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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0.06.16 아르헨티나 오심, 나이지리아 경기, 월드컵 논란 장면은? 3
  2. 2009.05.27 변희재, 노무현 모욕주는 행위, 인간에 대한 매우 얕은 시각 1
  3. 2009.05.20 샤이니 표절논란은 설득력 있지 않다. 15
  4. 2009.05.13 황금나침반 논란 텐프로 여성 출연 반대한다. 6
  5. 2009.04.17 SG워너비 사랑해 표절 논란 _Carpenters Top of the World, Simon and Garfunkel the Boxer 49
  6. 2009.04.03 Sawa Pink, Many Colors 듣기, 가사 _사와 핑크 2

2010 남아공 월드컵 '아르헨티나 vs 나이지리아' 전에서, 아르헨티나의 결승골은 '오심'의 결과라고 FIFA가 밝혔습니다.

아르헨티나는 2010년 6월 12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엘리스파크'에서 열린 월드컵 B조, 나이지리아와의 첫 경기에서 '에인세' (Heinze)의 전반 6분 헤딩골을 끝까지 지켜 1-0 승리를 이끌어냈습니다.

'에인세'는 역전 노장 '베론'이 날린 코너킥을 그대로 이어받아 강렬한 헤딩슛으로 연결하여 첫 득점을 얻어냈는데요.

그렇다면 어떤 장면 때문에 '오심' 판정이 났는지 확인해 볼까요~


'에인세'가 골을 넣기까지 장면을 보면,
아르헨티나 선수 '사무엘'이 나이지리아 선수 '오바시'를 팔과 몸으로 감싼 뒤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바시'는 '에인세'의 동선을 미리 읽고 그 쪽으로 움직이려고 하고 있었거든요.

결국 아르헨티나 '사무엘'이 나이지리아 '오바시'의 수비 행위를 위한 정당한 진로를 방해한 셈이 됩니다.


그리고 선수를 몸과 팔로 묶는 것은 분명한 '반칙' 입니다. 

FIFA 심판위원회는 '이 상황에서는 심판은 사무엘에게 파울을 주고, 나이지리아에게 프리킥을 선언해야 했다'고 밝혔다고 하네요.


하지만 이런 오심에도 불구하고, 재경기 가능성은 없다고 합니다.

FIFA는 판정은 '심판'의 영역이므로, 이런 심판의 오심도 경기의 '일부분'이라고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죠.


아무튼 '신의 손'의 주역 '마라도나'가 감독으로 다시 나와서 그런지, 아르헨티나는 월드컵에서 또 '이득'을 얻었네요.

대단합니다.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는 '심판'의 엄격한 페어플레이를 기대해야 겠네요.

그런데, 전략상으로 보면 '아르헨티나 : 나이지리아'가 서로 '무승부'를 기록한 것보다는, 어느 한 팀이 승리한 결과가 '대한민국' 대표팀에게는 절대적으로 유리합니다. 왜냐하면 둘 다 강팀이기 때문에, 서로 승점 1점씩 챙기는 것보다는, 어느 한 팀이 '패'하는게 우리가 만약 무승부를 기록하더라도 이롭다는 것이지요.

이 골의 동영상은 아래 링크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아르헨티나 vs. 나이지리아 전 결승골 보기(에인세) _2010 남아공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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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재씨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장례절차, 국민장과 관련하여 고인(故人)에 대해 모욕을 주고 있고, 
인간의 고통에 대한 매우 얕은 시각을 드러내고 있어서 안타깝다. 

인간의 큰 고통 중의 하나는 인간으로부터 비롯된다.

특히 구조화된 폭력인 권력이 그 강압력를 악용해서 인간을 억압할 때 얼마나 큰 인간적인 고통과 폐해가 따르는지는 이미 30년 이래의 한국 현대사만 보더라도 충분히 증명하고도 남는다.

변희재씨가 논란을 일으켰으므로, 물론 그의 주장을 들여다보며, 하나씩 살펴본다. 


변희재씨의 첫째 주장을 보면,

"국민의 한 명으로서,내가 번 돈으로 세금을 국가에 내는 납세자의 한 사람으로서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 국민세금은 단 돈 1원도 투입돼서는 안 된다."


-- 세금을 내는 행위와 세금을 집행하는 행위는 엄연히 구분된다. '납세의 의무'는 국민의 기본적인 의무이고, 전체 '국가재정'을 어떻게 쓸 것인가는 입법권력(국회, 법)과 행정권력(정부, 행정력)에 의해 결정되고 집행되며, 사법권력(사법부)의 감시를 받을 뿐이다. 여론은 물론 참고사항이 되겠지만, "국가재정"의 집행은 제정법에 귀속되므로, 법이 우선이다.

-- 묻고싶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가 법에 위반되는가? 고인의 장례는 법에 따라 집행되는 것이다.

-- '재정'의 집행은 국회나 행정권력에 따라 '정치적'으로 배분되기 때문에, 물론 당연히 개별 '납세자' 입장에서 보면 마음에 안드는 흐름도 있을 수 있다. 어떤 '납세자'는 자신이 내는 세금이 '국방비'나 '무기를 사는 비용'으로 절대로 쓰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고, 국방비를 쓰는게 아예 잘못되었다고 한다면 정당한가?

'국가재정'은 법에 따라 집행되고 있고, 이러한 '법의 집행'은 국민의 합치된 컨센서스(consensus), 일반의사에 따르고 있다고 일단 봐야 한다. 

따라서, 변희재씨의 첫째 주장은 '납세의 의무', '국가재정'의 집행에 대한 질이 떨어지는 개인적 옹아리에 불과하다.


변희재씨의 둘째 주장을 보면,

고인이 되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하여 "당신은 왜 죽음을 선택했냐?"고 따지고 있다.

-- 변희재씨에게 묻고싶다. 이미 죽은 사람한테 "너 왜 죽었냐?"고 따져서 뭐하나?
    사후(事後)에 이미 돌아가신 사람보고, 너 왜 죽었냐고 수사기관이 캐듯 따져서 뭐하느냔 말이다. 무덤에 데고 조서라도 받고 싶은가?   안 돌아가셨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누가 그걸 모르나?
    이미 돌아가셨고, 살릴 수가 없기 때문에 안타까운 것이다. 누가 '죽었으니까, 참 잘했네, 참 잘한 선택이네'라고 칭찬이라도 했는가? 안타까운 것이다. 
    살아계실 때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꼭 살아가시라고 응원해보지 그랬냐고 반문해 보고 싶다.
    살아계실 때도 '자살하라'고 종용한 저 정신나간 김동길씨한테도 한마디 하시지 그랬냐고 '이미 일이 다 터진 마당에' 변희재씨에게 '따져보고' 싶다. 왜 변희재씨는 노무현씨를 살리지 못했는지 '따져보고' 싶다는 것이다. 
    살리지도 못했으면서, 뭔 사후에 본인에게 삿대질이냐 이 말이다.   
      

변희재씨의 셋째 주장을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하는 의무를 저버렸다"고 하고 있는데,

--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동안 최선을 다해서 살지 않은 것인가? 
    어떤 인간도 타인이 보기에는 완벽할 수는 없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인간은 인간일 뿐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최선을 다했는지,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지 살아왔는지는, 오직 그의 양심과 양심에 따르는 고귀한 삶이 첫번째 기준, 준거가 된다. 
    노무현씨는 제3자가 보기에도 자신의 인간적인 양심과 소신을 지켜왔고,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가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지 않았다는 어떤 증명도 없다. 더욱이 일반적으로 말하면, 그러한 증명이 있더라도, 한 개인의 삶을 타인이 일방적으로 제단해야할 어떤 권한도 없다.


변희재씨는 전직대통령이 "그 동안 수고했으니 놀고 먹으면 안되고",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은 전직대통령의 의무는 "그 명이 다할 때까지 오래살면서 학자들의 연구소재가 되어주어야 한다"고 괘변을 늘어놓고 있다. 

-- 전직대통령의 '예우'에 관한 법률은 말 그대로 '예우"를 담고 있는 것이다. 국가라는 전체공동체를 이끌어온 노고에 대해서 '대우'해 주는 것이다. 또 이런 '예우'는 연금의 성격도 지닌다. 연금이 뭔가? 은퇴했으니 놀고 먹으라는 소리다. 그동안 수고했으니 놀고 먹으라는 소리라는 것이다. 

-- 또한 '그 명이 다할때까지 오래살면서 학자들의 연구소재가 되라'고 했다. 노무현씨가 무슨 '실험실의 표본'이라도 되는가? 학계에서 노무현씨를 연구하는 것은 학계 자신의 몫이거나, 학계 자신의 학문적 자유의 선택이지, 노무현씨의 의무가 아니라는 것이고, 노무현씨가 '실험실의 표본'이 되어야할 의무도 없다는 것이다.

-- 물론 전직대통령으로 '사회적 의무'는 있다. 현직자들이 대우를 해준다면 현직에서 수행할 수 있는 명예직의 권한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대우를 해주고 있을 때의 일이다. 전임자에게 죽음을 끈질기게 강요한 현실이 과연 '예우'인가?


변희재씨의 다섯째 주장을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자신의 패거리의 안위만 걱정했던 조폭의 보스", "자신의 측근을 살라기 위해 장렬히 몸을 던지는 조폭의 보스"와 같은 행위라고 고인을 욕되게 하고, 폄하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 먼저 유족이나 고인의 명예관리 당사자들께서 어떤 법적인 조치도 취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조폭'인가?  
    아니면, 조폭과 비슷하다는 것인가, 조폭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인가? 
    우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조폭 두목"이어서 슬퍼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조폭 패밀리"라는 것인가?
    고인(故人)은 물론, 고인이 되시지 않았더라도, 본인을 두번 세번 죽이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 변희재씨는, '인간'이나 '죽음'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특히, 개념적으로나 혹은 자신이 아닌 타인(他人)의 죽음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묻고 싶다. 

    자연적 삶을 마감하지 못하고, 사고나 죽음의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은 어떠한 이유에서도 비극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람이 직접 되보지는 안았기 때문에, 그 고통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헤아일 뿐이다. 
      

죽음을 강요한 정황이나, 죽음에 이르게 된 인간의 본질적 고통을 느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본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염없는 슬픔과 안타까움을 느끼고 표현하고 있다. 이런 지경에게까지 오게한 권력의 부당함과 일부 사람들의 어리석음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있다.

무엇이 어떻게 고인을 희생시켰는지는 앞으로도 찬찬히 봐야 한다.


그러나, 필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면, 노무현은 '인간 노무현'으로 돌아가신 것이다. 
그가 처했던 인생의 시점으로 보면, '촌부(村夫)'로 죽은 것이고, '아버지'로서 죽은 것이다. 
그것은 그가 말년에 가고자 했던 길이고, 그가 실제로 살고 있었던 인생의 모습이었다.
구조화된 권력, 부당한 권력이 '촌부'로, '아버지'로 이미 돌아간 자신을 부정하라 하고, 자신이 아닌 타인의 고통을 야기하기 때문에 고통을 느낀 것이다. 인간의 행복과 자기결정, 인격을 심각하게 침해한 것이다. 권력이라는 폭력의 이름으로. 

우리가, 봉하마을로 돌아간 노무현의 모습을 보며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촌부로 돌아가 여느 아버지들처럼 평안하게 조용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적어도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그것은 평화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의 평화이기도 했지만, 우리 모두의 평화이기도 했다.
이 평화는 깨졌다. 노무현 당신의 평화는 물론 죽음이라는 영원한 안식을 통해 먼저 지켜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평화는 깨졌고, 이런 평화를 깬 당사자들은 조만간 그 죄값을 치루게 될 것이다.    



우리가 슬퍼하는 것은 아버지 다음으로 중요한 우리의 '아버지', 나이 들어서 이제 여생을 보내셔야 할 '촌부가 되신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는 무엇이기 이전에, 자연으로 돌아간 우리 모두의 '아버지', '어른'이었다. 그래서 더 슬픈 것이다.


변희재씨는 유족들과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인간의 본질적 고통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곰곰히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가 동시대 사람들과 앞으로 올 후대들에게 '삶'에 대해서 얘기할 수는 있어도, 고인이 되신 노무현씨를 폄하할 권한은 그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변희재씨의 논지는 별로 주목할 값어치가 없다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회자되고 논란이 되므로 한말씀 남겨드리는 것이다. 당신께서는 조용히 앉아, 김현승님의 <아버지의 마음>을 조용히 음독해 볼 것을 권장한다.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 김현승, '아버지의 마음'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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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같이 입으면 안될까요?

다른 사람이 양복을 입었다고 내가 양복을 입으면 안되고, 다른 사람이 진주귀걸이나 목걸이를 했다고 내가 같은 귀걸이나 목걸이를 차면 안될까요?

의복에 관계되는 패션(fashion)은 유행, 흐름과 관련되기 때문에, 남의 옷을 빼앗아 입지 않는 한, 같은 스타일의 같은 색의 같은 무늬의 옷을 입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최근에 샤이니 '표절논란'이 말 그대로 논란이 되고 있는데, 설득력이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샤이니(Shinee)는 가수입니다.

첫째, 샤이니는 음악을 하는 가수 그룹입니다. 음악을 창작하고 발표하고 곡을 부르는 집단이라는 것입니다.
옷 입는 것과 노래가 상관이 있습니까?
신곡에서 표절시비가 일어나는 경우는, 작곡 과정에서 라이센스없이 타인의 곡을 무단으로 도용했거나, 작사 과정에서 허락없이 타인의 가사들을 무단으로 가져다 썼을 경우에 발생합니다.

그러나, 음악의 기본은 '소리', '음율'이어서 작사 과정에 표절보다는 작곡 과정의 표절이 더욱 중심적인 문제가 됩니다.

음악의 기본인 작곡이나 작사가 아닌 그 외연에 있는 무대나 앨범콘셉을 위한 '의상'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둘째, 패션 콘셉은 대체로 '표절'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물론 일반적으로 차용했다, 개념을 가져왔다, 따라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그룹이 미니스커트를 선보였는데, 꽤 괜찮아보여서 그 미니스커트처럼 따라입어봐도 괜찮은 겁니다. 그 미니스커트 물건 자체를 훔쳐온 것이 아닌 한 당연한 것입니다.

샤이니가 앨범 사진에서 착용한 고글은 매우 일반적인 아이템이고, 서구 '가면무도회'에서 저런 고글이 등장하는 것은 아주 일상적인 컨셉(concept)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고글을 화려하게 꾸며봤을 뿐입니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샤이니는 가면무도회식의 검은 나비안경에 색안경을 이중으로 쓰고 있어서, 단순히 고글을 쓰고 있는 오른쪽 사진과 기본콘셉도 사실 차이가 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샤이니 사진

비슷하다고 지적된 컨셉



셋째, 패션 아이템은 절대적으로 따라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패션은 전파되고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을 선택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전적으로 자기 자유의지에 달렸습니다. 내가 '최초'이고 내가 '만들었다'고만 안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기본적인 일상사인 무엇일 입고, 무엇을 먹고, 어떤 식으로 잘 것인가 _의,식,주는 인간 생존의 기본으로, 법으로 예외적인 상황에서 금지하지 않는 한, 자기가 아무 것이나 선택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입을 것인가는 모든 인간 개개인의 자유라는 것입니다.

이런 패션 아이템이 문제가 된다면, 왜 같은 '티셔츠'를 입었냐, 왜 같은 '반바지'를 입었냐, 왜 같은 '운동화'를 신었냐고 한다면 설득력이 있습니까? 

박상민이 코털수염을 하고있으니까 나머지 가수는 모두 코털을 기르면 안되고, 손담비가 하이힐을 신고 나오면 나머지 가수들은 이제 다 하이힐 신고 나오면 안되나요? 미국의 Lady GaGa가 금발을 일상화하고, 선글래스를 끼어서 이제 다른 가수들은 금발을 하면 안되고, 선글래스를 하면 안됩니까?

예를 들어, 그런 경우는 없었겠지만, 저 고글이 만약 AOO 회사라는 고글을 만드는 회사의 제품이고, 같이 구매해서 착용했다고 한다면 문제가 됩니까? 전혀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고글 만드는 회사가 없었고, 수작업으로 그 개념을 따라했더라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이런 것이 문제가 된다면 '기성복'이나 '기성패션'은 전부 문제가 되고 개념적으로도 설 수가 없다는 것인데 합당하지 않습니다.

이번 샤이니의 소위 '표절논란'은 음악 외적 요인을 지적하여서 설득력이 없고,
누구나 일상적으로 선택가능한 패션아이템을 문제삼고 있어서, 합리성이 떨어집니다.

정말로 그대로 가져왔더라도, 그대로 따라 만들었더라도, 패션아이템은 아이템일 뿐이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번 샤이니 신규앨범에 '표절논란'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표절'의 기본개념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논란'이 될 것도 없습니다. 이런 의문을 제기한 최초 지적자의 지적이 적절하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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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의 신설되는 대담프로 황금나침반 첫회에 소위 '텐프로' 20대 초반 여성이 출연하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는데, 결론적으로 분명히 반대한다.

황금나침반의 기획의도를 보면,
방황하는 청춘의 인생문제 해결을 위해 지혜와 경륜이 있는 장년 독설가들이 패널로 대담을 이끌어 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의도에서 본다면, 20대 텐프로 여성도 청춘이므로, 여기에 분명히 해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여성의 출연에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이유 외에,
1) 텐프로 여성들도 그 숫자가 적지 않을 것이고, 20대 삶의 한 부분일 수 있으므로 차별을 둘 수가 없고,
2) 어려움 없이 나가고 있는 상황보다는 예외적이고 힘든 상황에 처한 집단이나 개인을 출연시키는 것이 더 의미가 있으므로,
3) 당연히 위의 기획의도에서 보더라도 출연할 수 있다고 얘기할 것이다.

반면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1) 텐프로가 20대의 보편적인 삶의 한 모습인지 의문이므로, 청춘의 삶을 대변할 수 있는지가 회의적이고,
2) 모든 시청집단이 시청하는데, 이런 예외적인 경우를 선정하여야 하는가가 의문이며,
3) 보편적으로 수긍가능한 공통적인 청춘의 삶과 주제를 다루어야지, 텐프로는 소위 '일탈'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 입장 외에, 다양한 이유에서, 황금나침반의 초반부터 텐프로 여성이 출연하는 것을 반대한다. 단순히 선정성 논란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첫째, 처음부터 텐프로 여성이 출연해야 하는가이다.
황금나침반이라는 '청춘'의 고민을 상담하는 새로운 프로를 가지고 나왔으면, 우선 센세이션 보다는 그러한 존재가치와 의미를 인정받고 호응을 얻어내야 한다.
그럴려면, 특수한 환경의 상황보다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자기 삶과 연동된 주제와 출연집단 선정으로 출발하는 것이 좋다.
텐프로 여성은 20대 여성이 일반적으로 선택하거나 겪는 환경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보편적으로 권장되지도 않는다. 흥미나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을 뿐이지, 프로그램 편성의 존재가치를 초반부터 오히려 삭감시킬 수 있다.

둘째, 텐프로 여성만이 출연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이다.
이 점은, 텐프로 여성의 삶이 과연 '청춘', '20대'의 문제인가 하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텐프로의 존재는 20대를 넘어서는 30대, 40대, 50대, 60대,... 즉 중장년층의 문제가 아닌가?
사회적 성도덕이나 음주문화, 가정윤리적인 총체적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인데, 책임자들은 모두 쏙 빠진 마당에, 과연 텐프로 여성이 홀로 나와서 '신세한탄식'으로 진행한 들 어떤 사회적 의미나 합의나 비판이 이루어지겠는가.
오히려, 사회적인 부조리를 '텐프로 여성'의 개인적인 문제 쯤으로 치부해 버리고 선입견을 심는 과오를 범할 수 있다.

셋째, 사회 일반의 건전성, 도덕성의 유지는 그 예외적 환경보다 더 우월하고 보존되어야 한다.
사회부조리라고 하든, 개인의 자율적 선택이라고 하든, 일반적으로 도덕적 해이라고 치부되는 명백한 환경이, 모든 시청 집단이 시청하는 공중파에서 '대범하게' 진행되어야 하는가이다.
이런 상황을 모든 시청자 집단이 수긍하기도 힘들다. 사회 일반의 건전한 도덕적 환경은 텐프로를 분명히 멀리하기 때문이다.

넷째, 만일 이러한 상황이 가능하다면, 동일하게 일탈적인 상황이나 더 일탈적이거나 반사회적인 상황들도, 단지 '청춘'이 걸려있다는 이유만으로 출연이 가능하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예컨대, 마약흡입자도 나올 수 있고, 반사회적 범죄자들도 단지 '청춘'이므로 출연이 가능하다는 논리가 성립하는데, 그렇다면 이 방송은 예컨대, '소년교도소'나 '교도소'에서도 방송이 가능하다(그런 출연자들도 출연시킬 수 있다)는 뜻인데, 얼마나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다섯째, 20~30대, 청춘의 어려움은 정상적인 환경에서 사회의 가치를 존중하면서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사회적인 비효율성과 부조리, 제약으로 인해 그런 의지와 삶의 실현이 제약되고 굴곡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사회가 모두가 텐프로가 되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고, 텐프로가 필수라거나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볼 수 없는 상황에서, 텐프로의 소리부터 듣는 것은, 텐프로를 회피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려고 하는 적어도 보다 건전한 20대에게 무례한 도전일 수 있다.

여섯째, 다소 일탈적인 환경을 첫방송에서 선보이는 것은, 방송의 영향력을 생각할 때, 상황에 대한 그릇된 인정의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 '텐프로' 자체가 일상적이지도 않으며, 그 의미를 모르는 경우도 다반사인데, 이것이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것으로 격상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잘못된 인식으로부터 출발하는 이런 흐름은 적어도 필자가 접한 경우에는 최근의 SBS에서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SBS는 최근에 명세빈을 출연시킨 특집 '기생전'에서 '일본의 게이샤'는 떳떳하게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데, 한국의 기생은 없어졌으니 참으로 한탄스럽고 부활시켜보는게 어떨까...하는 참으로 기가 찬 노골적인 논리를 보여주었고, 이미 이에 대해 비판한 바 있다.
왜냐하면, 여성을 '성의 보조물'로 삼는 것은 과거 불평등시대의 반인권적 문화의 산물로, 그러한 구태가 해체되면서 한국의 '기생'도 그 구태적 명칭으로는 이미 사라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일본의 '게이샤'도 있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벌써 마땅히 없어져야 마땅하며, 적어도 '일본 게이샤가 있으니 한국의 기생이 부활애햐 한다'는 명제는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단지 텐프로가 되었을 뿐, 사회에 죄지은 것도 아닌데, 왜 차별받아야 하고, 방송에 나가면 안되냐고 반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의 건전성과 보편성은 예외적 환경보다 더 중요하고, 적어도 우월하며 우선적이다.
범죄자들을 교도소에 가두거나 형벌을 주는 것은 그들이 미워서가 아니라, 그렇지 않는 일반의 보편적인 건전성이 우월하기 때문이고, 그들의 삶이 더욱 우선 요람에서 무덤까지 온전하게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까놓고 얘기하면, 텐프로에 빠져들어 일반적 사회기준에 따르면 다소 일탈을 선택한 이들보다는,
그렇지 않고 건전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다수의 청춘들의 삶이 솔직하게 냉정하게 얘기하면 더 우선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SBS가 황금나침반을 신설하여 프로신설의 취지를 살리고자 한다면, 텐프로라는 흥미위주의 예외적 상황보다는,
보다 건전하고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청춘들의 주제와 삶부터 선택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이 대학생이 되는 마당에, '등록금'이 공통문제라면 이에 해당하는 이들을 먼저 출연시켜 볼 수 있다.
그리고 한 명이 아니라 다른 상황에 처했지만 공통의 문제를 지닌 다수의 출연자들을 함께 출연시킬 수도 있다.

'등록금'때문에 텐프로를 선택한 이들도 있다면, 등록금 때문에 삭발한 여대생을 동시에 함께 출연시켜 보는 것이 더 극명한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러나 텐프로만은 아니다.

텐프로는 건전한 일반 청춘들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선택해야 하는 것도, 꼭 보아야 하는 것도,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텐프로는 일반적 '20대'의 문제가 아니라, 기성세대와 또 기성세대를 만들어낼 사회적 접근의 문제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최소한 텐프로를 프로 첫편에 배치한 SBS의 의도는 역시 의심스럽다. 아니라고 본다.

SBS가 첫방송에서 무리하게 '텐프로'를 소재삼았으나, 여기에서 설득력 있는 '청춘 일반'의 화두를 끌어내지 못한다면,
이 프로는 초기부터 논쟁을 일으키고, 좌초를 불러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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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워너비 사랑해 과연 표절했나? 명곡을 오마주로 추종했는가? ^^


앞부분은 Carpenters의 Top of the Wolrd를 음속만 다를 뿐 그대로 추종하고 있고,
'라라라' 부분은 Simon and Gafunkel의 the Boxer 를 모방하고 있습니다.


Carpenters Top of the World



Simon and Garfunkel the Boxer


카펜터즈 Top of the World, 사이먼 앤 가펑클의 The Boxer 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네요 ~~

원판을 짜깁기 하면 명곡에 해가 됩니다. ^^


SG워너비 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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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wa Pink, Colors 듣기, 가사 입니다.


 


Sawa Pink 가사 (lyrics)

Will you stand by me always stay with me
fun in a shining street
it's on a blue sky

Let me make you feel
Let me be your dream like a fantasy
In your memory

Want to stand by me
You are that I believe
Always shine here with me
.
.
 
 
Sawa Many Colors
 

Sawa COLORS _2009.03.26

1. Many Colors (4:38)
2. Blue        (4:24)
3. Yellow      (4:39)
4. Pink        (4:36)
5. Green       (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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