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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28 개그콘서트 결방, 방송사의 오바다 62
  2. 2010.03.28 추노 언년이 이다해는 왜 갈수록 살이 쪘나?
  3. 2010.03.27 추노 언년이 행적, 작가의 계획된 실패작? 3
  4. 2010.03.26 송태하 결말, 죽었을까 살았을까? 추노 마지막회 5
  5. 2010.03.26 정선희는 안재환 어머니의 편지를 받던가, 퇴출이 마땅하다 174
  6. 2010.03.26 추노 대길이, 남자의 사랑, 장혁의 재발견 (마지막회)
  7. 2010.03.24 추노 마지막회 결말, 대길이, 송태하, 언년이 선택은 중국행? 1
  8. 2010.03.24 소녀시대 변태기인가? 예쁜 멤버가 없다 5

서해에서 발생한 '함정' 사건을 이유로 3월 28일 전후 주말의 여러 TV 프로그램들이 결방이 되었다.
일요일 밤에 많은 이들을 웃겨주던 KBS 2TV '개그콘서트'도 방송사의 결정에 따라 결방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결방의 이유를 보면, '국군 장병들이 무사 귀환하기를 기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여기서 묻고 싶다.

시청자들이 기다리던 TV 프로그램을 '결방'시키면 과연 '국군 장병들이 무사귀환'하게 되는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그냥 하루든 이틀이든 방송사는 '정방'하고 방송을 쉬면 되지 않는가? 
 
방송사가 특정 '프로'를 결방시키는 것과 '국군 장병들이 무사 귀환하는 것'과는 필연적으로 연관성이 없다.

프로그램을 결방시키면서, 현장 소식을 다루고 분석하는 특집 프로그램을 대신 편성했으면, 그 '진의'라도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개콘'을 결방시킨 KBS2는 '스폰지2.0'라는 정보오락 프로그램을 대신 편성했다. '개콘'이나 '스폰지'나 크게 보면 '오락' 프로인 것인 매 한가지다. 

필자는 '개콘'을 거의 시청하지 않는다. 이런 필자까지도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 지경인데, 정말로 '개콘'을 기다리던 시청자들의 심정과 기대는 어떠하겠는가?

방송사들은 이처럼 의례껏 그래야 하는 것처럼, 주요 방송프로 장르들에 대해서 이해하기 힘든 이중의 잣대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SBS에서는 3월 28일 '인기가요'와 같은 음악프로가 결방되었다. 대신에, 그 시간에 드라마를 편성했다.
반면에, 프로야구 중계는 KBS1 공영방송 지상파에서도, K-리그 축구 중계는 정상적으로 진행하였다. 

프로야구, K-리그 프로축구, 드라마, 기타 오락프로그램은 되고, '음악프로'나 '코미디'는 안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음악프로' 결방시키고 그 시간에 '드라마' 틀어서 상황이 개선된 것이 있는가, 아니면 '개콘' 대신에, '스폰지 2.0'이 나가서, 상황이 좋아지기라도 하는 것인가, KBS1 TV의 '프로야구' 중계는 되고, KBS2 TV의 '개콘'은 안되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한 주간 피로에 지친 시청자들과 생활인들은 주말의 주요 프로에서 힘을 얻어야 하는 '필요'가 있다.
'함정 사고'도 피로를 주고 있는 마당에, 시청자들의 이런 채널 '시청권'을 빼앗아서는 안된다.

방송사들이 주요 프로를 결방하면서, 현장 상황을 다루는 특집 프로라도 편성했으면 이해할 만도 하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다.
 
그리고, '국군 장병들이 안전하게 돌아오는 방법'이 무엇인지도 생각해 보자.
방송사들이 사건의 발생에 1차적 책임은 없지만, 그래도 그들의 무사귀환에 기여할 것이 있다면, 그 방식은 과연 무엇일까?

방송사들이 상황 개선에 기여하려면, 시청자들이 기다리는 주요 프로그램들을 결방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되서는 안된다.
거기에는 어떤 개연성과 인과관계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현장 상황을 알리고 분석하여, 책임 당국자들의 적극적인 현장 대응과 조치를 촉구하는 방송을 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의 방송 언론에서는 그런 비판 정신을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현재 정권 당국의 '위기 대응'을 보면, 상당히 기대에 못 미치는 점이 있고, 과연 상황 대응을 즉각적으로 효과적으로 최선으로 다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그래서 '방송'은 이런 상황들을 지적하고, 당국자들의 '주의'를 촉구해야 한다.

방송사들이 시청자와의 정보 소통을 위해 해당 특집 프로를 그 시간에 편성하고, 상황 대응을 촉구한다면 모르겠지만,
어떤 설득력도 개연성도 없는 방식으로 주요 프로그램을 결방시키는 '결방의 문화'는 이제 재검토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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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감동을 안겨준 인기 드라마 '추노'가 이미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추노'가 우리에게 안겨준 다양한 '감동', 소중한 '인상', 그리고 다양한 '얘깃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느 것은 끝냈지만, 다른 것은 열린 결말로 마무리한 탓인지, '추노'에는 여전히 많은 화제들이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 드러나지 않은 추노의 궁금증의 하나를 꺼내 보고자 합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민폐리스트'에 당첨되기도 했던 이다해가 연기한 '언년이'(또는 '김혜원') 캐릭터 입니다!

여기서 제시하는 궁금증은 '추노'의 여주인공 '언년이'는 왜 갈수록 살이 찌게 되었나? 하는 점입니다.

추노 초기 '언년이'


추노 초기의 '언년이'의 모습을 보면 얼굴이 아주 마르고 갸름합니다.

추노 후기 '언년이'


반면에 추노 후기 '언년이'를 보면, 볼이 아주 도톰하고 후덕해 보입니다..
이 스샷은 추노 마지막회에 등장하는 '언년이'의 모습으로, 송태하(오지호)와 함께 대길이(장혁)를 호위로 삼아, 중국으로 가기 위해 포구로 향하는 모습입니다.

결국 '추노'에는 두 개의 '언년이'가 있습니다! '초기 언년이', '후기 언녀이'가 바로 그 것이지요.

'언년이'는 왜 위처럼 드라마 초기보다 후기에 더욱 '후덕'한 모습으로 변하게 된 것일까요?

드라마 '추노'의 제작과정은 상당히 강행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드라마 내용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언년이' 이다해도 '초반'은 물론 '후반'까지 드라마 찍는다고 고생을 했다고 봐야 합니다.

따라서, '후덕하게 변해 간 것'이 이다해의 개인적인 사생활 문제로 보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언년이 민폐 리스트'로 고생한 이다해가 스트레스 받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닐거 같아요.


그렇다면, 왜 '추노' 언년이는 갈수록 '후덕해졌을까요?'

정확하게 말하면, 얼굴이 후덕해지고, 살이 차 오른 모습입니다.

이것은 의도적인 '분장'과 '장치'가 아닐까요?
여기에는 엄청난 '상징'과 '필연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보이는데요.

꼭 풀어보고 싶네요!!  궁금해 죽겠네요~~ 그녀는 왜 후덕해져야만 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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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 언년이 행적, 작가의 계획된 '실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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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드라마 '추노'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화려한 관심을 받으며 출발했던 '언년이'(이다해 분)도 극의 종결과 함께 '기억'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다해는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주어진 역할 역기를 90% 이상 무난하게 소화했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언년이' 캐릭터 자체는 '어정쩡한' 설정으로 많은 문제점을 남겼다.

그래서 작가가 '언년이'(김혜원) 캐릭터를 설득력있게 형상화하는 데 실패했다고 보인다.
어떻게 보면, 작가가 의도적으로 '언년이'를 연기하는 이다해를 '골탕 먹이려고' 작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왜 그럴까?

'추노'에 대한 전반적인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추노의 '언년이'는 왜 초반부터 설득력없게 그려지고 있을까?

추노에 등장한 '언년이'의 행적을 초반부터 결말까지 쭉 따라가보면 아래와 같다.


[언년이의 행적 경로]

1. '노비'로 살던 대길이의 집을 오빠와 함께 도망쳐 떠난다.
2. 도망친 오빠와 함께 양반 행세를 하면서 산다.
3. 오빠가 제3자와 결혼시키려고 하자, '자신의 인생'을 찾아 '가출'하여 집을 나선다.

4. 정처없이 유랑하다가, '겁탈' 당할 뻔한 상황에서, 송태하를 우연히 만나 구출을 받는다.
5. 송태하를 따라 나선다.
6. 송태하의 '결혼' 청혼을 받아들이고 결혼한다.

7. 자신을 사랑하던 대길이와 다시 3자 대면을 한다.
8. 송태하를 계속 따른다.
9. 송태하를 따라 중국행을 결심한다.


이와 같은 행적의 과정을 겪는다.

쭉 보면 알 수 있지만,

1) 스스로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행위 선택의 과정이 빈약하다.
2) '언년이' 그녀 스스로가 당면한 '갈등'의 '근원'이 아주 소박하다.
3) 그녀가 행적을 옮겨가는 과정이 '설득력'있게 연결되지 않고 있다.

이를 하나씩 생각해 보자.


[언년이 행적의 성격]

1) 수동적인 행위 선택
'언년이'가 '노비'로 살던 대길이의 집을 도망친 것은 오빠를 따라서이지 자신의 선택이 아니다.
'언년이'가 자신을 결혼시키려는 '오빠'의 품을 탈출한 것은, 소위 수동적인 '가출'로 볼 수가 있지, 적극적인 인생 '개척'의 의미가 적다.
'언년이'가 방향성 없이 방황하다가 송태하(오지호 분)를 만나서 그를 따라나선 것은 전혀 필연적이지 않다.
'언년이'가 중국으로 가야 하는 것은, 송태하가 가고자 해서이지, 언년이 스스로가 '결심'한 게 아니다.

2) '갈등의 근원'의 소박함
'추노'의 인물들을 보면, '추노'의 소재와 주제답게 '거시적'이고 '사회 구조적'인 담론을 기본적으로 깔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송태하는 '국가 권력'을 바꿔보고자 했고, 노비당은 '사회 계급 구조'가 바뀌는 것을 꿈꿨다.
좌의정 이경식이나 황철웅, 기타 양반 무리들은 '권력'의 '탐욕'에 눈멀어 있었다.

대길이와 최장군, 왕손이, 천지호 같은 '추노 무리'들도 비교적 자유로운 것 같지만, 그들도 '체제'에 순응하며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사회 시스템' 하의 삶의 현실을 보여줄 뿐이다.

그들은 이런 '갈등의 근원'을 이해하고 있고, 충분히 갈등의 내적 모순을 적극적으로 외부로 표현하고 있다.

반면에, '언년이'의 갈등은 매우 소박하게 그려진다.

오빠와 함께 대길이 집을 도망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오빠'가 결혼시키려고 하니까, 그것이 싫어서 '가출'을 했다.
그 이후에 갈등 상황은 매우 약하다.

송태하를 따라 다니다가, 그와 결혼을 하게 되고, 마음 속에 남아 있던 '대길이'(장혁 분)에 대한 '정(精)'을 덜어낸다. 
'추노'의 전반적인 전개 내용에서 보면, 대길이를 버리고 송태하를 선택하는 그 과정이 언년이에게는 가장 결정적인 '갈등 상황'으로 진지하게 그려져야 하지만, 결코 그렇지 못했다. 

특히, 언년이가 대길이의 생존을 '인지'하고 그를 눈 앞에서 보고, 또 3자 대면까지 하게 되지만, 언년이의 '갈등 상황'이 증폭되거나, 다시 확대되어 드러나지 않는다. 
대길이를 보왔어도, 언년이는 그대로 '송태하'를 따라 나설 뿐이다. 

여기서 엄청나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10년간 가슴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대길이'를 어떻게 눈 앞에서 보고 만났는데, '갈등'이 순식간에 없어질 수가 있는가? 마치 삼자 대면 이후에는 대길이와 언년이는 혹 '남남'처럼 그려지기도 한다. 
심각하게 말하면, 대길이가 '언년이' 짝사랑해서 좇아다닌 것처럼 생각될 지경이다.

3) '언년이'의 행적 이동 경로가 설득력 있지 않다. 
위와 똑같은 얘기지만, 언년이가 '가출'한 것까지는 이해가 된다. 
그런데, 그녀가 왜 굳이 송태하를 따라나서고, 그와 '생사고락'을 함께 하고, 급기야 그와 '결혼'까지 하게 되는 것인지 충분히 설득력있게 연결고리가 엮여서 전개되고 있지 않다. 

그리고, 대길이와 만났어도, 언년이의 내적인 '원초적 갈등'이 크게 드러나고 있지 않다. 
'어, 대길이 너 왔니?' 이런 식으로 보일 지경이다. 

이후 언년이는 단지 '송태하'와 '결혼'하게 되는 것만으로, 언년이 스스로의 '갈등 상황'은 이후 완전히 제거된다. 극에 전혀 드러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대길이가 '이유없이' 따라다는 것처럼 비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언년이는 '송태하'의 '딸랑이'일 뿐이다. 그냥 송태하의 그림자로만 나타난다. 

따라서, 작가가 '언년이'의 캐릭터를 잘 살리는데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언년이의 상징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년이는 '추노'라는 드라마에서 주제를 형상화 하는 가장 중요한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그녀는 '추노'의 모든 주제를 아우르는 '대주제'로써의 '상징성'을 가진다.

왜 그럴까?


결국은 '소박한 것이다.'

'사회 체제' 하의 '개인의 가치'라는 것도 소박한 것이라는 것이다.
'언년이'가 바라는 '꿈'이나 그녀가 추구하는 '삶'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자기의 인생을 제도나 계급에 구애 받지 않고, 스스로 사랑을 선택하고, 그것을 보장받으며 소박하게 인생을 사는 것이다.

그녀는 '내가 이 사회를 바꾸겠다'와 같은 거창한 꿈을 꾸지는 않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겠다, '주체적인 삶다운 삶'을 살겠다는 소박한 꿈이 있다.

언년이 그녀는 '매우 평범한 보통의 여자'다. 그녀는 '일상적인', '보통의' 삶을 상징한다. 

그런데, 가장 소박한 꿈을 꾸는 언년이에게 '추노' 전반의 현실은 가장 냉혹하다.
'언년이 민폐 리스트'가 나올만큼 그녀의 주변 인물들이 생을 마감하며 무수하게 떨어져 나가는 것은, 그녀의 이러한 소박한 '삶'조차도 쉽게 보장받을 수 없는 모순된 시대와 제도의 역설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언년이' 캐릭터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언년이' 캐릭터는 작가의 의도적 '실패'로도 볼 수 있다.

우리 인생과 우리의 현실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대부분 '언년이'처럼 소박한 것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큰 꿈'을 꾸지 않아도, '과한 것'을 탐내지 않고도, 소박하게 자신의 가치를 존중받으면서 편안하게,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많은 것이 우리를 족쇄처럼 붙들고 있다.
하다못해 오늘날의 '이북'의 사람들은 엄청난 '독재'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에게는 '언년이'의 삶도 과분한 것이 아닐까?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언년이'의 삶이 과분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한편, '언년이'는 '사랑받는 존재'다. 그리고 '사랑하는 존재'다.

1) 언년이는 사랑받는 존재다.
대길이도 그녀를 사랑했고, 송태하도 그녀를 사랑한다. 대길이에게 그녀는 10년 이상을 기다린 '꿈'이고, 죽어서도 그리는 '꿈'이다. 송태하에게 그녀는 현재의 '꿈'이다.

사랑받는 것은 그대로 온전하게 보호되어야 한다. 사랑받는 대상의 상처받지 않을 '온전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언년이는 중요하다.

2) 다음으로, 언년이는 사랑하는 존재다.
언년이는 왜 대길이 대신에 송태하를 선택했는가?
대길이가 자신을 사랑해주었지만, 그것은 대길이가 자신을 좋아한 것이고, 그것은 '과거의 사랑'이다.
반면에, 언년이가 선택하고 '결혼'을 결심한 송태하는, 자신의 '내심의 자유'로 스스로 '선택'한 것이고, '현재의 사랑'이다. 그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따라서, 방황하던 영혼에서 '사랑의 주체'를 발견하고 사랑을 결심한 언년이는 '사랑의 자각'을 깨달은 '사랑하는 존재'다.

'사랑하는 존재'도 보호되어야 하고, '사랑받는 존재'도 보호되어야 한다.


[추노의 대주제, 언년이로 향한다]

이 점에서 추노 마지막회의 대길이는 '추노'의 대미를 장식하는 대주제를 읊조린다.

'(사랑한다 언년아) 그러니 잘 살아야 한다.'

바로 그것이다. 잘 살라는 것이다. 열심히 '사랑' 받고, 열심히 '사랑' 하고, 세상을 살아가는데 모든 억압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자유와 영혼의 가치를 만끽하며, '잘 살라는 것'이다.

그렇게 잘 살고 싶어 했던 대길이의 최후의 죽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의 제약과 모순'을 드러낸다.
그런 현실 제도적 폐악, 악습은 없어져야 한다, 없애야 한다.

반면에, 대길이의 죽음을 통해 이후의 '삶'을 보장받는 언년이는 그러한 제도적 폐악이 없는 보다 자유롭게 열린 공간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우리 모두의 '권리'와 '의무'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추노의 잠정적인 '메시지'이다.

그리고 그것이 추노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잘 살아야 한다', 그것은 비단 '언년이'에게만 국한된 '의무'는 아니다.
우리 모두는 '대길이'의 바람처럼 '언년이' 이상으로 잘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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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드라마 '추노'가 대단원을 마무리했습니다.

여기서 '언년이'(김혜원, 이다해)를 놓고 각축을 벌이던 송태하(오지호)와 대길이(장혁)의 운명도 그 최후가 가려지게 되었는데요.

대길이는 ''언년이'를 향한 영원한 사랑을 지키며, '설화'의 품에서 장엄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반면에, 송태하는 자신들의 뒤를 쫓는 황철웅(이종혁)과 관군에게 맞딱드려 위험한 순간을 맞이합니다.

이들은 '원손마마' 이석견을 모시고 서해를 건너 중국으로 넘어가고자 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송태하는 황철웅과 겨루다가 그의 칼에 깊숙히 찔리는데요.
여기서 송태하는 엄청난 출혈을 동반하지만, 그의 '생사'(生死)가 불분명하게 그려집니다.



다만, 송태하의 마지막 대사 "이 땅에 빚진게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떠날 수 없을 거 같습니다."에서 그의 남은 역할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대사의 의미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요.

1) 나는 중국으로 떠나지 않겠다.

2) 나는 여기 현장에서 상처로 인해 생을 마감할 수 밖에 없을 거 같다. 그래서 (중국으로 함께 떠나려 해도) 떠날 수 없을 거 같다.


이 장면만 보면, 1)인지 2)인지 불분명할 수 있지만,
황철웅이 송태하를 살려두는 장면에서, 송태하는 살아남았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황철웅이 송태하를 검으로 찌르기는 했지만, 그를 확실히 살려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뒤를 쫓는 관군에게도 황철웅은 "이쯤해서 됐다."고 얘기합니다.

왜 일까요?

그 발단은 황철웅이 왜 끝까지 송태하 무리를 뒤쫓아 나섰는지 그것부터 해명하면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황철웅은 왜 끝까지 송태하를 추격할까요?

그것은 황철웅이 송태하에게 가지고 있는 "자격지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추노'의 초반에 보면, 병자호란 때, 송태하가 자신의 부하로 활약하던 황철웅을 전장에서 구해준 얘기가 나옵니다.

이에 대한 '청산 의식'으로 황철웅은 송태하보다 한 수 못하구나...하는 스스로의 '자격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황철웅은 송태하와 겨루어, 자신이 송태하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을 입증하면서, 스스로 만족감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좌의정'의 '명령'으로 출발했지만, 결국에는 자기의 '자격지심'을 충족하기 위해, 좌의정의 '중단' 권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송태하 무리를 추격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런 황철웅의 심리 상태는 "자격지심"에 따른  "자존심", "우월감 세우기"로 볼 수 있습니다.

황철웅은 마지막회 막판에 송태하의 대결로 충분히 만족감을 드러내고, 억눌려있던 '욕망'을 충족해 냅니다.
자신이 송태하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을 송태하에게 각인 시키는 것만으로도 황철웅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죠.



따라서, 황철웅은 굳이 송태하를 죽일 필요까지는 없었던 것이죠.
실제로 추노 결말 부근에서 보면, 송태하가 죽었다는 얘기는 없습니다. 오히려 황철웅이 의도적으로 송태하를 살려주는 모습이 강하게 부각됩니다.

그래서 송태하는 죽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거 같아요.

오히려 '언년이'(김혜원)의 '보호자'로서 '송태하'를 살려두는 것이, 언년이를 위해 장엄한 죽음을 선택한 '대길이'의 뜻에도 맞습니다.

'언년이'는 추노에서 '사랑'의 대주제를 상징합니다. 송태하는 언년이의 '선택'을 받아 그를 앞으로 보호할 남자로, 대길이는 언년이를 사랑했던 남자로 그녀의 앞날을 '보장'해 주는 남자로 모두 한 곳을 지향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추노의 대주제는 결국 '언년이를 향하는 사랑'의 서사시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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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남의 얘기는 잘 하지 않는 스타일이고, 꼭 해야 할 필요는 없으나, 이 경우에는 다소 특별하다고 생각하여 삼가 이렇게 말해 보고자 합니다.

안재환씨가 불의의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난 이후로 보이고 있는 정선희씨의 행동은 많은 의구심을 낳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보건데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물론 이해가 안갈 수도 있는데, 정선희씨가 '공인'이라는 '지위'에서 대중적인 영향력을 준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녀의 행동이 과연 옳은 것인지 '시시비비'를 따져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시시비비'를 따져볼 내용은 많으나, 이번에 안재환씨의 어머니까지 먼저 세상을 떠나신 마당에, 이 점에 대해서만 말해 보겠습니다.


정선희씨는 안재환씨와 결혼을 했습니다.

'정략 결혼'을 했든 '사랑해서 결혼'을 했든, 결혼한 것은 사실입니다.

안재환씨가 먼저 세상을 떠나서 정선희씨도 안타까움이 있겠지만, 이런 결혼 관계는 청산되지 않았습니다.

왜 일까요?

정선희씨는 안재환씨가 먼저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와 '이혼'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사전에 '이혼장'을 작성했다는 내용도, '이혼'을 했다는 얘기도 없습니다.

결국 안재환씨는 '부부'의 관계로 먼저 세상을 떠난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정선희씨는 고 안재환씨의 '유족'으로서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정선희씨를 '아내', '부인'으로 남겨두고 안재환씨가 먼저 세상을 떠났으니까요.

안재환씨가 먼저 떠난 것에 정선희씨가 책임이 있느냐 없느냐는 굳이 따져보지 않겠습니다.
정황에 대한 짐작이 가도,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점은 무엇일까요?


정선희씨는 안재환씨의 '부인'으로서, 다시 말하면 안재환씨 가족에 대한 '며느리'로서의 역할은 끝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안재환씨의 남겨진 '아내'로서, 안재환씨 가족과도 '결혼 관계'의 마감에 따른 유종의 '청산의 관계'를 남겨두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원수를 진 집안이더라도, '이별에 대한 의식' 없이 헤어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것은 남겨진 이들이 남은 자기들의 인생을 원만하게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안재환씨가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났더라도, 정선희씨의 남겨진 배우자로서의 '의무'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첫째는, 배우자의 '가족'에게 잘 하는 일입니다. 남들보다 엄청나게 잘 할 필요는 없지만, 기본은 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안재환씨 어머니가 결혼 전에는 물론, 결혼한 이후에도, 안재환씨가 먼저 세상과 이별한 이후에도, '며느리'인 정선희씨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급기야 안재환 어머니는 정선희에게 전하는 마지막 편지를 남기고 아들을 따라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게 도대체 뭔가요?

이런 사람이 방송에 나와서 방송을 하고, 라디오 프로를 당당하게 진행하고, 안재환 어머니의 '유고' 소식을 듣고서도 '희희낙락'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를 않습니다.


이런 사람이 대중적 영향력을 지니는 방송에 나와 '오락'이나 '유희'를 논한다는게 매우 불쾌합니다.
단지 '사생활'의 관점으로 치부하기에는, 이 케이스는 너무 '비상식적' 입니다.

이런 정선희씨의 태도는 안재환의 '배우자'로서 결국 '배우자'의 남은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안재환씨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아주 분명한 증거로 볼 수 있습니다. 뭔가 '아니다' 싶은 분위기까지 엄습해 옵니다.


정선희씨는 안재환의 어머니가 남기셨다는 '편지'를 받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 '해명'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안재환씨의 '유가족'에 대한 의무가 아닙니다. 그것은 정선희씨의 착각입니다.


안재환씨 '유가족'에게 잘 해야 하고, 그들과 사건 전말의 실타래를 풀어야 하는 것은, 남편 안재환씨에 대한 정선희씨 '본인의 의무'입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정선희씨가 안재환씨를 한 때라도 '사랑'했다면, 그것은 '사랑하는 이', '사랑했던 이'에 대한 '기본적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자, 완성을 향해 가는 '의무'이기도 합니다
정선희씨는 결혼을 이미 했습니다. 배우자가 먼저 세상과 이별을 했더라도, 그에 대해 살아남은 자의 '잔존 의무'는 여전히 있습니다.

이런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대중적으로 불쾌함을 야기하고 있는 정선희씨는 자신의 처신을 즉시 되돌아봐야 합니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닫지 못한다면, 차라리 '방송'을 하는 공인의 자리에서 퇴출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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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추노'가 드디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리고 대길이는 '죽었다', '죽음'으로 '사랑'을 지키며 생(生)을 마무리했다.

'대길이'는 지고지순했다.

인생에서 '지위'나 '부귀'를 찾아나서지 않았다. '사랑'을 하는데 이것 저것 따지지 않았다.

그는 '첫사랑'을 했고, 그런 첫사랑을 끝까지 지켜주었다.

10년의 세월도 지나, '언년이' 그녀가 새로운 사랑을 선택했더라도, 대길이는 그녀를 지켜주었다.

그런 사랑을 지키기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녀의 행복과 새로운 생(生)을 빌어 주었다.
 
그래서 대길이의 사랑은 '지고지순'(至高至順)하다.



사랑하는 '여인'을 향해 그를 지키는 '남자'가 '죽음'으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은 문학 장르에서는 드문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요즘과 같이 '이해타산'(利害打算)을 따지기 쉬운 시대에 그것이 쉬운 일인가?

그래서 예술적으로 만나는 '대길이'의 '죽음'은 오히려 한(恨)이 아니라 반갑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의 '죽음'은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의 '고'(苦)를 소복한 흰 눈처럼 덮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새삼스럽게 등장한 '대길이'의 캐릭터는 지워지지 않을 인상을 남겼다. 


여기서 '대길이'를 연기한 배우 '장혁'을 새롭게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장혁은 꽤 오래된(?) 배우지만, 이 드라마에서 '절대적으로 무르익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연기의 절정'에 있는 남자 배우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지, 이 드라마에세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그러므로, 추노 마지막회까지 드라마의 결말을 끝까지 시청한 우리들은 '장혁'한테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할지도 모른다.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장혁'의 계속되는 '연기' 발전을 기대해 본다.


'언년이'(김혜원, 이다해)를 지키며 결국에는 '설화'(김하은)의 품 속에서 잠이 든 '대길이',

송태하(오지호)를 따라나선 언년이가 '과거의 사랑'을 떠나 선택한 여인의 '현재의 사랑'을 의미한다면,

'대길이'가 안긴 설화의 '품'은 '옛 사랑'을 잊고 '현재의 사랑'에 충실해야 할 '남성'의 사랑의 '의무'를 암시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들의 최후에는 모든 '사랑'이 녹아 있다. '대길이의 사랑', '언년이의 사랑', '설화의 사랑' 그들의 사랑은 상처받은 것 같지만, 그 모든 사랑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대길이'의 말처럼, 우리들에게 얘기한다.

'그러니 잘 살아야 한다.'

그렇게 잘 잘 살고 싶어 했던 '대길이', 그는 '사랑한 이들'의 품에서 영원히 잠들었지만, 우리의 가슴 속에서는 쉽게 잠들지 않을 것이다. 

'사랑한다, 잘 살아라.' 대길이는 추노의 장엄한 메시지를 전했다.

'대길이'의 죽음을 뒤로 하고, 새롭게 발견한 명품 연기의 배우 '장혁'의 더욱 빛나는 앞날도 기대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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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드라마 '추노'가 3월 24일, 25일 방송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종방을 합니다.

'추노'는 언년이와 대길이의 만남, 그리고 송태하 - 언년이 - 이대길 3자간의 갈등이 약화되면서, 후반부로 들어설수록 드라마의 긴장 관계가 다소 느슨해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또, 드라마가 마지막회, 결말이 임박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언년이'의 캐릭터는 여전히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이 되고요.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추노의 결말을 확인해 봐야 겠지만, 재미삼아 미리 예상을 해 봅니다.

일단 큰 '힌트'는 저번주 방송 분량에서 암시되고 있는데요.
그리고 그 많은 조연들이 최후를 맞이하며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있는 극중 인물의 역할에서 결말을 짐작해 볼 수 있네요. (실제 결말 내용은, '추노 대길이, 남자의 사랑, 장혁의 재발견'에서 적어보았습니다.)

추노 주요 등장 인물

1) 송태하 - 언년이 - 대길이의 운명
추노에서 '원손마마'로 나오는 '이석견'은 실화를 보면 중국으로 건너간다고 합니다.
따라서 극중에서도 송태하는 '원손마마'를 따라 중국으로 따라갈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에서 이들의 '혁명' 계획은 실패했기 때문에, '원손'을 '보위'하려는 송태하 무리의 생각은 그쯤 해서 마무리되겠네요. '용골대'가 아직 조선에 머무르며 자신의 남은 역할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언년이는 누구를 따를까요? 
'언년이'는 '여성'으로서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선택하고자 합니다. 미약하나마 극에 살아있는 언년이 캐릭터의 '주체성'이죠. 그녀에게는 '지난 과거의 사랑'보다는 '현재의 사랑'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조선'에 남은 것은 옛 족쇄일 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언년이는 '대길이'에게 '사랑받은 것'이지만, '송태하'는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언년이는 송태하를 따라 중국으로 가게 되겠네요.

그러면, 대길이는요?
대길이는 '언년이'를 가슴에 품고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사나이 '대길이'에게 주어진 '남자의 길'입니다. 언년이와 영원한 이별을 하는 것이지요.  이 장면에서 추노 OST 주제곡 임재범의 '낙인'이 찐하게 흘러나올거 같아요.

2) 최장군 - 왕손이 - 설화
극 중반에 죽을 고비를 넘긴 '최장군', '왕손이'를 살려낸 만큼, 끝까지 이들은 살아남아서 끝날 거 같아요.
아마 대길이가 집과 땅, 논밭을 사 두었다는 그 동네로 정착하러 가겠지요.
그리고 '설화'도 이들 무리를 따르지만, 반드시 대길이와 해피엔딩은 아닐꺼 같아요. 그녀도 뒤늦게나마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자신을 찾아 떠날 수도 있구요. '언년이'를 보내고 현실로 남겨진 대길이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도 물론 있습니다.

3) 황철웅, 이경식(좌의정), 이선영(딸, 부인)
황철웅은 극 초반부터 이어지고 있는 '악역'인데, 장렬하게 '다이'해 주면서, 운명의 비극을 상징하는 인물로 마감할 거 같네요.
여기서 '황철웅'의 부인으로 나오는 하시은(이선영 역)이 극 막판에 어떻게 부각될지 관심사입니다.
좌의정으로 나오는 이경식은 죽지는 않고 권력을 유지하지만, 주변 인물의 비극을 체험하며, '권력욕'과 '권력 현실'이 개인에게 가져오는 비극을 상징할 거 같네요.

4) 업복이, 초복이, 노비당 무리 
노비당 무리는 이미 한양 일대를 불태우고 일을 벌렸습니다 그러나 노비당 무리의 일부가 잡혔고, 업복이 스스로 동료를 쏘아야 했듯이, 이들이 맞이할 결말은 그리 달갑지 않을거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대에 '노비당'의 '혁명'이 성공했다는 얘기가 없습니다.
노비당 무리는 물론이고, 업복이, 초복이 모두 비극적 결말을 맞이할 가능성이 크네요.
'추노'의 가장 큰 대주제, '차별'과 '억압'을 깨고자 했던 이들의 장렬한 '최후'는 실현되지 않은 잠재적인 '꿈'을 의미하겠네요.

5) 큰주모, 작은주모, 기타

큰주모는 이미 짝을 찾았구요. 작은주모가 남는데, 최장군과 만난다면, 아마 최장군이 받아들일거 같아요.
일이 잘 풀린다면 최장군이 한양에 남을 수도 있고, 아니라면 작은주모가 최장군과 함께 대길이가 제시한 '약속의 땅'으로 '고고씽~' 하겠네요.


새로운 영상미로 '추노'라는 보기드문 참신한 소재를 선택하여 '퓨젼 사극'을 시도했기 때문에, 참 남다른 드라마였습니다. 
극의 전개도 '비극'과 '해학'이 교차하는 가운데, 오늘날 우리의 '현실'과 결코 다르지 않은 의미있는 메시지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런 '현실'을 넘어설 수 있는 중심적인 '키워드'를 제시하지 못하고, 등장인물들이 처한 당시 시대의 사회구조적 '한계 상황'에 머물고 있습니다. 인물들간에 교차하는 '사랑'의 감정을 주제와 동떨어지게 앞세우고 있으며, 여전히 '삼각관계'와 같이 '통속 드라마'의 일상적 스토리로 풀고 있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리고 인물들간의 '사랑'이 형성되고, '약화'되는 과정도 설득력있게 그려지지 않고 있구요.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인물은 '언년이' 입니다. 작가도 그렇게 생각할 거에요. 인물이 너무 약하게 그려지기는 했지만요.
왜냐하면 그녀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내가) 사랑하는 것, 사랑하게 되는 것, 사랑해 가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이죠. 사랑받는 것에서, (주체적으로) 사랑해가는 존재로 변신합니다. 그녀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사랑의 분신'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죠.

전반적으로 '해피엔딩'과 '이별', '비극'이 교차하는 결말이 될 거 같아요. 
물론 실제 진행은 드라마를 보면서 확인해 봐야 겠지요.

예상과 실제가 얼마나 다른지 비교하여 보면 재미날거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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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소녀시대를 볼 때마다 뭐가 예쁜지 모르겠다.

왜 오빠, 삼촌들은 '소녀시대'한테 열광한다고 하는 것일까?
내가 볼 때는, 또 몇몇 '언론'이 '글짓기'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거 같다.

음악방송을 보면 현장에서 오빠들의 함성 소리가 들려오기는 하지만, '삼촌팬'이라기 보다는 소녀시대와 같은 나이 또래의 친구들인 걸로 생각이 든다.

소녀시대의 멤버는 무려 9명, 태연, 제시카, 써니, 유리, 효연, 티파니, 수영, 윤아, 서현,
물론 2007년 데뷔할 때는 모두가 깜찍했다. 
                                                                
그런데 요새는 별로 감흥이 없다. 특별나게 어떤 멤버가 미모가 뛰어나서 '미인', '미녀'인지, 예쁘다는 걸 못 느끼겠다. 
가끔은 오히려 '징그럽다'는 생각도 든다. 다 큰 '처자'들이 되가는 여성 멤버가 9명이나 되니까, 솔직히 그런 기분도 든다. 

왜 일까? 


아마도 소녀시대가 '변태기'여서 그런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소녀시대'(Girls' Generation)가 데뷔할 때는 말 그대로 '소녀시대'였다. 
소녀시대는 모두 1989년생, 1990년생으로 오직 서현만 1991년생이다. 서현은 올해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런데, 소녀시대는 지금 '변태기'를 겪고 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는 말이 있지만, 소녀시대는 '알까기'라도 하고 있는 걸까?

소녀시대는 요번에 '블랙 소녀시대', '화이트 소녀시대'로 변신했다. 
'블랙 소시', '화이트 소시'로 변신한 소녀시대는, '런 데빌 런'(Run Devil Run)으로 섹시미(?)를 강조한 퍼포먼스를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난 모르겠다. 
소녀시대가 2009년 초반에 'Gee'(지)로 히트친 것은 노래가 좋았고, 노래의 컨셉이 당시 소녀시대의 모습과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 '소원을 말해봐', '오!'(Oh!), '런 데빌 런'으로 이어지고 있는 소녀시대의 타이틀곡 흐름이 과연 그녀들에게 잘 '어울리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여하튼, 소녀시대는 이제 '어른'이 되가고 있다. 
그래서 소녀시대라는 명칭도 '숙녀시대'로 곧 개명해야 할 지도 모른다. 

그래서 '변태기'다. '변태 중'이라서 안 이뻐 보이는 지도 모르겠다. 

나만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영원히 '변태'하지 않는 '요정'은 없을 것일까? 소녀시대 멤버 중에는 과연 '요정'이 있단 말인가~??

소녀시대 팬들의 열렬한 댓글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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