게 나온다.  

어떤 산업 시장이 '사양의 길' 혹은 '축소의 길',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의 길로 빠져들기 시작하면, 신규 진입자들은 그 산업으로 진입할 것인지 아주 진지하게 제고해야만 한다. 

9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리던 오프라인 학원들이 '온라인'으로 적극 진출해 간 것은, 이미 오프라인 학원에서 '사양산업'의 징조가 명확하게 나타났으므로, 그나마 기존에 축적된 자본을 가지고 '산업 선도자'의 지위에서 스스로 살 길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그리고, 입시 위주의 '사교육 시장'에서 과연 산업 혁신을 일으킬 만큼 새로운 '혁신'의 과제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항상 '공교육'에 후순위인, 공교육 보충의 시장이기 때문이다. 주도적인 자리를 점할 수 없다.


이런 현실에 '지식 노동자들'이 냉정하게 눈 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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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선수가 드디어 돌아옵니다.

2010년 벤쿠버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쉴 틈도 없이 강행군 했던 김연아 선수,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개최된 '2010 ISU 세계 피겨선수권 대회'를 끝마치고 드디어 귀국을 합니다.

이 대회에세 김연아는 은메달, 곽민정은 22위를 기록했네요.
근 1년 이상 계속된 피로와 긴장감에 비하면 이런 성과는 결코 뒤떨어지는 것이 아니겠죠.

동계올림픽에 참가했던 다른 선수들이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며 후속행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과는 달리, 여자 피겨 선수들은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탈리아에 가서 '여행'도 하고 '구경'도 하고 했으니 된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들의 심리적인 '피로감'에 비할 바가 아닐 것입니다.

예를 들어, 스피드 스케이팅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이상화 선수를 보면 프로야구 개막전에 나와서 '시구'도 하면서 스포트 라이트(spot light)를 받고 있습니다. 모태범 선수, 이승훈 선수도 마찬가지구요.

긴장이 가득했던 동계 올림픽을 드디어 끝내고, 휴식을 취하면서 팬서비스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모습을 보니까, 김연아 선수도 어여 돌아와서, 프로야구 시구에 한 번 나섰으면 좋겠어요.

물론 이전부터 오랜 시간 주목을 받아왔던 김연아 선수에 비하면, 이상화, 모태범 같은 선수들은 무명의 시간을 보냈으므로, 그에 대한 보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김연아가 소홀한 대접을 받아서는 안되겠죠.

한편, 1988~90년생인 이들은 모두 대학 초년생이거나 학창 대학생활의 황금기로 운동도 하면서, 학창시절의 즐거움과 추억도 만들어야할 시기입니다.

김연아 선수 본인도 이제 좀 휴식을 취하고 싶다고 얘기했구요.
그녀가 최근에 알려온 '셀카' 사진들의 '패션'과 '제스처'를 보면 긴장감에서 해방된 이런 '젊음'의 모습들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김연아 선수는 귀국 후에도 국내에서 4월달에 바로 '아이스쇼'를 가집니다.

4월 16일부터 18일까지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리는 이번 '페스타 온 아이스 2010'에는 김연아, 곽민정을 비롯하여, 미녀로 통하는 핀란드의 '키이라 코르피', 남자선수로는 패트릭 챈, 브라이언 주베르 외에 모든 피겨종목의 세계적 남,녀 선수들이 출전한다고 하네요.

팬들의 요구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팬 서비스'가 필요하겠지만,
올 해에는 부담감을 모두 떨쳐버리고, 재미난 학창시절을 보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녀가 앞으로의 '진로'와 '거취'를 어떻게 선택할지는 전적으로 그녀 '인생'의 문제이지만,
여전히 우리가 그녀에게 지금 바랄 단 하나의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프로야구에도 한 번 나와서 멋진 시구 모습을 기대해 볼께요~


[관련글]
2010 페스타 온 아이스
'김연아' 관련 전체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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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EBS를 방문하여 EBS 교육방송, 수능방송에서 수능 비중을 70% 이상 가져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교육 정책당국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고, EBS 수능특강 방송 시청자도 대폭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EBS TV, 인터넷 수능방송이나 EBS 교재는 '수학능력시험'(수능) 대비에 절대적인 도움이 되는가?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명박의 언급이나, 수능의 직접적인 출제비중에 상관없이, EBS 수능 교재는 항상 매우 도움이 됩니다.
최근 15년간 매년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이는 필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EBS 수능 교재는 전문가들과 현장의 여러 선생님들이 합작하여 심혈을 기울여 만들기 때문에, 시중의 그 어느 교재보다 완성도나 내용이 뛰어납니다.

교재 내용 구성에 있어서도, 기출문제와 내용정리, 문제풀이가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시중 어느 교재보다 우수하다 볼 수 있어요.
EBS 수능특강 기본교재 강의는 6월말까지 진행이 되므로, 충분히 기본교재로 수능을 대비한 만발의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시중보다 10% 이상 싼가격에 주문이 가능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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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우여곡절 끝에 수능을 여러번 보게 되었지만, EBS 교재는 거의 필수로 가지고 공부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과목에서 '고득점'을 한 바 있습니다. 

[EBS 수능 교재 할인 - 사회탐구영역(사탐), 국사, 정치, 경제, 윤리, 사회문화, 한국 근현대사, 한국지리, 세계지리, 경제지리, 법과사회, 세계사]




EBS 교재를 다 볼 필요도 없고, 모든 과목을 전부 시청해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가 약하다고 생각하는 과목이 있으면, EBS 교재를 참고하여 보충해 주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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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사회탐구 전과목, 과학탐구 전과목, 제2외국어 영역 교재가 좋습니다.
언어영역, 수리영역, 외국어영역의 경우에는 자신의 문제풀이 양이 적고, 실전에 약하다고 생각이 든다면, EBS 교재를 통해 보충해 주면 큰 도움이 됩니다. 실제 수능 '모의고사'에서 점수가 약하게 나온다면 확실하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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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 여러분께서 EBS 교재를 참고하여 공부하면, 수능에서 좋은 성과를 거둘 것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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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글]
공부 잘 하는 방법 _욕심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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