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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6.28 미혼 여성들의 연령대별 키스(kiss) 심리 1
  2. 2009.06.12 전경, 경찰 집단폭행 충분히 가능하다
  3. 2009.05.13 황금나침반 논란 텐프로 여성 출연 반대한다. 6

미혼 여성들은 키스(kiss)에 대해 어떤 심리를 가지고 있을까요?

연령대별로 미혼 여성들의 키스에 대한 심리를 보여주는 노래들이 최근에 알게 모르게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10대부터 20대, 30대 이상에 이르기까지 미혼 여성들은 키스(뽀뽀)에 대해 어떤 심리를 형성하고 있을까요?
아이~ 궁금해라~~

그러면 노래를 통해 10대, 20대 초중반, 20대후반, 30대 이상까지 여성들의 심리를 추적해 볼까요~

입술이 정말...




키스에 대한 미혼 여성들의 연령대별 심리


1. 10대 - 아이유, "Boo"(부) (아이유 Boo 뮤직비디오)

먼저 10대 입니다.
10대 여성들이 '키스'에 대해 지니는 정서는 아이유 'Boo'(부)를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아이유 앨범, Growing Up


아이유는 10대 후반으로 최근에 큰 사랑을 받고 있는 'Boo'라는 노래에서 10대 후반 여성이 사랑에 눈떠가는 감정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노래하는 내용을 보면,

"괜히 콧대 높고 쓸데 없이 눈만 높아서
나를 지나만 가는 남자도 모조리 다 점수를 매겨
이러네 저러네 말하고 꼼꼼하게 흠을 잡아도 (Uh) 좀 외로웠어"


완벽한 청소녀(^^)들인 10대 후반 여성들은 콧대 높고, 눈도 높아서 지나가는 남자들도 모조리 다 점수를 매깁니다.
하지만, 이렇게 꼼꼼하게 흠을 잡아도 조금씩 외로움을 느끼는 단계지요.

"내가 남자친구 없는 이율 알겠어 다른 애들보다 너무 재기만 했어
하지만 며칠 뒤에 어느새 나도 모르게 거짓말처럼 (네 생각만 나)"


10대 후반 여성들은 평균적으로 앞서가는(^^) 다른 애들보다 너무 재기만 해서, 대부분 남자친구가 없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에 자기도 모르게 "Boo"가 생각난다는 것이지요... 감정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You are my boo) 내게 사랑을 줘 한 입만 (Boo) 맛있는 사랑을 할 거야
(Boo) 아이스크림보다 달콤한 My boo My my boo"


그래서 드디어 사랑을 꿈꾸게 됩니다. 그리고 숙녀가 되가는 이들의 사랑은 '맛'으로 통합니다. '맛있는 사랑'을 '할꺼야~'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아이스크림'보다 맛있고 '달콤한' 나의 남친, 'Boo'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10대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요!!

단 둘이 단 둘이 네 손을 꼭 잡고
걷고 싶은 게 간절하니깐 너무나 신기해

사랑에 눈뜨고 맛있는 사랑을 꿈꾸는 "그녀들"은 단 둘이 "손"을 꼭 잡고, "걷고" 싶다네요...^^
처음으로 손을 잡고, 함께 걷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사랑에 눈뜨고,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고 순수한 사랑을 시작하고 꿈꾸는 단계입니다.



다음으로 20대 초중반의 미혼여성들의 키스 심리를 살펴볼까요~


2. 20대 초중반 - 브랜뉴데이, "뽀뽀" (브랜뉴데이 '뽀뽀' 듣기)

20대 초중반 미혼여성들의 키스에 대한 심리는 브랜뉴데이(Brand New Day)의 "뽀뽀"에서 잘 드러납니다.
브랜뉴데이의 멤버인 수지, 채린, 수아는 모두 1988~89년생으로 실제로 20대 초반 여성들이기도 합니다.

브랜뉴데이 앨범, Lady Garden


브랜뉴데이가 노래하는 내용을 보면,

"왠지 빠르지 않니?
살짝 튕기는 척하지
기다린건 난데"


왠지 빠르다고 생각하지만, 속으로는 '튕기는 것'에 불과하다네요. 오히려 "기다렸고" 이제 해보는 단계입니다.

"오늘만은 꼭 뽀뽀만 해.
그 이상은 절대 바라면 안돼"


그러나 "뽀뽀"까지만 가능합니다. 그 이상은 안타깝게도(!) 절대 바라면 아니되옵니다~

그러면... 뽀뽀를 시작할 때의 감정은??

"내 가슴이 미친듯이 두근대지
니 입술이 느껴질 때
립스틱이 왜 조금씩 사라지지
아무 맛이 없을텐데"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입술이 느껴지고, 립스틱이 조금씩 사라집니다...
(염장 지른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참아야 하옵니다...)
그러나 아무 맛이 없을텐데... 왜 하려는 것인지 설왕설래하고 있네요... ^^

"딸기보다 빨간 입술까진
오늘 줄께~ 서두르지마라
달아날지 몰라~
내맘을 다 뺏어가는날
그땐 한번쯤은 생각해 볼께~"


딸기보다 빨간 입술까지 줄 수 있는 '매너', '감각'에 눈떠 갑니다.
그러나 서두르면 달아날지 모른다는 것이지요...
아직은 느긋하게 기다리는 여유와 시간이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내 맘을 다 뺏기지 않아서라고 하지만, 사실은 "내 맘을 다 뺏기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지요~ 그날이 올까~

뽀뽀는 가능하지만, 서로 마음과 시간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기대를 하는 것이지요... "내 맘을 뺏어봐~ 제발~~"


이랬던 그녀들이... 20대 중후반으로 가면 어떻게 변해갈까요?


3. 20대 중후반 - 소리(SORI), "입술이 정말" (소리 '입술이 정말' 뮤직비디오)

20대 중후반에 들어서면, 다소 "농염"해지기 시작하는데요.
이런 심리는 소리의 "입술의 정말"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소리 앨범, Lip


"내 입술을 정말 받고 싶니
내 입술을 정말 갖고 싶니
내 입술이 정말 미치겠니"


벌써 "입술"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상대방이 "입술"을 의식한다는 것을 당사자들도 "알고" 있다는 것이지요.
입술이 가지는 "유혹"의 가치를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단계입니다.

"입술이 미쳤나 봐
혼자 미쳤나 봐
음~ 어쩔 수가 없어
내 입술이 예뻐서"


그런데 "나"도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입술이 예뻐서... 입술이 예쁜 걸 어떻게 해...
20대 중후반 여성들은 자연적인 여성미가 가장 부각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여성미가 자연적으로 드러나면서 이성을 유혹하게 되지만, 여성들도 자연스레 이성을 원하는 시기가 됩니다.
"입술이 예뻐서" 어쩔 수 없지만, "입술이 미쳤나 봐" 자책하면서, 이렇게 이성의 시선이 교차하는 상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꼬리 치나 왜 또 꼬리 치나
음~ 죄없는 남자들 얼마나 울리려고"


20대 중후반은 기회가 된다면, 굳이 이성간의 교제를 물리칠 이유가 없습니다.
이 시기의 미혼여성들의 매력이 풍부하다면, 남자들에게 크게 어필하게 되는 것도 당연합니다.
꼬리 치는 게 아니라, 꼬리 치는 것처럼 보이는게 당연한 시기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교제가 항상 잠정적 선택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에, 매력이 풍부한 만큼, 많은 남자들이 울고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남자들이 유혹에 흔들리는 만큼, 자신들도 그렇다는 것이지요.

"유후 유후 유후 유후후"

소리(SORI) 입술



이 시기는 미혼여성들의 절정기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어찌됐든 자신감과 매력이 넘쳐나는 시기입니다.

"유후~" 한 번 날려줍니다~  매력에 넋을 잃고 날라가면 아니되옵니다~~
매력을 물씬 풍겨나는 시기지요.


그러면, 30대로 접어들면서는 어떻게 될까요...?

음...많이 언짢아 질 것으로 생각되는데...너무 미리 자책하지는 마시구요...


4. 30대 이상 - 백지영 "입술을 주고" (소리바다에서 입술을 주고 미리듣기)

키스(kiss)에 대한 30대 이상 여성의 심리를 잘 보여주는 노래는 백지영의 "입술을 주고"입니다.
그러면 노래 내용을 살펴볼까요.

백지영 앨범, Sensibility


"벌써 입술을 주고
벌써 입술을 주고"


흠...
일단 주고 시작합니다...이거는 뭐...

위에서 소리(SORI)가 입술이 "정말"로 입술의 매력에 대해 감탄을 내뱉었다면,
백지영의 "입술을 주고"에서는 "입술"을 "주고" 시작하네요..

나이가 나이인 만큼 이해하시구요... 인생 뭐 있습니까...
연륜 쌓여가는 분들께서는 이해하리라 생각할께요.

"너잖아 이러면 안되잖아
우린 사랑하면 안 돼 너와 나는
알잖아 이런 건 나쁘잖아
너는 내 친구와 사귀고 있잖아"


우리 이러면 안되잖아... 알잖아... 나쁘잖아... 하지만 "벌써 입술을 주고",
이미 친구와 사귀고 있잖아... 하지만 "벌써 입술을 주고"...

벌써 입술을 주고... 벌써 입술을 주고... 흠...

현실은 친구고 뭐고 벌써 입술을 줬다는거... 이거지요.

"벌써 입술을 주고 (고)
니 손을 꼭 잡고   (고)"


입술을 주고, 손을 꼭 잡고...
뭐... 아이유 Boo(부)에 비하면 한참 왔네요... 세월은 무상하네요....

"
네게 기대 다시 술잔을 들고 (고)
기억을 지우고  (고)
이 순간에 취해 (취해)
친굴 잊고"


술 마시고 취하고... 그래 마시는거야~
술 마시고 입술주고... 취해서 잊어버리는거야~ 친구 잊고~

그까이꺼...뭐... 인생이 그런거지...

...

"입술을 주고" 노래로만 보면 30대 이상부터는 크게 생각을 안하는 거 같습니다.
"뽀뽀" 자체보다 "친구"가 나오는 것을 보니 "인간사", "인간 관계"가 더 큰 화두가 되가는 것으로 보이네요.

30대에서는 입술을 줬다는 것보다 "입술을 주고" 뒤에 "(고)"자 붙여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입술을 주고'가 아니라 '입술을 주고~고~'라는 것이지요. 장단 맞추고, 인간사 두리둥실 맞추며 살자...
뭐 그런 실마리가 엿보이기 시작하네요.

하트 구름



이상으로, 10대 후반에서 30대에 이르기까지 미혼여성들이 키스(kiss)에 대해서 어떤 심리적인 변화를 겪을까,
요즘 최신곡들을 통해 살펴봤습니다. 

같은 '뽀뽀'이고'키스'인 것 같지만, 미혼여성들의 연령 변화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나타나고 있네요.

손만 잡다가, 어느새 뽀뽀하고, 유혹의 정글을 지나, 벌써 입술을 주고.....

뭐... 인생이 그런거 아니겠어요~
(아직 시작도 안했다면 희망으로, 좌절금지하시구여...)

kiss with



여기서 다시 되돌아보면,
입술이 아름다운 것이나, 키스를 바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소녀시대 컴백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스테디셀러하고 있는 이승기의 '결혼해줄래'를 조용히 들어봅니다...
[리사 '우리 결혼할까?', 이승기 '결혼해줄래' 함께 들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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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 우리 결혼할까? 이승기 결혼해줄래 답가(答歌)를 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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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일 6.10항쟁 22주년 기념일을 전후하여 또다시 자행된 경찰, 전경집단의 폭력사용과 집단적인 폭행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경찰과 전경집단의 이런 야만적인 행태는 이미 작년 촛불집회 정국에서부터 수도 없이 지적되었고, 이후에도 끊임없이 문제제기되고 있는 내용에 속합니다.

이들의 만행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이들이 경찰 수칙이나, 전경 복무규정을 제대로 숙지하고나 있는 것인지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경찰과 전경집단의 생명의 위험도 초래할 수 있는 물리적 폭력 사용은 계속 지적되었고 알려지고 있으나, 
개인적으로도 이런 경험을 다수 가지고 있습니다. 


변화없는 전경, 경찰의 폭력 행사

저의 경우, 작년에 촛불집회에 어린 학생들과 여성들, 혹은 집회의 경험이 전무한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참여하는 것을 목격하고, 집회자체가 전경들과의 극한 대립으로 불상사를 초래할 것이 걱정되어 많이 참여한 바 있습니다. 

집회 자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기 보다는 지켜보면서, 전경들이나 경찰들과의 불필요한 대립으로 상호간의 물리적인 폭력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도왔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전경들도 대부분 20대 초반의 어린 젊은 사람들이고, 이런 시국에 대한 경험은 물론, 이런 종류의 대형 집회, 시위의 경험이 전무하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 두려움을 느끼고 주눅이 들어 오히려 공격적으로 나올 수 있는 상황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30대를 넘어가는 세대들만 하더라도 집회시위기 사실 일상적이었기 때문에, 예전에는
시위를 하더라도 전경, 경찰들과 사전에 암묵적인 타협을 하고 '보여주기' 식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사실 많았었습니다.

즉, 서로 정치적인 의사표현을 위한 어떤 '쇼(show)'를 하지만,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기 위해, 서로 어느 선은 넘지않는 
암묵적인 타협을 가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정국의 집회시위의 원인, 방식 예전과 전혀 달라

그러나, 지금의 집회시위는 정권과 정국, 민주주의 전반이 원인으로 작용하면서, 
그 추동세력과 집단도 어떤 '단위'나 '조직', 적어도 '대학' 사회에도 소속되지 않은, 일상 '소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결사로
진지하고 냉정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들, '여학생'들, 젊은 '결혼여성'들이 참여자들의 다수를 차지하여 주축이 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즉, 이전의 소위 '운동권'의 조직화되고 보여주기 식의 집회시위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며, 
본질적인 분노와 정권에 대한 질책을 '시민사회', '시민', '대중' 전반이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시민혁명'의 환경입니다. 


그렇다면, 왜 '폭력'이 수반되지 않고 있느냐구요?

이미 상황은 시민혁명 수준이고, 정권은 이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지고, 대응을 내놓아야 합니다. 
시민들이 폭력을 쓰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의 참 뜻'에 대한 시민의 의식이 성숙했기 때문이고, 저와 같은 사람들이 '전경, 경찰'과 '시민'들간의 불필요한 대결과 폭력 사용을 방지하기 위해 조용히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물리적인 폭력'이 수반되지 않기 때문에, '화염병', '쇠파이프'도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이건 일시적인 '집회'나 '시끄러움'에 불과하다고 치부하는 것은 큰 착각입니다. 

물리적인 폭력이 수반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더 무서운 것입니다. 
시민들은 그 만큼 배웠고, 성숙했고, 자기의 책임과 권리, 권리의 행사와 의무를 타인에게 전가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의 권리를 장전하고, 보여주고 있는 것 뿐이며, 그것은 '내가 누리고 있는, 누려야 할 민주주의' 안에서 정당한 것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몸으로 말로 표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민주주의는 피로 화답하지 양보하지 않는다

이런 정국과 현실의 무서움을 깨닫지 못하고, 정권과 공권력이 무수한 직접적인 경고와 조기 경고신호(alert)를 무시하고, 
여전히 막 나간다면, 이러한 '고요'도 한계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절대 양보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요? 역사적으로 지나간 이야기로 그러했다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는 개념필연적으로 언제나 '피를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민주주의입니다. 그래서 무서운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왜 '민주주의'가 무섭다고 생각합니까?

민주주의가 교과서에나 나오는 하찮은 얘기로 치부한다면, 시민들은 '민주주의'는 분명히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런 현실을 부정하는 권력의 교만자들에게 응당의 댓가를 선사하게 될 것입니다. 
그게 민주주의고, 민주주의의 무서움이고, 위정자들이 항상 두려움을 느끼고, 경건하게 양심을 다하여 국정에 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권력의 자리에 있다는 것이 무서운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상화된 폭력 사례

제가 작년의 촛불집회에서 노파심으로 옆에서 많이 지켜봤으나, 실제로 느낀 전경, 경찰집단의 폭력은 상당히 심각합니다. 
공권력 남용과 법적인 불법에 따르는 '폭력'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보여 논외로 하고, 물리적폭력의 사례만 언급하겠습니다.


첫째 경험담을 말씀드리면,
전경들이 광화문사거리에서 집회자들을 해산하는데, 다 해산하여 뒤로 물러나는 마당에, 혼자 뒤쳐진 어린 여대생이 뛰어가다가
도로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이에 그 여학생을 좇던 전경이 그 여학생을 향해 방패를 날렸습니다. 방패로 찍은 것이 아니라, 방패를 아예 그 여학생한테 날려서, 그 여학생의 머리를 살짝 빗나가서 맞았습니다. 고의적으로 여학생의 머리를 향해 방패를 던져서 날렸습니다. 
간신히 비켜가서 망정이지 정면으로 맞았으면 최소한 뇌진탕에 걸리거나 했을 것입니다. 

혼자 쓰러진 여학생에게 방패를 던지는 것을 본 후에 어이없어, 그 여대생을 일으켜 세우고자 달려갔는데, 
전경이 자기가 던진 방패를 다시 집어들더니, 방패 모서리를 바닥에 갈기 시작하더군요. 

그리고 방패를 집어들더니 저의 눈을 향해 날을 세워서 가격했습니다.... 

이게 뭔가요?

저는 대학교 다닐 때도 안 맞고 다닌 사람입니다. 고의적으로 눈을 향해 가격을 했고, 
정황을 보면, 전경부대에서 '방패를 갈아서 얼굴이나 눈을 가격하라'고 언지를 받았거나 교육을 받은게 분명합니다. 

겨우 눈 밑을 스쳐 멍들고 말았고, 주변 분들이 달려와서 그 전경이 더 이상 접근하지 않게 도와주어서 뒤로 피신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여학생은 일어나 먼저 뒤로 뛰어서 피했습니다. 


두번째 경험담은, 
6월 중의 집회로 생각하는데, 토요일 오전에 광화문사거리에서 시위를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난, 
경찰들의 체포 만행입니다. 
소위 '체포전담조'는 그들이 미리 표적으로 삼은 연행자를 거리에서 연행했는데, 물론 연행은 했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에 '닭장차'에 억지로 감금하고, 연행자를 '때리고 패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 영상은 제가 지금도 가지고 있으며, 
주변의 많은 분들이 지켜봤고, 언론이나 국가인권위에 제소해야 한다는 의견도 들끓었습니다. 

해당 연행자는 닭장차 안에서 폭행을 당한 후 '말도 하지 못하고', '몸도 일으키지 못하고', 자신의 '신변'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에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게 뭔가요?


두번째의 사례는 경찰, 특히 '체포전담조'나 '특수기동대'의 불법적인 폭력 행사에 해당합니다. 물론 '연행'할 수 있고 '피의자 조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폭력을 쓰나요? 이게 정당화됩니까?

그리고 더 집중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첫번째 사례입니다.

전경들의 폭력성은 어제 오늘에 지적된 문제가 아닙니다.
전경들이 방패의 날을 세우고, 방패를 바닥에 갈고, 방패로 얼굴을 가격하는 것은, 10년 전에도 그랬고, 20년 전에도 그랬습니다. 

10년 전에도 전경이 휘두른 방패에 맞아 '실명'을 당한 경우도 많았으며, 대학교 신입생도 전경의 방패에 눈을 맞아 실명한 경우가 저의 경우에도 있었습니다. 

이런 사례들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전경들이 이렇게 폭력을 예사로 사용하는 것은, 해당 부대에서 그렇게 가르치고 교육하기 때문입니다.
즉, 불법적으로 잘못된 관행들이 전수되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위에서, 선임자들이 '방패를 갈아서', '얼굴을 맞춰라', 특히 '눈 부위를 가격하라', '목 주위를 가격하라'고 종용하고 전수하기 때문에 이 지경에 오는 것입니다. 


충분한 직무, 안전교육 없는 경찰권 투입은 위헌

전경들 대부분이 20대 초반입니다. 
고등학교까지 민주주의 교육을 받지만, 민주주의는 생활 속에서도 습득되고, 대학사회에서도 추가로 습득되기 때문에, 모든 전경들이 지니는 민주주의 의식이 완벽하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전경들에 대한 충분한 직무교육, 직무 수행에 따른 준법교육, 민주주의와 인권 의식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전경들은 '일반 시민들에 대한' 권력의 잘 훈련된 '개', '투견'일 뿐입니다. 

전경들이 집회 질서유지 현장에 나와서 울부짓는 모습을 보며, 거의 예외없는 모든 시민들이 
그들은 마치 '짐승 같다.', '훈련된 투견'들 같다는 인상을 받고 있습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군인의 경우, 만약에 전쟁이 일어난 유사시라면, 총을 잘 쏘고 포탄을 잘 쏘면 칭찬받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전쟁은 권력에 의해 용인된 '살상'의 현장으로 군대의 목표는 그런 '폭력성'의 표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경의 경우에는 어떻습니까? 
집회나 시위에 나와서, 전경이 '시민들' 잘 때려잡고, 물리적인 폭력을 잘 행사하면, 
넌 참 유능한 전경이로구나...  칭찬받아야 하는 것입니까?


전경은 군인이 아닙니다. 

전경은 '국가공권력'에 의해 동원된 하나의 수단일 뿐이고, 그 '국가공권력'은 경찰권력이 전경들을 동원한 
'경찰 권력'의 권한 범위 내로 제한되는 것입니다. 

경찰이 방패로 시민 패고, 방패로 눈을 가격하고, 실명시키고, 뇌출혈 일으키고, 두개골 함몰시켜도 된다는 법이 있습니까?
아니면 그렇게 해야만 합니까?


지금 전경들과 전경부대는 기초적인 임무에 대한 숙지나, 공권력의 행사방식과 한도에 대한 교육이 전혀 안되어 있습니다. 
비유하면 '총'을 쥐어 주었는데, 총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어떤 예외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 안전수칙은 무엇이고, 왜 대부분 사용되어서는 안되는지, 그리고 자신들이 그렇게 복무하고 있는 이유과 사명은 무엇인지 전혀 체득이 안되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자신들이 무슨 소리를 내는지도 모르고 '울부짓는' '권력의 투견', '개'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국가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그들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고, '국가' 자체에 대한 모독이기도 합니다. 


제복을 입은 자는 국가와 동일

10년이나 20년이 지나도 전혀 변화가 없는 이러한 상황에서, 
경찰이나 전경 집단이나 폭력을 일상사로 자행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며,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일부 전의경들은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며 자신들은 피해자일 뿐이다. 전경차가 부셔지거나, 누군가가 쇠파이프나 죽창을 나나 동료에게 휘드루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고 말합니다.
이들의 의견은 정당합니다.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자신들이 또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또다른 폭력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들은 '제복'을 입었습니다. 공권력이라는 것입니다. 단순이 개인이 개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얘기입니다. '공권력'은 '국가'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제복을 입은 전경이 시민에게 방패로 눈을 가격하는 것은, 이명박이 직접 방패로 시민 때리는 것과 똑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공권력'이고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나와 이웃을 죽이거나 패기에 바쁜 폭력국가에서 살고 싶습니까, 내가 사는 나라가 폭력국가였으면 좋습니까,
폭력국가가 되는데 내가 기여하고 있으니까 기분이 좋습니까?

'제복'은 곧 '국가'이고 '국가'는 '국가'로써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일개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이 갓 20대초반에 들어서서 전의경이 된 젊은이들에게 지각이 잘 안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전쟁이 발발한 전투현장의 군인이 아니며,
일상 생활에서 '시민'과 접촉하는 '경찰력'의 일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불완전한 '불량품' 권력은 불편함의 대상이 아니라, 회수 조치 대상

'권력'을 쥔 자들이, 그 권력을 어떻게 어떤 한도와 수칙을 지켜가며 행사해야 하는지 '정당한 권력 행사'의 방식을 모르는
무지(無知)를 범하고 있다면, 그런 권력 행사는 불편함으로 받아들이고 용인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원천적으로 반납되고 회수되어야 합니다. 


전경 집단이 지금과 같은 폭력을 지속한다면, 전경 집단은 그 어떤 경우에도, 어떠한 집회나 시위 환경에서도, 
시민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말아야 합니다. 


시민사회는 '인권'과 '개념'의 사각지대인 전경과 경찰 집단에 대해서 민주화, 합리화의 사명을 안고, 
앞으로도 이들의 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실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되나요?

작년에 서울의 촛불집회에서 평일 하루에 새벽 아침까지 함께 했을 때,
중학교 2학년인 소년이 있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 소년이 학교에 거르게 될 것을 걱정했습니다. 물론 그 학생은 아침 6시경에 집에 갔고, 등교를 했을 겁니다.

새벽 3~4시쯤에 그 학생이 저한테 와서,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되나요?  나라가 참 걱정되요." 라고

했습니다.

그게 중학교 2학년 학생의 마음입니다.

"이런 일이 우리 평생에 다시 있지는 않을거야."

하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게 1년 전의 일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지금이 4.19입니까?  4.19처럼 피를 흘려야 알아먹습니까, 아니면 피를 안흘리고 있으니까 만만해 보입니까?

사람들이 어리석어서 겁이 많아서 '피를 안흘리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권력은 대리인들에게 있지 않다

그런 착오와 교만, 교언영색(色)에 빠져있는 한, 더 큰 댓가를 '권력' 스스로 지불해야 할 것입니다.

'권력'은 '시민'에게 있는 것이지 '대리인'들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 역사적 현실을 망각하고 있다면 그에 대한 댓가를 치루고, 현실로 똑똑히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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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의 신설되는 대담프로 황금나침반 첫회에 소위 '텐프로' 20대 초반 여성이 출연하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는데, 결론적으로 분명히 반대한다.

황금나침반의 기획의도를 보면,
방황하는 청춘의 인생문제 해결을 위해 지혜와 경륜이 있는 장년 독설가들이 패널로 대담을 이끌어 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의도에서 본다면, 20대 텐프로 여성도 청춘이므로, 여기에 분명히 해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여성의 출연에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이유 외에,
1) 텐프로 여성들도 그 숫자가 적지 않을 것이고, 20대 삶의 한 부분일 수 있으므로 차별을 둘 수가 없고,
2) 어려움 없이 나가고 있는 상황보다는 예외적이고 힘든 상황에 처한 집단이나 개인을 출연시키는 것이 더 의미가 있으므로,
3) 당연히 위의 기획의도에서 보더라도 출연할 수 있다고 얘기할 것이다.

반면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1) 텐프로가 20대의 보편적인 삶의 한 모습인지 의문이므로, 청춘의 삶을 대변할 수 있는지가 회의적이고,
2) 모든 시청집단이 시청하는데, 이런 예외적인 경우를 선정하여야 하는가가 의문이며,
3) 보편적으로 수긍가능한 공통적인 청춘의 삶과 주제를 다루어야지, 텐프로는 소위 '일탈'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 입장 외에, 다양한 이유에서, 황금나침반의 초반부터 텐프로 여성이 출연하는 것을 반대한다. 단순히 선정성 논란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첫째, 처음부터 텐프로 여성이 출연해야 하는가이다.
황금나침반이라는 '청춘'의 고민을 상담하는 새로운 프로를 가지고 나왔으면, 우선 센세이션 보다는 그러한 존재가치와 의미를 인정받고 호응을 얻어내야 한다.
그럴려면, 특수한 환경의 상황보다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자기 삶과 연동된 주제와 출연집단 선정으로 출발하는 것이 좋다.
텐프로 여성은 20대 여성이 일반적으로 선택하거나 겪는 환경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보편적으로 권장되지도 않는다. 흥미나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을 뿐이지, 프로그램 편성의 존재가치를 초반부터 오히려 삭감시킬 수 있다.

둘째, 텐프로 여성만이 출연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이다.
이 점은, 텐프로 여성의 삶이 과연 '청춘', '20대'의 문제인가 하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텐프로의 존재는 20대를 넘어서는 30대, 40대, 50대, 60대,... 즉 중장년층의 문제가 아닌가?
사회적 성도덕이나 음주문화, 가정윤리적인 총체적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인데, 책임자들은 모두 쏙 빠진 마당에, 과연 텐프로 여성이 홀로 나와서 '신세한탄식'으로 진행한 들 어떤 사회적 의미나 합의나 비판이 이루어지겠는가.
오히려, 사회적인 부조리를 '텐프로 여성'의 개인적인 문제 쯤으로 치부해 버리고 선입견을 심는 과오를 범할 수 있다.

셋째, 사회 일반의 건전성, 도덕성의 유지는 그 예외적 환경보다 더 우월하고 보존되어야 한다.
사회부조리라고 하든, 개인의 자율적 선택이라고 하든, 일반적으로 도덕적 해이라고 치부되는 명백한 환경이, 모든 시청 집단이 시청하는 공중파에서 '대범하게' 진행되어야 하는가이다.
이런 상황을 모든 시청자 집단이 수긍하기도 힘들다. 사회 일반의 건전한 도덕적 환경은 텐프로를 분명히 멀리하기 때문이다.

넷째, 만일 이러한 상황이 가능하다면, 동일하게 일탈적인 상황이나 더 일탈적이거나 반사회적인 상황들도, 단지 '청춘'이 걸려있다는 이유만으로 출연이 가능하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예컨대, 마약흡입자도 나올 수 있고, 반사회적 범죄자들도 단지 '청춘'이므로 출연이 가능하다는 논리가 성립하는데, 그렇다면 이 방송은 예컨대, '소년교도소'나 '교도소'에서도 방송이 가능하다(그런 출연자들도 출연시킬 수 있다)는 뜻인데, 얼마나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다섯째, 20~30대, 청춘의 어려움은 정상적인 환경에서 사회의 가치를 존중하면서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사회적인 비효율성과 부조리, 제약으로 인해 그런 의지와 삶의 실현이 제약되고 굴곡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사회가 모두가 텐프로가 되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고, 텐프로가 필수라거나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볼 수 없는 상황에서, 텐프로의 소리부터 듣는 것은, 텐프로를 회피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려고 하는 적어도 보다 건전한 20대에게 무례한 도전일 수 있다.

여섯째, 다소 일탈적인 환경을 첫방송에서 선보이는 것은, 방송의 영향력을 생각할 때, 상황에 대한 그릇된 인정의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 '텐프로' 자체가 일상적이지도 않으며, 그 의미를 모르는 경우도 다반사인데, 이것이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것으로 격상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잘못된 인식으로부터 출발하는 이런 흐름은 적어도 필자가 접한 경우에는 최근의 SBS에서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SBS는 최근에 명세빈을 출연시킨 특집 '기생전'에서 '일본의 게이샤'는 떳떳하게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데, 한국의 기생은 없어졌으니 참으로 한탄스럽고 부활시켜보는게 어떨까...하는 참으로 기가 찬 노골적인 논리를 보여주었고, 이미 이에 대해 비판한 바 있다.
왜냐하면, 여성을 '성의 보조물'로 삼는 것은 과거 불평등시대의 반인권적 문화의 산물로, 그러한 구태가 해체되면서 한국의 '기생'도 그 구태적 명칭으로는 이미 사라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일본의 '게이샤'도 있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벌써 마땅히 없어져야 마땅하며, 적어도 '일본 게이샤가 있으니 한국의 기생이 부활애햐 한다'는 명제는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단지 텐프로가 되었을 뿐, 사회에 죄지은 것도 아닌데, 왜 차별받아야 하고, 방송에 나가면 안되냐고 반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의 건전성과 보편성은 예외적 환경보다 더 중요하고, 적어도 우월하며 우선적이다.
범죄자들을 교도소에 가두거나 형벌을 주는 것은 그들이 미워서가 아니라, 그렇지 않는 일반의 보편적인 건전성이 우월하기 때문이고, 그들의 삶이 더욱 우선 요람에서 무덤까지 온전하게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까놓고 얘기하면, 텐프로에 빠져들어 일반적 사회기준에 따르면 다소 일탈을 선택한 이들보다는,
그렇지 않고 건전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다수의 청춘들의 삶이 솔직하게 냉정하게 얘기하면 더 우선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SBS가 황금나침반을 신설하여 프로신설의 취지를 살리고자 한다면, 텐프로라는 흥미위주의 예외적 상황보다는,
보다 건전하고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청춘들의 주제와 삶부터 선택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이 대학생이 되는 마당에, '등록금'이 공통문제라면 이에 해당하는 이들을 먼저 출연시켜 볼 수 있다.
그리고 한 명이 아니라 다른 상황에 처했지만 공통의 문제를 지닌 다수의 출연자들을 함께 출연시킬 수도 있다.

'등록금'때문에 텐프로를 선택한 이들도 있다면, 등록금 때문에 삭발한 여대생을 동시에 함께 출연시켜 보는 것이 더 극명한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러나 텐프로만은 아니다.

텐프로는 건전한 일반 청춘들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선택해야 하는 것도, 꼭 보아야 하는 것도,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텐프로는 일반적 '20대'의 문제가 아니라, 기성세대와 또 기성세대를 만들어낼 사회적 접근의 문제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최소한 텐프로를 프로 첫편에 배치한 SBS의 의도는 역시 의심스럽다. 아니라고 본다.

SBS가 첫방송에서 무리하게 '텐프로'를 소재삼았으나, 여기에서 설득력 있는 '청춘 일반'의 화두를 끌어내지 못한다면,
이 프로는 초기부터 논쟁을 일으키고, 좌초를 불러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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